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라이징 캐피털 - 국제 통화 체제는 어떻게 진화하는가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강명세 옮김 / 미지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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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영어가 언어로서 아름답다거나 단순하다거나 유용하기 때문에 세계공용어가 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적이 서로 다른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또 비즈니스 등에서 사용하는 빈도가 계속 증가하는 언어임에는 틀림없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같은 것을 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세계의) 공용어를 선택한다.” (J. Frankel)

통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통화일수록 더 편할 수 밖에 없고 다른 사람이 같은 통화를 사용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면 그 기대 자체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된다.

지금 그런 통화는 달러이다. 그런 통화는 돈의 역사와 함께 했고 달러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달러의 그런 지위 덕분에 닉슨이 달러의 금태환을 정지한 후에도 달러의 가치가 얼마든지 떨어질 수 있게 된 후에도 달러는 여전히 기축통화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2차대전 이후 달러가 헤게모니를 쥐게 된 것은 종전 직후 “미국 이외에는 금본위제를 계속유지할 수 있는 국가가 없었고 따라서 달러화가 가치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뻔했기 때문이다.” (김기수) 기축통화는 가치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가치를 가져야 하며 누구나 동의하는 가치의 기준인 금과 고정된 비율(平價)로 교환되어야 한다. 파운드가 그랬다. 영국이 전쟁으로 몰락한 후 그럴 수 있는 나라는 미국 뿐이었기에 달러는 헤게모니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금으로 바꿀 수 없는 달러라면 “시장원리상 달러화를 기피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현실은 전혀 달랐다는 것이 달러패권의 핵심 내용이다. 미국 밖에 달러가 너무 많이 유통되어 기축통화의 위상이 사실상 굳혀졌다는 것이 중요했다. 엄청난 규모의 달러화를 각국의 통화당국이 보유하고 있었고 민간부문에서도 상당 규모의 달러가 유통되었으므로 닉슨의 충격적인 조치가 단행되었더라도 달러화를 소진할 현실적인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 전체가 이미 달러화에 심하게 ‘중독’되었던 것이다.” (김기수)

그렇기에 배젓은 “신용, 즉 통화는 스스로 성장한 것이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권력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책의 주제는 어떻게 신용이 만들어지고 신용이 권력이 되는가이다. 저자는 국제통화체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네트워크 외부성 모델의 진화 게임으로 설명한다.

“왜 유럽 국가들은 줄지어 1870년대에 금본위를 채택했는가?” 저자는 금본위제 자체의 장점때문이 아니라 말한다. 답은 간단하다. 영국이 금본위제였기 때문이다. 영국과 교역을 하고 자본을 수입하려면 영국을 따르는 것이 편리했다. 영국이 최대 시장인 “유럽 2위의 산업국인 독일이 영국을 따라 1871년 금본위제를 채택했을 때 금본위제는 다른 나라들에게 더 유혹적이 되었다. 과거 복본위제를 고수하게 했던 네트워크 외부성이 이제는 각 나라들을 금본위제로 끌어당겼다. 이 같은 연쇄 반응은 상업적, 금융적 이웃들이 공유하는 통화 표준을 채택하고자 한 각 나라들의 인센티브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전환은 네트워크 외부성 모델이 예측하는 것처럼 신속햇다.” 독일 인접국들이 먼저 독일을 따랐고 “다른 나라들도 뒤따랐다. 19세기 말이 되자 불태환 지폐를 사용하는 국가는 스페인 뿐이었다.” 금본위제의 연쇄반응은 지구를 한바퀴 돌아 “은이 풍부하여 은광업의 이해관계가 강력하던 남미에서조차 금태환을 제도화햇다. 이제 은은 중국과 소수 중미 국가들에서만 표준 화폐로 남았다.”

프리드먼이 지적했듯이 금본위제는 디플레이션을 일으키는 힘이다. 디플레이션을 피하려면 은을 같이 사용해 화폐량을 늘릴 수 있는 복본위제가 더 나은 선택이다. 그러면 “왜 복본위제를 복원하지 않았을까? 가장 크게는 네트워크 외부ㅜ성이 그러한 전환을 취하고자 하는 국가들에게 협력의 문제를 야기했다. 어느 일국의 전환은 다른 나라들이 동시에 취하지 않는 한 나라가 복본위제로 복귀한다고 해서 세ㅖ의 통화공급과 물가가 현저히 상승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왜 금본위제가 붕괴한 것인가? 게임 참여자의 인센티브 함수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복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바뀔 때와 달리 금본위제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로 바뀔 때 게임 참여자들의 효용함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내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금본위제와 같은) 페그 환율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것은 다른 목표를 위해 환율 안정을 포기하려는 압력으로부터 정부를 보호하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19세기 금본위제 하에서 그 같은 보호의 원천은 국내 정치로부터 정부를 절연시키는 것이었다. 20세기 정부들로 하여금 환율 안정을 다른 목표에 종속시키도록 하는 압력은 19세기 세계의 모습이 아니다. 투표권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경제가 어려울 때 가장 고통받는 일반 노동자는 중앙은행이 통화 페그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것에 반대하기 힘들다. 노조나 의회의 노동계 정당이 발전하지 않은 조건에서 노동자들은 환율 방어가 다른 목표를 위해 양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19세기; 고전 자유주의에서 20세기 사회적 자유주의로의 전환은 호나율을 방ㅇ어하려는 정부의 의지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다.” 이점에 대해선 번스타인의 책을 리뷰할 때 자세히 다루었으니 더 자세하게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여기서 수수께끼가 등장한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사실상 금본위제이다. 그리고 그 체제의 공간은 복지국가의 시대였고 대외수지에 다른 정책을 종속시킬 수 없는 시대엿다. 그러면 브레튼우즈 체제는 왜 그렇게 오래 갔는가?

