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더스 - 세계사를 바꾼 튜더 왕조의 흥망사
G. J. 마이어 지음, 채은진 옮김 / 말글빛냄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튜더왕조란 말은 몰라도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 둘 만큼 대중문화의 사랑을 받은 왕도 없다. 튜더왕조는 아버지인 헨리8세와 딸인 엘리자베스 1세의 왕실계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인지도면에서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엘리자베스 1세보다는 아버지인 헨리8세가 압도적이다. 엘리자베스 1세의 인지도가 높은 이유는 영국이 변방으로 보잘 것없는 약소국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계기를 마련한 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업적도 황당한 아버지 앞에선 무색해진다.

남자 아이를 갖고 싶다고 이혼하기 위해 온 유럽을 뒤흔들고 종교개혁까지 한 왕. 그렇게 이혼하고 결혼해 놓고는 마누라를 처형한 왕. 황당하다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모르는 왕이다. 황당의 극의를 보여준 왕인 만큼 영화와 소설, 역사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얘기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얘기거리가 많기는 그 딸들인 매리 여왕과 엘리베자스 여왕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두 여왕에 대한 책도 영화도 많고 많다.

이책은 그 세사람을 모두 다룬다. 그렇다면 이책은 그 많고 많은 책들과 어떻게 다른가? 워낙 책들이 많이 나왔으니 한두권쯤은 읽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책들과 이책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책은 그 세 사람이 속한 왕실계보 즉 튜더왕조에 대한 책이다. 이책은 그 세 사람에 대해서도 다루지만 그 세사람의 시대를 묶어 하나의 전체로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튜더왕조가 등장한 시기는 중세가 끝난 시점이다. 12세기 르네상스부터 영국을 지배한 플랜태저넷 왕조가 백년전쟁의 패전과 그 패전의 후유증으로 일어난 장미전쟁으로 무너지고 그 전쟁의 폐허와 함께 중세가 끝난 시점이 튜더왕조의 시대였다.

백년전쟁과 장미전쟁은 귀족의 수를 격감시켰고 귀족의 약화와 함께 영국에선 절대왕정이 일찍 시작될 수있었다. 한 왕조를 연 사람답게 헨디7세는 특별했다. 그러나 그의 특별함은 눈에 띄지 않는 특별함이었고 덕분에 그에 대한 역사기록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의 특별함이란 중세말기라는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헨리7세의 과제는 “영국의 왕관을 귀족의 일개 분파 이상이었던 이전의 지위로 회복하는 것이었다 왕은 단순히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해야 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잉글랜드의 왕은 ‘국왕이자 황제’라기보다는 ‘동등한 자들 중의 제일인자’에 불과했다. 장미전쟁은 농업, 목축업, 산업, 무역에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별 손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군주제에 해단 신뢰를 손상시켰다. 왕은 무능해보였고 모든 신민들의 권리를 보호할 능력이 없어 보이거나 보호할 의사가 없는 것같이 보였다.” (옥스퍼드 영국사)

헨리7세는 그 과제를 해내는 위업을 이룬다. 이책의 저자는 그 이유를 헨리7세가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엇기 때문이라 말한다. “현재 그에게 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는데 아마 당시에도 비슷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스워스 전투 이전까지 그의 인생에는 극적인 순간들과 위기의 순간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 자신이 그런 시련을 원한 적은 없었다. 그는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조용히 보냈다. 그에게 왕위를 안겨준 전투에서조차 그가 했던 일은 농아나 마네킹도 할 수 있을만한 역할이엇다. 헨리는 공격당했고 헨리는 보호받았고 헨리는 왕관을 얻었다. 어떤 장면에서도 그는 수동적인 역할만 했다. 그런데도 엄청나게 큰 업적을 이루었다. 기질적으로 그는 중세의 모험심 넘치는 전사황보다는 현대의 유능한 기업간부에 더 가까웠던 것같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했으며 언제나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는 군사적인 영광을 조금도 중시하지 않았으며 유럽의 유력 가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만 그들에게 특별히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거의 명성을 남기지 못했지만그가 무대를 세운 덕분에 그의 아들과 그의 손녀가 거의 1세기 동안 차례 차례 활략을 보일 수 있었다.”

