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음모 1
데이비드 리스 지음, 서현정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과거의 모습을 지금처럼 영상으로 볼 수 없는 시대를 그려내는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얼마나 충실하게 묘사하였는지가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1719년 런던의 상황을 잘 나타내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잘 짜여진 소설이기도 하다.


과거 회상으로 시작하면서 두 사건을 연결하면서 숨겨진 많은 이야기와 욕망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이 초창기 증권시장에 대한 두려움과 시대의 흐름을 읽게 한다. 실물경제에서 화폐경제로의 전환기에 벌어진 이 사건이 불신과 함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정직성이나 타인의 생명마저 주저 없이 빼앗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알고 있었고 알고 있는 수많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 왜곡을 가지고 있는지 말한다.


금융스릴러라고도 하고 팩션이라고도 불리는데 사실의 기반 위에서 가공의 인물과 역사적 인물이 교차하면서 진행되어 현실성과 흥미를 더욱 높여 놓았다. 시작은 비록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을 파고 들면서 나오는 알력과 음모는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몇 가지는 짐작 하였지만 전체적인 윤곽과 흐름을 알기에는 작가의 구성이 치밀하였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근대적 탐정이 생기기 전 해결사 겸 탐정 역을 하는 전직 복서인 유대인 벤자민 위버가 의뢰에 의해 조사를 한다. 의뢰 내용은 자신의 아버지가 마차에 치여 죽은 것과 의뢰인 아버지의 자살이 사실은 타살이고 그 배후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곳곳에 유대인들이 받는 억압과 그 시대 런던의 더럽고 부패한 시대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태동하는 증권시장을 설명한다.


초기의 증권시장이 이익을 위해 정보를 왜곡하고 선동하는 것을 보는데 얼마 전까지 우리사회에서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것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은 밝혀지면 법적 처벌이 따르지만 이전에는 그것조차 없었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라도 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충실한 역사 고증과 인물 묘사는 사실성을 높여주고 뒤에 숨겨진 음모와 배신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하나의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기고, 속고 속이고 협박하면서 나아간다. 반유대 정서와 런던 하층민의 빈곤한 삶과 당시 런던의 위험함을 설명하면서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벤자민의 모습은 흥미와 재미를 준다. 그리고 도둑의 왕 조나단 와일드의 모습은 다시 생각하면 현재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악당이다. 그와 와일드의 묘한 신경전과 대립은 이 소설의 숨겨진 재미 중 하나다.


이 소설을 읽는데 범인 찾기에 치중하면 재미를 놓치기 쉽다고 생각한다. 범인 찾기가 스릴러의 재미 중 하나임에 틀림없지만 작가가 치밀하게 계산된 연출로 정확한 범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최후의 순간에 가서 많은 죽음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자세히 읽기 전에는 마지막 순간에도 진실을 알기 어렵다. 그리고 작가가 공들여 묘사한 18세기 초 영국의 모습이 더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약간은 답답한 감이 있지만 매력적이고 거친 주인공 벤자민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이유가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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