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ompany 500 : 세계 명문기업들의 흥망성쇠 CEO의 서가 1
래리 슈웨이카트 & 린 피어슨 도티 지음, 장세현 옮김 / 타임비즈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고전이 된 아리기의 ‘장기 20세기’는 미국이 어떻게 패권을 잡게 되었으며 어떻게 패권(hegemony)을 잃어가는가 란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책이 쓰인 1994년은 미묘한 시점이었다. 역사의 종말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미국의 징치, 군사적 패권은 정점에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황혼인 것으로 보엿다.

그 시점에서 아리기는 세계경제의 패권자(hegemon)로서 미국은 현재 어떤 상태에 있으며 앞으로 패권의 향방은 어디로 갈 것인가 란 질문을 던졌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리기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13세기 이탈리아까지 거슬러 올라가 20세기까지 내려오는 장대한 탐색을 시작한다. 그 탐색의 결과 아리기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일반론을 제시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를 세계경제로 이해할 때 세계경제의 패권은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스페인으로, 네델란드로, 영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옮겨졌다. 아리기는 이러한 패권의 이동의 메커니즘에 대한 일반이론을 제시한다.

패권국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한 그 패권국의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그 패권국의 시장확대능력이 한계에 이르면 이윤율저하 경향이 나타나면서 시장에 자본은 더 이상 투입되지 않는다. 아리기는 (맑스보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따라 이윤율저하 경향이란 시장의 규모에 비해 자본의 총량이 커질 때 일어난다고 본다. 단순한 나눗셈의 문제란 말이다. 시장이 확장될때 자본은 M-C-M의 정상적인 순환을 따른다. 그러나 이윤율저하 경향이 나타나 자본이 시장에투입되지 않을 때 순환은 M-M의 사이클을 따르게 된다. 다시 말해 물질적 확장은 멈추고 금융확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이 시기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에드워드 시대에 해당한다.

패권국이 더 이상 세계경제를 확장할 능력을 보이지 않을 때 패권의 붕괴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패권이 붕괴하는 혼란기에 패권의 그늘에 있던 후보가 정상으로 등극하는데 이 후보는 패권국이 할 수 없었던 시장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다른 조직구조를 가진다. 아리기에 따르면 미국이 패권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영국의 패권이 해결할 수 없었던 시장확대의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조직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리기는 그 조직구조를 챈들러가 말한 경영혁명이라 말한다.



“As Chandler has shown, the internalization within a single organizational domain of activities and transactions previously carried out by separate business units enabled vertically integrated, multi-unit enterprises to reduce and make more calculable transaction costs – costs, that is, associated with the trasfer of intermediate inputs through a long chain of separate organizational domains connecting primary production to final consumption. The economies thus created were ‘economies of speed’ rather than ‘economies of size’” (Giovanni Arrighi)

이책은 7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어울리게 식민지시대부터 21세기까지 400년이 넘는 미국경영사를 다룬다. 저자들은 나름 각 시대의 특징과 그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기업들의 사례를 보여주면서 요령있게 그 긴 기간을 정리하지만 400년이란 시간을 생각하면 700 페이지는 결코 충분한 분량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그 시간을 정리한다: 챈들러가 말하는 경영혁명이 왜 미국에서 일어났는지 그 혁명이 어떻게 변해갔는가.

독립 이전 미국은 농업중심의 경제였다. 식민지 시절 미국은 영국의 삼각무역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서인도제도에 식량 등의 생필품을 팔아 번 돈으로 영국에서 공산품을 수입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삼각무역의 시스템이 무너졌고 미국은 영국에서 수입하던 제철, 섬유 등의 물품을 자급하면서 산업화가 시작된다.

