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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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김연수를 특별해 한다면 그건, 역시 사랑때문이다.

 

그와 나 -우리가 공유했던 시간이 정말로 존재했던 현실이었다면, 김연수는 그 가운데 아주 작지만  한부분이었다. 우리가 함께 작가로서 인정했던 김연수.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좋든 싫든 내게 사랑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만약 내 사랑 역시, 가정의 화법으로 "만약 OOO했더라면"이라는, 불확실하고도 불안한 어조 속의 한구절이었다면, 그 역시 공상 속의 인물이어야 맞으리라. 따라서 그의 소설이 나에게 던지는 의미는, 공상과 현실, 시간과 비시간 또는 가역과 비가역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그와 나의 기억에 대한 기억이다.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은 결국, 우여곡절 끝에 사고를 한바탕 치른 뇌의 작용이다. 사고를 한바탕 치른이란 말은, 사물 또는 사건 그자체일 수 없는 자기식으로 가공화된, 또는 내면화된 것이란 의미이다.

김연수는, 이 작품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이와 같은 인식을 확인시켜 준다. 도대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내가 또는 네가 누구인가?

그것은 허구의 인물인가, 실제의 인물인가? 내가 머무는 이곳은 서울인가? 베를린인가? 아니면 무주인가?

굳빠이 이상에서 차기작을 기대하게 하고,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에서 보통을 넘는 작가라고 확신하게 했던 김연수, 그런데  여기서는 여물지 못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으되, 완벽한 구조물이 되기엔 성긴 느낌이 든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김연수를 읽었고 또 앞으로 읽는다면, 그것은 역시 사랑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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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서 황혼까지 1500-2000 1 - 서양 문화사 500년
자크 바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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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면 책날개에 소개된 저자의 나이를 꼭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작가가 요절했다거나 또는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여 외부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한다면, 나로서는 신뢰감이 오히려 배가한다.

요즘 같은 홍보의 시대에 책을 내면, 인터뷰다 저자사인회다 온갖 동원할 수 있는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알리고 나서는 것이 추세다. 그러다 보니 얼굴이 꽤 알려진 스타급 작가들이 더러 있다. 신문이며 방송에 출연하여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아예 프로그램을 통째로 진행하는 작가도 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런 작가들의 작품은 일부러 피해가고 싶다. 작가는 작품으로 만나야 하고 일단 작품이 되어 세상으로 나오면 그 다음 해석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에서다. 또한 작품과 인격이 꼭 일치하는 것만도 아니지 않는가.

자크 바전은 100세를 맞는 올해까지 평생을 문화사 연구에 몰두해 왔으니 전문가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써 온 ‘새벽에서 황혼까지1500-2000’는 ‘이념을 표방하며 권력과 재산의 살벌한 교체’가 이루어졌던 1500년대 ‘종교혁명’에서부터  ‘역사발전의 단계를 두루 거치며 웬만한 시도는 다 해봤기 때문에 탈진상태에 이른 황혼기’라고 표현한 현재까지를 두루 아우른다. 독특한 점은 그때마다 문화를 송두리째 뒤바꾸었던 네 개의 혁명을 주요 축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 네 개의 혁명으로 대변되는 서양 문화사의 핵심 키워드로 그는 해방, 개인주의, 원시주의 그리고 추상(분석)을 꼽았다.

문화가 삶의 방식이라면, 이 책은 전체의 1/4도 채 되지 않은 500년 동안만의 삶을 조명한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시대와 바로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친숙하다. 장점이라면, 역사속에서 화려하게 조명받고 있는 유명인부터 과소평가 받거나 묻혀진 이들의 이야기까지 평생에 걸쳐 읽고 발굴하고 조사해온 사실에 기반해 재미있게 엮었다는 점일 것이다. 눈 내리는 겨울밤 따뜻한 이불 밑에서 조금씩 읽어 가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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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사용법 - 소설들(Romans)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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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낯선 도시에서 3주를 보낼 기회가 있었다. 내가 묵었던 집은 도심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는데, 우리 식으로 말하면 소위 신도시라고 할 만한 곳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그저 일에서 해방되었다는 기분에 도취되어 할 일없이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기만 했다. 비가 온 날이 며칠 있었지만 대개는 날씨가 맑아서 집 근처를 걷거나 때로는 용기 내어 좀 멀리 가보는 모험도 해볼 만했다.