“브레튼우즈 국제통화체제의 붕괴는 불가피햇다. 신기한 것은 그것이 왜 그토록 오래갔는가이다.” 저자는 네트워크 외부성 모델로 설명한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취약성을 이해하는 한 방법은 그것을 과도적 체제로 간주하는 것이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금본위제와 1971년 이후 법정 불환지폐 체제가 절충된 형태이다.

35달러에서 달러의 금 태환을 유지하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신뢰할 수 있는 한 달러나 금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국 외의 나라에게 달러에 페그할 수 있는 특권을 준 것은 금의 탈화폐화를 위한 첫번째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체제의 문제는 “세계경제성장은 국제수지조정과 국제거래충격을 흡수하는 데 사용될 국제 준비금의 확대를 필요로 햇다.” 그러나 금은 준비금으로 문제가 있다. 공급이 비탄력적이며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 세계가 대외 준비금을 더 확보하고자 하면 달러로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미국 밖에 달러 유통량이 미국의 금 준비금을 몇배를 초과했다. 그렇다면 온스 당 35달러란 두 자산의 상대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잇는가란 의문이 생긴다.

달러의 평가절하가 불가피하다면 다른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로 가지고 있는 달러를 미국의 금과 바꿔 자산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강한 유혹을 받는다. “의심, 공포, 유혹이 현실화되면 중앙은행들은 다른 은행보다 먼저 그리고 미국이 공정가격을 인상하거ㅓ나 공식 금 판매를 중단하기 전에 달러 준비금을 금으로 안전하게 바꾸려고 할 것이다.”

저자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이 체제가 그렇게 오래 유지될 수 잇었던 이유를 게임 참여자들의 카르텔 때문이라 말한다.

“35달러라는 금 가격은 미국에게는 국제 통화 및 금융체제의 핵심이엇다. 달러가 금에 대해 평가 절하되면 경쟁적인 평가절하가 무질서하게 반복되어 1930년대처럼 다자 체제에 대한 지지가 잠식될 수 있었다.” 문제는 미국의 통화팽창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금에 대한 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려면 디플레이션이 일어난다. “미국이 국제 수지 강화를 위해 긴축 정책을 채택하여 금 준비금을 방어하게 되면 세계 경제늕 1929-3년과 같이 디플레이션을 겪었을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준비금에 목마른 상태에서 국제 수지가 악화되면 곧바로 수입을 제한할 것이고” 그러면 유럽과 일본의 수출주도성장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브레튼우즈 체제를 보호하는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며 유럽과 일본은 그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사실상의 카르텔을 형성햇으며 달러를 미국의 금 준비금으로 태환하는 행동을 자제햇다.

“이 체제가 작동했다는 점은 그 체제를 지탱하는 국제협력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국제 협력은 미국, 서유럽, 일본이 냉전 시대 동맹이었던 조건에서 발생했다. 다른 나라들은 미국이 방위 부담의 많은 몫을 짊어지는 대신 달러와 브레튼우즈 체제를 지원했다.”

그러나 이 카르텔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가 성장하고 교역규모가 증가하면 대외 준비금 수요도 당연히 증가한다. 이들이 달러를 더 많이 쌓아두면 둘수록 그리고 그것을 태환하려는 유혹을 억제하면 할수록 금에 대한 달러 비율은 올라가고 궁극적으로 포트폴리오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금의 달러 가격 인상 폭은 더 커질 것이다.” 금의 현재 가격과 미래 예상 가격 간의 격차가 커질수 밖에 없었기에 브레튼우즈 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1971년의 닉슨 쇼크는 예상 밖의 일이 아니었다.

책의 나머지 부분은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변동환율제와 유로의 등장, 신브레튼우즈체제로 불리는 글로벌 불균형에 대해 다룬다. 그중 신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해선 저자의 다른 책인 ‘글로벌 불균형’의 리뷰에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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