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작가수첩
이응준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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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작가수첩이란 부제가 붙어있다. 솔직히 말해 이 부제를 보지 못했다. 작가 이름과 제목에 먼저 눈길이 갔다. 이 책을 펼쳐 가장 첫 문장을 읽고 <영혼의 무기>가 떠올랐다. 800쪽이 넘는 책은 그 책이 유일하다. 어떤 문장은 얼마 전에 읽었던 소설에서 그대로 인용되었다. 이 책의 구성은 <영혼의 무기>와 유사하다. 작가수첩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의 단상들을 나열해놓았다. 크게 다섯 꼭지로 나누었는데 마지막 토토 관련 이야기를 빼면 그렇게 강하게 공감할 수 있는 분류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책읽기가 너무 급했고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도 모른다.

 

이응준의 소설도 두세 권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산문집이 더 좋다. 그의 생각을 직접 적은 글들은 그의 냉소적인 감성과 이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변함없이 함성호 이야기가 나오지만 다른 책에 비하면 그의 출연 지중이 상당히 낮다. 사실 이응준의 글이 아니었다면 내가 함성호 시인의 시나 산문집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책읽기의 재미이기도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부작용이 된다. 나처럼 책 욕심이 과한 사람에게는 언제 읽을지 모르는 작가 한 명이 늘어났고, 그 책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취향에 맞다면 즐거운 시간을 가지겠지만 소유하고 싶은 책은 더 늘어난다. 그렇게 늘어난 책이 얼마인가. 작가가 말했듯이 내 것들도 아닌 것들인데.

 

그의 글을 읽다보면 회의주의와 냉소가 절로 느껴진다. 좌파와 우파의 양극단에 대한 그의 주장에는 동의한다. 선동에 약한 대중의 약점을 그가 말할 때 그들 중 한 명인 내가 보인다. 파시즘에 대한 경계는 당연하다. 역사가 그것을 이미 보여주었으니까. 이런 글들이 어떤 논리를 가지고 꾸준히 나오지는 않는다. 부제 그대로 작가의 단상들을 적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글은 한 쪽을 넘는 경우도 있다. 같은 날에 여러 개를 적은 경우도 있다. 이 역시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사실 이런 단상을 누구나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꾸준히 적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SNS에서 이런 일에 성공한 사람들이 책을 내기도 한다.

 

한국이 망한다면 한국 정치인 때문이 아니라 한국인들 때문이란 글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투표로 정치인을 뽑고, 그 정치인이 잘못되었거나 정당이 잘못되었으면 바로 잡아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문제로 넘어가면 이것이 더 심해진다. 작가의 글 중에 부모님을 간호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객관적 지표와 상관없이 그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 놀랐다. 납골묘나 산소를 찾아가지 않고 자신 속에 모시고 있다는 말에 불멸을 느끼다가 그에게 자손이 없다는 사실에 단절을 느낀다. 뭐 이것이 중요한가. 갑자기 불명이란 단어가 떠올라 적은 단상이다.

 

이 작가수첩에 나온 이야기가 소설 등으로 이어진 경우가 있다. 최근에 읽은 <해피 붓다> 속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문, 무, 불, 성을 화두 삼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화두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그는 읽기보다 쓰기에 더 중점을 둔다. 읽기는 쓰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산 자들의 책보다 죽은 자들의 책을 더 읽는다. 이유는 생략. 한국 문학비평가에 대한 신랄한 비평은 왠지 모르지만 신경숙의 남편에게로 생각이 이어진다. 이 둘의 연관성은 없는데도 말이다. 책 속 글들을 읽으면서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계속 떠오른 것은 일상의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더 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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