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
윤영수 지음 / 열림원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아주 두툼한 책이다. 거기에 한쪽의 분량도 최근에 나오는 책들보다 많다. 한쪽 분량을 적게 편집한 책대로 하면 천 쪽도 넘을 것이다. 아마 최근에 읽은 한 권짜리 책 중에서 가장 두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보통 이 정도 분량이면 일주일을 꼬박 읽어야 한다. 가독성이 좋다면 3~4일 정도 걸린다. 처음 며칠은 생소한 내용과 설정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솔직히 말해 지루했다. 실제로 이 책은 일주일 이상 걸렸고, 지루함 속에 다른 책도 두 권 정도 읽었다. 그러다 설정에 익숙해지고, 전개가 바뀌면서 가속도가 조금씩 붙었다.

 

한국형 판타지라는 말해 혹했다. 예전에 읽은 <착한 사람 문성현>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두툼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선택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잘못된 선택이었다. 작가가 풀어내는 세계를 나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설정한 세계를 작가 자신도 제대로 그려낸 것 같은 느낌을 받지 못했다. 작가 나름대로 단풍동과 다른 나라를 창조해내었지만 그 속에 풀어낸 이야기들과 충분히 어우러지는 느낌은 없다. 특히 단풍동의 풍경과 그 속에 살아가는 다양한 종족들은 초반에 이해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맑은이, 하얀이, 황인, 햇빛족, 땅옷족 등은 개별 설명이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에야 겨우 감을 잡았다.

 

검은머리짐승이 우리 기준에서 인간인데 이 세계에서는 짐승으로 불린다. 다른 세계로 떨어진 준호가 바로 검은머리짐승이다. 그가 이 세계에 오기 전에는 의사였다. 그것도 70대의 노인이었다. 보통 단풍동에 이 짐승들이 나타나면 바로 죽임을 당한다. 이 이유는 마지막에 가서 풀린다. 준호는 연토가 운명이라고 생각했기에 살아남았다. 그가 가진 지식은 동굴국에서도 어느 정도 유효하다, 하지만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맑은이 등에게 그는 냄새나고 더러운 짐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연토가 짚을 내어주고, 음식을 먹고, 씻을 수 있게 해주면서 생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연토를 통해 이 동굴국을 조금씩 이해하고, 계속해서 자신이 살던 셰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

 

어른이와 어미산에서 캐어오는 자식들 이야기는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이다. 이들이 자식을 얻는 방식은 우리와 다르다. 다 자란 아이를 어미산에 부부가 올라가 칠성함에 넣어 데리고 온다. 이후 이 크기를 유지하다가 늙게 되면 크기가 줄어든다. 보통 우리의 성장과 반대다. 이 다름을 작가는 꾸준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른이들은 빛이 없어도 문제없다. 연토가 장대한 여행을 떠나면서 경험하는 밝은 빛의 세계는 그에게는 고통이다. 물론 익숙해진다. 그런데 빛과 색을 동시에 생각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이들은 색깔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하고. 현대 과학을 뛰어넘는 방법이 있는 것일까?

 

이들은 물이 없다면 생존할 수도 없다. 이런 점은 나무 인간에 가까운데 이야기 속에 나무 인간들이 별도로 나온다. 준호가 누워서 자는 것을 보고 죽은 것으로 착각하는데 이것이 이들의 삶의 방식 일부를 보여준다. 집안에는 물길이 있고, 샘물을 소유한 집안은 세금을 받는다. 옛날 하나의 물길에 독이 풀려 많은 어른이들이 죽었다. 이 독초 사건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이것 또한 마지막으로 가면서 풀린다. 작가는 이렇게 앞부분에 많은 것을 만들고, 설명하고, 그려내고, 차이를 드러내야 했다. 그 사이 사이에 작은 이벤트를 집어넣어 긴장감과 재미를 불러왔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 부분이 부족하다.

 

곳곳에 한자를 한글로 풀어내었는데 한국어의 태생적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단지 한글로 풀어낸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기존의 판타지를 많이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이 세계에 그렇게 감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규모나 설정에서 아쉬움을 느낄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하지만 다른 세계 속에서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아마 개인의 경험과 이해 정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것이다. 그리고 연토가 준호를 만나고, 여행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부분들은 한 편의 성장소설로 이해해도 큰 무리가 없다. “당연한 것이 기적이오. 하루하루 해낼 일을 사고 없이 해내는 것이 기적이오.”라는 평범한 말이 더 큰 울림을 준다. 그들 세계에 대한 집착은 현실적이지만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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