튜더시대는 절대왕정의 시대로 불린다. 헨리7세는 절대왕정을 실현했고 그가 실현한 토대위에서 그의 자손들이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업적은 악전고투의 결과였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군주정은 흔들리고 있었고 귀족들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재정은 파산상태엿다. 그는 군주의 권력을 세우고 귀족과 교회를 복종시키며 재정을 확립한 것은 헨리7세의 업적이다. 그런 아버지를 둔 것은 헨리8세의 행운이엇으며 동시에 불운이기도 햇다고 저자는 말한다.

“왕이 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대는 없었다. 헨리는 행운이 따랐다. 그는 역사상 가장 운이 좋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가 누린 행운은 대부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헨리7세는 잉글랜드의 왕권을 과거 수대에 비해 훨씬 더 확고하고 강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국고를 금으로 가득 채웠고 백성들은 평화로운 시대가 가져다주는 혜택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 익숙함, 당연함이 문제였다. 주어진 모든 것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헨리8세는 아버지가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은 물과 공기처럼 얼마든지 낭비해도 상관없었다.

헨리8세는 “아무도 못 말릴 정도로 자신의 매력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고 모든 중요한 문제에 자신이 가장 뛰어나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성격은 그의 평생동안 계속 유지되었다. 그는 그냐말로 폭군의 자격을 제대로 갖춘 한심하고 위험한 살인광이엇다. 헨리처럼 자만심이라는 높은 벽 안에 갇힌 사람은 고마움과 같은 건강한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또 그런 사람은 자신이 운이 좋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의 운명은 거의 신의 뜻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고 그에게 일어나는 행운은 모두 우주에 대한 신의 위대한 설계를 이루는 과정이며 나쁜 일은 모두 신이나 그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 외의 무언가가 우주의 법칙에 어긋났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가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헨리8세의 황당함은 그런 감사할줄 모르는 오만함 때문이었다.


"국왕은 혹시 재채기라도 하면 국사를 내려놓고 스스로 쉬는 날이라고 정하고는 음악을 연주하거나 비가 잦아들면 정원에서 가벼운 산책을 즐겼다."

"국왕이 잠을 설친 건 사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이렇게 땅이 꽁꽁 얼어붙었으니 사냥개가 움직이기 어럽지. 사냥개들이 나갈 수 없었을 거야. 양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게 아니야."

"자네가 인내심을 갖고 우리 군주를 모실 수 있을까? 군주가 낮에 올린 서류에는 서명도 않는 채 자정이 다 되도록 브랜든하고 술을 마시고 킬킬대면서 노래나 부르고 있을 때 자네가 인내심을 보일 수 있을까? 자네가 국왕을 채근할 때 국왕이 이제 잠이나 자야겠다고, 내일은 사냥을 갈 거라고 말한다면 인내심을 보일 수 있을까? 국왕을 모실 기회가 온다면 국왕을 있는 그대로 쾌락을 추구하는 군주로 받아들여야 할 거야."

아버지가 물려준 관료들이 있었기에 그는 마음 내키는 대로 즐길 수 있었다. “그의 곁에는 헨리7세 통치 말기에 정부고관이었던 충성스럽고 유능한 사람들이 있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문제들은 모두 그들이 관리했기에 그들의 군주는 마음껏 사냥과 음악과 춤을 즐기고(그는 악기 연주와 작곡에 재능이 있었다) 마상 창시합, 도박, 테니스, 수집, 궁전 개축 등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전형적인 중세귀족이었다. 그는 아버지 덕에 주어진 모든 것이 당연했고 당연한 것을 마음껏 낭비했다.

중세귀족에게 궁극의 오락은 전쟁이다. 전쟁의 영광을 위해 헨리는 아무 득도 없는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켰다. 그의 사치와 전쟁취미에 그의 아버지가 이룩한 재정은 파탄에 빠진다. 그러나 재정위기도 헨리의 취미를 그만두게는 하지 못했다.

"그대는 세금때문에 이 나라가 쓰러질 거라는 이유를 들어 내가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지. 전쟁에 나가는 군주를 지원하지 않을거라면 나라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짐이 곧 국가이다'라는 말을 한 루이 14세가 어떤 생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전쟁을 벌여 프랑스의 재정을 파멸로 이끌었고 결국 그 재정상태 때문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게 만든 루이 14세. 그에게 전쟁은 자신의 영광을 위한 놀이였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헨리8세에겐 전쟁도 사랑도 사냥과 마찬가지였을 뿐이다.