산업화와 맞물린 도시화는 “규모의 경제를 가능케 하여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다. 1810년까지만 해도 14명중 13명이 시골에 거주했을 정도로 도시화가 미미했지만 인구의 집중으로 발생한 시장효과는 제조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수요가 보다 광대해지면서 이전엔 장인들만 만들던 물품을 제조업자가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이는 규모의 경제로 이어졌다. 생산량을 늘려 물품의 단위당 생산비용을 낮춤으로써 높은 수익을 유지할 수 잇었고 이를 통해 미국기업가들은 박리다매의 이점을 습득햇다. 또한 도시화는 한 주요 사업체 가까이에 그와 고나련된 다수의 부수적 사업체가 모여드는 현상을 야기했다.”

클러스터링은 기술과 조직 상의 발전을 촉진했다. 예를 들어 “휘트니는 일정한 규격의 부품 이용(프랑스에서 차용), 대량생산(아크라이트와 모즐리에게서 차용), 단순한 디자인(휘트니 본인의 아이디어0이라는 세가지 요소를 받아들엿다. 이 요소가 ‘미국식 제조업’의 토대를 형성했다. 정확한 수치에 따라 규격화된 금형을 사용하는 휘트니의 방식은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들가지 모두 장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력기계가 대량생산의 한 축을 담당했다면 부품의 규격화를 통해서는 호환성이 확보되었다. 휘트니가 너스킷 총 제조를 통해 구현한 새로운 제조업 방식은 북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가 발명한 조면기로 남부는 ‘목화 단일경제’로 이행할 수 있었으며 수익성 있는 노예제도를 영구화할 수 있었다. 사실 초대 대통령을 제외한다면 신생 미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자리 잡는데 휘트니만큼 공헌한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세기초에 이미 미국은 기술적으로, 특히 제조공정에 있어 영국을 능가했다. 미국에서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노동력 부족때문이었을 것이다. 식민지 시절에도 미국의 생활수준은 영국보다 앞서 있었다. 노동력이 부족해 임금이 높은 이유가 컸다. 귀한 노동력을 대체하려는 인센티브가 충분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역사가들은 알프레드 챈틀러가 ‘보이는 손’에서 제기한 명제, 즉 1850년대에 이르러 철도의 등장과 함께 ‘경영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수직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명제를 인정해왔다. 그러나 그 주장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철 생산과 출판, 적어도 이 두 가지의 주요 영역에서는 철도가 등장하기 한참 이전부터 수직적 통합의 징후가 드러났다. 뉴욕에서는 상인들이 철을 비롯한 철 제품을 취급하는 사업을 확장해 생산, 보관, 운송, 판매를 아우르는 정교한 시스템을 개발해 철 생산이 활발히 이뤄졌다. 제철 회사들은 이미 1800년대 초반에 공장을 통합하고 회사 소유권을 주주들에게 분배했다. 이로써 제철회사는 소유권과는 무관한 전문 경영인ㄴ을 고용한 ‘초기 기업군’에 속하게 되었다. 1850년대에 이르러 출판업자들은 제철업자들이 실행애쑈던 혁신을 채택했다. 통합된 공장 시스템을 개발하고 (챈들러적 의미의) ;경영자적 관점’에서 시장을 통제햇다 편집, 인쇄, 제본, 보관, 운송, 소매, 도매 등이 한 군데에서 처리되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저술과 활자 주조까지 해결했다. 미국에서 기업 활동이 발달한 것은 철 제조업과 출판업 등의 초기 기업들이 변화의 밑바탕을 다져놓은 덕분이엇다. 그리고 훗날 등장한 철도산업이 이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본격적인 변화의 파도가 밀려왔다.”

저자는 18세기 초반에 제조공정의 혁신에서 얻은 기술적 수익과 제철업과 출판업에서 등장한 새로운 구조적 수익 두가지가 챈들러가 말하는 경영 혁명의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교통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동이 불편했고 운송비용도 높았다. 자연히 18세기 초의 기업들은 소기업 중심일 수 밖에 없었고 기술적 수익과 구조적 수익을 제대로 실현할 효율성을 갖우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이 바뀐 것은 운송혁명과 함께 전국시장이 형성되면다. “도로, 운하, 철도 네트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지리적으로 먼 지역ㄱ들이 긴밀히 연결되엇다. 정보의 흐름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신속해졌고, 이동 거리가 짧아지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도 낮아졌다.” 운송혁명과 함께 우편 시스템, 신문/잡지, 전신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툴 덕분에 전국시장이 만들어질 조건이 갖춰진다.

