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블로워 1 - 해군 사관 후보생
C.S. 포레스터 지음, 조학제 옮김 / 연경문화사(연경미디어)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만일 누군가 나에게 육전의 명저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삼국지’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삼국지를 능가하는 해전의 명저는 없을까? 나는 그 해답을 이 책 ‘혼블로워’에서 찾았노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고 싶다. 혼블로워는 리얼리티 면에서 삼국지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에 가까울 뿐 아니라 근대 서구사를 꿰뚫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혼블로워를 만났을 때 나는 박진감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밀한 항해묘사, 함상 생활의 애환, 리더십, 세계사를 좌우한 해양력의 운용, 나폴레온 전쟁은 물론 애틋하고 진실한 사랑의 이야기까지… 이렇게 다채로운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는 혼블로워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의 독자들을 즐겁게 했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뒤늦게나마 한국판으로 출간되어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윤광웅 제독)

이책 표지 뒤에 인쇄된 추천사이다. 개인적으로 이 추천사보다 이 시리즈에 대해 더 잘 말할 능력은 없다. 단지 간결하고 명쾌한 추천사에 사족을 붙이는 것 밖에는.

추천사에 언급되듯이 이 방대한 시리즈의 매력은 리얼리티에 있다. 그러나 그 리얼리티는 삼국지와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혼블로워는 해가 저물어 가는 프랑스 해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았다. 프랑스 혁명 정부를 전복하려는 그의 조국 영국의 시도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결국 패하고 말앗다. 파리의 신문은 미쳐 날뛸 것이며 런던의 관보는 이 사건에 대해 냉정한 다섯줄만 ㅎ할애할 것이다.

혼블로워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는 이 사건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20년이 지나면 아니 20년이 지나면 완전히 망각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 뮤질락 시 광장의 목 없는 사체, 분쇄되어 버린 붉은 코트의 영국 병사들, 4파운드 포의 산탄 작렬로 흩어져 버린 저 프랑스 병사들… 그들은 전부, 마치 이 날이 역사가 뒤바뀐 하루인양 알고 그렇게 죽어갈 것이다.”

이 소설의 대상은 프랑스 혁명기 영국해군이다. 총이라고 해봐야 전장식 머스킷에 불과하고 전함이라해봐야 범선에 불과한 시대이다. 물론 그 시대는 근대에 보기 드문 영웅이 활약한 시대이기도 했다. 나폴레옹이라는.

그 영웅의 이야기는 이름없는 병사와 장교들 그리고 그들이 싸운 이름없이 잊혀져 버린 전투들이란 노이즈를 배경으로 말해지지 않는다. 나폴레옹이란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러시아 침공이라든가 워털루 전투 같은 굵직한 이름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거대한 이름들과는 거리가 멀다. 이책에 등장하는 이름들은 이름도 없는 전투들이며 그 전투에서 분투한 이름없는 병사와 장교들일 뿐이다. 소설의 주인공 역시 그런 이름없이 잊혀져간 사람일 뿐이다.

소설은 주인공 혼블로워가 장교도 아닌 장교후배생으로 전함에 배치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귀족도 아니고 상류층도 아닌 열일곱 견습사관의 자리는 밑바닥부터일 수 밖에 없고 그 자리는 녹녹치 않다.

“사관실의 식사를 책임지는 선입 장교로서 그는 광범위한 공무상의 권한을 갖고 있었다. 말은 영악하게 잘했으며 나쁜 꼼수에 관한한 그는 도사였다. 저스티니안 함에서 그를 통제할 군기담장부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어떤 꾀를 부릴지 구분하기는 어려웠을 터이앋.

어느 견습사관이 두어 번 심슨의 횡포에 반항했지만 그때마다 심슨은 반항자를 집어 던지고 무지막지한 주먹으로 상대를 기절시켜 버렸다. 심슨은 상대에게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았으며 상대는 언제나 눈에 시퍼런 멍이 들었고 입술은 맞아 터졌다.

이제 견습사관실은 행동으로 폭발시킬 수 없는 노여움으로 들끓고 있었다. 견습 사고나 중에는 그에게 아첨하는 자나 추종자도 있었지만 그들도 내심 이 폭군을 증오하고 있었다. 문제의 뿌리는 깊었고 분노를 불러일으킨 원인은 보통 이런 횡포로 끝나지 않는데 있었다. 깨끗한 셔츠가 필요하면 동료들의 옷장에서 강제로 빼앗아 입는다든지, 식탁에 나온 고기 가운데 가장 맛있는 부분을 독차지한다든지, 모두가 간절히 기다리는 술 배급을 가로채는 것에도 스스럼이 없었다.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을 가진 자라면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는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일을 벌여 방해를 하는 것이엇다ㅓ. 고전을 공부한 혼블로워는 심슨에게서 마치 로마 황제들의 폭군 모습을 연상할 정도엿다. 심슨은 클리브랜드에게 그의 관록을 나타내는 구레나룻을 강제로 잘라버리게 했다. 또 해스터에게는 매킨지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30분마다 깨우라는 임무를 부여하여 두 사람 모두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헤스터가 그 임무에 조금이라도 게으르면 욕설을 퍼부었다.’

이책의 매력은 이런 사소한 디테일에 있다. 그런 디테일은 함상 생활의 디테일 뿐 아니라 마스트, 톱 세일, 커터, 프리깃, 전열함, 풍상, 풍하와 같은 범선 시대의 낯선 용어들로 채워진 항해 장면과 전투 장면들까지 포함한다. 이책은 잊혀져 사라져 버린 시대의 모습을, 역사책에도 나오기 힘든 소재들을 종이 위에 살려놓는 리얼리티가 매력이다.

그러한 매력은 이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쟁 장면들에도 해당된다. 이책을 메우는 전투들은 거창한 전투들이 아니다. 1권의 전투들은 영국해군의 대륙봉쇄작전의 일환으로 치뤄지는 전투들이다. 대함대가 서로 격돌하는 일은 볼 수 없다. 단지 적의 상선을 공격해 나포하고 군항에 정박한 적함 한척을 빼앗으러 잠입하고 나포한 상선을 모항으로 몰고 가는 작디 작은 해군의 일상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주인공은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전도유망한 사관후보생이다. 그러나 밑바닥에서 겪는 고난에 자살할 생각을 하고 처음 맡은 배를 부주의로 침몰시키고 포로로 잡히기까지 한다. 연전연승하며 승승장구하는 영웅이 아닌 약간 재능이 있지만 평범한 장교에 불과하다.

이책이 다루는 모든 것은 거창하지 않다. 평범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평범함의 모자이크가 실제 전쟁의 현실에 가깝다. 바로 그렇게 쌓아올린 모자이크이기에 이책의 리얼리티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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