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인 아파트 같은 동에 연예인 A씨가 산다. 처음엔 몰랐는데 엘레베이터에서 딱 마주치고선 식겁한 적이 있다. 근데 놀라야 될 사람은 나일 텐데 그 분도 같이 뻣뻣하게 굳어 있더라. 얼마 전에 부인도 같이 본 적 있는데 TV에선 좀 통통해 보이더니 실제로 보니까 완전 인형같이 이뻤다. 산후비만 때문에 입고 싶은 옷도 못 입고 손가락만 빨고 있는 내게는 얼마나 부럽고 이뻐 보이던지. 

근데 오늘의 화제는 그 분이 아니라 그 분의 어머니 되시는 할머니다. 아들 인물이 좋아서 그런지 할머니도 하얗고 깔끔한 태가 나는 노부인이시다. 근데 내가 이 분께 대단한 실례를 해버렸다. 

언제쯤인지 벨이 울리더니 누군가가 친정엄마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단밤을 몇봉지 주시는 걸 누구냐고 여쭤봤더니 무슨무슨 층에 사시는 할머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층에 할머니가 계시던가, 싶어서 다시 물어보니 엄마가 왜 그 A씨네 있잖아, 하고 슬쩍 눈치를 줬다. 거기서 내가 엄마의 사인을 못 알아들은 게 화근이었다. 

아, 그 A네 할머니 말이지?  

농담이 아니다. 존칭도 붙이지 않고 성도 띄어먹은 채 이름만 나가버렸다(...) 이럴 땐 눈치 없는 내가 정말 좌절스럽다. 아직 문밖에 계셔, 하는 엄마 사인도 못 알아먹고 남의 아들 이름을 누구네 친구나 되는 마냥 입밖에 내버렸으니 할머니가 거기서 들으셨다면 속 좀 상하셨을 것이다. 벌써 올라 가셨으려니 하고 넘어갔던 것이 아무래도 그 후 눈치를 보니 들으신 모양이다.(...) 난 몰라 ㅠㅠ 

그 뒤로 그 할머니가 나만 보면 샐쭉해지셔서는 말씀도 안 하신다. 아예 대놓고 야단을 치신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니 나는 그저 그 분만 뵈면 오금만 저릴 뿐이다. 오늘도 아침에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길래 안녕하세요, 하고 최대한 기분 좋게 인사를 드려 봤는데, 세상에 그냥 무시하셨다(...) 그렇게 큰 인사 소리를 못 들으셨을 리는 없는데, 아무래도 화가 이만저만 나신 게 아닌가보다. 

나는 연예계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래서 A씨와 가족들이 어떤 고충을 겪었을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 할머니도 그만큼 많이 마음 고생을 하신 탓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친 A씨의 얼굴에 담겨 있던 표정은 자기 집에서의 편안함이 아닌, 극도의 긴장감이었다. 내가 알기로 그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인기 절정을 달리던 스타였고, 지금도 역시 건실한 이미지를 가진 대중적인 연예인이다. 굴곡 많은 연예계 생활을 큰 스캔들 없이 이만큼이나 오래 견뎠으니, 그 뒤에는 아마 그 자신의 피나는 노력과 함께 남들 앞에 이야기 못할 일도 많이 겪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조금이라도 호들갑스럽게 굴었다면 그분에게 오히려 죄송한 일이다.  

물론 내 잘못을 거기에 핑계댈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할머니가 특별히 완고한 분도 아니고, 별것 아닌 일로 나이 어린 사람에게 퉁명스럽게 구시는 것도 아니다. 혹시라도 내 실언을 들으셨다면, 화를 내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일에 대해 할머니가 지금이라도 나를 붙들고 화를 내신다면, 그야말로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드릴 용의가 있다. 그렇다고 확증도 없는 일에 내가 먼저 나서서 죄송하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하여간 난감하다. 딱 바로 윗윗층에 사는 이웃인데 어쩌면 좋을까. 

*실명은 밝히지 않습니다. ^^ 

*근데 진짜 어쩜 좋아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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