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영 기분이 사납다.

수영장에서 누군가 내 수건을 가져가버렸다.

누군지는 모른다.

이게 뚜렷한 기억으로 보자면, 두 번째다.

툴툴거리며, 그 알지 못하는 수건털이(윽 이건 또 무슨 단어인가)에게 약간의 저주(?)를 퍼부었다(내가 왜 이러나?).

사무실에 도착하고 인터넷뉴스를 보는데, 아, 또 이건 뭐란 말인가?

멘탈 붕괴라는 말은 누가 처음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딱 지금의 나에게 맞아떨어지는 표현이다.


내 아침 시작은 별로 아름답지 못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까지 더하자면, 어느덧 멘탈붕괴라는 표현은 일상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인간,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으로 살기 참, 어렵다. 힘들다. 자주 내가 타고난 그릇에 비해 세상사가 너무 많고, 너무 감당하기 어렵다(브로덱의 말?)는 생각을 한다.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 소설책이 눈에 띄지 않았고, 읽다 만 책은 영, 마음이 당기지 않았다.

소위 멘붕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 소설만큼 적절한 것이 없다고 믿는 나는, 할 수 없지만 소송을 다시 집어들 수밖에.


대학 학부시절 더듬거렸던 기억이 있는데, 줄거리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게다가 다 읽었는지, 읽다 말았는지조차 불분명하였다. 누군가가 써 재낀 서평류를 너무 많이 읽어서일까? 어쩌면, 전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읽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 요제프K와 동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은 더욱 꼬였다. 첫장을 다 읽고 나서 내속의 어떤 것은 진정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 현실이나 소설이나 왜이리 합리성이라곤 눈닦고 찾아봐도 안보이는지...왜 이토록 오리무중이며, K는 또 왜 이렇게 답답하게 당하고 끌려가기만 하는건지.


이후 한달을 질질 끌었다.밤마다 읽기엔 심리적으로 편치 않는 내용이었기에, 주로 주말동안 읽었다. 줄거리가 남아있지 않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소송은 뚜렷한 사건의 기승전결이 있는 구조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첫구절이라면, 그 다음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해서라도 독자들은 책을 계속 따라갈 수밖에 없다. 다 읽고 나면, 이미 이 첫 문단에 소설 전체의 스토리가 들어있다고 해도 될 법하단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주인공 K는 느닷없이 체포되었고, 왜 자신이 체포되었는지 동분서주 알아보러 다니고, 누군가의 도움도 받아보려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처형된다. 물론 처형되는 것조차 현실에서 실제 일어난 일인지 혹은 꿈인지 분명하지 않다, 내가 보기엔.


나는 가끔 우리가 소설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 묻곤 한다.

위안일까? 지혜일까?

나에게 결론은, 문장 또는 단어이다.나의 몸짓과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문장이나 단어를 찾기위해서 나는 소설을 책을 읽는 것이다. 너무 심플한가...? 이건 지금까지의 경험에서 내린 결론이다. 어쩌면 앞으로 다른 이유들을 다시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가령 내가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처지가 혹은 어떤 역할이 좀 버겁다고 치자. 그런데 그 버거움이란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새로 만들어내기가 난감할 때 이런 문장을 만났다고 해 보라.


나는 내 인생에 걸맞은 재목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무슨 뜻 이냐 하면, 그릇에 비해 삶이 너무 커서 사방으로 넘쳐 나고  나 같은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크게 재단된 삶이라서 그 안에 너무 많은 것, 너무 많은 사건, 너무 많은 역경, 너무 많은 균열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말이다. (브로덱의 보고서, 51쪽)


누군가의 이별을 절절히 애통해 한다고 치자. 아니 애통이란 표현이 따라잡지 못하는 어떤 감정, 상실감...기존의 단어로는 설명이 되지 못하는 그 어떤 상태에 대해, " 3주일 동안, 줄곧 잠만 잤어. 문자 그대로 줄곳 잠만 잤어...라는 표현만큼 더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3주일 동안, 아버지는 줄곧 잠만 주무셨어, 과장해서하는 말이 아니야, 문자 그대로 줄곧 주무셨어, 어쩌다 생각난 듯이 침대에서 휘청거리며 일어나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을 마시고, 입에다 살짝 점 하나를 찍는 것처럼 음식을 조금만 드셨어. 몽유병자나 유령처럼 말이야,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 동안이고, 바로 또 이불을 뒤집어쓰고 주무셨던 거야, 덧창까지 완전히 닫은, 혼탁한 공기가 꽉찬 캄캄한 방 안에서, 마치 주술에 걸린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깊이 잠들어 계셨어. 꿈쩍도 하지 않으셨던 거야, 뒤척이는 건 고사하고,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이야.(렉싱턴의 유령)


내게 소설은 그렇다. 

내가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어떤 상황, 처지, 감정....등등에 적확한 말들을 찾아 주는 것, 문장들을 발견하게 해 주는 것, 표현들을 만나게 해 주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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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6-11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도 소설이 그래요, 테레사님. 저한테도 그걸 해줘요, 소설이.

테레사 2012-06-11 16:1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