남북전쟁 이전까지 미국의 전형적인 기업은 “소유자-창업자가 운영하는 ‘기업가 본위 회사’”였다. 그러나 “지리적 확장과 인구 증가로 인한 국가 규모의 호가대로 점차 대중 시장이 도래함에 따라 개인 운영으로 성공을 거두는 기업가는 극히 드물어졌다. 또 철도, 증기선, 전신 등에 의해 거래 속도가 단축되면서 회사 소유자가 단독으로 경영을 하기는 한층 더 어려워졌다.

이전보다 규모가 커진 기업은 다수의 투자자를 통해 자본 수요를 충족했다. 그에 따라 회사 지분이 회사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넘어갔고 결과적으로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더 이상 ‘야망’과 ‘비전’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되엇다.”

“1800년대 중반, 세가지 요소가 결합해 새로운 ‘기업 운영체제’가 탄생햇다. 세 요소란 거래, 통신, 이동의 ‘신속화’, 종업원 수와 자본 수요를 포함한 ‘회사규모의 성장’, 수천 Km에 걸친 ‘운영범위의 확대’ 등이었다. 이로써 더 이상 회사 운영에 오너가 단독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기란 불가능해졌다. 기업은 수천 명의 직우너을 고용하여 세개의 표준 시간대와 10여개의 주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기업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수천명의 주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었고 회사 운영책임은 전문경영인에게 넘어갔다.”

기업의 시스템은 갈수록 관료제를 닮아갔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챈들러는 경영혁명을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속도의 경제라 부른다. 관료제란 정보의 유통을 위한 시스템이다. 대륙 단위의 시장을 다루려면 방대한 정보가 효율적으로 처리되어야 하며 그런 정보의 흐름을 위해 기업은 관료제를 구축해야만 했다.

일단 관료제를 구축해 속도의 경제가 실현되면 이는 막강한 진입장벽이 되었다. “Even in industries in which techniques of mass production were crucial to business success, organization rather than technology came to constitue the real barrier to entry: The most imposing barrier to entry was the organization the pioneer had built to market and distribute their newly mass-produced products. A competitor who acquired the technology had to create a national and often global organization of managers, buyers, and salesmen if he was to astride the major marketing channels, Moreover, where the pioneer could finanace the building of the first of these organizations out of cash flow, generated by hign volume, the newcomere had to set up a competing network before hign-wolume output reduced unit costs and created a sizeable cash flow. And he had to do this while facing a competitor whose economies of speed permitted him to set prices low and still maitain a margin of profit” (Chandler)

미국이 대기업 시스템을 구축할 때 영국은 여전히 소기업 중심의 경제였다. 아리기는 바로 이것이 미국이 영국을 대신할 수 있었던 이유라 말한다.

조직혁명은 조직 자체가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었고 챈들러가 말하듯 scale and scope, 즉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했다. 미국식 경영시스템은 19세기 후반 자본주의 경제를 괴롭혔던 이윤율저하 경향에 대한 해답이었다. 이윤율저하 경향은 근본적으로 경쟁의 문제이다. 자본총량이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양보다 많아져 자본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그 결과 이윤율이 참을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지는 현상이다.

미국식 경영시스템은 진입장벽을 세우고 속도와 규모의 경제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 경쟁을 돌파하는 해답이엇다.

