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기분
박연준 지음 / 현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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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도 과장도 아니다.

나는 내 평생 

가장 감동적으로 

장 짧은 문장을 이 책에서 만났다.


연필은 시인의 목발

부러져도 살아나는,



이책 34p) 

출처는=박연준, [예술은 낳자마자 걸을 수 있는 망아지처럼 태어나는 것 같다], <밤, 비, 뱀>, 현대문학


문장으로서 해 낼 일은 채우는 것이요,

메타포로서 해 낼 일은 떠올리는 것일 테다.


고작

연필, 정도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채워졌고,

떠올렸다.


한 시절, 길거리에 쪼그려 종이를 팔았던 탓에 

평생을 남몰래 절뚝여야했던 아비만  떠올렸던 건 아니다.


이제 그 아비가 팔던 종이에 글쓰며 살아가지만, 

어쩔 수 없이 아비처럼 절뚝이는 나도 떠올렸다.


이제 목발 없이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아비의 침상 곁에서

이 자식은, 부러져도 살아나는 연필을 놀린다.


내 평생 가장 감동적인 문장을 만났으니

난 한동안은 절뚝이지 않을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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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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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간 벤.


그 다음 이야기는, 그 다음해 출간되었다.


국내에는 아직.


Ben, in the World.


벤이 세상으로 나간 그 다음 이야기도 달라!


부인하고 싶겠지만...


우리는, 많은 면에서 벤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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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 아이 없이 살기로 한 딩크 여성 18명의 고민과 관계, 그리고 행복
최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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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는 ‘엄마‘와 어쩌면 무관하다. ‘여성‘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에 관한 책일 수도 있다. ‘여성‘을 ‘생식‘의 방편으로만 보려는 사회의 등뒤에 슬몃, 놓고가는 메모같은. 면전에 대고 꽂는 일성보다 그런 구깃한 종이조각에, 진실이 더 진솔하게 담길 수 있는 법. 좋은 문장은 즐거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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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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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9p)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요 며칠 새, 내가 아침을 시작할 때의 느낌과 같다.

요 며칠 새, 누군가가 아침을 시작할 때의 느낌과도 같을 것이다.


우리는, 적지 않은 경우 이런 느낌으로 아침을 맞지 않는가.


누군가 나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요 며칠 새, 몇 년에 걸쳐 잘 지내던 누군가의 태도가 바뀌었다.

나를 대하는 태도와 말씨와 표정이 사뭇 달라졌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그런 생각도, 물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지난 시간을 가져와 헤집어 봐도 걸리는 게 없다.

전혀 없지는 않으나 지난 시간 속에 그냥 그렇게 다 묻혀버릴 만한 것이었고

그러기에 묻혔고

그렇게 따지자면 그쪽도 헤집어 나올 게 많다 뭐.


그렇다면 누군가 나를 중상모략한 게 맞지 않겠나.


요제프 K와 나의 어느 날, 아침이 같아서 '빙의'는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어허....

그런데 죄목을 모른다.

중상모략당한 죄목을 모른다.


이것도 같다.

같아진 김에, 이제부터 나는 요제프 K다.


나는 체포를 당한다.

그것도 침실에서. 체포하러 온 두 감시인은 내 아침을 뺏어 먹는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침을 뺏어먹은 바로 그 '죄목'으로 두 감시인은 더 높은 감시인에게 매질을 당한다.

둘 중 하나가 내게 애걸한다. 구해주세요.


날 체포할 땐 언제고, 구해달라니.


나는 '뇌물'을 먹여 그들을 구해볼까, 잠깐 생각한다.

그러나 '답'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가 희생을 감수할 생각이었다면 K 자신이 옷을 벗고 감시인들을 대신해 태형리 앞에 나서는 편이 더 간단했을 것이다. (108p)


그 다음 날에도 감시인들이 K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109p)


K(나)는 매 맞는 감시인들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뇌물을 주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방도도 생각하지 못한다.


K와 나는 계속해서, 아주 많이 비슷하다.


엄청나게 뭐가 마음에 걸리는데 뭘 해야 마음에 좀 덜 걸리는지 '방법'을 잘 모르는.


K가 나와 이렇게 비슷하다면, 

필시 나도 지금 '소송' 속에 있는 중인지 모르겠다.

카프카가 말하는 '소송'은 

(당연하겠지만) 단순히 법적 다툼을 말하는 것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중상모략을 당했는데

죄목도 모르고 체포를 당해서

법정에 나가야는데

그러면서 직장(은행)도 다닐 수 있다....


카프카가 말하고 있는 '소송'은 뭘까.

나는 지금 어떤 소송 속에 있는가.


뜬금없이 '모자'가 마음에 걸린다.


소설 속에서 잊을만 하면 모자가 등장한다.

체호프가 총이 등장하면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카프카는 '모자'를 반드시 '발사'할 것이다. 


(예전에 읽었지만 거의 잊고, 재독하며 중반까지 읽은)

아직은 인물들이 모자를 제대로 머리에 쓰지 못한다.


다 읽고 나서, 

모자가 발사된 지점에 당도했을 때 내가 겪고 있는 '소송'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기를.


헤매고 있는 모자를

모쪼록 내 머리에 안착시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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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4 0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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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4 0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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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4 0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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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4 07: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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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4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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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철학사 세트 - 전9권 세계철학사
이토 구니타케 외 엮음, 이신철 옮김 / 비(도서출판b)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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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안에 구매하고야 말리라. 일본인 철학과 교수들의 협작. 이책과 ‘홀로‘ 위업을 이뤄내신 이정우님의 같은 제목의 역작을 나란히 놓고 독파할 작정이다. 옮긴이가 철학통이라 더 신뢰가 가는데, ‘일본어‘에 관한 이력이 보이지 않아서...이런 걱정을 출판사에서 좀 달래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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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oks 2023-05-2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옮긴이 이신철 교수의 일본어 이력으로 <현대철학사전>(전 5권 세트)만 참조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이신철 교수의 영어, 독어, 일어, 라틴어 등등 두루 능통하며, 그 이력을 증명했다고 생각됩니다.(도서출판 b)

젤소민아 2023-05-24 00:26   좋아요 1 | URL
‘도서출판b‘의 출간히스토리를 살펴보니 철학인문교양서 전문 출판사 같습니다. ‘세계철학사‘나 ‘철학대사전‘같은 콘셉트로 국내저작도 활발히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철학‘이란 주제를 심도있게 다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계철학사 세트도 그렇고 언급하신 ‘현대철학 사전‘도 그렇고...기획/편집/번역에만도 수년 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들인 품이 ‘시간‘만은 아니겠죠. 설명을 대하니 좋은 내용, 좋은 번역 기대됩니다. 좋은 책인만큼, 세트인만큼 가격 부담이 있어..ㅎㅎ 두 달안에 구매계획입니다. 읽고 나서 더 자세한 리뷰를 쓰겠지만, 출판사와 역자분의 노고에 미리 감사 올립니다. 댓글로 설명도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