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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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이 맞다면 두 번째로 만나는 서경식의 책이다. 물론 읽지 않고 소장하고 있는 책은 이보다 더 많다. 지난 번에 읽었던 책은 서양음악이었는데 그가 풀어낸 이야기는 문외한인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하루키나 다른 작가의 글 속에서 가끔 보았던 음악 이야기를 이렇게 멋지게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다. 그 후 하루키의 음악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세계의 다른 부분을 엿보았다. 이 경험이 아직 나를 서양음악으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하나의 시장, 문화,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이번 책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 문학 등이 얼마나 얕은지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와 서경식이란 단어를 연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프리모 레비다. 그가 쓴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때문이다. 아직 읽지 않았는데 책장에 꽃힌 책을 볼 때마다 읽어야지 다짐을 하게 된다. 뭐 10년이나 된 결심이다. 이렇게 밀린 책들의 거대한 탑을 생각하면 신간엔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하는데 왠 책 욕심은. 이 책 때문에 이번 책에서 그가 다시 만나게 된 프리모 레비가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했다. 읽지도 않아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그 당시에 하지 못했다. 다만 내가 읽었던 단 한 권의 레비 책 <이것이 인간인가>와 비교할 뿐이다. 그 무거움과 작은 희망과 새로운 사실들은 아우슈비츠를 다른 시각에서 보게 했다.

 

인문 기행이란 단어가 들어간 제목처럼 한 편의 기행문이다. 그가 거쳐간 도시들과 그 도시 속 미술, 음악, 문학 등을 차분히 풀어내는데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의 자신과도 대조, 비교한다. 첫 방문이 아니기에 그때 놓친 것을 다시 보거나 그 당시 본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 긴 시간이 흐른 후 삶 속에서 배운 것들은 같은 작품이라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만들거나 더 깊은 곳까지 사유가 뻗어나간다. 이것은 같은 것을 보아도 그때의 감정이나 상황 등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또 하나 덧붙여야 할 것은 저자의 체력이다. 60이 훨씬 넘은 나이는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없게 한다. 나이에 맞는 속도가 있다. 글 속에서 자주 보이는 대목이다.

 

프리모 레비가 가장 궁금했지만 이 기행은 인문이란 단어가 붙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이탈리아 문화 등이 녹아 있다. 로마에서 카라바조의 미술을 설명할 때 예전에 본 그림과 해석이 떠오르면서 조금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미켈란젤로를 설명할 때 생략된 부분들이 궁금했고, 이 위대한 화가의 작품 중 일부만 그의 해설을 듣는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아마 이 부분은 저자의 다른 책을 통해 채워야할 것 같다. 그리고 조금 낯선 이름들이 보이는데 언제나 이들이 나의 인식 세계를 확장시켜준다. 잔 에뷔테른, 조르조 모란디, 마리노 마리니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까지 확장하면 더욱 넓고 많아진다. 욕심만 자꾸 커지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흔히 잘 인식하지 못하는 역사의 사실 중 하나가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이다. 이 부분은 번역된 책의 양이나 질 등에서 프랑스 등에 비해 월등히 적은 것과 2차대전 당시 추축국이었던 사실 때문일 것이다. 길다란 이탈리아 남북의 문제를 2차 대전의 종결과 함께 풀어낸 간략한 문장은 제3의 입장에서는 명쾌하지만 당사자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듯하다. 더 많은 자료와 함께 공부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리고 이 파르티잔들이 과거의 여행 속에서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줄 때 강한 울림을 전달해주었다. 거창한 구호나 반대급부를 바라지 않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책 한 권이 궁금했는데 2년 전에 번역되었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이다. 이유는 저자가 가장 재밌게 읽은 책 10권 한 권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이탈리아 문화를 이 책을 통해 만나면서 언젠가 가게 될 이탈리아 여행의 몇 가지 부분이 조금 바뀌었다. 단순히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알던 토리노 등이 새롭게 인식되었다. 쇼핑만 생각했던 밀라노도 마찬가지다. 볼로냐는 또 어떤가. 몇 개의 관광지와 몇 개의 미술관 등으로만 인식했던 이탈리아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이탈리아 작가와 문화를 더 공부하면 할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저자가 미켈란젤로에게 선입견을 가진 것처럼 나도 이탈리아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인문 기행과 같은 폭 넓고 깊이 있는 여행은 힘들겠지만 언젠가 다른 시선으로 이 나라를 돌아볼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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