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다녀왔다. 막 자리에 앉아 책을 고르다가 도서관과 책이 16일 만에 나를 살렸구나 실감했다. 1월 13일에 도서관에 다시 다니기 시작할 때 만화책 찾기에 혈안이 돼서 만화책, 만화책, 만화책! 을 외치면서 겨우 글씨가 조금 있는 에세이를 같이 빌렸었다. 오늘은 앉아서 그새 단편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됐고, 300쪽 정도 되는 묵직하면서도 흡입력있는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간 한걸음씩 내가 익숙하고 좋아하는 길에 다시 섰구나 싶어 뭉클했다.



이제까지 이석증이 올 때마다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전전해와서 새로운 게 또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쓰잘데기없는 걱정이었다.
이런 시기마다 찾게 되는 고전 마스다 미리의 안본 책이 있었다. <미우라 씨의 친구>와 <누구나의 일생>. <미우라 씨의 친구>는 재밌게 봤고, <누구나의 일생>은 약간 씁쓸한 면이 있어 2권을 보려다 그만뒀다. 다음 기회로 아껴두기로.
<사이사이 풀풀>은 또 이럴 때 찾게 되는 <자기만의 방> 출판사에서 나온 만화책. 20대 여자 세명과 사이사이 풀에 대한 내용. 그림체가 귀엽고 내용이 따뜻하고 무해하다.
<해변의 스토브>와 <동경일일1>은 알라딘 만화책 카테고리에서 스테디, 편집자 추천도서에서 찾았다. <해변의 스토브>는 좋은 만화 같았는데 내가 보기엔 내가 좀 늙은 것 같다. 초반에 나오는 남주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좀 피로했다. <동경일일1>도 역시 손으로 공들인 좋은 만화 같았는데 나랑 타이밍이 안 맞았다. 컷마다 화면이 정성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지금처럼 취약한 상태에서는 좀 과했다. 그래도 <동경일일>은 나중에 2,3권을 보게 될 듯.
<고양이와 할아버지10>은 달력때문에 책까지 강매당한 언니가 이사짐 정리를 하며 니가 한번더 보고 팔아~ 해서 업어온 책. 앞부분이 잘 기억은 안나지만 아무튼 중간 어디서부터 봐도 귀엽고 힐링되는 취지가 정확하게 부합하는 책. 할머니 회상 신이 그렇게 슬프고 먹먹한게 이상해서. 언니에게도 물어보니 언니는 그 정도는 아니란다.
<커튼뒤에서>는 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배경으로 어린이 시점으로 그려진 그래픽노블. 유태인 이야기도 다뤄지지만 아주 무겁지는 않다. 그림체가 예쁘고 쉽게 읽힌다. 우연히 만난 명작.
그리고 만화책 코너 대망의 1위 <도토리 문화센터>! 언니가 좋아했던 <어쿠스틴 라이프> 작가 난다의 신작이다.(많이 지났지만~ㅋㅋ) 귀여운 그림체와 따뜻한 에피소드와 공감되는 인물들. 지친 성인을 위한 완벽한 만화책! 완결은 됐지만 단행본은 3권까지 나와있다.
특히 좋았던 책은 <도토리 문화센터>, <사이사이 풀풀>, <커튼 뒤에서>.
그리고 그림책 부문. 사실 이 부문에서는 역사적인 일이 있었다. 언니집 근처에 어린이 도서관이 있어도 통 발걸음이 안갔는데 이번엔 이사겸 마지막이라 탐험을 갔다. 어린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하는 용도도 있는듯한 1.5층 2.5층 구조가 있어서 공간이 특이했다. 아무튼 그 중에 특별히 전시된 대출불가한 책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빅북..! 가로 두뼘 세로 세뼘 정도의 큰 그림책들이 전시돼 있었다. 본 그림책과 내용은 똑같고 사이즈만 큰 동화책. 왕 크니까 왕 감동. 빅북 그림책의 용도는 낭독으로 여러 명이 같이 보기. 부모님과 자녀가 같이 보기 용도라고 한다. 난 혼자 봤지만~ 궁금해서 뒤집어봤더니 빅북들은 보통 6만 5천원에서 7만원 정도로 가격대가 고정돼 있는 듯.
