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리스식 웨딩(1disc) - [할인행사]
조엘 즈윅 감독, 니아 바르달로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그리스 출신으로 미국에 살고 있는 툴라의 가족은
  미국에 살지만 여전히 그리스 인이다.

  사는 곳은 미국이나, 조국 그리스의 모든 것을 모두 지키고 있다.


  툴라의 아버지는 모든 단어의 기원은 그리스어라고 주장할 정도로 그리스를 사랑하고
  집안의 모든 여성이 그리스남자와 결혼해야하며
  아이는 적어도 셋은 낳아야 한다.


  툴라는 금발의 하얀피부를 가진 미국 여자애들에게 알게모르게 따돌림을 당하며
  서른이 넘는 나이까지 자신을 꾸미지 않고
  그저 집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댄싱조르바’에서 잡일을 할 뿐이다.


  아버지는 그리스인이랑 결혼하라고 성화지만
  그녀는 그리스의 모든 것이 그닥 좋지 않다.


  그냥 그런 일상을 보내던 중,
  댄싱조르바에 온 한 미국남자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 날부터 툴라의 일상이 달라진다.


  흥미가 있었지만 ’여자는 공부할 필요 없다’는 부모님의 말에 접어두었던 컴퓨터공부를 시작하고, 화장을 하고,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끼기 시작했다.
  
  식당일도 그만두고, 이모가 운영하는 그리스 여행사 접수일을 보기 시작!
  툴라의 생활이 활기를 띄기 시작하는 도중,
  첫 눈에 반했던 바로 그 남자, 이안이 이번엔 툴라에게 반해버렸다.


  툴라역의 여배우는 처음보는 얼굴이지만,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나오는 이 남자는 익숙한 사람.
  섹스앤더시티에서 캐리가 꽤 진하게 반했던 가구디자이너님이다.
  그 때도 캐리에게 청혼하고, 결혼해서 알콩달콩살기를 바라던 반듯한 남자였는데
  여기서도 여자에게 모든 걸 바치는 로맨티스트로 나왔다.


  둘의 사랑은 깊어가지만
  아버지는 그리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무 깊은 사랑에 괴로워하는 툴라를 보고
  이안은 자기가 그리스인이 되기를 결심하고
  툴라의 부모님도 둘을 허락한다.



  결혼은 집안과 집안과의 문제.
  전형적인 미국인 이안의 가족은 아들이 선택한 사람이니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결혼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툴라네 집은 다르다.


  툴라의 부모님과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이모, 삼촌, 사촌들, 사촌의 배우자, 그들의 자녀까지
  모두 ’가족’이다.
  
  양친이 만나는 상견례자리에도 온 ’가족’이 모여
  마당을 잔뜩 채우고 통돼지를 굽고 춤을 추며 야단법석이다.
  이안의 부모님은 질색을 하고,
  툴라의 부모님도 냉정한 반응에 상처를 입는다.


  그렇지만 결혼은 진행되고(이런 점은 우리나라랑 정말 다르다. 우리나라 같으면 결혼 진행 중이라도 부모님들이 훼방을 잔뜩 놓을 거야)


  경건하고 조용한, 미국식 웨딩이 아닌
  아주 크고, 성대하고, 정신없고, 유쾌한 그리스식 결혼으로 치뤄진다!

  그 정신없는 과정에서
  서로를 잘 몰라 이해할 수 없었던 양쪽 가족이 화합하고
  익숙해지고,
  서로가 틀린게 아니라 다를 뿐 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자신이 그리스인이라는 것까지 모두 사랑해주는 이안을 통해
  툴라는 자신의 뿌리까지 모두 사랑하게 된다.



  쓰다보니 줄거리를 다 써버렸다.
  이걸 읽고 영화를 보면 참 재미없겠지만, 
  영화팬들이 영화를 고를 때 참고하는 글이 아니라
  소장용 영화를 살 때 보게되는 글이니까 괜찮겠지? 암, 암.

  
  2002년에 나온, 벌써 꽤 된 영화지만
  오늘날의 나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미국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미국에 많이 살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들도 ’툴라’와 같은 과정을 많이 겪는다고 한다.
  부모님의 나라일 뿐, 자기들은 가보지도 못한 나라 때문에 겪는 차별과 갈등.
  미국에선 한국인이고 한국에선 미국인 취급을 받으며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고 들었다.
  완전히 ’미국인’인 한국계 사람들도 자라날수록 막연한 향수와 그리움을 느끼며
  한국을 인정하고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된다고 한다.


