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한승원 지음, 김선두 그림 / 불광출판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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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의 글을 오랜만에 읽는다. 한국문학의 거목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글과 나의 독서 취향은 잘 맞지 않았다. 한창 한국문학을 읽을 때도 우선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렸다. 그가 한창 활동할 시기에 나의 시선은 다른 작가로 향해 있었다. 가장 최근이라고 하면 동학농민혁명의 수장 전봉준을 다룬 <겨울잠, 봄꿈>이다. 이 작품도 작가 이름으로 검색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언제나 말하는 나의 저질 기억력 탓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매년 작품이 나온 것을 본다. 이 산문집에서 말한 것처럼 왕성한 집필활동을 한 것이다.

 

고향 장흥으로 내려가 토굴을 짓고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토굴이란 단어 때문에 진짜 토굴을 떠올렸는데 자신이 지은 집을 토굴이라고 부를 뿐이다. 집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그렇게 화려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 장흥 생활이 그에게 많은 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가 쓴 글 속에서 이 토굴은 빠짐없이 나온다. 그 앞바다와 하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광오하게 외치고, 자신과의 대결에 온 힘을 기울인다. 그 결과가 매년 내는 소설과 시와 수많은 독서다. 재밌는 것은 시력이 나빠지면서 이제 글을 쓸 때 글자 크기를 15로 한다는 것이다. 책도 1시간을 연속해서 읽지 못할 정도다. 그럼에도 글쓰기와 독서를 멈추지 않고 있다. 대단한 열정과 의지다.

 

그의 이력을 보면 굵직한 문학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하지만 대표작은 영화 때문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제외하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작품 목록을 살펴보면 낯익은 제목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크게 성공한 작품은 드물다. 이것은 그의 딸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하면서 더 유명해진 것과도 닮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의 취향은 한강이다. 한강의 초기 장편은 한국문학에 질려 있던 나에게 다시 한국문학을 기대하게 만든 작품들 중 하나다. 그 후에 나온 장편들도 모두 좋았다.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는 사 놓은지 오래 되었는데도 왠지 손이 가질 않는다. 언제 이 두 사람의 단편을 비교해서 읽어도 재밌을 것 같다.

 

원효, 초의, 추사 등은 모두 작가가 소설로 쓴 인물들이다. 그가 이 산문집에서 가장 많이 호명하는 이름들도 바로 이들이다. 유마 거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이 말한 것과 행동은 책 속에서 반복해서 나온다. 특히 유마 거사의 불가사의 해탈과 불이론은 아주 강조되고 있다. 추사의 <불이선란>과 같은 의미로 해석할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성철 스님의 고사를 이야기할 때 예전에 읽었던 에피소드가 똑같이 나오는 것을 보고 스님의 행적이 어떠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을 존경하는 마음은 나에게도 깊이 전해졌다.

 

한 명의 소설가이자 시인이 자신의 삶을, 문학의 발자취를 기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충 지나가듯 쓴다면 가능할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쓴다는 것은 열정과 의지가 동반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자연을 관찰하고, 자신과 세계를 들여다보는 행위 그 자체가 지속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이것을 그는 노년에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그가 한 명의 남자임을 보여주는 문장을 보면서 몸은 늙어도 마음은 아직 노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이 산문집은 그의 삶을 조금씩 녹여내었다. 과거와 현재를 차분하게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강 이야기가 나왔으면 했는데 어릴 때 가족 사진 한 장을 제외하면 그녀가 했다는 말 이외는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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