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비긴스를 보았다. 배트맨 시리즈는, 그냥 좋다. 스파이더맨도 좋다. 엑스맨도 좋고,원더우먼도 난 좋다. 암튼, 이런 찬란한 상상의 인물들이 좋다. 재밌고, 즐겁고, 보고 나서도 계속 생각한다. 밤과 낮, 상징과 인간, 선과 악...그런 걸 떠나, 뭐 재밌다는 것. 영화의 끝은 늘 악한 이가 정리된다는 것,도 현실과 달라 좋다. 현실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현실과 상상을 자주 헷갈리는 것. 나란 인간은,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배트맨 비긴스를 보고, 배트맨을 현실속으로 데리고 나온다는 거다.
하지만, 어쩌랴, 이야기의 힘이란 그런 걸. 부끄럽다고, 화끈 달아오르다가도, 이내 이런 나를 인정하자. 나란 존재의 정체성의 한조각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는 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열 세살 이후로 한치도 자라지 않은 듯한,이 비상직적인 멘탈의 반응과, 어린애와도 같은 막무가내의 이기심과 자기몰입이라니.
그나저나 배트맨의 비긴을 보고 나니, 시간이 갈수록 실망스럽다는 생각으로 꽉찬다.
그러니까, 배트맨이 배트맨이 될 수밖에 없었던 가족사가 남김없이 드러나면서, 생각의 여지가 줄었다는 것이다. 준 것에서 더 나가 없어졌다는 게 맞겠다. 내가 배트맨의 멘탈과 정체성을 나름대로 상상할 여지가 없어져 버림으로써, 나름의 분석과 기대와 상상하는 맛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역시나 크리스천 베일은 좋다. 목소리도 표정도, 다크나잇라이즈가 곧 개봉된다는데, 기다려지긴 한다. 내가 여전히 애 같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