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반양장) - 간략한 역사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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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혁명은 아래로부터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혁명은 위로부터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 혁명은 위로부터의 혁명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 혁명을 “계급권력의 회복을 위한 프라젝트”라 정의한다. 그 혁명은 황금기의 종말에 대한 반응이었다. 2차대전 이후 닉슨 쇼크까지를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보는 데는 좌건 우건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황금기가 왜 끝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이책의 저자를 포함해 좌파에선 그 원인을 이윤율 저하경향 때문이라 보는데 대체로 이견이 없다. 문론 좌파에서도 이윤율 저하경향이 왜 나타났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그에 대해선 전에 리뷰한 ‘자본의 반격’과 브레너의 ‘Boom and Bubble’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그 원인보다 결과에만 관심이 있다. 원인이야 어쨌건 결과는 동일하고 신자유주의 혁명은 그 결과에 대한 반응이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혁명은 사회에 embedding된 자본을 disembedding하는 프라젝트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후 “유럽에는 사회민주주의, 카톨릭 민주주의, 그리고 통제국가 등 다양한 국가들이 등장했다. 미국 자신은 자유민주주의 국가형태로 전환했다. 이런 다양한 국가형태들은 공히 완전고용, 경제성장, 그리고 시민들의 복지에 초점을 둬야 하며 국가권력은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시장에 개입하거나 이를 대체했다. 경기순환을 완화하고 합리적으로 완전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흔히 ‘케인즈적’이라 불리는 재정/통화정책들이 채택되었다. 국내평화와 안정의 보증으로 자본과 노동 간 ‘계급타협’이 주창되었다. 국가는 적극적으로 산업에 개입했고 다양한 복지체계들을 구축하여 임금의 사회적 표준을 설정했다. 이는 시장과정과 기업활동이 경제/산업 전략의 방법을 유도하는 사회적. 정치적 제약들과 규제환경의 그물에 의해 어떻게 둘러싸여 있는지 알려준다. 신자유주의적 프라젝트는 이런 제약들로부터 자본을 탈착근(disembedding)하는 것이다.”

시절이 좋을 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나누어야 할 파이가 쪼그라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후 안정조건의 하나는 상위 계급들의 경제적 힘이 제약되면서 경제적 파이의 훨씬 더 많은 몫을 노동자들이 갖게 하는 것이었다. 성장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이런 제약이 문제되지 않았다. 파이는 계속 커져갔으므로 그 파이의 안정적인 몫을 챙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1970년대 성장이 붕괴되어 실질이자율이 마이너스가 되고 매우 낮은 배당 및 이윤만을 받게 되면서 상위계급들은 위협을 느꼈다. 상위계급들은 파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해야만 햇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그들의 혁명이었다.

혁명의 목적은 당연히 이윤율의 회복이었다.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그러나 가장 쉽고 분명한 방법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줄이는 것이다. 저자식으로 말하자면 전후 복지국가에 embedding되어있던 자본을 disembedding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후합의의 파기엿다. 상위계급으로의 “재분배효과와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는 신자유주의화의 지속적 특징이었다.”

그러면 국가를 장악해야 햇다. “방법은 다양했다.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영향이 기업, 대중매체 그리고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들-대학, 학교, 교회, 그리고 전문가단체 등-을 통해 유푀더었다. 하이에크가 1947년에 이미 예견했던 이러한 제도들을 통한 신자유주의적 사고들의 ‘긴 행군’ (기업에 의한 후원과 기금으로) 싱크탱크의 조직, 대중매체의 장악,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의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으로의 전향등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여론을 형성했다. 이러한 운동은 그 이후 궁극적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하면서 공고해졌다.” (신자유주의의 지적/정치적 계보는 복잡하다. 이책에선 개요정도만 다루어진다. 미국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에 대해선 크루그만의 ‘미래를 말하다’가 쉽고 자세하게 다룬다. 영국의 경우엔 박지향의 대처평전인 ‘중간은 없다’가 볼만하다)