“당시 미국의 대기업들은 심대한 기술혁신과 조직혁신의 장이었으며 이는 경영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 두가지 중요한 측면은 한편으로는 피라디드 형태의 위계조직을 구성한 고아대한 일반 경영진과 노동자의 등장이었고 다른 판편으로는 테일러주의와 조립라인 등 작업장 수준에서 일어난 변화엿다. 사실 경영자와 노동자층의 형성이 경영의 모든 측면에서 진정한 혁명을 가능게 했다. 이는 (유동자산과 자금조달)의 금융관리와 함께 재고관리와 상거래의 수행을 통한 작업장 수준에 변화를 가져온 넓은 의미의 경영혁명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우선 철도와 통신부문에 영향을 미쳤고 이후 몇십년ㄴ에 걸쳐 점차 전 산업과 상업(새로운 형태의 대중 마케팅)과 금융에까지 확산되었다.”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저자는 이런 흐름의 선두주자를 록펠러와 카네기로 꼽는다. 록펠러와 카네기가 자신들의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생산성을 높여 단가를 낮춰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시장은 지배해야 할 대상이지 자신들을 지배하는 신의 손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시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기업이 이제 경영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영을 중시하는 새로운 유형의 회사들은 외부와의 경쟁보다는 내부통제를 통한 ‘효율성 증진’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대신 경영자의 보이는 손(Visible hand)이 지배하는 챈들러의 세계에서 관료가 된 경영자들은 기업가 정신과 리스크 감수를 안정성과 보수성으로 바꿔놓는 경향이 있었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의 전시경제에서 정부관료와 기업관료들은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부든 기업이든 관료는 “그 속성상 통계에 입각한 통제와 안정성을 중시”한다. 전쟁과 뉴딜로 정부의 영향력이 확대될 때 기업과 정부는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전후 세계경제는 경영혁명과 케인즈주의를 내세운 혼합자본주의라는, 시장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지배하고 길들이려는 시스템이 지배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부터 이윤율저하 경향이 다시 나타난다. 경영혁명의 수명이 다되어간다는 증거였다. 19세기 이후 꾸준히 증가해온 생산성이 정체되고 이윤율은 낮아졌다.

“1960년대가 되자 한때 미국기업들에게 국제적 우위를 부여했던 조직 구조는 이제 혁신과 유연한 변화에 장애가 되었다.” 포드에서 “맥나마라가 중용된 것은 1960년대 후반에 미국 기업을 휩쓴 개로운 경향을 감안할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재무통과 숫자통이 마침내 생산통을 밀어내고 기업 내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자동차 산업만큼 경영 위계제도가 뚜렷한 분야는 없었다. 자동차회사들은 사업부 책임자들을 제조업 외무에서 영입해 회사의 통제권을 맡겼다.

그러나 대다수 재무나 회계 출신 경영자들은 자동차에 대해 즉 무엇이 자동차 산업을 움직이는지 무엇 때문에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인 무엇 ㄸ매누에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는지 이해하지 못햇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60년대에 이르자 다수의 회계, 재무 궈너위자들은 애당초 재무와 회계 부서가 있는 이유를 망각하고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햇다.

초기 철도회사들은 자본 수요가 대단히 높았던데다 철로와 차량의 노후와에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계획부서를 두었다.” 재무와 회계는 그 계획의 수단으로 도입되었다. “철도회사들은 재무 영역을 ‘투자를 관리하는 곳’으로 간주했으며 카네기는 오늘날 ‘원가회계’라 불리는 회계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1800년대 후반 이루어진 경영의 전문화는 20세기 초에 예기치 않은 영향을 미쳤다. 경영자들은 투자와 회계에 특화된 교육을 받았고 회사에 들어와 그런 업무만 담당했ㄲ다. 그들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회사의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생산과 제조가 다른 분야와 분리되면서 경영진은 기업에 필요한 혁신과 투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나타났다.

재무 회계부서의 부상은 경영에 또 한가지 영향을 미쳤다. 소유권이 대중에게 분배된 회사는 주주에게 이익을 제공하고 어느 정도 정기적으로 배당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었다. 주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해지면 경영진은 장기 이익보다는 단기 이익을 낼 수 있는 전략을 채택할 수 밖에 없다.

