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일본의 부활
케네스 B. 파일 지음, 이종삼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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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까지 본 일본정치사 서적 중 한손에 꼽을 만한 책이다. 이책은 메이지 유신에서 고이즈미 수상까지 일본의 대외정책의 역사를 서술한다. 이런 주제에 관한 책은 많다. 그러나 이책처럼 역사의 표면이 아니라 그 표면 아래 구조를 그리는데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이책의 저자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고 결과가 어떠했는가 같은 사건에는 관심이 없다. 저자는 그 사건들이 있게한 사람들의 동기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저자는 정책을 입안한 일본 정치가들의 동기가 메이지 유신 이래 동일한 구조였다고 말한다.

2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일본 정치엘리트들의 심리구조는 동일했다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첫번째 이유로 저자는 엘리트층의 동일성을 든다. 그리고 그 동일성은 도쿠가와 막부 시절의 정치 엘리트들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물론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지배층이 바뀌기는 했다. 그러나 유신 이후 등장한 메이지 리더들은 막부 시절의 하급 사무라이들이었다. 여전히 그들이 세계를 보는 관점은 막부 시절과 다르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들은 사무라이로서 근대를 살아간 것이다.

사무라이로서 그들이 본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이 당연한 세계이다. 약한 것은 죄였다. 그러므로 강해져야 했다.

강해져야 한다는 것, 즉 부국강병이란 말로 일본의 근대사가 모두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울 것 없는 견해이다.

통산성의 산업정책을 연구한 MITI란 책으로 developmental state 이론의 창시자가 된 찰머스 존슨 역시 통산성 관료들의 마인드를 부국강병이란 말로 요약했었다.

그러나 존슨이 일본을 연구하기 전 중국혁명사를 연구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중국공산당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중국공산주의의 동기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라는 결론을 내린다. 바로 부국강병이란 말로 요약되는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부국강병이며 민족주의가 중국 공산주의의 실체라는 것이다(베트남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존슨은 일본의 부국강병 역시 중국과 다를 것이 없는 제국주의에 대한 반응으로서 읽었고 그것을 전후 통산성의 정책을 읽는 프레임으로 적용했다.

이책의 저자 역시 아시아의 민족주의를 반제국주의로서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제국주의에 대한 반응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일본은 전혀 달랐다고 말한다.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위협을 받은 중국과 조선은 그들의 주장이 자신들의 아이덴티티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며 저항했다.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누구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며 정체성은 세상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 행동할 주체성의 근거이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의 지도자들은 그런 것은 관심이 없었다.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원칙보다 상황에 의존한다. 그러한 사고방식의 뿌리를 보통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국시대로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일본말에 '이끼노꼬루(生殘)'라는 말이 있다. '살아남는다'는 뜻인 이 말은 100여명의 영주들이 100여년간 서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던 전국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서로 존중하며 인정하고 공존할 수 있는 중화 세계질서와 달리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세계질서는 강자존의 세계, 강한자가 대우받는 세계였고 그것은 사무라이들이 익숙한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그 세계에서 강자가 되는 길은 부국강병이란 한구절로 요약되었고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그 방법을 알아차렸다. 자신들을 위협하는 강자에게 배우면 되는 것이다.

저자는 1873년 부산 왜관에 조선인이 붙인 벽보를 인용한다. "일본인은 외국의 제도를 채용하면서 그들의 관습은 물론 모습까지 바꾸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을 '일본인'으로 취급하지 않을 참이다." 고고하게 자신의 길을 주장하는 조선인에게 일본인은 쓸개 빠진 인종이었다.

그러나 강한 것이 옳은 세상에서 쓸개가 빠지는 것쯤 무슨 상관이리. 그들처럼 강자가 된다면 그런 것쯤 무슨 상관이리.

이후 일본은 오직 생존이란 말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현실주의와 실용주의의 길을 걸었다. 문제는 그들이 왜 강한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면 방법은 그들의 방식을 통채로 흉내내면 된다. 일본은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들처럼 되려 했다. 할 수 있다면 말까지도(실제 영어를 국어로 하자는 말이 있었다) 피부색까지도(이것까지 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일본은 그들만의 클럽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 청나라를 이기고 (5대강국인) 러시아를 이겨 이제 생존의 위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들과 나란히 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구열강은 일본을 노란 원숭이로 볼 뿐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을 방문한 모든 서구인들은 일본에 찬탄했다. 일본의 자연과 예술에 반했다. 일본인의 상냥한 예의에 반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스스로의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스로는 아무 것도 생각해낼 줄 모르는 것처럼 자신들의 뒷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흉내밖에 낼 줄 모르는 원숭이를 누가 인정하겠는가? 자신의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것을 빌려 남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긍지도 자존심도 자부심도 없는 '쓸개'빠진 '인간같이 생긴 원숭이(실제 당시에 서구인들이 하던 말)'일 뿐이다. 누가 원숭이를 동료로 인정하겠는가. 존경은 품격에서 나온다.

자존심도 긍지도 잃어버렸을 때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자율성을 잃어버린다. 자기 행동의 규칙을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독립성을 잃어버린 인간

그런 인간을 우리는 속물이라 한다. 일본의 비극은 끊임없이 자신이 속물이라는 것을 알면서 남이 알아차릴까 '불안'해하고 그 불안을 달래기 위해 남의 '인정'을 구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항상 그들이 누구인가 묻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답을 일본은 남에게서 구했다. 그러나 그러나 서구열강들은 일본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분노를 서구열강에 대한 분노로 키웠다.