신자유주의자 혁명의 날자는 레이건과 대처가 국가를 장악한 해이다. 그러나 정치혁명으로서 신자유주의는 그보다 일찍 뉴욕에서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본주의적 재구조화와 탈산업화는 여러 해 동안 도시의 경제적 기반을 침식했으며 급속한 교외화는 중심 도시의 대부분을 빈곤상태로 방치햇다. 결과는 1960년대 동안 주변화된 주민들의 일부에 의한 사회적 불안, 즉 '도시 위기'로 알려진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1970년대 "경기후퇴가 진행되면서 뉴욕 시 예산의 수입과 지출 격차는 증가햇다(수년에 걸친 무분멸한 차입으로 부채규모는 상당히 컸다)." 처음엔 뉴욕 상업은행들도 적자를 메우는 것을 도왔지만 은행들도 한계에 부딪히고 채무연장을 거부하면서 뉴욕은 기술적 파산상태에 들어간다. '포드가 뉴욕시에게: 죽어라'란 헤드라인처럼 연방정부는 지원을 거부한다. 뉴욕시로선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이때 시정부의 긴급구제를 맡은 뉴욕 은행가들에 의해 뉴욕시의 정책방향이 우회전을 한다. "공적 고용 및 교육, 공공보건, 교통 서비스 등의 임금동결과 인력 삭감으로 이어졌으며 수직자 부담금을 부과(뉴욕시립대에 처음으로 수업료 체계가 도입되었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을 줄여야 하니 당연한 조치이긴 했다. 그러나 이전까지 뉴욕의 리버럴 정책기조가 이때부터 신자유주의화되어 고정된다. "수년 사이 뉴욕 노동계급이 일궈낸 많은 역사적 업적이 해체되었다. 도시의 사회적 인프라의 상당부분이 감축되었고 물리적 인프라(예로 지하철 체계)는 투자는 커녕 유지조차 어려울 정도로 퇴락했다. 그러나 뉴욕의 투자은행가들은 도시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의 의제 적합한 방식으로 도시를 재구조화활 기회를 포착했다. '좋은 경영분위기'의 창출이 우선이었다. 이는 경영을 위해서 적절한 인프라(특히 원격통신)의 건설에 공적자원을 사용함을 의미했으며 결국 자본주의적 기업을 위한 보조 및 조세유인책과 결합되엇다. 기업복지가 사람복지를 대체했다. 시정부는 사민주의적 기구라기보다는 기업주의적 기구로 변질되었다. 투자 자본을 위한 도시간 경쟁은 시정부를 공사파트너십을 통한 도시 거버넌스로 전환시켰다. 도시경영은 점차 폐쇄된 밀실에서 이뤄졌고 지방 거버넌스의 민주적, 대의적 요소들은 사라졌다.

뉴욕 재정위기관리는 1980년대 '레이건 정부에 의해 국내뿐 아니라 IMF를 통해 국제적으로도 신자유주의적 관행을 위한 길을 선도했다. 이는 금융기관들의 위원회 및 채권소유자들의 수익과 시민들의 복지가 대립하는 경우 전자에 특혜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부역할이 구성원 대부분의 필요와 복지를 보살피기보다는 좋은 경영분위기를 창출함에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레이거노믹스는 뉴욕 시나리오를 확대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식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세계에 국가의 자리는 없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강한 시장과 강한 국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몹시 회의적이다. 다수결 원칙에 의한 통치는 개인적 권리와 헌정적 자유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민주주의는 사치스럽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전문가와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적이고 의회에 의한 의사결정보다도 행정적 지시체계나 사법적 결정에 의한 정부를 강력히 선호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중앙은행과 같은 주요 기구들을 민주적 압력으로부터 격리하려 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말하는 자유가 소유적 개인주의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소유적 개인주의의 이해관계는 공동체의 이익과 충돌한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그런 사적 이익을 마음대로 추구할 자유이다. 그런 자유와 공동체가 충돌해 "집단적 개입을 추구하는 사회운동에 봉착할 경우" 신자유주의의 자유를 지키려면 그런 운동을 억압할 국가가 필요하다. 그런 국가는 "반대를 진압하기 위해 설득, 선전 또는 필요하다면 적나라한 폭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폴라니가 두려워했던 점이다. 즉 자유주의적 (확장하면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 프라젝트는 궁극적으로 권위주의에 의존함으로써 유지된다. 대중의 자유는 소수의 자유를 위해 제한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네오콘으로의 진화는 필연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축적위기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면 그 해답으로서 신자유주의는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

“병든 경제의 치유에 관한 모든 수사와는 달리 영국과 미국 모두 1980년대에 높은 수준의 경제적 업적을 달성하지 못함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자본가들의 기도에 대한 해답이 아님을 제시했다.

