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 중국 제국 시스템의 형성에서 몰락까지, 거대 중국의 정치제도 비판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중국사학에서 악명 높은 논의로 왜 아시아는 정체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아시아 정체론이 있었다. 요즘은 그런 논의를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질문의 뿌리에 있는 문제의식은 왜 아시아에서 자본주의가 나오지 않고 저 야만스럽고 광신적이며 돼먹지 않은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나왔는가?란 자괴감이 잇기 때문이다.

일본학계에서 시작해 한국학계에도 유행했엇던 자본주의 맹아론은 아시아 정체론의 또다른 표현이었다. 그렇지 않다. 조금만 있었으면 우리도 자본주의가 대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헛소리이다.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일어난 것은 역사적인 우연일 뿐이었으니까. 우연이 왜 우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는가라고 해봐야 우는 소리일 뿐이다.

이책의 저자는 아시아 정체론의 중국판 논의를 하고 있다. 저자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왜 중국에선 민주주의가 불가능했었는가? 이런 질문을 접하면 아마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자본주의처럼 역사적 우연이니 이런 질문을 해봐야 쓸데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국사교과서에 화백회의가 민주주의의 표현이었고 당쟁도 정당정치처럼 민주주의의 형식이라 볼 수 있다는 우습지도 않은 열등감의 표현과 다를 것이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이책의 저자가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왜 중국에선 민주주의가 없었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지금의 중국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쓴 책이기 때문이다.

유신을 하면서 박 전 대통령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운운하였기 때문에 전통과 문화에 맞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전통과 역사에 맞지 않는 정치제도는 가능하지 않다는데 있다. 중국에서 가능한 민주주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 저자는 전통이 무엇이었던가를 묻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책에서 저자는 중국의 역사를 정치제도사에서 살펴보려 한다. 중국의 정치제도는 부족국가 이후 봉건제가 있었고 봉건제의 논리적 연장에서 진시황의 통일국가가 등장한 후 청나라가 무너지기까지 2천년동안 제국 제도가 유지되었다.

이후 중국은 진 한 수 당 송 원 명 청 으로 왕조는 교체되엇지만 제국이란 제도는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국사의 정체론을 다시 제기한다. 기본적으로 진시황 이후 2천년동안 제국제도란 DNA는 그대로인채 이름만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제도의 정체는 문화와 경제의 정체를 낳았다고 말한다.

200년 정도의 사이클을 가지면서 중국의 제국은 교체되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명이 있어왔다. 유럽학계에서 제기되었던 것의 하나로는 태양흑점의 사이클에 따라 농업생산력이 사이클을 그리면서 농민반란을 일으켰고 왕조의 교체로 이어졌다는 논의도 있다.

농민반란에 의한 왕조교체를 일본학계에서 제도사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과대성장국가론이라는 것이 있었다. 중앙집권의 관료제 국가라는 것이 농업이라는 빈약한 산업에만 의존하는 경제가 지탱하기에는 과대하다는 것이다. 정부조직이라는 것이 가만놔둬도 여러가지 이유로 팽창하게 될 수 밖에 없다. 하인리히 법칙이다. 그러면 정부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농민을 쥐어짜게 되고 그 착취의 정도가 견딜 수 없게 되면 반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 과대성장국가가 아니라 제국이란 시스템은 소농 위주의 빈약한 경제기반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은 사농공상이란 질서를 선호하며 상공업을 억제하려 든다.

저자의 논의는 일본의 다른 학설과 비슷하다. 고리타의 순환론에 의하면 제국이란 제도는 제국이란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잇는 한계가 있고 한계에 도달한 제국은 무너진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진 제국은, 그 제국을 형성했던 사회구조나 구성원 개개인의 삶의 질은 무너지기 전보다 열악해진다.  분열은 파괴를 불러오고 파괴는 퇴보를 초래해 제국이 도달했던 한계 이전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능력있는 사람이 나타나 다시 통합을 시도하고, 그래서 또 다시 제국이 건설된다.

