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그리다 - 그림 속으로 들어온 가족의 얼굴들
박영택 지음 / 바다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즐거운'과 '불화'라는 나란히 놓을 수 없는 단어를 병치시킨 이 말은 이책의 챕터 제목이기도 하고 이책에서 소개되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가족은 제도로서 실패한 것같다. 이것들만 보자면 선진국을 비웃는 이혼율과 저출산율, 독신율을 보면 가족이란 제도가 과연 지금의 사회와 맞는 것인지, 다시 말해 유효한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실패한 것같이 보이는 그 가족에 대해 한국인들은 애틋한 애착 아니 집착을 보여왔다.

 

왜 한국인들은 가족에게 거대한 의미를 주었을까? 이책은 그 역사를 일제시대부터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추적해나간다(부연할 것은 이책에선 서구에서 초상으로 그려진 가족의 의미부터 시작해 고구려 벽화, 조선시대까지 언급하고 잇지만 실질적으로 이책에서 의미가 있는 서술은 일제시대부터 언급하는 부분이다. 앞 부분은 앙상한 서술 정확하게는 남의 글을 베낀 것에 불과한 죽은 글이다.)

 

이책에선 가족에 대한 한국인의 집착의 근원을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로 본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가족은 소중했다. 아니 가족이라기 보다는 가문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부부의 애정과 신뢰를 이상으로 하는 핵가족이 보급되면서 그 가문은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재앙이 일어났을 때 국가도 이웃도 재앙을 막아주지 못했고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은 의지할 것은 가족 뿐이라는 극단적인 가족주의를 키웠으며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겐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이책에선 그 예로 이중섭과 박수근, 장욱진의 그림을 예로 든다. 미술시장에서 그들의 작품이 가장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그들이 그림에서 그린 가족의 소중함과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는 이상과 그들이 그 이상의 이미지를 그려내었기 때문이라 본다. 믿을 것은 가족뿐이라는 신념으로 살아간 세대들에게 그들의 그림은 자신들이 꿈꾸는 또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러한 가족주의는 핵가족화되고 개인주의화되어가는 사회에서 더욱 강화되었으며 사람들의 꿈인 즐거운 우리 집이라는 꿈을 그린 작품들이 양산되었다.

 

문제는 양산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책에 소개된 꿈을 그린 작품들은 아름답다. 그것은 꿈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이 상투화될 때 그 꿈은 앙상해진다. 그리고 그 꿈의 그늘에 가려진 현실의 반란이 필연화된다.

 

저자는 그러한 반란을 이미지화 한 작품들을 책의 후반에 소개한다. 솔직히 그 반란의 작품들은 아름답지도 그리 즐겁지도 않다. 그것은 보기 싫은 잊고 싶은 아니 어차피 겪고 있는 지긋지긋한 현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이 이책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책은 근대 한국사의 연대기를 따라 그 시대를 산 또는 살고 있는 사람들의 꿈과 생각을 이미지화한 미술품들을 보여주면서 그 작품들이 의도한 것처럼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바로 우리의 1차적 현실인 가족을 말이다.

 

그러나 이책은 저자가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시대비평이라는 면에선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그런 시도를 하고 있는 지면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앙상하게 죽어있다. 미술평론가들의 고질인 현학적인 죽은 언어가 즐비할 뿐이다. 이책에서 살아있는 부분은 작품이 등장할 때이다. 그리고 그 작품을 설명할 때 저자의 키보드는 살아움직인다. 결국 이책의 용도는 화집이랄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이책은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