세계 전체의 성장률은 1960년대 3.5% 정도였으며 심지어 어려웠던 1970년대에도 단지 2.4%로 떨어진 정도엿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의 1.4%, 1.1%라는 성장률(그리고 200년 이래 거의 1%에 불과한 성장률)은 신자유주의화가 세계적인 성장을 촉진하는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확실히 인플레이션은 낮아졌고 이자율도 떨어졌지만 이는 높은 실업률이라는 희생을 대가로 한 것이었다. 국가복지와 인프라 지출의 축소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켰다. 전반적으로 저성장과 소득불균등 증가의 어색한 혼합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단지 동아시아와 동남아 그리고 최근 인도에서 신자유주의화가 약간의 긍정적인 성장 기록을 보였지만 이는 전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할 수 없는 발전주의 국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실패작인 신자유주의가 그 ‘자유’로 하려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숨은 의제는 성장이 아니라 분배엿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화의 본질적이고 주된 업적은 부와 소득의 창출보다는 재분배에 있었다.” 저자는 그 메커니즘을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ion)’이라 부른다. 맑스가 말한 원시적 축적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탈취에 의한 축적’은 원시적 축적이 그랬듯이 강한 국가의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의제 중 하나였던 민영화를 보자. “공적 자산이었던 것들의 법인호, 상품화, 민영화는 신자유주의 프라젝트의 징후적 양상이다. 이의 우선된 목적은 그간 이윤가능성의 산정에서 제외되었던 영역에서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개발하려는 것이ㅏㄷ. 모든 종류의 공적사업들(물, 통신, 교통), 사회복지(공공주택, 교육, 보건의료, 연금), 공적기관들(대학, 연구실, 감옥) 그리고 심지어 전쟁(이라크에서 정규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민간 용병)도 민영화되었다.

그러나 탈취에 의한 축적의 본질은 민영화보다는 금융화에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워싱턴 콘센서스에서 민영화와 항상 짝을 이루었던 탈규제(또는 규제개혁)은 사실 금융의 탈규제가 핵심의제엿다. 경제의 세계화를 위해선 금융의 세계화가 따라야 한다고 주장햇지만 통계는 주장과는 다른 사실을 보여준다. 2001년 세계금융시장의 거래량은 연간 40조달러였다. 그러나 “국제무역과 생산적 투자 흐름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액수는 800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앗다.

금융의 세계화를 가능하게 한 “탈규제는 금융 시스템을 투기, 강탈, 사기, 그리고 도둑질에 의한 재분배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90년대 이후 미국에서 금융부문의 “고용은 급격히 성장했다. 그러나 이점이 얼마나 생산적인가에 관해서는 심각한 문제들이 제기된다. 금융업의 많은 부분들은 단지 금융에 관한 것일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투기 이득만이 부단히 추구되엇고 이러한 이득은 각자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실현 여부가 결정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금융업은 미국에서 가장 이윤율이 높았다. 그 비결은 이제는 명백해졋듯이 투기였다. 그 투기가 어떻게 돈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주식상장, 폰지형 사기, 인플레이션을 통한 구조적 자산 파기, 흡수합병과 취득을 통한 자산 박탈, 심지어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도 전체 인구를 부채 노역자로 전락시키는 부채 부담 수준의 증대. 기업적 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신용과 주식 조작에 의한 자산 탈취 등은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의 핵심이 되엇다.

이른바 금융 및 통제기능을 하는 소위 글로벌시티들은 부와 특권의 장엄한 섬이 되었으며 이러한 운영이 가능한 장소를 제공하고자 고층건물이 치솟고 수백만 제곱피트의 사무공간이 건설된다. 이러한 고층건물들에서의 층 사이의 거래는 엄청난 부를 창출한다. 맨해튼, 도쿄,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홍콩 그리고 오늘날 상하이으 빠르게 변하는 스카이라인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 도시들이 경이로운 이유는 재분배 또는 탈취에 의한 축적의 열매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탈취에 의한 축적의 가장 현란한 묘기는 위기의 관리와 조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금융위기는 항상 자신의 자산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신용을 창출할 수 잇는 위치에 잇는 사람들에게로 소유권과 권력의 이전을 유발한다. (1997-1998년) 아시아의 위기도 예외는 아니다. 서구와 일본 기업들이 큰 승자라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현저한 평가절하, IMF에 의해 강제된 금융자유화, 그리고 IMF가 촉진한 회복의 결합은 지난 50년간 평상시에 세계 모든 곳에서 일어난 자국 소유자로부터 외국인 소유자로의 가장 큰 자산이전보다도 더 컸으며 1980년대 라틴아메리카나 1994년 이후 멕시코에서 자국 소유자로부터 미국인 소유자에게 이전되었던 것을 왜소하게 만들 정도다. ‘침체기에 자산은 그들의 적법한 소유자에게로 되돌아간다’는 멜론의 말을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한계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예로 미국의 방대한 쌍둥이 적자는 “신자유주의가 자본축적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실용적인 이론 지침으로서 수명을 다했다는 강력한 조짐이다.” 그 이유는 탈취에 의한 축적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라 저자는 보는 것같다. 더 이상 뽑아낼 것이 마땅치 않은 단계에 달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가 이책을 이번 위기 이후에 썼다면 이번 위기를 신자유주의의 사망선고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뒷처리뿐이라 덧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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