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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임 제로 1 ㅣ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코디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가끔 현재의 나와 충돌하면서 책에 대해 비판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크라임 제로’가 그렇다. 뭐 어쩌면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왠지 취향에 맞지 않다. 아니 설정 자체가 나와 충돌을 하는 것이다. 폭력, 살인, 강간 등의 반사회적 행위가 유전자 치료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는 설정과 대부분의 범죄 행위가 남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통계의 이용과 이라크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그런 충돌을 불러오는 것이다.
책의 출간 연도를 확인하니 1999년이다. 작가의 전작인 ‘신의 유전자’에서도 유전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소설은 더 앞으로 나아간다. 전작이 예수의 유전자로 사람을 치료하는데 사용한다면 이번엔 유전자 조작을 거친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가진 폭력성을 거세하겠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본다면 상당히 바람직한 것이지만 나치를 비롯한 많은 우월론자들이 주창한 것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띄고 있다. 유전자 속에서 분비되는 한 물질과 연결하여 폭력성을 거세한다는 것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던 나쁜 본성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결정론적인 세계와 연결된다면 우리의 존재와 기존의 가치를 뒤집게 하는 것이다. 작가가 중간에 나치 등의 학자와 다름을 설명하지만 그 부분의 언급이 미흡하고 결말에 가서 이상적인 미래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신의 유전자’에서처럼 이번에도 악역을 맡는 것은 여자라는 것이다. 남성의 폭력성을 제거하기 위해 크라임제로 바이러스를 만들어내어 수많은 남성을 죽게 만들지만 소설 속에서 정작 악역은 여자가 맡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후천적 요인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 그런 장치를 만들었다면 충분히 이해를 하겠지만 역시 결말의 장면과 연결하여 생각한다면 어색한 부분이 많이 있다. 무기가 사라지고 유전자적으로 폭력성이 제거된 미래사회가 너무 황당하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전 지구적 재앙을 초래한 미국이 백신을 개발하여 뿌린 것으로 폭력이 사라진 미래를 초래하였다는 전개 방식과 미 대통령의 엄격한 윤리정신과 너무나도 많이 보아온 정부조직의 부패한 일부가 꾸민 음모가 연결되면서 진부함을 다시 느끼게 된다.
현재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모습을 보지 못한 시점에 쓴 소설이라 이해는 하지만 이라크에 생화학무기가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점과 이라크 국민을 가장 폭력성이 강한 국민으로 규정하는 문장들은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국가의 국민이 할 이야기가 아닌 듯하여 더 기분이 상하였다.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쉽게 집중하지 못한 것이 내 몸의 상태에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지만 작가의 설정과 전개가 나의 감성과 이성과 충돌하면서 생긴 듯하다. 사이언스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유전자에 대한 작가의 과도한 기대와 이해는 분명 현실성을 떨어트린다. 뭐 앞으로 과학이 발전하여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만 현 시점에서 이 소설이 주장하는 내용들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현재까지는 나의 취향에 분명히 제동이 걸리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