"왕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왜 가지면 안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왕의 이야기가 어디로 흐르겠는가? 사랑 이야기로, 앤 이야기로,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으로 흐를 것이다."

"추기경은 국왕이 직접 편지를 쓰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늘 말했다. 다른 국왕에게 편지를 쓸 때에도, 심지어는 교황에게 편지를 쓸 때에도 그랫다. 직접 편지를 쓰면 많은 게 달라질 경우라도 국왕은 절대로 직접 편지를 쓰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앤 불린은 왕이 직접 쓴 편지를 받았다.

사랑의 불장난에, 덧없이 사라질 감정에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왕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삼켰다. 당신은 이제 마흔이고 (왕의 꿈에 나타난) 형은 당신에게 어른이 되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당신은 아서 왕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연극으로 상연했나요? 가면극은 얼마나 많았고 가장행렬은 또 얼마나 많았나요? 종이 방패와 나무칼을 들고 등장했던 배우는 또 얼마나 많았나요?" (이상 힐러리 맨틀 ‘울프홀’에서 인용)

영국의 정상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왕에게 나라는 그의 소유물일 뿐이었다. 그의 소유물일 뿐이니 그 나라는 자신의 욕망에 봉사해야 하는 도구일 뿐이며 그는 그 소유물에 대해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었다.

그런 왕에게 사랑은 사냥이나 마찬가지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 한때의 유희였다. 전쟁 역시 더 거창할 뿐 그에게는 마찬가지였다.

헨리8세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메리, 엘리자베스는 아버지가 벌려놓은 뒷치닥거리를 하느라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가 망가트린 재정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며 그가 사랑의 불장난 때문에 일으킨 종교개혁 때문에 분열된 나라를 다시 통합해야 했다. 이것이 이 책의 주제이다.

이책은 헨리8세의 변덕이 왜 어떻게 그런 문제를 일으켰는가를 헨리8세의 행동을 따라 자세히 설명하고 그가 일으킨 문제들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상세히 살핀다. 이책은 반 이상의 지면을 그에 할당한다.

그리고 나머지 반에선 그 문제들이 그의 아들과 딸들의 치세에 어떤 문제를 일으켰고 그 문제들 때문에 그들이 악전고투해야 했던 상황을 설명한다.

이책은 영국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왕이란 개인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본격적인 역사서보다는 전기에 가깝다. 가령 이런 서술은 이책에서 보기 힘들다.

“튜더 시대는 영국사의 한 분수령으로서 앵글로-아메리카 정신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다. 신성한 전통, 고유한 애국심, 식민시대 후기의 침울함 등이 합쳐져 이 시대를 진정한 황금시대로 과대평가하게 햇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신화보다 더 복잡하고 더 흥미롭지만 덜 매력적이기 마련이다. 튜더 시대 잉글랜드가 지닌 잠재적 힘은 사회적, 경제적, 인구적인 것이엇다. 그러므로 만일 이 시기가 황금시대엿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1500년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사망 사이에 일어난 상당한 인구성장이 가용자원의 양, 특히 식량공급을 초과성장하여 맬서스주의적 인구위기를 초래할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근과 질병은 분명히 튜더 시대 경제를 저해했으나 14세기의 경우처럼 경제의 토대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인구증가로 인한 노동력과 수요의 증ㄱ5k는 경제성장과 농업의 상업화를 자극하고 무역과 도시의 부활을 고무하고 주거의 혁명을 가져왔으며 특히 런던에서 영국식 예절을 세련화했다. 그리고 튜더 시대 영국인들 사이에서 새롭고 활력 있는 태도 특히 종교개혁 사상과 칼뱅주의 신학에서 유래한 개인주의적 태도를 조장했다.” (옥스퍼드 영국사)

그러나 이책은 충분히 왕조사라 불릴만하다. 그 이유는 100년이 넘는 튜더왕조의 시대를 묶는 문제가 무엇이었는가가 이책의 주제이기 때문이며 그 주제를 제대로 설명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서에선 무시되기 마련인 왕이란 개인에 주목하고 개인이 어떻게 시대를 규정햇는가를 이해하는데 주목했다는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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