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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양장) - 간략한 역사
데이비드 하비 지음, 최병두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이리 저리 거닐다 보면, 어느새 어딘가 익숙한 곳에 닿아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뇌의 작용의 결과인지 아니면, 몸의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뭐 이둘이 결과적으로 같은 말일 수도 있지만.......이미 20대를 저만치 지나온 나로서는 어린 친구들이 읽는 책에 별로 무게를 두지 않는 편이다. 그 시절 나는, 너무 어렸고, 10년이 흐른 어느날 문득 돌아보니 삶이 과장되게 희망으로 빛나 보였던 때였다. 이제 나도 나이 먹은 사람티를 내기 시작한 것일까. 그러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어쩌면 이런 감정은 그 시절에 대한 부정일수도, 회한일수도 또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질투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이 시절에 읽는 책마저도 미성숙하고 덜찬, 해서 별로 신뢰하지 않은 나다. 그런데 하비라는 좌파 지리학자의 이름을,내가 컴플렉스라고 여겨온 경제분야(그러고 보니 내가 컴플렉스하지 않은 분야가 어디 있을까?)의 책을, 하필이면 스물 대여섯밖에 안된 어린 친구가 읽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3분의 1 읽었어요. 처음엔 재밌는데 뒤에 갈수록 좀 그러네요...그 친구의 말이다. 요것 봐라,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란 말이지..흠...지리학자로군,,,신자유주의 역사...통섭인가? 책 앞날개의 작가의 이력에서 나는 그가 지리학자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리학자가 세계 경제의 역사에 대해, 썼다는 사실도 마음을 끌었다. 물론 가장 큰 유인력은, 솔직하게 시인하자면, 신자유주의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라는 주제였고, 그리고 좀더 솔직하자면, 그 용어에 대한 나의 컴플렉스였다.
나는 신자유주의를 모른다. 물론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모른다. 지금 그것이 세계를 관통하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하더라도, 그속에서 좌충우돌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미미한 한 개인에게, 그것이 그리 크게 문제로 와 닿진 않는 법. 나도 이 법 아닌 법에 따라 사는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신자유주의?흥 신자유주의이든가 말든가...헉..헉..대며 살기 바쁜 것이다. 하지만, 하필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이 용어를 매일 한번씩은 듣거나 보거나 해야 하는 곳이다. 물론 얼렁뚱땅 주워들은 감량으로 그게 무언지를 대충은 아는데, 대충 아는 것으로 살기에는, 찜찜하고 찜찜하다 보니, 내 욕심많은 지적 영역에서는 모르는 것과 같다고 입력이 되어 있으며, 그러다 보니, 이것은 콤플렉스임에 틀림없게 되어 버렸다.
그 어린 녀석이 나의 컴플렉스를 건드렸던 것이다. 내가 거의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는, 스물 대여섯의 풋내기가 내가 모르는 분야를 떡하니 펴놓고 읽고 있으니...
이 책은 그런 연유로 읽게 되었다.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되었으나, 끝은 아름답다. 나의 자평이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나아가 그것은 옳은가? 옳다는 기준은, 자의적인 것이 되어선 아니 되고 적어도 인류의 보편적인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 신자유주의적 흐름은 옳은가? 그리고 그것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지속된다면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라면? 대안은 있는가? 이 책은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시시한 것에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거대한 역사적 문제에 둔감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나와 같은 사람들도 읽은 자격은 있다. 제목이 주는 약간의 전문가적 냄새만 뺀다면 그리 어려운 책도 아니다.
섬뜩한 진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지은이가 의도하는 바를 잡아내는 것도 썩 어렵지 않다. 신자유주의는 계급권력의 회복이며, 결국 우리는 세계사의 발전과정에서 힘겹게 얻어낸 “언론과 표현의 자유, 교육과 경제적 보장의 자유, 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금융자본이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맞바꿨다는 그의 평가는 얼마나 적확한가? 그가 파악한 세계는 "결과적으로 빈국들이 부국들을 보조하는 이 세계는 얼마나 이상한 곳인가"라고 한 스티글리츠의 말로 요약된다.
“자유의 개념들 중에서 어떤 것이 적절한지를 따져보는 심각한 논쟁이 없다”는 지은이의 문제의식 역시 “자유”라는 이상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면죄부를 주거나 신뢰를 보내는 오늘날의 우리들 태도가 얼마나 맹목적이며 편향된 것인지 돌아보도록 한다.
이리 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이미 익숙한 곳에 와 있다. 책이다. 책은, 늘 따뜻하고 친절하다. 친절한, 동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