  영화속에서 본 그리스인의 모습은
  어찌보면 우리나라와 많이 닮아있다.
  온 친척이 가족이 되고, 떠들썩하고, 서로 참견많고,
  그렇지만 ’정’ 존재하는 듯한 따스하고 유쾌한 모습.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어찌보면 깔끔하고 어찌보면 냉정한 미국에서
  그리스문화나 한국의 문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나라에도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다.
  돈을 벌러 왔든, 결혼이민을 왔든, 잠시 공부하러 왔든간에 말이다.

  날이 갈수록 우리나라에도 국제결혼이 많아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제결혼은
  한국 남성과 동남아시아의 여성간의 결혼이 비율이 가장 높다.

  한국의 남성들도 ’이안’처럼 해야 한다.
  국제결혼을 택한다면, 배우자가 한국인이 되기를 강요하지 말고
  배우자의 뿌리까지도 사랑해야겠지.

  
  그렇게 자기나라가 좋으면 그 나라에서 쭉 살지, 왜 한국와서 사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 경우엔 비판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 이민을 와 놓고
  각종 압박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문화를 고집하는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년 전 학교 수업에서 세일라 벤하비브가 쓴 ’타자의 권리’를 읽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 때는 그 책이 너무도 안 읽혀(어렵다 ㅠㅠ) 꾸역꾸역 대충밖에 못 읽었고
  그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알겠다.

  모든 인간에겐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자유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따르고 싶은 문화를 따를 자유도 있다.
  사는 곳과 문화가 같을 필요는 없다.
  아무 저항없이 문화를 향유하고자, 정말 괴롭고 힘든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영화에서 툴라의 부모님은
  끊임없는 전쟁을 피해, 자신의 아이들은 안전한 곳에서 기르고 싶어
  엄청난 고생을 각오하며 미국행을 택했다.


  사람에겐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리고, 모두는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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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의 아기고양이들 - 언제 어디서나 고양이 마을…나고 나고 시리즈 2
모리 아자미노 지음 / 라이카미(부즈펌)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생일 날 선물받은 나고 고양이 그림 책,
  그 두 번째 책이다.


  '나고' 1권을 너무 기쁘게. 몰입해서 보았다.
  반면 이 책은 보는 데 더 시간이 많이 걸렸네.
  중간에 내팽개쳐둔 기간도 좀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나고'란 나라가 정말 있을 것 같아서 
  1권을 읽으며 꼭 언젠가 가보리라 두근두근 기대했는데
  리뷰를 쓰는 과정에서 자료를 찾아보다가 가상 이야기라는 걸 알아버렸다.
  (바보인건지 순진한건지 ㅋㅋ)

  그래서 2 권을 펼치고 나서는 김이 새 버렸음, 흥.


  아기고양이들의 모습이 가득하니 2권이 훨씬 그림이 귀여울 것 같았는데
  또 그렇지도 않다.
  
  이 책을 먼저 본 사람에겐 매우 귀여운 고양이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나에겐 1권 에피소드의 반복.
  1권에 나오는 고양이들의 아기적 모습을 담았고, 그 때의 이야기를 그렸다고 작가가 말했지만 보는 입장에선 1권의 내용과 별 차이가 없는 정도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오드리(아주 못생긴 스코티쉬 폴더. 그렇지만 오드리네 주인은 오드리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고양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나
  수예를 가르치는 부인네 집에 사는 리본매는 고양이(이름이 생각 안나네) 등
  몇몇은 완전 똑같은 이야기였다.


  정말로 새로 등장한 아기고양이들도 몇몇 있긴 했지만 많지 않았음.


  책의 구성도 1권이 더 아기자기 예쁜 것 같다.
  2권에는 만화식으로 칸을 나눠놓았는데
  이상하게 이 구도가 몰입이 덜 된다. 만화를 좋아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야.

  
  그리고, 나고라는 곳이 정말 있을 법하게 그려놓은 1권에 비해
  2권은 조금 무리한 설정이 넘친다.
  아무리 그 나라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저건 좀;; 싶은 느낌.
  
