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미러클 - 부를 찾아 떠난 아시아 국가들의 대서사시
마이클 슈만 지음, 김필규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이책의 제목인 미러클은 아시아의 경제 기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그 기적의 당사자인 우리로선 너무나 많이 들어온 말이라 이제는 식상한 말에 불과하다. 수십년 동안 같은 말을 들으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질리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기적을 이루었다는 우리 자신은 10여년동안 경제성장의 둔화와 양극화를 겪으면서 경제의 성장동력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이렇게 이번 세기는 지나가는 것이 아닌지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그 기적이라는 말은 외국인의 인사치례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부흥은 기적이란 말이 지나치지 않은 놀라운 이벤트였다. 2차대전 이후 막 식민지에서 벗어난 이 나라들이 지금과 같이 성장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시아에는 경제성장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여건은 아프리카가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당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아프리카보다 못사는 절망의 땅일 뿐이었다. 그러나 한세기가 지난 지금 처지는 바뀌어 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이 기적이라면 아시아의 드라마는 기적이었다.

이책의 저자는 어떻게 기적이 가능했는가란 질문으로 이책을 써내려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그것은 사람의 기적이었다고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대륙인만큼 아시아라는 말로 불리는 대륙에는 다양한 나라들이 있고 그들이 경제성장의 방법론으로 택한 길 역시 다양했다.

일본의 국가주도형 성장모델(이책에선 아시아 모델이라 부른다)을 선택한 한국과 대만같은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외국자본에 나라를 개방하는 전략을 취한 싱가포르, 말레이지아 같은 나라도 있었고 영미식의 자유방임정책을 취한 홍콩, 국가의 과도한 간섭을 풀어버리는 것으로 성장괘도로 올라선 중국과 인도가 있었다.

아시아 국가들이 기적을 이룬 방법론은 하나가 아니었고 그들이 괘도에 오르기 시작한 시기도 달랐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지 그들이 기적을 이루는데 성공했다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그들의 기적은 인간의 기적이었다고 말한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지긋지긋한 가난과 무기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지가 그들을 기적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책에서 아시아 모델이라 부르는 일본식 국가주도형 전략을 보자. 그 전략을 그대로 복사해 경제성장에 성공한 한국으로선 낯설지 않은 매우 친숙한 전략이다. 일본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듯이 국가가 경제에 개입해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경제학에선 이단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적어도 경제학의 주류가 만들어진 영국과 미국에서는 말이다.

일본과 한국에서 이단을 키운 뿌리는 민족주의였다.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강제로 개항된 후 일본은 온 세상에 자신 빼고는 모두 적 뿐인 약육강식의 적자생존의 세계를 보았을 뿐이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힘을 키워야 했다. 부국강병. 오직 돈과 총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었다. 경제를 키우는 것은 생존의 수단이었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에서 진 후 부국강병에서 강병은 불가능한 명제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이 보는 세계는 여전히 전쟁전과 별 다를 것이 없는 약육강식의 강자존의 세상이었다. 이 세계에서도 생존은 힘에 달린 문제였다.

한국에서도 별 다를 것은 없었다. 힘이 없어 식민지가 되엇고 힘이 없어 남의 손에 나라가 두쪽이 났고 두쪽 난 동족이 싸워야 했으며 잿더미에서 굶주려야 했다. 지긋지긋한 단군 이래의 족쇄에서 벗어나려면 힘이 있어야 했다.

기적의 대열에 참여한 다른나라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택한 전략은 일본과 한국과는 달랐더라도 그들의 동기는 같았다.

이책의 저자는 그들의 성공에서 공통점을 한가지로 요약한다. 세계화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흐름을 탔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성공하려면 당연한 말이 아닌가? 그러나 그들이 국가의 생존을 위해 경제에 목을 맬 당시 세계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은 이단아의 생각이었다. 당시 분위기를 대표하는 이론이 종속이론이다. 세계시장에 참여한다는 것은 다시 제국주의의 마수에 기어들어간다는 말이었고 그 마수에 벗어나는 길은 자립경제를 만드는 것이었다. 크게 보면 중국과 인도의 폐쇄적인 경제정책은 그런 이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수출주도형 전략으로 세계시장에 참여하는 전략을 택한 나라들의 성공은 종속이론을 폐기하는 증거가 되었다. 세계경제는 늦게 뛰어도 앞설 수 있는 경기장이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저자가 가지고 있는 이론적 프레임을 요약해 본 것이다. 그리 새로울 것은 없는 입장이다. 학창시절 개발론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과 그리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이책의 장점은 어떤 새로운 이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책의 저자는 학자가 아니라 기자이다. 이책의 두번째 장은 한국에 관한 챕터이다. 그 챕터는 외환위기 당시 월스트리트 저널의 서울 주재기자였던 저자가 안기부 직원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런 장면들처럼 아시아 각지를 기자로서 직접 발로 뛰어다녔던 저자는 이책의 상당부분을 자신이 직접 인터뷰한 내용을 기초로 써내려간다. 저자가 이책에서 쓰려는 것은 어떤 이론을 세우려는 것도 아니고 이론을 증명하려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 싱가포르,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중국, 인도의 경제성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당시 기적이 태어나던 순간으로 올라가 당시 그 기적을 시작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 나라들의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던 가를 보여주려 한다.

이책은 얇은 책이 아니다. 두껍다. 그러나 이책이 대상으로 하는 나라의 수와 기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책의 분량은 한 없이 얇다. 그 분량에 저자가 보여주려는 것은 위에서 요약한 것과 같이 그 당시 기적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현실을 보았고 그 현실을 어떻게 바꾸려 했는가라는 인간의 드라마이다. 그리고 그런 드라마가 이책의 목적이라면 이책은 목적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