저자는 제국이란 시스템에 과부하를 거는 변수를 3가지 들고 있다. 인구, 경제규모, 영토.

제국은 농업이란 저효율경제를 전제로 설계된 시스템이며 효율이 높은 시스템이 아니다. 그런데 태평성대가 지속되어 인구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이를 감당하기 위해 늘어나야 할 관료의 증가속도는  제도의 효율이 낮기 때문에 인구증가속도를 추월한다. 그러면 그 관료를 부양할 능력이상으로 팽창하면서 경제에 부하를 걸게 되고 관료집단의 규모가 통제가 어려운 정도까지 부풀면서 부패는 도를 넘어서게 된다. 영토확장도 마찬가지 효과가 잇다.

경제규모도 마찬가지이다. 제국의 통치로 장기간의 안정이 지속되면 농업이상으로 효율이 높은 상공업이 성장한다. 실제 제국의 성세에는 상공업이 도시를 중심으로 극대화된 시기엿다. 그러나 부의 증가는 재앙을 낮는다. 부의 증가는 불평등하다. 즉 빈부격차가 심화되게 된다. 그러면 토지겸병이 일어나 토호의 세력이 강성하게 되며 땅을 잃은 농민이 양산되어 유민과 도적떼가 늘어난다. 지방의 강대한 호족(이나 상인)도 난민도 모두 제국의 저효율시스템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러면 왜 제국 시스템은 저효율인가? 사실 인구, 영토, 경제규모의 설명도 고리타의 순환론을 적용해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고 저자가 분명하게 명료화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왜 제국이 저효율인가도 저자가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를 않다.

그러나 저자는 그 이유를 푸코의 감시와 처벌과 비슷한 논리로 생각하는 것같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 자본주의 국가와 절대왕정 시대의 정치제도의 작동방식을 권력의 차이로 설명한다. 절대왕정까지의 정치제도는 폭력에 근거한 시스템이었다고 말한다. 권력이 폭력에 근거할 경우 저자의 말마따나 원가가 높아진다. 근대국가처럼 시민의 마음에 권력을 내면화하는 것보다 비효율적일 수 밖에 없다.

저자 역시 제국이란 제도는 폭력에 기반하는 시스템이었기에 순환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같다. 저자는 그 시스템을 예치 시스템이라 부른다.

중국의 제국 제도는 유럽의 절대왕정처럼 전제 즉 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되어 잇는 제도였다. 물론 폭력으로 시스템을 운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피지배자의 동의 적어도 묵인을 얻어야 한다. 그 수단이 예치시스템이었다는 것이다. 문화로 통치한다. 한무제 이후 중국제국은 모두 유교를 국시로 했다. 제국의 공식 이념이 된 유교가 말하는 것은 충과 효라는 신분질서이다.

제국은 법치가 아닌 예에 의한 통치를 말했지만 실제 이것은 복종을 말하는 것 이상이 아니었다고 저자는 본다. 반역만 하지 말고 세금만 잘 내고 입다물고 있으라는 것이 제국 제도였다는 것이다. 제국이 신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면 제국은 그 대가로 무엇을 주었는가?

농업은 안정을 필요로 한다. 외적의 침입이 없고 도적떼가 없으며 건달들이 횡행하지 않으면 날씨만 좋다면 태평성대이다. 제국이 농민들에게 준 것은 바로 그 안정이었고 제국의 시스템은 그 정도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였다.

안정을 제공하는 것 이상은 제국이 줄 생각도 없었고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누가 왕인지 알지 못하고 왕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가 태평성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에 대해 왈가불가하지 않기를 요구하는 유교가 국교가 된 것은 필연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동시에 재앙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국이란 제도가 탄생할 수 잇었던 것은 춘추전국시대의 제가백가들의 사상적 혼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창조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그러나 유교 하나만 남기고 사상의 자유를 막아버리면서 중국은 제국이란 제도 이외에 다른 대안을 생각해낼 능력을 잃어버리고 2천년동안 정체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체되었다 유럽으로부터의 충격을 받으면서 중국의 제국 제도는 무너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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