  예를 들어 1권에선 우체국에서 고양이 발도장도 소인으로 쓴다는 뉘앙스였는데
  2권에선 고양이 발도장'만' 쓴다고 한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걸려도 고양이 발도장만으로 소인을 찍는다니. 
  고양이가 너무 오래 일해서 지치겠슈 ㅠㅠ

  
  2권부터 읽은 사람들이 쿨하게 
  '나고는 가상이다!'하고 말하는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1권부터 읽은 나는 정말로 나고가 있는 줄 알았지ㅠㅠ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나 귀여운 고양이책임에는 틀림 없다.
  아주 귀엽고 부드러운 그림이 가득가득하니까.

  투덜대긴 했지만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에 후회없다.
  여러 번 읽어도 또 재미있을 듯 하고, 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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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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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거부가 아니라 포기.
  부끄럽게도 중도포기.


  나에겐 정말 안 읽히는 책이다.


  과학자의 눈으로 ’신’을 증명한다는 것이 신선했고
  또 대부분 내용에 공감한다.

  나도 인격신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입장이고
  그렇기에 더더욱 공감하며 볼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것은
  종교라는 것이 저질러온 악행과 많은 차별과 전쟁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종교가 이루어 온 것은 인류의 역사이다.
  인류 문화의 기반이 종교에 있다.
  그것을 단칼에 부정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깨고 부정하려고도 해야겠지.
  그런 점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무신론자가 될 뻔 했는데
  유럽 여행 도중 바티칸에 다녀와서, 이탈리아의 이름 모를 성당에 들어가서 감탄하고
  프랑스의 작은 교회에서 파이프오르간 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를 눈물을 흘린 뒤로
  다시 불가지론자로 돌아가버렸다.

  
  저자는 불가지론자를 비겁하다고 하지만, 나는 그럴 수 밖에 없다.
  종교가 이뤄온 많은 것을 감히 부정할 수가 없다.



  뭐, 끝까지 다 읽었다면 또 내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중도에 포기해 버려서 말할 자격도 없네.


  
  확실한 것은, 이 책은 아주 좋은 책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난 왜 그렇게도 책장이 안 넘어갔는가!

  그건 번역이 별로라서 그렇다고 피..핑계를 대고 싶어.

  
  전에 내가 ’내 몸 상식사전’리뷰에도 쓴 적이 있지만
  이 책도, 그 책도 번역이 이한음씨.

  나한텐 안 맞는 번역가인듯. 
  묘하게 이상한 번역으로 기본 지식도 별로 없는 과학책을 읽으려니 죽을 맛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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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클래식 05: 코기빌의 크리스마스 - 코기빌 시리즈 3 타샤 튜더 클래식 5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에 출간 된 코기빌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보니까, 지금은 인터파크에서 품절상태라 구할 수 없다.
  왜지? 절판된건 아니겠지 ㅠ 괜스레 걱정스럽다.


  이 책은 시리즈의 앞 두 권에 비해 내용이 부실하다.
  스토리라인이 별로 없다.
  그저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코기빌을 이곳저곳 보여줄 뿐이다.


  스토리 없는 그런 전개에서 더 따뜻함을 느끼는 건 왜일까?
  
  우리의 주인공 칼렙은 1권에선 아직 학생이었는데
  '코기빌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아빠가 되어있다.


  코기들도, 토끼들도, 고양이들도, 머트보가트들도
  모두 코기빌에서 잘 살고 있다.
  흥겨운 기분으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 책의 그림은 1,2 권보다 살짝 투박하다.
  1, 2 권이 아주 신경써서 그린 그림 같다면
  이 책의 그림은 외곽선이 채색된 중간에 있고
  눈과 몸통이 이어져 있는 등 살짝 러프하다.

  어떻게 보면 더 예술적일 수 있으나, 낯설고 투박한 느낌이 강하다.


  그렇지만 느낌이 좋다.
  투박한 그림과 코기빌을 보여주는 이 책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정말 세상 어딘가에 코기빌이 있고,
  코기빌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고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다.


  칼렙이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까?
  칼렙네 꼬마들은 어엿한 아버지가 되어있겠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
  누군가와 함께 읽으며 크리스마스를 준비한다면 더 좋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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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광기와 미친 천재성 - 정신질환과 천재성 사이의 교차점
자오신산 지음, 이예원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예스24에서 서평 이벤트로 받아보게 된 책이다.
  이 책의 광고에서 "만약 히틀러가 천재적인 화가나 위대한 건축가가 되었다면?"이라는 흥미로운 문구를 내 걸고 있었고,
  천재와 광인은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설명을 하고 있었다.