챈들러가 제시한 경영 위계제도의 특징은 경영 혁명 이후 첫 80년동안 각 사업부 사이의 균형이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1960년대에는 그런 균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재정부문이 통제권을 획득한 것은 증권시장에서 단기적 성과를 요구한 것과 정확히 같은 시기였으며 그 결과 자동차 산업은 근시안적 사고와 품질저하의 악순화에 빠졌다.”

이런 문제는 자동차 산업만이 아니었다. 경영혁명을 주도한 거의 모든 산업들이 같은 병을 앓았고 경영혁명을 주도했던 미국의 제조업은 70년대 이후 몰락의 길을 걷는다.

미국의 경제가 다시 르네상스를 맞은 것은 과거 경제를 지배했던 경영 위계제도 밖에서 성장한 기업들 때문이엇다. IT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IT 기술은 전통적 대기업들이 조직구조를 바꾸는 수단을 제공하면서 90년대의 르네상스가 가능하게 했다. 전통적 대기업의 “경영진은 회사규모를 축소하고 경영 위계제도를 구성하는 관료층을 제거하는 작업을 통해 변화를 꾀했다.”

“1990년대에 존재앴던 불안의 상당 부분은 1980년대에 시작된 급격한 변모에서 기인했다. 대기업들은 큰 힘을 가지고 상당수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듯 보였으나 그들은 221세기 경제에서 ‘공룡’이 될 가능성 즉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거대한 몸집으로 비틀거리다 결국 더 작고 빠른 동물과의 생명을 건 싸움에서 패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들이 생존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주요 희생자는 오랜 기간 그들에게 힘이 되엇던 ‘경영 위계제도’인 것으로 보엿다. 국의 기업은 챈들러가 찬양한 바로 그 관료제 때문에 몸집이 비대해졌고 그 결과 더 이상 신흥시장의 등장이나 수요의 급격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없었다. 기업들은 놀라운 다운사이징을 감행하고 자동화와 컴퓨터를 이용하여 효율성을 제고했다. 기업들은 말 그대로 몸집을 줄여 수익을 냈다. 이와 동시에 전통적 경영 위계제도를 버리고 톰 피터스 같은 인기 컨설턴트나 드러커 같은 경제저술가들이 높이 평가한 독특한 구조를 채택하며 과거와 다른 새로운 경영방식을 추구햇다.”

‘이와 같은 변화가 낳은 결과 중 하나는 미국의 ‘생산성 향상이었다. 또 다른 결과는 1990년대 일어난 실로 놀라운 투자 붐이다.”

19세기의 경영혁명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80년대 이후 다운사이징, 리스트럭처링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새로운 경영혁명은 효율성을 제고해 생산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60년대부터 시작된 이윤율저하 경향을 끝낼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의 구조적 위기의 종언과 20세기 후반의 구조적 위기의 종언은 똑 같은 과정이 두 번에 걸쳐 진행된 형태를 취한다. 20세기 초에 나타난 위기의 첫번째 극복기간에는 생산체제가 경영혁명으로 불리는 최초의 격변을 겪었다. 경영혁명은 새로운 기술과 조직을 서로 상호작용시키며 확립했고 작업장과 생산의 성걱을 근본적으로 바꿨는데 그 영향이 미친 범위는 더욱 넓어서 기업활동의 모든 측면을 변화시켰다., .이것이 우리가 ‘경영’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다. ㅜ20세기 후반의 몇십년 동안에도 주요 변수(생산성이나 자본 대 노동 비율)의 관점에서 보면 비슷한 영향을 가져다준 발전이 나타났다. 다시 그 본질은 경영의 진보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이는 이제 정보통신기술에 기초한 생산과정의 고도화와 연관이 있다. 이러한 진보와 생산, 유통,금융을 조직하고 비용을 줄이는 능력의 효율성을 향상시켰다. 더욱 개ㅛ선된 경영이 그 원칙을 스스로에게 적용해 그 성과가 더욱 개선되었다.”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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