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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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최민석’이란 이름을 모른다. 최근에 나온 한국 작가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니 작가가 고민 상담하면서 곳곳에 풀어낸 작가의 작품들이 낯설기만 하다. 보통 어느 정도 책을 내고,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면 한 권 정도는 읽을 법도 한데 최근 나의 독서가 한 곳에 편중되다보니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 아니 이번에 한 권 생겼다. 바로 이 책이다. 소설가의 소설이 아니라 한 주간지에 상담한 것을 실은 책이란 점에서 살짝 미안함을 느낄 뻔했다. ‘뻔’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에세이조차 읽지 못한 작가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민 상담. 참 어렵다. 학창 시절, 직장 초기에 친구들 상담 많이 했다. 내가 이야기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면서 상담을 잘 하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냥 원론적인 말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상담은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 그렇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는데 그것들 대부분은 원론적이다. 자신의 경험이 풀려나올 때 이야기는 길어진다. 이때 상담 내용은 설득보다는 이런 삶도 있다는 의미다. 작가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았고, 나름의 경험을 쌓은 나에게 이 내용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지만 2~30대의 청춘이라면 어떨까? 이 또한 개인에 따라 많이 갈릴 것이다.

 

주간지 <대학내일>에 연재한 것을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 시간 순이 아니라 그의 삶이 뒤섞여 있다. 자아, 사랑, 관계, 미래의 4장으로 나누었는데 질문들이 그렇게 기발한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것들이다. 내가 겪었거나, 친구나 선후배 등이 겪은 것들이다. 내용이 조금 다르지만 질문의 기본은 비슷한 것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뭐 기발한 고민을 질문으로 던진다고 해도 작가가 그 답변을 기발하게 받아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답변을 풀어내는 방식을 보통의 상담과 달리 재밌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면 어떨까? 이 뻔한 질문들을 지루하지 않게 읽은 것은 소위 작가의 ‘글빨’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작가의 소설에 관심이 부쩍 생겼다. 당장 빌려 읽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작가가 글 속에서 왜 사지 않고 빌려 읽을까 하고 고민하지 않았는가.

 

고민 없는 삶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각자의 고민은 개인이 해결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얻거나 공감만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이 상담들을 읽으면서 그 고민들이 결국 나와 관계로 이어짐을 발견하게 된다. 고민을 풀어가는 방식은 나의 경험에서 시작한다. 겪어보지 못한 것을 멋지게 잘 포장하는 소설가라고 해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상당하려면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모두 드러낼 필요가 없지만 자신이 경험한 것은 하나의 사례로 활용하기 충분하다. 지면의 한계나 의도적인 생략들이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경험이 고민 당사자에게는 작은 용기를 심어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 고민을 상담한 사람들의 선택과 결과는 모두 자신의 것이란 점이다. 소설가는 이 부분을 꾸준히 추신으로 덧붙인다.

 

작가도 말했듯이 고민을 하는 사람도, 상담을 하는 작가도 조금씩 변한다. 아니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가면서 주변 환경이 변하는데 나 자신만 옛것을 고집하는 것은 집착이고 아집이다. 유연한 사고와 행동이 왜 중요한지 소설가의 글속에도 몇 번 나온다. 그가 글로 풀어낸 청춘 예찬과 아쉬움은 나 또한 많이 느낀 것들이다.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고민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도 그 시간을 지나온 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고민은 사람의 삶에 깊이를 더하고, 또 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무거운 내용들이지만 결코 삶을 짓누르지 않고 유쾌함을 유지하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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