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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식물 - 세상을 보는 식물의 시선
마이클 폴란 지음, 이경식 옮김 / 황소자리 / 2007년 6월
평점 :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권한다는 건 어느 정도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이 상대방의 인생에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 사소한 한끼 식사의 메뉴라 할지라도.
최근에 사무실을 방문한 김성희씨가 요즘은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들이민 책제목에 고개를 갸웃한다. 그 동안 내가 그에게 심어준 인상이 이 책을 집어들기엔 의외라고 생각하게 했나 보다. 성격만큼이나 내 독서취향도 좀체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하지 않은 게 다행이지만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아주 우연찮게 얻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책은 책방에서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인터넷서점에서 책을 주문하고 ‘OO씨, 책 왔습니다’하는 택배 아저씨의 씩씩한 목소리를 듣는 재미에 익숙해졌지만, 책방에 즐비한 수많은 책의 바다에서 우연찮게 맞닥뜨린 섬 하나가 주는 기쁨을 어디다 비길 수 있을까?
일정한 목적 없이 자주 기웃거리다 보면 항상은 아니지만 늘 수확이 있게 마련이다. 내가 살던 신림동에는 어느 대형서점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나는 그렇게 생각한다)작지만 보물 가득한 책방이 하나 있어 나의 정처없는 발길을 자주 잡아끌고 했다. 퇴근이 빠른 날이나 주말이면 할일없는 백수처럼 이 책 저 책을 기웃거린다. 어떤 것은 서문이 마음에 들어서, 어떤 것은 표지가 인상적이어서, 또 어떤 것은 믿을 만한 출판사라서, 더러는 순전히 감으로 집어든다. 이유야 어떻든 그렇게 해서 마주친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카렐 차페크의 ‘단지 아주 조금 이상한 사람들 ’과 피터 회의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다.
그러나 변변한 책방 하나 없는 동네로 이사를 하고 나서는 더 이상 이런 우연한 만남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음에 맞는 책만 골라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따로 있지 않을 바에야 필요에 따라 인터넷 서점을 뒤질 수밖에 없다. 신문의 책소개란도 한 몫을 해야 한다. 「식물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는 옆의 동료 덕에 읽게 되었고 그 책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키워드 검색으로 ‘식물’쳐서 나온 책이 바로 이 「욕망의 식물학」이다.
책이 나온 것은 올 1월로 되어 있는데 나는 8월에 이 책을 읽었다. 한겨레에 자주 칼럼을 쓰는 최재천 교수가 감수와 추천의 글을 썼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는 이 책에 대해 내가 이외 달리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까?
「사과」와 「튤립」, 「마리화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자」의 소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우리가 흔히 하는 식의 세상읽기가 실은 얼마나 일방적이고 인간 중심적 사고인지를 깨닫게 해 준다. 이 지구 위에서 인간은 다만 하나의 구성원소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대수롭잖게 생각하는 것들도 이 지구 위 삶에서 충분한 자기 존재목적을 가진다는 식의 구태의연한 결론에 앞서 우선 제목부터가 욕망의 식물학이라니 이 얼마나 뻔뻔스러울 정도로 대담한가? 식물이 ‘감히’ 욕망을 한다는 말인지 욕망을 가진 인간이 개입한 식물발달사라는 말인지 책을 펴기도 전에 이미 호기심이 동하지 않는가? 결과는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