<비틀비틀 아저씨>가 가장 좋았다! 이건 공감이 가서 그런듯.ㅋㅋ
<눈아이>도 좋았는데 이 책을 보며 가슴이 서늘해져서 역시 내가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나 상처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책은 전혀 그런 분위기는 아니고. 안녕달의 포근포근하고 귀여운 그림체를 빅북으로 보면 빅포근포근하다.
<곤충호텔>도 좋았는데 뭔가 익숙하게 귀여운게 좋다 싶었더니 <마음방울 채집>의 무운 그림이었다. 왕크왕귀.. 귀여운 디테일도 크게 보여서 왕 좋았다.
<나는 까마귀>는 좋은 메시지를 잘 담은 명작 그림책인데, 다만 화면이 까만까만한 게 이렇게 취약한 상태에는 안 좋았다. 까만까만한게 왕크니까 왕까만까만해서 약간 섬찟 압도되는 느낌이 있었다.
특히 좋았던 책은 <비틀비틀 아저씨>, <눈아이>.

그리고 글씨가 조금 있는 글씨책 부문.
<멀리도 가까이도 느긋한 여행>은 책은 잔잔하고 좋은 책이지만 나는 그림이 많기를 바랐기에 중단. 에피소드별 한 장정도 그림이 들어가고 글씨가 조금 있는 에세이다. 읽다가 다음을 위해 중단하고 저장.
<나도 모르게 생각한 생각들>은 믿고 보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에세이. 역시 기대보다 글이 더 많았다. 하지만 글밥이 매우 적은 책이라 조금씩 보다가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도 초반에 조금만 재밌어서. 좀 보다가 또 다음 텀을 위해 저장.
<웅크리는 것들은 다 귀여워>는 역시 글밥이 적은 그림이 간혹 있는 책. 내용이 아주 잔잔하고 무해하다. 작가가 농사를 짓는 과정이 주로 담겨있는데 소소하고 평화로움의 극치다. 갑툭 불쾌한 내용이나 캐릭터가 있을까 하는 걱정없이 볼 수 있다.
<인생 녹음 중>은 유튜브 채널 <인생 녹음 중> 부부의 에세이. 유튜브를 상상하며 역시 그림이 많을 걸로 오해해서 빌린 책. 하지만 역시 글밥이 많지 않아서 소소하게 조금씩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유튜브로 보는게 더 재밌기는 하고. 하지만 역시 팬심으로 읽게 되기도 하고. 두 사람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장점. 역시 무해하지만 좀더 솔직한 타입의 책이라 좀더 매력있다.
<좋은 사람 도감>은 제목처럼 한장 한장 도감 식이라 포스터 느낌으로 글밥이 적어서 좋았던 책. 주제도 위트있고 참신하고 좋았다. 좋은 사람의 구체적인 행동이나 장면들을 포착한 책이라 행동마다 주변의 좋은 사람이 딱 떠오른다.
<아방의 그림 수업 멤버 모집합니다>는 역시 <자기만의 방>에서 그간 나왔던 책들 중 고른 책. 그림 수업 책이다. 이 류의 다른 책들과 좀 다르게 느껴지는 점은 정말 아무런 기초도 없이 일단 한 장 그릴 수 있게 해준다는 점. 작가가 마케팅 천재인 것 같다. 앞부분 보며 따라해봤더니 정말로 나도 한 장 당장 그릴 수 있어서 아주 신이 펄펄 났다.
<어느 날, 한 나무를 만났다>는 실상 화집이다. 매일 한 자리에서 은행나무의 사계를 그린 프로젝트를 하셨다고 한다. 초록초록한 표지에 끌려 보게 됐는데 행운이었다. 화집에 중간중간 화가의 메모와 생각이 같이 있다. 도서관에 편히 앉아 전시회에 온듯 눈이 호강했다. 산과 나무 주제의 그림들.
특히 좋았던 책은 <아방의 그림 수업 멤버 모집합니다>, <어느 날, 한 나무를 만났다>, <좋은 사람 도감>.
그리하야 만화책과 그림책과 글밥이 작은 책을 넘어 마침내 글씨책에 다시 도달할 수 있었다.
