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철학 - 질문으로 시작하여 사유로 깊어지는 인문학 이야기
함돈균 지음 / 난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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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좋다.

사물에 관한 생각이 좋다.


무엇보다,

사물에 관한 응시가 좋다.


누가 사물 따위에 한동안 시선을 두고 생각같은 걸 한단 말인가.


그걸 해내는 사람은 누구나, 시인일 것이다.

누구나, 철학가일 것이다.


어떤 이가 내게 '생각없이 책을 사들이기만 하는'.......이라며 

'욕'을 했다.


합당한 근거가 전혀 없는 말이기 때문에 내게는 '욕'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말을 한 이는 출판사를 운영하거나

출판사 관계자다.


그럼, 적어도 그런 '욕'은 안해야 옳다.


출판사에게 '생각없이 책을 사들이기만 하는' 사람은 VIP 아닌가 말이다.

생각을 많이 하느라 정작 책을 한권도 사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그에게는 '천적'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부분적으로는 그의 말이 맞기도 하다.


나는 사물에 관한 책은 생각없이, 사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보고 그냥 산다.

이, 생각없음이라니.... 


허나, 때로 '생각 없이'라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애정'과 직결된다.

'산다'는 행위가 동반되지 않는가, 적어도.


내가 사물에 관한 책을 생각없이 사들이는 이유는 있다.

생각은 없을 수 있는데, 이유는 있다.


낯설게 보기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소설을 쓰는데 필요한 제1의 요건이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현실을 낯설게 보지 못하면 소설을 쓸 "꺼리'가 없다.

할 말이 없다. 그냥 그대로 있는 현실을 그냥 그래도 바라보는 행위로는

결코 소설을 쓸 수 없다.


사물을 응시하면 낯설게 보게 된다.

낯섦이 요철처럼 도드라져 오른다.

(거짓말 아님. 해보시면 증거됨)


20년 넘게 소유해온 만년필에 말을 건 적 있다.

그때 만년필은 더이상 만년필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렇게 낯설게 보였다.


내가 널 몹시 애정하느라 오히려 널 쓰지 못하고 

이렇게 보관함에 넣어두는데,

넌 그게 속상한가, 아니면 고마운가.


라고 물었다.

누가 볼까 아무도 모르게, 그랬다.

보면 정신나갔다고 할까봐.


그러나 나는 믿는 게 있다.


누가 볼까 아무도 모르게,

우린 사물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수줍어서 내보이지만 않을 뿐, 언제나 말을 걸고 있다고.


우리, 사물에 관해 적어도 이 말은 하고 살자.

발에 채이는 돌멩이에게 '아팠니?'라고 물을 수 있다는 걸 부끄럽게 여기지 말자고.


함돈균 작가의 '사물의 철학'에서 나는 원없이 낯설게 보았다. 


전작인 '코끼리의 사물들'도 그랬다.

사물을 낯설게 보는 그의 시선에 '모조리' 동감했다.

독자의 '동조'를 구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속으로 계속 동감,동감,동감 외쳤다.


그만큼, 보편적이다. 

보편적이란 말을 진부하다거나 전형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소설에서 '보편성'을 쟁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면 말이다.


보편적으로 낯설게 보기.


내가 함돈균 작가에게서 배운 귀한 공부다.


사물을 통해 '낯설게 보기'를 쟁취하려는 내 목적은 분명하다.

사진 맨 오른쪽에 배치한 책 제목이 그 목적이다.


최소의 발견


오늘도 나는 생각없이 사물에 관한 책을 사들이면서

그 목적을 향해 한 발 다가든다.


덧붙이자면,

[김선우의 사물들]이 내겐 '원픽' 사물책이다.

구판, 신판 다 샀다.

구판을 하도 봐서 다 헐어서.

일독 안하신 분은 꼭 읽으시길.

부제에서 한 약속을 온전히 지키는 책은, 좋은 책이다.


[보이는 것의 뒷면은 보이는 것의 정면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김선우의 사물들'의 부제



[사물의 철학]을 그 책 옆에 나란히 꽂았다.


책이 많아서(생각없이 책을 사들이다 보니)

책꽂이 칸마다 라벨을 붙여놓았는데,

이 두 책이 꽂힌 칸의 이름은,


산문집의 명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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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5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05 0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스토리 오브 스토리 - 다 알고 또 모르는 이야기
박상준 지음 / 소명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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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다. 그런데 왜 난 무작정 ‘무거움‘을 원했을까. 가볍지는 않지만 그리 무겁지도 않다. 언급된 책은 모두 명저이나 그래서 또 많이 접한..목차는 미리 살폈으나 익숙한 책이라도 다른 시각을 기대했던 것 같다. 그것도 많이. 고로, 내 기대탓이다. 책장이 잘 넘어가는 게 좀 속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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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마취 상태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9
이디스 워튼 지음, 손정희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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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둘러보는 재미 중 압권은, 구매 결정에 단 1초의 주저함도 필요치 않은 책을 발견하는 것. 국내 초역. 제목은 ‘반마취 상태‘. ‘Twilight Sleep‘에 비해 너무 많은 걸 미리 열어젖힌 느낌. 의미상으론 정확한 대응어지만 다가오는 어감은 좀 다르다. 뭐, 어쩌랴. 그게 그뜻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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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물속에 산다 - 발달장애로 살아가는 일의 감각적 탐구
요코미치 마코토 지음, 전화윤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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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위해 펼쳤다.

