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바라기별 - 황석영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2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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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모두가 신사의 직업을 우리들 앞에 미끼로 내세우지만 빵 굽는 사람이나 요리사가 되는 길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독 짓는 이는, 목수는, 정원사는, 또는 아무 일도 택하지 않는 것은. 피아노 배우기에서 여러 단계의 기계적인 손동작을 강조하는 교본들 대신에 예를 들면 처음부터 직접 '등대지기'라든가 슈베르트의 '연가곡' 같은 노래를 연습하면 안 되는 것인지. 굳어져 버린 코 큰 외국이느이 석고상을 그리기보다는 학급 친구나 아우의 얼굴 또는 늙으신 고향의 할머니를 그리면 안 되는 것인지. 이것들은 제도 안의 최소한의 변화인데도 허용되지 않습니다.(84p)


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걸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즉석에서 기입하게 하거나 집으로 가져가 적어오게 했다. 그 종이는 무언가를 알아보기 위한 게 아니라 알아내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 거짓말도 능숙하게 해내지 못할 나이인지라 어떤 아이들은 '부모 학력'난에 '무학' 또는 '국졸'이라고 적고 있다는 티를 있는대로 냈다. 아이답지 않게 비장해지거나 아이답지 않게 너무 슬퍼지거나. 


그것도 모자라 교사는 '손을 들라'고 시켰다.

집에 자가용 있는 사람, 컬러 TV 있는 사람, 비디오 있는 사람.

집이 자가소유인지 세들어사는 지도 밝혀야했던 학교는,

누군가에겐 지옥이 되고도 남았다.


그게 다 지난 일이라고.

과거일 뿐이라고.


그러기엔 너무 생생했던 그 장면들.

그러기엔 너무 생생한 아이들의 얼굴들.

그리고 그 속에 끼어있었을 나의 얼굴(들).


나도 이 소설의 인물, 유준처럼 학교에 이런 편지를 쓰고 싶다. 

이것이 저의 자퇴 이유입니다.  

(85p)


여전히 나는 가정환경조사서를 당당하게 들이미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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