  나도 평소에 천재도 정상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천재들에게 조금씩 미친것 같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 책이 매우 읽고 싶었다.



  우선, 이 책의 좋은 점을 말하자면
  천재와 광인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작가가 몇번이고 말하지만
  천재현상을 정신병리학의 용어로 설명한다.
  새롭고 유용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내 평소의 흥미와도 맞아떨어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책이지만 난 이 책이 영 맘에 안든다.
  서평단 이벤트로 받은 책이라서 좋게 써주고 싶지만 읽다가 왠지 빈정상해버렸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이 작가는 너무 고집스럽다.
  꽤나 나이가 많은 (61년도에 베이징대를 졸업하였다고 한다) 작가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
  
  나는 작가 소개를 읽고나서
  많은 노교수, 노학자, 또는 머리가 하얗게 센 소설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기대했다.
  여러 분야에 지식이 있고, 그 방대한 지식을 늘어놓으면서도 흐름을 잃지 않고 글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때로는 젊은이들보다 더 열린 모습을, 때로는 세월이 준 현명함이 나에게 전율을 느끼게 하길 바랐다. 

  내가 아는 늙은 지식인의 모습은 그런 것이었다. 
  책에서 본 것이던, 어디어디에 강연을 들으러 가서 만난 것이던,
  학교에서 노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때 느꼈던 것이던. 



  내가 느꼈던 세부적인 문제점들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이 책은 내 입장에서 볼 때 별로 잘 쓰여진 글이 아니다.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한다.
  큰 틀은 있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왔다갔다 한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노학자의 지식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이건 아니다 싶어졌다. 


  둘째, 자기 자랑이 너무 심하다.
  앞서 말하였듯 이 책은 천재현상을 정신병리학의 용어로 설명하는 책이다.
  작가는 이 시도를 '언어전환'이라고 말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가 강조한다.
  뒷 부분에도 이것은 언어전환입네 하면서 꼭 언어전환이란 단어를 작은 따옴표 속에 넣고야 만다. (글쎄, 이건 역자 혹은 우리나라 출판사 편집부에서 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천재의 모습을 정신병리학의 전문용어로 설명한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강조할 필요 없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학문이 언어전환이고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활동이 언어전환이니까.
  


  셋째, 지식은 방대하나 생각은 부족하다.
   1) 작가는 자신이 천재와 광인의 비교를 위해 엄청난 지식을 습득하였음을 자랑하는데(정말 자랑한다; 내 참;)
  그러면서 이탈리아의 골상학자 롬브로소의 얘기를 한다.

  널리 알려져있다시피, 골상학은 나치의 학살에 정당성을 부여해준 학문이다.
  범죄자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롬브로소의 주장이다. 이것이 발전되어 독일인은 우월하고 유대인은 하등인간이라고, 또 나중에는 백인은 우월하고 흑인은 멍청하다는 것의 근거를 제공하려 든다.
  사람 생긴걸로 말이다!

  워낙 말도 안 되는 학문이기 때문에 현재는 거론할 가치도 없다고 평가받는다.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조사를 거듭할 수록 골상학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롬브로소를 대단하다고 평가하고 말았다.
  물론, 작가의 말 중에 앞서 이루어진 연구를 살펴볼 때는 나중에 그 연구가 비판받는 점이 있다해도 꼼꼼히 살펴보긴 해야 한다는 말이 있긴 했다.
  그러나 롬브로소를 그렇게 평가하고, 어떠한 코멘트도 붙이지 않는다면 오해받기 쉽다.
  매끈한 글을 위해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고 하기엔 다른 부분에 사족이 너무 많다.......



  2) 천재와 정신병자에 대한 평가가 너무 단정적이고 깊은 고찰이 없어보인다.

  일단 작가는 천재는 플러스, 정신병자는 마이너스라고 하고.
  천재성은 인류를 위해 헌신하므로 플러스라고 한다.
  천재에게 강박현상, 우울증등이 발생하지만 그것을 고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걸 고치면 천재성이 사라지니까. 천재는 인류에 공헌해야 하는데.