구획이 잘 된 거리에 들어선 네모반듯한 집들이 비슷비슷하기도 하고, 거리 이름도 낯설어서 좀 멀리 갔다가는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지만, 한번은 집에서 직선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낮은 울타리로만 구분되는 주택들이 겉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제각기 집주인의 기호에 따라 다르게 꾸며져 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정원수만 해도 장미 일색인 집이 있는가 하면, 이름 모를 갖가지 활엽수들이 숲처럼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집이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인 듯 나무들 사이에 그네가 매어져 있거나 물이 반쯤 차있는 접이식 수영장이 펼쳐져 있는 곳도 있었다. 하다 못해 울타리 근처에 세워놓은 우편함마저도 제각기 다른 빛깔과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직선이 끝나고 옆으로 꺾이는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그 집이 있었다. 엄밀히 말해, 그 집은 조금 전 지나쳐 온 다른 집들보다 더 아름답다거나 기이하다거나 눈길을 끌 만큼 잘 손질된 정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정돈된 이웃집들과 대조적으로 어떤 방만함같기도 하고 무심함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아마 주인의 손이 오랫동안 가지 않은 듯 갈대 같기도 하고 쑥대 같기도 한 식물들이 가슴 높이까지 자라 있는 정원은 바랜 수채화 같은 인상을 풍겼다. 누군가 살고 있기나 했을까?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싫증나면 도심에 있는 책방에서 모르는 활자들을 구경하거나 장미 기르기며 케이크 만들기, 창고 만들기 등 취미생활을 다룬 컬러 화보집을 펼쳐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날은 내가 아는 독일어 소설이 몇 권이나 있나 세어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그 때 나의 인생 사용법이었던 셈이다.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은 『사물들』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읽은 그의 책이다. 그러나 이 책으로 나를 이끈 것이 몇 년 전 나온 『사물들』에 대한 기억의 힘만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이란 변형과 왜곡을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인생은 포크나 나이프처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그 자체라는 고정관념에 묶여있는 나로서는 이 제목이 주는 어떤 방자함에 대한 복수심에서 첫 장을 펼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은 다른이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영역을 남긴다’

거의 10년에 걸쳐 쓰여진 이 책은 『소설들』이란 부제가 붙어 있고 1976년 6월 23일 오후 8시 무렵, 시몽클뤼베리에 거리 11번지 지하 2층과 지상 8층 짜리 건물에 들어있는 99칸의 방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고정되어 있기는 하나 실제로 여기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이런 시간과 공간의 편협함을 훌쩍 뛰어넘는다. 가령, 이야기의 중심인물 중 하나인 바틀부스는 지금 막 439번 째 퍼즐을 맞추다가 숨을 거둔다. 그러나 바틀부스가 여기 시몽클뤼베리에의 아파트에서 숨을 거두는 이 순간까지는, 그의 종조부 제임스 셔우드가 1870년에 호흡기 환자를 위한 젤리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에 힘입어 유니쿰(Unicum-세상의 유일한 진귀품을 찾는 일) 추적에 몰두하다 희대의 사기꾼들에게 가짜 성배를 사는 사실들이 선행해야만 한다. 또 제 83장은 지금은 화가 위팅의 아틀리에로 꾸며진 다락방 12호에 1949년까지 오노레 부부가 살았는데, 그 부부가 일해 주었던 대법관 당글라르 부부의 도둑질이 어떻게 들통 나 감옥에 가게 됐는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식이다. 1층에 있는 마르시아 부인의 골동품 가게도 전 주인인 마구 제조인 알베르 마시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마시는 신기록을 세운 자전거 경주자였으나 운이 안 따라 포기하고, 자신 때문에 사고를 당해 얼굴이 흉칙하게 변한 마르게를 자기 누이동생과 결혼하게 만든 인물이다. 러시아 출신의 여자 성악가, 낙태한 무용수, 처가에 얹혀 사는 젊은 부부 이야기에서 퍼즐 제작자 윙클레의 아내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마치 현재의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이전의 무수한 점들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듯하다.

눈여겨볼 만 한 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우리의 방 한구석에 무심하게 놓여 있는 사물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곤 한다는 것이다. 마치 ‘생명 없는 사물들을 움직여 그 속에 각인된 우리 삶을 되살리는 것을 목표’로 하듯, 우리 삶의 말없는 증인들일 수밖에 없는 식당, 부엌, 욕실 등에 놓여있는 사소한 사물들에 대한 섬세하고 빈틈없는 묘사가 사람 이야기에 앞선다.

