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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글쓰기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이혜경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나비의 날개 위에 무엇이 있든, 매의 깃털이 어떻게 배열되었든 그것을 보여주거나 그것에 관해 말하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라고 말하며 글쓰기에 대한 대답을 회피했던 헤밍웨이도 말기에는 그의 소설, 편지, 인터뷰, 기사들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그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애정의 발로로 엮어진다. 한 번쯤은 이루져야 했을 작업물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냈다.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어떤 작업과정을 거쳤을지 상상해 보는 일은, 어떤 구절 앞에서 짜릿하기까지 했다. 세기의 거장답게, 하드 보일드 스타일의 대표자답게 거침없고 실랄한 作법들이 열거된다.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비판,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혐오, 진실한 글 한 줄에 대한 강한 신념, 경험이 촉발하는 상상력 등을 헤밍웨이의 육성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글쓰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지표로 삼을 만한 다양한 충고가 담겨져 있다. 하지만 역시나 책을 덮고 드는 생각은 헤밍웨이의 작품을 더욱 강하게 갈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가 말했던것처럼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신비로운 과정을 모두 내포할 수는 없으므로 작품 한 권이 글쓰기에도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헤밍웨이는 대단한 독서광이었던 듯 하다. 책 속에 열거되는 작품들만도 엄청나며 뛰어난 고전들을 읽어치워야 하는 이유는 그것과 다른 것을 쓰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필자와 같은 속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포부에 가깝다. 또 글쓰기와 글쓰기 사이에 책을 많이 읽는다는 그는 자신의 글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것도 일종의 作법에 포함될 것이다. 글쓰기의 샘을 마르지 않게 하는 방법은 다음에 쓸 글감이 분명해 졌을 때 작업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작업까지는 그에 대해 떠올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면 다시 작업대 앞에 앉았을 때 막힘이 없을 거라는 연금술 같은 비법을 소개한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이면 그 다음부터는 쉽다는 말도 의미심장하다. 작가 안에 자리잡은 분할된 서사가 단 하나의 문을 통해 줄줄이 빠져나올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와의 인터뷰때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 째다'라는 문장이 나를 찾아왔고 그 다음부터 소설이 풀리더란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단순하고 진실한 평서문 하나면 된다는 말. 믿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