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기생충 - Novel Engine POP
미아키 스가루 지음, 시온 그림, 현정수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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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유효기간에 대한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이 연구들은 사랑을 하는 남녀가 내품는 호르몬에 대해 말한다. 이 물질이 효력을 발생하는 기간은 겨우 몇 개월이다. 언론에서 설레발을 친 것을 감안하면 우리의 시간이 왜 몇 개월 혹은 몇 년에 머무는지 설명이 가능하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연구는 더 많이, 더 깊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을 기생충으로 바꾸면 어떨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다. 신경전달물질이 현대인의 수많은 질병들을 고치는 것을 생각하면 작가의 이 상상력이 그렇게 황당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뭐 실제 그렇다면 ‘나’에 대한 또 다른 철학적 문제가 생기겠지만.

 

코사카 켄고는 아주 심한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데 이 증상 때문에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도 힘들어 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은 가지도 못한다. 작은 집안은 병원처럼 소독제 냄새가 가득하다. 회사를 그만 둔 후 유일한 취미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드는 것이다. 이 일에는 꽤 좋은 솜씨를 발휘한다. 하나의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든 후 이즈미라는 한 남자가 찾아온다. 그가 바이러스를 만든 것을 알고 있다. 그가 바란 것은 한 소년을 만나 친해지라는 것이다. 성공하면 적은 돈도 주겠다고 한다. 심한 결벽증 환자 코사카는 이렇게 대인기피증이 있는 소녀 사나기 히지리를 만난다.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두 남녀가 처음 만났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사나기는 코사카가 받기로 한 돈의 반을 받기로 약속하고 친해진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사나기는 코사카의 깨끗한 방에 침입한다. 친해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 내용은 그녀의 병도 한몫한다. 둘의 첫 만남에서 서로의 문제점을 말하지 않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사나기의 병 문제가 터졌을 때 둘은 조금 더 서로를 알게 된다. 이렇게 조금씩 관계가 쌓이면서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이 사랑은 기생충에 의한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설정이 바로 여기서 등장한다.

 

코사카의 결백증도, 사나기의 대인기피증도 이 기생충이 만들었다. 약을 먹으면 이 증상은 사라진다. 작가는 여기서 끝내지 않고, 이 두 사람처럼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들의 임상 사례를 보여준다. 이 기생충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 이야기도 같이. 이 둘이 서로를 알면서 세상 밖으로 조금씩 나간 것은 어느새 조금씩 잊혀지고, 이 강렬한 기생충 이야기가 전면에 나선다. 앞에서 말한 사랑의 호르몬 이야기를 떠올린 것도 바로 이 순간이다.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기생충의 의지는 커플을 죽음으로 이끌기도 한다. 인간의 감정을 머릿속에 자리잡은 기생충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의 반전 장치를 남겨둔다.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묵직하다. 소재도,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기생충의 힘을 새롭게 극대화한 상태에서 인간의 의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무겁게 철학적 문제를 다루기보다 이 상황에 빠진 사람들의 선택과 감정을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그리고 몇 가지 앞부분에 깔아놓은 몇 가지 설정들은 뒤로 가면서 힘을 얻는다. 스산한 분위기 속에서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이 이야기에서 밝은 느낌은 잠시 나올 뿐이다. 하지만 그 잠깐의 밝음과 새로운 가능성의 희망이 여운을 남긴다. 사랑이란 추상적 감정을 다른 시각에서 보는 시간이다. 이런 기생충이라면 몸속에 키우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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