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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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가장 가까운 근사치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어떤 소설을 읽다가 중단할 때, 끝까지 읽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아쉽지가 않을때, 못내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 싫을때...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다시 맨 앞 장을 뒤적일 때...


독자로서 '나'의 그 모든 행동은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작은 몸짓들이 아니었을까.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도 모르기에, 우리는 소설 사이를, '여행'을 가장한 채 '표류'하는 게 아닐까.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은 '나'가 모르고 있었지만, 정작은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은 기분이 들게 하는 소설집이었다. 


그 중에서도 '노란 육교'.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해 머물렀다. 남들이 던져주는 그 계절의 음식을 먹으며,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모든 망자와 눈을 마주쳐가며, 그들 사이에서 오래 전에 죽어버린 자기 사람을 찾으며 날카롭고 뾰족한 것으로 제 약한 살을 짓눌렀다. 그러다 통증이 둔해질 만큼 고단하여 잠깐 눈을 감을라치면, 얇은 눈꺼풀 안쪽에서는 망자와 함께 길에 관해 나누었던 대화가 서럽게 되살아나 소용돌이쳤다. 결국 지키지 못했던 약속의 언어가 능금 과즙처럼 입술 사이로 쏟아져 나오고, 노란 육교를 흥건히 적시며 계단을 타고 내려와 조금씩, 조금씩 망자들의 길로 흘러갔다. 그럴 때면 자책과 피로로 온통 혼미해져, 저기 저 흰 흙길이야말로 영원히 다다를 수 없을 만큼 멀리 있기 때문이라고 슬프게 변명하곤 했다


이 문장을 읽는데 다양한 감각이 올라온다.

아프고, 따갑고, 서늘하고, 아쉽고, 슬프고...


분명한 이유를 들어 풀어내긴 힘들다. 

그러나 어떤 배경이나 정황의 개입없이 

순전한 텍스트만으로 전해지는 감정이 있었다. 


서로가 더할 수 없이 알맞게 포용하고 길항하는 단어들...


적절한 빈도의 생동감, 적절한 채도의 색채감으로 단장하고.


'나'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쩌면 '존재'와 관련되는 지도 모르겠다.


망자

자전거

대화

약한 살

약속

언어

육교

계단

흙길


'존재'를 표현함에 이보다 더 적절히 선택된 단어들이 또 있을까?


저자의 의도가 표의가 무엇이었든, 

'나'는 자책과 피로로 망각하고 있던 어떤 '존재'를,

노란 육교 위에서 저 흰 흙길 쪽을 바라보며 

슬프게 변명하는 '나'를 발견하고 

서글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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