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그래도 우리의 나날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시바타 쇼가 1964년 서른에 내놓은 소설이다. 흑백사진을 찍듯 그 시절 일본 청춘들의 삶을 담담히 담았다. 청춘은 가슴속에 어떤 모양의 이상이라도 가지기 마련이다. 그 이상의 상실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기에 또 우리 모두 상처받기 쉬운 섬세한 존재이기에 이 소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도 20대에 이 소설을 읽었다는 평론가 신형철은 내 인생의 소설로 소개한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장편의 편지인데, 우편으로 받는 편지도 낯설고 장편의 편지도 낯설다. 희곡의 독백을 대신하며 자기 자신의 내면 깊은 곳까지 드러내는 편지의 내용도 낯설고, 그 낯설음만큼 편지라는 게 그립다.

 

소설은 주인공인 후미오가 헌책방에서 문제의 ‘H전집을 사면서 시작한다. 약혼자인 세쓰코가 책에 찍힌 도장을 알아보고 사노의 행적을 쫓다 자살한 사노가 죽기 전 쓴 편지를 구한다. 긴 편지에는 사노의 행적과 생각들이 모두 담겨있다. 사노의 편지를 읽은 후 후미오와 세쓰코의 관계에 이상전선이 흐른다. 후미오는 전과 다른 듯한 세쓰코에게 자살한 유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쓰코는 멍하니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차역에서 사고를 당하고, 그 사고로 후미오는 세쓰코에게 전에 느끼지 못한 소중한 감정을 느낀다. 몸이 회복되면 결혼해서 후미오의 직장 근처로 같이 가기로 했지만 세쓰코는 편지를 남기고 지방으로 떠난다.

 

사노와 유코는 죽기전 각각 소네와 후미오에게 편지를 남긴다. 사노는 대학교에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던 시절 격렬했던 한 시위에서 도망친다. 그 죄책감에 공산당 지하군사조직에 들어간다. 그리고 일본의 공산당 군사조직은 해체된다. 그이후 대학에 돌아와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문득 자기 자신이 배신자라는 애써 잊고 있던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노는 결국 죽음을 택한다. 반면 유코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후미오에게 자살한다는 속달 편지를 보내놓고 기다리다 죽음을 맞는다. 후미오는 여자친구와 친구들과 같이 놀러갔던 여행지에서 유코와 관계를 맺었지만, 도쿄에 돌아와 소원해진다. 후미오는 유코의 편지를 읽기전 장례식장에 가면서야 그 죽음이 자신과 관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노의 생각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유코의 임신과 낙태는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시대와 공간이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소설 속 여러 여성인물들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시선은 불편하다.

 

이야기는 후미오의 시선으로 진행되지만 6장에서 세쓰코가 남긴 편지를 통해 또 하나의 시선을 보여준다. 세쓰코의 과거에 대해 묻지 않는 후미오 때문에 독자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직접 말한다. 활달하고 명랑한 소녀였던 세쓰코는 대학생활 동안 열심히 역사연구회 활동을 한다. 그 중 열심히 활동하던 노세라는 청년을 좋아하다 역사연구회도 해체되고, 좋아하던 노세라는 존재에 대한 이상도 깨진다. 체념속에 후미오와 약혼을 하면서 소박한 생활을 꿈꾸기도 하고 격렬한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사노의 유서를 읽은 뒤로 후미오는 깨닫는다. 후미오와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후미오가 마침내 결혼 이야기를 할 때 반대로 세쓰코는 후미오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

 

후미오를 떠나는 세쓰코는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곧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세쓰코를 필요로 한다고 여기는 곳을 필요로 하게 한다. 화려한 성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의 생활이란 걸 찾아낼 수 있는지 시험하러 도쿄를 떠난다. 체념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면서 후미오의 생활에 맞추려 했지만 결국 나 자신의 생활을 찾아나선 세쓰코. 그래서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아직도우리의 나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