천년의 질문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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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일까? 태어나고 자란 이 나라에서 내가 애국심을 느끼는 순간은 결코 적지 않다.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동을 느끼게 만든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구조의 모순을 알게 되면 분노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분노도 결국 이 나라를 사랑하기에 생긴 감정이다. 어쩌면 이 감정은 교육에 의해 주입된 감정일지도 모른다. 아나키스트처럼 국가가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에서 국가의 울타리가 없다면 개인은 너무 위험하고 무력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몇 가지 사회의 문제점들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었고, 내가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생겼다.

 

오랜만에 조정래의 소설을 읽었다. 언제부터인가 대하장편에는 손이 가지 않고 권수가 많아져도 잘 읽지 않는다. 그래도 책 욕심은 있어 사놓은 책들은 쌓여간다. 이 책을 거의 다 읽을 즈음 변호사하는 후배와 잠시 이 소설의 내용 중 법쪽 관련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대답은 조금 충격이었다. 거의 대부분 사실이란 것이다. 전관예우의 문제야 알고 있던 것이지만 그런 엄청난 수임료를 한 번에 받는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다. 이런 판사와 검사가 있는 법정이라면 과연 법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얼마 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들이 보여준 행동을 보면 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검찰들의 작태를 잘 알 수 있다. 사법 농단 사태는 또 어떤가. 한국에서 법과 정의는 따로 노는 것 같다.

 

작가는 기자, 국회의원, 대기업 임원, 대기업 미술관 큐레이터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기자 장우진은 읽으면서 자연스레 주진우 기자가 떠올랐다. 이름도 그렇지만 그가 탐사 보도한 내용들이 그렇다. 대기업 비자금을 파헤치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그와 그의 아내에게 어떤 식으로 회유와 협박이 들어왔는지 잘 보여준다. 아주 큰 금액이 주는 유혹은 잠시 사람을 혼란 속으로 밀어넣는다. 누가 이런 유혹에 한 번도 흔들림 없이 굳건하겠는가. 재밌는 부분은 그가 조사하려고 한 많은 사건들이 적들의 방해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가 조사한 사건들은 기사화되지 않았다고 해도 한국 사회의 부정, 부패, 비리 등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회의원 윤현기는 보신이 철저한 인물이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늘 의식한다. 정치자금을 받지만 뒷탈이 날 돈은 먹지 않는다. 이것은 그에게 지역구를 물려주었고, 이전에 그가 모신 국회의원이 알려준 보신책이다. 지역신문에 대필로 글을 기고하지만 나름 열심히 노력한다. 대필자 고석민의 말대로 알 때까지 열 번이고 읽는다. 이것이 그를 유식하게 보이게 만든다. 나중에 지역구에 가서도 그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국회의원 자리를 놓칠 생각이 없기에 꼬투리 잡힐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단체가 있다. 바로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다. 이 단체가 그에 대한 나쁜 정보를 내놓으면 상대방 후보가 이를 이용해 그를 낙선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오너가의 사위였다가 비자금 문제를 일으킨 김태범은 재벌들이 어떻게 비자금을 만드는지, 언론을 장악하는지 잘 보여준다. 언젠가 삼성에 충성을 맹세했던 수많은 언론사 임직원들이 있지 않았나. 비자금을 잘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란 사실은 예전에 김우중의 해외 비자금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한 번 드러났다. 삼성의 비자금을 사법부가 어떻게 면죄부를 주었는지 알기에 결코 낯설지 않다. 오너가 옆에서 사장단들이 어떻게 부를 쌓는지 보여주는 장면은 재벌이 어떻게 한국의 부동산으로 거대한 부를 쌓았는지 잘 보여준다. 김태범이 새로운 재벌에 충성하면서 돈에 대한 강한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내면이다.

 

미술관 큐레이터 임예지는 재벌들이 왜 미술품 등을 사는지 잘 보여준다. 재벌가의 미술관이 부의 증식과 증여세를 피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은 이제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국보급 유물을 둘러싼 소송에서 전관예우의 힘이 드러나는데 이것은 김태범의 이혼소송이나 재벌가 자손들의 사회문제를 덮는데도 아주 위력적이다. 나중에 임예지가 양심에 찔려하거나 조각가 등을 중개하면서 높은 중개수수료를 챙기는 모습은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이다. 시간 강사 고석민이 한국 대학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생계를 걱정하는 장면은 얼마 전 읽은 책과도 연결된다. 대필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그의 모습은 씁쓸하고,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또 하나의 정치자금 모금이란 사실은 새로운 사실이다. 그들이 되지 않는 책을 내는 이유가 이것이라니.

 

실명과 차명을 오가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파헤치는 작업은 박수칠만 하다. 가독성도 좋아 잘 읽힌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문장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뭔가를 가르치려는 느낌이 든다. 스웨덴 정치나 파리 등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듯한 부분도 조금은 아쉽다. 마지막에 가서 풀어낸 이야기는 한국 관료 조직이 어떻게 재벌 등과 결탁하고 그들의 부를 불려주는지 잘 보여준다. 소설을 읽으면서 아는 부분이 늘어나면서 더 분노한다. 한국의 미래가 있는지 의문이다. 작가는 이 모든 문제를 풀 대안으로 시민단체 활성화를 이야기한다. 건전한 시민단체가 늘어나고, 국민들이 제대로 투표를 한다면 이 암울한 현실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희망을 말하지만 그 희망이 아직 가슴에 절실히 와 닿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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