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당나귀 현대지성 클래식 22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 지음, 장 드 보쉐르 그림, 송병선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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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작가가 쓴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장편 소설이자, 오늘날까지 원본이 완전하게 보전된 유일한 라틴어 소설에, 세계 최초의 액자 소설이다. 멋진 책 소개다. 보통 이런 작품들의 경우 읽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아주 재밌고 잘 읽힌다. 매우 선정적이고 방탕하다는 평이 덧붙여져 있는데 동의한다. 원색적인 표현에 그림까지 더해지면서 고대 작품들 중에 이런 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물론 그림은 에로틱한 고전 작품들의 삽화를 그린 벨기에 태생 장 드 보쉐르의 작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삽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적인 묘사에 놀란다.

 

루키우스가 화자인 1인칭 소설이다. 그가 여행을 하던 중 들은 이야기와 당나귀로 변한 후 모험을 다룬다. 인간들의 원색적인 욕망과 마법과 마녀와 신화 등이 뒤섞여 있다. 기발한 상상력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가 하면 추악한 욕망이 만들어내는 비극도 같이 나온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또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어 그 상황을 설명해준다. 액자구성인데 이어지는 액자구성이 아닌 독립적인 이야기들이다. 단순히 액자 속 이야기만 놓고 보면 간단한 단편 소설로 간주해도 큰 무리가 없다. ‘쿠피도와 프쉬케의 사랑’ 같은 장은 실제로 아주 긴 이야기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루키우스가 당나귀로 변한 것은 마녀와 마법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원래 그가 원했던 것은 새인데 약을 잘못 사용해 당나귀로 변했다. 장미꽃잎을 먹으면 인간으로 다시 변신할 수 있는데 기회가 생기질 않는다. 외모가 당나귀이다보니 그를 잡아 짐을 싣는다. 이 소설에서 수많은 모험과 액션과 이야기들이 풀려 나오는 부분은 바로 당나귀로 변한 이후다. 인간의 지성을 가지고 있지만 외모는 당나귀인 그가 무방비의 사람들로부터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 녹여내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속에는 인간의 탐욕, 색욕, 질투, 사랑, 복수 등 다양한 감정들이 표현되어 있다. 그것도 아주 노골적이고 잔인하고 원색적으로.

 

당나귀로 변신한 이후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주인들이 바뀌면서 그의 삶도 많은 굴곡을 겪는다. 몇 번은 살해의 위협 속에 노출되고, 또 어떤 순간은 거세될 뻔 했다. 처음에 도둑들에 끌려가 겪은 일들은 한 마리의 당나귀가 실제 겪는 일들이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바로 죽이는 냉정한 도둑들의 행동은 화자를 바쁘게 움직이게 만든다. 이후에 다른 주인 밑에서 일하지 않기 위해 꾀를 부려보지만 현실은 매 타작 뿐이다. 인간 같은 행동의 결과가 파렴치한 살인자와의 공개 성행위로 이어질 뻔한 적도 있다. 이런 당나귀의 모험은 나에게 인간들이 동물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습고 비극적이고 외설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황당하기까지 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간다. 그가 죽을지도 모르고, 거세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긴장감을 느낀다. 그가 뒷발로 사람들을 찰 때 잠시 통쾌함을 느끼지만 당나귀의 한계는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이 되면 다른 사건이 발생해서 그 위기를 벗어난다. 물론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런데 이 인간으로의 변신이 갑작스런 종교로 넘어가면서 이야기의 힘이 약해진다. 다른 마무리도 가능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데카메론>이 떠올랐는데 해설을 보니 연관성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등은 주석만으로 이해하기에는 조금 힘들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의 이름 비교표를 부록이 아닌 앞부분에 놓았다면 몇몇 이야기는 이해하기 더 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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