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문장을 만나면, 잠시 멈춘다.
거기나 여기나, 당신이나 나나,그런 겁니까? 그러니까 그런 거로군요..


그리고
이런 구절을 만나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읽고 있는 거로구나.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인 거로구나 싶은..

‘‘나는 하느님보다 엄마가 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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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지음 / 시와사회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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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은 늘 열려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그닥 멀지 않아서, 아니 지척이어서, 나는 요새 자주 그곳에 간다.
나무들이 많아서이다. 물론 숲이나 산만큼은 울울창창하지 않고, 그저 도심에 있을 법한 정도, 좀 있는 집 정원수 정도라고나 할까.
여튼 내가 부쩍 그곳에 가게 된 것은, 점심 먹고 걷다가 더이상 새로운 걷기 행로를 찾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문득 문이 열려있고, 게다가 공짜다.
영추문으로 들어가는 경복궁은 입장료가 있지만, 국립고궁박물관은 없다.
그러니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불쑥 들어가 이곳저곳 쑤시고 다닐 수 있다.
오늘은 문득 갈매나무 아래에 있었다. 늘 가던 오솔길에서 좀 옆으로 새는 또다른 오솔길인데, 푯말이 붙어있었다. 갈매나무....짙은 초록색을 갈매색이라고 한단다. 와우 이런 말이 있었다니..그리고 덧붙여서 백석의 시에 나오는 한구절....

그래서 또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를 찾아보게 되었다. 어디메쯤 그런 구절이 있었던가 싶어서..그러다가 내가 예전에 올린 독후감까지 찾게 되었다.

https://blog.aladin.co.kr/706624125/2012581



오랫만이구나 너, 2008년에 올렸구나..잘 있었니?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워.
아, 갈매나무...봄에 잎이 얼마나 푸른지 꼭 가서 확인해 봐야지...백석조차 머나먼 이국땅에서 끝내 잊지 못했던 그 고향의 색, 갈매색,,갈매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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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의(아주) 짧은 역사
헨리 지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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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리어, 책을 산 적이 있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라는.
지구가 만들어진게 45억년 전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이 700만년전이던가? 여튼 그 기나긴 인류의 여정에서 현생 인류가 그리고 현대의 우리라고 불리는 인류까지 기간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은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와 지구, 우주에서 차지하는 너무도 미미한 흔적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며, 마침내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는데까지 이를 것이란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정치철학자가 쓴 책이었고,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읽고 팔아버렸다. 나에게 있어 '읽고 팔았다'는 소장할 가치도 , 감흥도, 여운도, 그리고 소중한 인식의 전환도 없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뭐 그렇단 이야기.
그런데..지구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는, 내가 이전의 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에 기대했던 그 무엇을 충족시켜주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고 해야 할까?
읽고 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 것이다.
그것은 설명 불가의 어떤 인식, 깨달음 비슷한 어떤 것...그리고 그야말로 하찮은 인간, 호모사피엔스...절멸하고 말 운명...이라는 진실이 주는 그 무엇.
물론 지금은 아니다.
아주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지구가 변하고 그 운명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인간 또한 변하고,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이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것이라는 지구생명의 역사의 예정된 미래이지만, 지금의 우리는 아니다. 지구 종말은 아주 먼 이야기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반드시 멸종할 것이란 단언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충격의 일격을 가하는지.
그 이야기를 헨리 지는 아주 아주 축약해서 들려준다. 지구가 어떻게 생겨났고, 요동치며 변화하는 지구에서 생명이 어떻게 근근이 생명을 이어왔는지,
한마디로 그동안 읽어 온 많은 지구이야기, 진화이야기의 축약판이면서, 앞으로 인간의 운명이, 그리고 지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헨리 지답게 담담하게 들려준다.
이야기꾼답게 속도감 있으면서도 재미까지, 그리고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고고학적, 생물학적 발견까지 무엇보다 참고서적까지 꼼꼼하게 담았다.
물론 결론은 단 하나,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은 언젠가는 끝장날 것이다. 지구도 서서히 자신의 생애주기를 다할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야겠지만. 그 모든 인간의 이야기, 흥망성쇠, 욕망들까지도 다 한단층의 희미한 흔적으로 남았다가 ,,마침내 그것조차 사라질 것이다.
그 어떤 뛰어난 예언가들의 그것보다 더 절절하고도 정확한 이 예언은,지금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면서, 어쩐지 심오하고도 장엄한 깨달음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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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을 읽을 때 쯤,숨이 막히고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과 공허함이 엄습하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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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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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처음 들어갔을 때, 교내는 늘 이런 구호들로 가득했다.
반전, 반핵, 양키 고우홈.
그 말들이 정확하게 역사적,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배우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이 말들이 엄청난 말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는 입밖으로 이 단어들을 내뱉는 것이 너무나 힘겨웠다.
어떤 이들은 집회 중에도 혼자서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고,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구호를 따라했다.
그건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20살 아무것도 모르면서 오로지 공부만 했던 모범생(?)이던 나에게 그것은 문화적 충격이었고, 인식의 격변이었고, 어른이 되는 신고식 같은 거였다.
그렇게 한 세월이 갔지만, 나는 여전히 집합 속의 한 개체이고, 어리둥절한 어린아이에 불과하고,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반전 반핵을 외치지 못한다.
나는 반전, 반핵의 정신에 찬성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대로에서 큰 소리로 그 구호들을 선창할 만큼 내면화되어 있지 않고,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릴때부터 우리가 늘 보아오던 1,2차 세계대전영화에서와 같이 연합군,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선한 세상의 유일한(나만 그랬던가) 우리편이이라고 믿고 있는 편의 군인이 아니라, 적이라고 알고 있는 독일군, 전쟁을 일으킨 적국의 군인의 이야기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키고 실질적 책임을 져야 하는 지도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18,19,20살 아니 그 이하의 어린 나이에 기성세대의 부추김과 알지 못하는 시대적 분위기, 혹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당연한 책임감에서 전쟁터로 보내진 그리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얼마전에 읽은 그들이 지니고 다닌 것들이란 소설(베트남전에 참여한 미군의 이야기)과 어쩌면 같은 궤일까?
전쟁은 엄청난 일상의 동요, 상실, 평온의 증발일 터이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친구를 사귀고, 농담을 하고, 밥을 얻으러 다녀야 하고,잠을 자고, 용변을 봐야 하는 현실이다.
어디서든 인간은 살아야 하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 현재형이다.
아마도 무기가 좀더 현대화되고 살상이 짧고 강렬한 방식으로 바뀌었을지는 몰라도, 몸이 부서지고, 달아나고, 피가 흐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리고 죽음.
영원한 끝, 이 지구상을 다녀간 인간종이 1800억명 정도라고 하는데, 그 1800억분의 1이었던 확률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 먼지가 되는 것

그리고 다시는 복원될 수 없는 것.
그것이 전쟁이다.


전쟁속에서 견디기 어려운 여러가지 중 하나가 찢어질 듯한 신음과 고함, 죽어가는 소리, 부상당한 자의 고통스런 숨소리...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리고 냄새..피냄새..상처에서 나는 고름냄새...악취....
인간의 감각이 인내할 수 있는 최대치를 넘어서는 전장터......

레마르크의 개선문과는 또다른 반전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반전 반핵의 구호를 내 마음속으로부터 끄집어 내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그 어떤 방식으로도 전쟁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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