그리고 대번에 리뷰를 쓰려고 마음먹게 되었다.


대번에, 1장만 보고 쓴다.


이런 '1장'은 본 적이 없다. 

목차 바로 뒤에 붙어 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1장'들은 

대개, 이렇지 않다.


이런 식으로 '유예'하기 보다는 어서 빨리 말하려 한다.


1장을 보고 2장으로 기꺼이 넘어갈 의향을 비칠 즈음,

독자는 그 책을 도로 접어 카운터로 가져갈 것이다.

구매의 결심.


그걸 가능케 하는 게 '1장'의 사명이다.


이 책의 1장은 좀 다르다.

장의 제목이, '시처럼'이다.


난생 처음 접하는 방식의 '1장'을 보다가 

든 생각.


'메타 1장'이란 단어가 있을까?


소설이 저 스스로 소설임을 알아보는 소설을 메타소설,이라 한다.

이 책의 '1장'은  저 스스로 '1장'임을 알아본다.


말인즉,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 책의 '1장'은 제 몸을 움직여 말한다.


말하자면, '책'이란 저 자신을 너무나 잘 아는 1장이다.

이 책의 1장이 아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는 마흔살에 자폐스펙트럼 장애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진단을 받고 

평생 자신에 대해 가진 의문을 풀 열쇠를 마련한다.


나와 함께 일하는 일터의 동료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ASD와 ADHD를 동시에 갖고 있다.

저자처럼, 성인이 되어 진단을 받았다.


그는 성실하기 그지없지만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액면가로 이해한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조크'를 던졌다가 황망한 일을 겪기도 했다.


함께 일한 지 일년 여가 지났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비ASD', '비ADHD' 인간.

그는 나를 몹시 신기해한다. 


어떻게 당신은 이 찬란한 형광등 불빛에 눈이 시리지 않느냐고.

어떻게 당신은 이 소란스러운 소음에 귀가 아프지 않느냐고

어떻게 당신은 이 요란한 떠듦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느냐고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을 찾지 못한다.

그냥 그런 거라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서.


그는 그 불빛,  소음, 떠듦을 견디며 일한다.

그는 나보다 몇곱절은 일을 더 잘한다.

그런 그를, 나는 가끔 흐린 눈으로 응시하게 된다.


이 책의 내용에 관한 리뷰는 조금 미룰 생각이다.


이 책의 1장을 보면서('읽다'보다 '보다'가 어울린다)

그를 생각했다.


1장 속에 그가 산다.


이 책의 1장은, '움직이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동적 배치로 그걸 이루어냈다.


갈피마다 들인 푸른 빛은 물.

흰 빛의 제목들은 물거품.

움직이는 텍스트들은 말과 숨.

그리고 생각.


이책의 1장 속에 그가, 들어있다.


왜 그가 말하는 것처럼,

그가 외치는 것처럼,

들렸을까.


우리는 물속에 산다

발달장애로 살아가는 일의 감각적 탐구


나는 자주,

책을 찾으려 제목을 입력하는 검색창에

'글항아리'란 단어를 넣곤 한다.


이리도, 좋은 책을 잘 만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글이 하는 말을 듣고,

그 글이 원하는 옷을 입혀

가장 훤한 얼굴의 책을 만들 줄 아는 것 같아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랬다.


'시처럼'이란 장 제목을 달고 있는 '1장'은 '시처럼'이 아니라 '시'다.


ASD/ADHD 인간이 

물속에서 물로 쓴 물의 시.


(눈)물속에서 (눈)물로 쓴 (눈)물의 시.


(이 책의 '1장'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전체가 '시'가 아니라.

아, 번역은 또 얼마나 좋은지.)


나는 내일, 

아무래도 그와 물속에서 만날 것 샅다.


그가 사는 물속으로 나도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이야말로 마침 우리가 살고 있는,

문제투성이의 근사한 삶을 보내는 장소.

(토베 얀손, '아빠 무민 바다에 가다',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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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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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은 익히 들었다.


시와 산책

한정원


왜 미뤘는지는 모르나 사 두고 읽지 못했다.

아마 아꼈던 것이리라. 


이번에 한번도 안 가본 나라로 떠나는 길에 주저없이 가방에 넣은 책.


외양이 일단 이쁘다.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

개인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폰트.

낡은 듯 누런 끼가 있어서 더 편안한 종이.

적당한 행간, 여백

별색처리된 푸른빛


글을 읽기 앞서 두 손안에 책을 보듬어 안는데

비행기가 떴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이 책을 읽었다.

다 읽고 고개를 드니,

식사 나눠주는 시간.


밥을 먹고, 다시 펴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또다른 느낌을 받는다.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한정원 작가는 글도 좋지만, 일단, 좋은 사람 같다.

소록도에서 몇년 봉사했다는 대목을 제일 오래 쳐다보게 되었다.


내가 하지 못하고, 내가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일을

주저없이 해내는 사람...사람들.


그런 시인의 글이 어찌 메마를 수 있으랴.


아침이 어두워지고 있다....


이런 말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 같다.


한정원은 그런 사람인 것 같다.

흔한 이야기를 흔치 않은 말로 할 줄 아는 사람.


흔한 이야기.

우리네 삶 이야기.


그의 손끝에 흔치 않게 제련된 내 삶이 걸려있는 것 같아,

이말을 꼭 하고 싶다.


작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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