  그런데 이 사람은 천재 개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걸까?
  '천재'라고 알려진 사람 중에 행복한 여생을 산 사람이 몇이나 되나.
  천재 입장에서는 천재로 사느니 행복한 보통사람으로 사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부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걸까?

  
  그리고 광인은 왜 무조건 마이너스일까.
  천재가 보이는 현상과 달리 광인의 모습은 정말 마이너스인가?
  
  그리고 과연, 작가의 말처럼 천재도 미치광이도 타고난 것인가?
  
  모차르트의 경우 3살때 부터 엄청난 양의 음악공부를 했다고 한다.
  만약 모차르트가 음악공부를 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라났다면? 
  
  정신분열증도 타고 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프랑스의 여 의사가 한 정신분열증 소녀 르네를 고친 이야기를 쓴 '정신분열증 소녀의 수기'를 읽어보면, 정신분열증이 걸린 그 소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정상적인 성장과정이 결핍되어 있었다.

  만약 이 아이가 똑같은 유전자와 뇌 상태를 가진채로
  사랑을 담뿍 받고 자라났다면 병에 걸렸을까?

  그리고 '정신분열증 소녀의 수기'의 주인공은
  병이 호전 된 후 공부해서 생물학(물리학이었나..확실하진 않지만 기초과학 분야의) 박사가 되었다. 
  또 정신분열증을 앓으며 평생 환청, 환각에 시달리던 수학자 존 내쉬도 있다. 

  작가의 단정처럼, 정신병자는 과연 단지 마이너스일 뿐인걸까.



  4) 보수적이다. 너무 하다.
  정말 너무하다고 느꼈던 부분인데, 다다이즘을 '완전히 엉터리에다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는 짓궂은 장난'이라고 표현한다.
  다다이즘은 정신착란을 추구하는 거라고.

  봐도 감동도 없고 왜 저따구로(당연히 이렇게 까지는 안 썼지만) 그려놨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댄다. 쓰레기라고 까지 말한다.


  비슷한 예로, 작가가 정신병 환자나 쓸 문장이라고 예를 든 문장이 있는데

호수 속의 남자아이는 별빛을 태우고 있다.
 
페이지 : 137  
  난 이걸 읽자마자 멋지다고 생각했다.
  
  남자아이가 별빛이 비치는 호수에 서서 손에 물을 받아 별을 담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것이 어떤 시 속에 등장하거나, 이런 장면을 영화로 만든다면 아름다울 것 같았다.


  또 책에 나온 이 시를 한 번 보자.

제목: 작은골목

작은골목
굽어 있고 또 길다.

나는 열쇠로
두터운 벽을 두드렸다.
 
페이지 : 140  

  이것은 <문회월간> 1981년 6회에 게재된 것이라고 한다.
  
  '몽롱시'라고 하는, 약간 모호한 시의 종류라고 하는데
  나는 이걸 읽고 작은 골목의 모습과, 그 골목을 헤매는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릴 때 살던 동네의 작은 골목길과, 맞벌이 하는 부모님 때문에 목에 열쇠를 걸고 다니던 골목길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작가는 이걸 읽고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고
  이런 건 시도 아니고 아무의미도 없고 시는 무조건 이백처럼 담백해야 한다나.
 


  나도 개인적으로 내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현대미술도, 추상화도, 일부러 어렵게 만든 예술영화도 좋아하지 않지만
  그것을 예술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타인의 취향을 존중한다.

  또, 다다이즘은 전후 혼란기에 나타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 그것이 얼마나 절실했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부분을 너무 무참히 짓밟는다.
  다다이즘도, 몽롱시도, 패션디자이너의 컬렉션도 정신병이랜다.

  다다이즘이나 몽롱시, 패션쇼의 입을 수 없는 작품들이
  단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거 아닌가?

  너무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조금의 상상력도 없는 작가가 문제인 거지
  작품들이 문제는 아닌 듯.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정도의 애들이 '아웃사이더 아니면 힙합도 아니다!' 라던가
  '세상에 소녀시대보다 실력있는 걸그룹이 있냐!'라고 하는 건 귀엽기나 하지.
  나이도 있으신 분이 왜 그럴까?
  자기가 모르는 부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걸
  충분히 알만한 나이이신데, 내 참.



  처음엔 기대하며 읽었으나 갈수록 짜증만 남았다. 쳇쳇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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