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위기 - 중류층이 끝장난다
오마에 겐이치 지음, 지희정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고도성장기의 한국과 일본은 중산층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일본이건 한국이건 대다수가 자신은 중산층이라 생각했고 그런 생각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실제 80년대 일본과 90년대 한국만큼 소득분배가 고른 나라도 없었다.

두 나라의 소득분배가 고를 수 있었던 것은 두 나라의 기업들이 일종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3보라 불리었던 종신고용, 연공서열, 사별노조는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했고 월급쟁이에겐 직업적 안정과 고소득을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버블이 붕괴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양극화가 시작된 것이다. 기업이 더 이상 유사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할 여유가 없어지면서 전체의 80%가 중하층으로 분류되는 사회로 바뀐 것이다.

양극화의 원인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명이 있지만 이책의 저자는 일본이 성장기가 끝나고 경제의 수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경기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변화라는 것이다.

경제 자체의 구조가 바뀐 상황에서 고도성장기에 맞춰진 시스템은 구조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작년 도쿄 도심의 백화점이 폐점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백화점은 중상층 이상을 타깃으로 한다. 그러나 대다수가 중산층이었던 사회가 대다수가 중하층 이하인 사회로 바뀌면서 백화점의 주요 타깃이던 중상층은 절대적으로 감소했고 상류층에 특화된 소수의 백화점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100엔 샵이 는다는 뉴스를 수도 없이 보았다. 중하층 이하의 소득에 맞는 업태가 팽창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자신이 중류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중산층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과 인식의 괴리에서 번영하는 업태가 유니클로이다.

실제 일본의 중하층이라 해도 소득은 400만엔 이상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는 충분히 상류층의 소득이다. 그러나 그런 소득을 가지고도 하류의 소비를 하는 것이 일본의 문제이며 그 해결책은 일본의 시스템이 유니클로처럼 바뀌는 것이라 저자는 본다.

1991년 이후 일본의 내수는 일관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해오고 있다. 경제 자체가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경제에서도 유니클로의 확장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일본의 바뀐 경제에 유니클로가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효율성이다.

가격대는 하류층도 약간 무리하면 살 수 있는 수준이지만 질은 중상층을 대상으로한 백화점 수준의 제품을 만든다. 가격은 낮고 질은 높으니 잘 되는 것이다.

유니클로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거품을 뺐기 때문이다. 질은 유지하면서 저가로 만들 수 있는 곳에 아웃소싱하고 재고를 줄이고 도매상이나 종합상사와 같은 중간에서 이익을 챙기는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거품이 터진 이후 일본에서 승승장구 하는 기업들은 모두 유니클로와 같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성공이 소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의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핵심에는 일본의 국가시스템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 시스템의 문제는 과도하게 권력이 도쿄의 중앙정부에 집중된 것이라 말한다. 캐치업 시절에는 없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강한 정부가 리드하는 것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캐치업이 끝나고 고도성장이 중단된 지금에 와서 그 시스템의 문제가 터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에 모든 자원이 집중된 후 배분되는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자원배분의 왜곡을 낳는다. 정치경제학에서 rent seeking(불로소득 추구)이라 말하는 기생충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 일본의 식료품 값이 천문학적이고 왜 그렇게 주거비가 비싸야 하며(거품이 터지고 반토막이 난 후에도 도쿄의 주거비 수준은 서울의 4배이며 세계최고인 런던의 90%이다) 왜 그렇게 물가가 비싼가? 중간에서 빨대를 꽂는 놈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아이언 트라이앵글이라 불렸던 정치-관료-재계의 서로 등 긁어주기는 아직도 해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수의 농민을 위해 호주의 모든 농토를 살 수 있는 보조금이 지급되었는데 생산성은 세계최악이고 그 결과 식료품비는 세계최고인데도 시장개방은 꿈도 못꾼다. 표를 의식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대다수가 중하류가 된 상황에선 생활비를 낮출 수 있게 물가를 떨어트려야 하지만 월마트와 같은 대형 할인양판점은 지역 소상인의 생계(역시 방대한 표밭이다)와 중간상들의 생계를 위해 허용될 수 없다.

말도 안되게 복잡하고 쓸데없는 인허가 규제를 철폐하면 집값이 싸지고 땅의 공급도 늘어 주거비를 줄일 수 있는데 공무원의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니 이것도 안된다.

공무원은 실질적으로 1/3명 분의 일밖에 하지 않고 아웃소싱을 하면 공무원 수를 1/10로 줄일수 있지만 역시 최대 이권단체인 공무원을 건드릴 수 없으니 이것도 안된다.

저자는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중하류 사회 즉 양극화의 문제는 70년대 미국도 겪은 문제라고 말한다. 미국 역시 60년대까지 중산층의 나라였다. 양극화의 문제를 극복한 것은 작은 정부를 외치며 규제개혁을 시작한 레이건이었으며 레이건이 있었기에 클린턴의 8년 호황이 가능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에 필요한 것은 바로 레이건 식의 합리화라는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을 다룬 책을 보면 일본이 불쌍해진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지금도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는 일본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저자가 외치는 합리화가 일본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것처럼 (정치의 무력화때문에) 한국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서글퍼지게 하는 책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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