‘같은 건물 주민들은 서로 몇 센티미터 거리를 두고 살고 있으며 단지 벽 하나가 그들을 갈라놓는다. 수도를 틀거나 변기에 물을 내리거나 불을 켜거나 식탁을 차리는 동일한 동작을 동시에 행하며 층에서 층으로 건물에서 건물로 그리고 거리에서 거리로 반복되는 수십 가지 생활 습관들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러나 이 공통 사용법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구별되는 독특한 어떤 영역을 남겨두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65억 인구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며 시몽크뤼벨리에 거리 11번지의 아파트 99칸 방들이 보여주는 장면들 역시 그 일부분일 따름이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어쩐 일인지 3주간의 휴식 동안 걸었던 그 낯선 길들과 반듯한 집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직선 거리가 끝나는 곳에 버려진 듯 서 있던 그 집을 생각했다. 그 집들에는 어쩌면 바틀부스가, 윙클레가, 그리고 모렐레가 살고 있었을 것이다. 옆으로 나를 스치듯 지나간 그 책방의 손님들 중에는 시노크가, 알타몽이, 모로가 있었을 것이다. 조르주 페렉은 천재적 방식으로 우리 인생의 사용법 몇 가지를 보여주었다. 수많은 인용과 목록, 유쾌하고도 절망적인 이야기와 수준 높은 위트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지적 체험이다. 이 굉장한 책을 읽는 데 내 인생 일부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 출판사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현재의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점에 불과하지만

이전의 무수한 점들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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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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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에 익숙하지 않다. 천성적으로 농담을 잘 못한다고나 할까. 농담이 등장할 때가 대체로 처해진 난처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거나 국면을 어떻게든 전환해 보고 싶을 때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이런 천성은 사는데 별 도움이 안된다. 게다가 사람이 늘 진지하기만 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재미없는 세상에 농담이라도 던져서 웃게 만드는 능력은, 그래서 마술과도 같다. 이 점에서 더글라스 애덤스는 마술사다. 그러나 달걀을 한번 쓰윽 문질러서 콧김을 두어 번 불어넣고 하얀 손수건으로 덮은 뒤 하나 둘 셋하고 세기만 하면 곧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정도의 마술과는 비교도 안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 전 우주를 상대로 하는 정도라면 그 스케일이 어떨지는 상상에 맡긴다.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삶과 우주,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이토록 유쾌하고 통쾌하고 익살스럽고 떠들썩하게 풀어내는 작가를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물리학과 천체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력, 무엇보다 하늘만큼이나 넓고 깊은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그런 책이라고만 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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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식물 - 세상을 보는 식물의 시선
마이클 폴란 지음, 이경식 옮김 / 황소자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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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권한다는 건 어느 정도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상대방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 사소한 한끼 식사의 메뉴라 할지라도.


  최근에 사무실을 방문한 김성희씨가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들이민 책제목에 고개를 갸웃한다. 그 동안 내가 그에게 심어준 인상이 이 책을 집어들기엔 의외라고 생각하게 했나 보다. 성격만큼이나 내 독서취향도 좀체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하지 않은 게 다행이지만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주 우연찮게 얻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책은 책방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OO씨, 책 왔습니다’하는 택배 아저씨의 씩씩한 목소리를 듣는 재미에 익숙해졌지만, 책방에 즐비한 수많은 책의 바다에서 우연찮게 맞닥뜨린 섬 하나가 주는 기쁨을 어디다 비길 수 있을까?


일정한 목적 없이 자주 기웃거리다 보면 항상은 아니지만 늘 수확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살던 신림동에는 어느 대형서점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나는 그렇게 생각한다)작지만 보물 가득한 책방이 하나 있어 나의 정처없는 발길을 자주 잡아끌고 했다. 퇴근이 빠른 날이나 주말이면 할일없는 백수처럼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린다. 어떤 것은 서문이 마음에 들어서, 어떤 것은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또 어떤 것은 믿을 만한 출판사라서, 더러는 순전히 감으로 집어든다. 이유야 어떻든 그렇게 해서 마주친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카렐 차페크의 ‘단지 아주 조금 이상한 사람들 ’과 피터 회의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다.

그러나 변변한 책방 하나 없는 동네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더 이상 이런 우연한 만남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음에 맞는 책만 골라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따로 있지 않을 바에야 필요에 따라 인터넷 서점을 뒤질 수밖에 없다. 신문의 책소개란도 한 몫을 해야 한다. 「식물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는 옆의 동료 덕에 읽게 되었고 그 책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키워드 검색으로 ‘식물’쳐서 나온 책이 바로 이 「욕망의 식물학」이다.


책이 나온 것은 올 1월로 되어 있는데 나는 8월에 이 책을 읽었다. 한겨레에 자주 칼럼을 쓰는 최재천 교수가 감수와 추천의 글을 썼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는 이 책에 대해 내가 이외 달리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까?


「사과」와 「튤립」, 「마리화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자」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하는 식의 세상읽기가 실은 얼마나 일방적이고 인간 중심적 사고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이 지구 위에서 인간은 다만 하나의 구성원소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대수롭잖게 생각하는 것들도 이 지구 위 삶에서 충분한 자기 존재목적을 가진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결론에 앞서 우선 제목부터가 욕망의 식물학이라니 이 얼마나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담한가? 식물이 ‘감히’ 욕망을 한다는 말인지 욕망을 가진 인간이 개입한 식물발달사라는 말인지 책을 펴기도 전에 이미 호기심이 동하지 않는가? 결과는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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