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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예수
디팩 초프라 지음, 이용 옮김 / 송정문화사(송정)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어디를 보든지 혼돈의 구름이 예수의 메시지를 가리고 있다. 그것을 뚫고 나오기 위해 우리는 예수를 말하면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만 한다. 한쪽의 예수는 역사적인 인물로서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또 다른 예수는 기독교 제도에 맞춤된 예수로서 기독교를 이루는 데 적당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세 번째 예수가 있다.
이는 가장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조차 그 존재 여부를 짐작하지 못할 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결코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안되는 예수다. (중략) 그런데 복음서를 잘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첫 번째 예수는 그리 일관성있게 보이진 않는다.(중략) 우리가 이 같은 모순을 더 발견하면 할수록 예수는 신화적인 모습을 벗게 된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살과 피를 지닌 인간이라면, 그는 엄청나게 특별한 사람이어야 한다.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인간적인 면에서 뛰어나야 한다. (중략)
이런 두 예수, 즉 역사적 존재나 신학이 탄생시킨 추상적 존재에게는 모두 비극적인 면이 있다.(중략) 나는 진실로 예수가-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 아니라-그 자신이 선언했듯 한 사람의 구원자였음을 말하고 싶다.
-<제 3의 예수>에서
기독교에 대한 회의를 오랫동안, 강하게 품어온 사람으로서 반가운 책이었다. (필자는 '신성'이 사라진 종교들을 늘 쓸쓸히 바라본다.) 기독교에 의해 왜곡되고 비틀린 일종의 '예수문화'에 대한 강한 반발심은 천국에 대한 협박이나, 성경에 대한 발췌 오독, 위선적인 교인들,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지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강요 등등, 에서 생겨났다.
<제3의 예수>를 읽기에 앞서 오래된 의문에 대한 시원스런 답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다소 적개심을 가진 독자에게는 의외로 순한 중도의 의견들이 이어졌다. 절대자가 아닌 성자로서의 예수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교인들에게는 파격적인 행보가 될법도 하다. 오롯히 예수만을 바라보자는 저자의 강한 의지가 넘쳐나는 중, 그러다면 예수는 진실로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성경 밖에서, 성경 안에서 해독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 예수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될것임을 시사한다. 성서를 깊이 파고 든다면, 그 안에 진정으로 종교에게 바라는 단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이야말로 기다렸던 충고였다. 오로지 '믿음'과 '교화'를 강조하던 기독교의 세불리기 전술에 빠졌던 핵심이 아닐까. 기적이나, 희생의 자욱한 안개에서 가장 높은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준 예수가 걸어 나오는 기분이다.
책은 다양하게 성경구절을 되읊으면서 의미를 재해석하는 데 중점을 둔다. "누군가 너의 빰을 치거든 다른 쪽 빰을 내주라"는 자학이나 순교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비폭력 또는 아힘사로 전해지는 이 구절의 깊은 속내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폭력을 제압함으로써 스스로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말이라는 것이다.
신약에 대해서는 예수의 추종자들이 남긴 예수 해설서라고 일축하면서 예수 재림에 대한 기대도 단박에 꺽어버린다. 예수와 하나님의 증거에 목마른 교인들에게는 불벼락 같을지라도 예수의 깨달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천국이 안에 있다'는 말조차 내면으로 들어감이 깨달음과 같다는 해석이 내려진다. 천국으로의 도달을 위한 헌신과 봉사, 묵상등의 방법으로 내면과 바깥 세계의 모순을 풀어줄 수 없단다! 예수는 매일의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경배로 가득 찬 길을 바라지 않는단다! 오로지 자신을 깨우치는 깨달음만이 어떤 영적인 길이든 충만히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저자.
예수가 깨달았던 우주의 섭리에 대해 거웃없이 다가갈 수 있었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