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그레이스 페일리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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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세 권의 단편집으로 미국문학의 전설이 되었다는 소개글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하루키의 에세이다. 이 글을 읽고 나면 이 소설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다. 물론 그는 그녀의 소설이 결코 쉽다고 말하지 않는다. 열성적인 독자들은 “소중하게 숙독하고 맛을 완전히 이해하고자 노력하는데, 질 좋은 오징어를 씹듯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곰곰이 맛을 음미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자신은 즐겁게 읽었다고 하는데 절대 그대로 믿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아주 힘겹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그레이스 페일리 소설 읽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열일곱 편의 단편들은 분량이 제각각이다. 1960년부터 1974년까지 쓴 단편들인데 읽다보면 이 시간의 흐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것은 페이스란 등장인물 때문이다. 페이스란 이름이 직접 등장하는 이야기도 몇 편 있고, 그녀인 듯한 인물이 등장하는 단편도 몇 편 보인다.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몇 번의 숙독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이 작가의 소설이 지닌 매력을 깨닫지 못한 나에게는 솔직히 어려운 일이다. 무형식의 형식이란 것도 나에겐 색다른 즐거움보다 당혹스럽고 낯설고 어렵다.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는 것도 아니다. 단지 좀더 집중해서 읽고, 이야기 그 자체를 즐겨야한다는 의미다.

 

소설을 읽으면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표현들이 등장한다. 노골적인 표현들인데 그 시대를 감안하면 외설죄가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떤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자유로움을 부여한다. 이런 구성은 “현실의 인물이든 가공의 인물이든 모든 이는 삶에서 열린 운명을 누릴 자격이 있다.”란 문장과 선이 닿아 있다. 그녀가 글을 쓰는 현재에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미래는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나무에 앉아 의미 없이 수다를 떨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에 이런 무의미한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기승전결이 없다 보니 갑자기 뚝 끊어지듯이 끝나는 이야기들이 많다. 단편의 매력 중 하나이지만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 속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순간도 생긴다. 유대계 여성의 이야기지만 그 흔적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소설 속에서 이런 사실이 계속 나오지만 말이다. <소녀> 같은 단편은 사회성 강한 미스터리 단편 소설로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서 상황을 만들다가 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관찰자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논리적인 추리로 마무리한다. 사실 이런 작품들이 많았다면 이 단편집 읽기기 훨씬 쉬웠을 것이다.

 

삶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인물의 환경에 따라 그 모습은 더 많이 변한다. 이야기는 나쁘게 말하면 중구난방이고 좋게 말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하는 대화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소설을 읽을 때 이런 대화법을 좋아하지 않는다. 시간 여유가 많고, 그 대화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면 집중해서 그 대화 하나 하나를 따라가겠지만 보통은 그냥 지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그 재미를 충분히 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는 전개도 작품을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늘 이런 소설이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갑자기 어느 순간 이야기들이 내 안에 들어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와 재미를 전달해준다. 다만 이 작품의 경우는 아직 그 숫자가 적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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