<하와이 딜리버리>는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플레이리스트. 하루에 한페이지 2~3곡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 1년동안 들을 곡 1000곡 정도가 들어있다. 두 분의 노후대책으로 언젠가 하와이에 차릴 재즈바에 틀고싶은 노래 모음집. 유튜브에 '하와이 딜리버리'로 검색하면 만들어진 리스트가 공개돼있다. 저작권상 전곡이 있지는 못하지만 충분. 1월 1일에 추천된 The Zombies의 'This will be our year'를 찾아 들었는데 희망차고 포근하고 따뜻한 곡이었다.
<오늘은 살림>과 <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은 실패. <오늘은 살림>은 집정리는 해야되는데 하기는 싫어서 독서로 눈정(눈으로 정리)이라도 할까 싶어 꺼내들었는데. 야무진 살림 경험담이나 팁 혹은 그림이 많고 귀여운 살림에세이 둘 중 하나를 기대했던 것.(솔직히 특히 후자를) 그런데 그 둘 중 어딘가에 있는 좀 애매한 책이었다. <네가 봄에 써야지~>는 취약한 상태에서 읽기엔 너무 마음이 같이 무거워지고, 발이 지구바닥으로 같이 잠기는 듯했다.
<이왕 사는 거 기세좋게>와 <즐거운 어른>은 내가 확보하려는 할머니 책들 중 두 권이다. 내가 찾으려는 할머니 책 명작 목록은 살아보니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중요한 줄 알았지만 아니었던 것들에 대해서. 그럼에도 그게 뭐였든 그 시간들이 다 의미있는 것이었으며. 그런데 그걸 너무 심각하지 않게 멋부리지 않으면서 호탕하게 기세좋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얘기해줬으면 좋겠고. 그리고 동시에 그래서 결국에 그 할머니의 인생을 내가 존경할 수 있는 할머니였으면. 그러니까 어쨌든 내가 살아보니 삶이란 별거 없단다? 얘들아 다 괜찮고 사랑하고 즐겁게 살아라 하는 내용이었으면. 그런데 이걸 그냥 알게 되는 건 아니고 똥같은 일들도 다 겪어봐야 이게 사실은 정말 중요하다고 알게 된단다야~ 하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을 보석함에 하나씩 하나씩 담아두면 뒷배가 너무 든든할 것 같아서. 사실 이런 할머니책은 에세이여도 되고 소설이어도 되는데. 아직 내 보석함에는 <사는 게 뭐라고> 하나 뿐이라. 한국의 할머니도 수집하고 싶었는데. 역시 있었다...! 소중한 <즐거운 어른>. 보고 또 보면 되는데 엄청 아껴서 보고 있다. 흫 <이왕 사는 거 기세좋게>는 보석함 급에 넣기는 약간 부족한 감이 있는데. 책은 고민상담소 형식이다. 그래서 보석함 후보군에 넣을 수 있는 책. 끝까지 다 보면 아마 판별 가능하겠지. 앞부분만 오! 후보군이군! 으로 확인해두었다. <나로 늙어간다는 것>은 사실 필사하기 괜찮을까 싶어 빌려보았는데 의외로 할머니책 후보군으로 넣을 수도 있는 책이었다. 독일의 작가 할머니가 쓴 할머니책. 앞부분에서 약간 걸리는 부분(여자의 주름에 관한 첫 글)이 있지만 또 앞의 두 권보다는 약간은 멋부린 책처럼 느껴지지만 어쨌거나 할머니책 보석함 후보군으로 넣어둔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백만년만에 소설을 읽는다면 재밌는거 뭐를 봐야할까? 혼란스러워서 이동진의 과거 추천책 중 고른 책. 아마도 25년의 책은 경쟁이 치열할 것이기에. 운좋게 단편집이어서. 드디어 드디어 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자신감을 준 책. 앞부분 이야기들이 다루는 주제는 생각보다 콕콕 찌르는 책이라 편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흡입력 있다.
특히 좋았던 책은 <즐거운 어른>, <하와이 딜리버리>.
얼마만에 읽은책 목록을 정리했나 보니 22년 8월. 3년 반 전이다. 형식은 비슷하지만 좀더 단정하게 정리해서 적었다. 정확하게 똑같이 엉켜진 삶에서 책으로 회복하고자 했던 달이었다.
우선 이 정도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