저자는 태평양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존을 위한 현실주의와 마음의 상처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1차대전이 끝나고 세계질서는 이전의 제국주의질서에서 미국주도의 자유주의 질서로 바뀌었다. 이전까지 일본은 제국주의질서에 잘 적응했다. 그 세계는 사무라이들이 살았던 봉건질서와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자유무역, 인권을 말하는 미국의 자유주의 질서를 일본은 이해할 수 없었다.

"미국은 원칙 위에 건국되었지만 일본은 群島 위에 건국되었다. 일본은 자연적으로 생긴 민족국가다. 유럽의 정치철학이  말하듯이 국가는 공통의지와 계약으로 만들어진다는 개념이 일본에는 없었다. 그러므로 규칙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여겨왔다."
 
강자존의 세계는 그런 자연스런 질서였다. 그러나 인권이라니? 민주주의라니?

"한국에서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는 관대한 사람을 남자답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느 강한 것같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고 물었더니 마음씨 좋은 얼굴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던 그 친구가 정색을 하고 "사람은 약자에게 이익을 얻고 강자에게는 당하게 마련인데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관대하면 죽는 수 밖에 없다. 그런 바보가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김현구 '일본이야기')

약자도 생존의 권리가 있고 약자를 존중하라는 미국의 보편주의는 일본의 눈에는 위선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러는 너는 강자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어쨌든 미국이 패권국인한 일본은 말을 들었다. 일본의 몫을 인정해주고 생존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의 대세가 제국주의에서 자유주의로 바뀌었다고 판단하고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국내질서를 재편한다.

세계의 대세가 자유주의이니 국내질서를 대세에 맞춘다는 위로부터의 민주화였다.

그러나 대공황과 함께 미국은 패권을 방기하는 것처럼 보엿다. 그리고 대세는 파시즘으로 보였다. 일본은 이제 자신의 잃어버린 명예, 잃어버린 자긍심을 보상받기 위해 그리고 대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빨리 국내질서를 파시즘으로 맞춘다. 그러나 그것은 판단착오였다. 미숙한 패권국이었던 미국은 패권의 의미를 깨닷게 되었고 아시아에서 일본의 팽창주의를 좌시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본은 졌다.

다시 미국의 자유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방향을 잘못 잡았었다는 것을 깨끗이 인정한 일본은 다시 대세에 순응하기로 했다. 그리고 역시 그들의 현실주의는 보답을 받았다.

일본은 미국을 사무라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조닌(상인)이라 생각하며 복종했다. 그리고 냉전체제에서 미국은 일본을 놓칠 수 없는 패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일방적'으로 일본의 안보를 책임져주었고 일본에게 시장을 개방해주었다.

일본은 자국의 시장은 내주지 않으면서 미국의 시장은 착실히 먹어들었갔다. 그러나 미국은 관대하게 넘어가주엇다. 한국도 따라했던 일본의 중상주의적인 그렇기에 이기적인 수출우선 성장주의는 냉전체제의 맹주로서 미국의 아량에 기댈 수 있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덕분에 일본은 세계2위의 부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무력하기에 명예도 인정도 받지 못하는 조닌처럼 일본은 이번에도 마음의 상처를 견뎌야 햇다.

자신이 쓰지 않은 헌법에 맞춰 살아야 하고 남의 군대에게 자신을 지키도록 하며 외교적으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나라를 누가 인정하며 그런 나라가 나라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일본은 그것이 세계의 대세라 받아들이며 견뎠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더 이상 미국은 일본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져주는데 넌더리가 났다. 부자 동맹국의 안보를 일방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이 말이되는가? 자신의 시장은 내주지 않으면서 내 시장만 내줄 이유가 있는가?미국은 덩치에 맞는 능력에 맞는 역할을 하라고 일본을 윽박질렀다.
 
미국만 변한 것이 아니다. 일본의 주변환경도 바뀌었다. 냉전이 끝나면서 동아시아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미중일의 공통의 적인 소련이 무너지면서 3국의 관계가 불안정해졌다. 중국이 부상하고 북한이란 불량배가 신경을 거슬린다. 한국이 통일될 가능성이 크다. 더큰 문제는 20년이 넘도록 동아시아의 불안정한 판세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일본의 방향감각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서구를 쫒아가기만 하면 일본은 자신이 어디로 갈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catch up이 끝나면서 일본은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그려야만 했다. 남이 만든 규칙에 따르면 되던 시절은 끝나고 자신의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일본이 서툰 일이다.

냉전이 그렇게 갑자기 끝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냉전 후의 세계질서와 동아시아 질서가 그렇게 오랫동안 표류하지 않았다면 일본은 대세에 따라 자신을 맞춰갈 수 있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은 바로 일본의 방향상실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거품붕괴와 함께 시작된 헤이세이 불황을 경제운영의 실책이라 말하지만 근본적으로 그 원인은 엘리트들이 합의할 수 있는 누구나 알 수 있는 대세가 없는 세계에 일본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고, 정치가 실종되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이책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외교정책사라기 보다는 일본 정치엘리트들의 심리구조를 그린 일본인론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책에서도 보기 힘든 설명력을 가지며 명료한 그림을 그린다.

물론 이책의 단점도 있다. 이책은 일본을 외부자극에만 반응하는 당구공처럼 묘사한다. 일본의 계급이나 반대파, 내부항쟁같은 것은 무시되고 엘리트들의 생각에만 촛점을 맞춘다.

물론 저자가 국내정치를 완전히 생략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저자가 그리는 모델은 그런 약점 정도는 무시할만한 매력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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