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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글이 구린 건 맞춤법 때문이 아니다 - 밋밋한 글을 근사하게 만드는 100가지 글쓰기 방법
개리 프로보스트 지음, 장한라 옮김 / 행복한북클럽 / 2020년 8월
평점 :
이 책을 글쓰기 가이드, 즉 작법서다.
원서는 영어다. 원저자는 미국인,Gary Provost.
편집자, 기자 출신의 소설가다로 'David And Max'란 청소년 소설로 뉴베리상도 받았다.
편집자, 기자 출신답게 그의 작법서에는 'word'란 단어가 키워드로 부각된다.
글쓰기를 다루는 앵글과 렌즈는 저자마다 다르다.
글쓰기를 대하는 철학, 관념, 태도 같은 넓은 앵글을 가진 저자가 있고,
문법, 단어 등에 좁은 렌즈를 들이대는 저자도 있다.
게리 프로보스트는 후자이다.
그가 강조하는 글쓰기의 키워드는 '문법'이다.
정확한 문법을 구사하면 글도 정확해지고 그만큼 읽기 편해진다고 설파한다.
그래서
[내 글이 구린 건 맞춤법 때문이 아니다]란 그의 이 책에는
버젓이
'제8장: 문법오류는 막는법'이라는 섹션이 들어있다.
물론, 문법 외에도 글쓰기에 관한 구체적인 가이드는 병존한다.
그러나 어쨌든, 저자는 '단어'와 '문장구조'같은 '문법적' 정확도를 강조한다.
이 책의 원서는 이렇다.
당신의 글쓰기를 향상시켜 줄 100가지 방법
그리고 그 '방법' 중에 '문법'이 아주 중요하다는 강론이다.
그런데 한글 번역본 제목이,
'내 글이 구린 건 맞춤법 때문이 아니다'라니.
'맞춤법'은 글쓰기에서 당연히 궁극의 기본으로 지켜져야 하는 근간이요,
이 책의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문법'의 중추이다.
맞춤법없이 어떤 문법이 완성될 수 있나 말이다.
물론, '맞춤법' 하나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글쓰기의 다양한 각도를 폭넓게
아울러야 한다는 의도인 줄은 안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저자가 보는 방향과 거스르는 제목일 필요가 있을까?
출판사는 이 책의 기획단계에서 이걸 고민했어야 한다.
언어 스펙트럼에서 양극단을 점하고 있을 게 분명한 영어와 한국어란 언어의 글쓰기를 다룰 때,
적어도 원저자가 초점을 맞춘 지점이 어디인지.
영어와 한국어의 극명한 차이를 둥글고 원만하게 품고 갈 수 있는 '지점'이라면,
영어 원문을 굳히 보여줄 필요까진 없다.
이를테면, 글쓰기 철학이라든가, 태도라든가, 자세라든가...라면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문장을 짧게 써라, 정확한 단어를 써라, 평행구조의 표현을 써라, 유의어를 잘 써라 등,
꾸준히 '단어'와 '문법'을 짚고 있다. 글쓰기를 말하면서, 편집자요 기자였던, 그래서 순수문학보다 글쓰기 가이드책을 더 많이 내고 글쓰기 지도자로 매진한(그가 타계한지 20년이 넘었어도 그의 글쓰기 강연 그룹은 아직 진행중이라 하니) 저자는 '문법'을 강조한다.
제목이 주는 갸우뚱함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고,
이번에는 영어 원문을 드러내주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평행구조에 관한 부분이다.
한글로만 보았을 때, 과연 '평행구조'가 무엇인지, 위 예문을 보고 알 수 있을까?
오랫동안 글을 쓰고 글을 대해온 나는, 경험 덕에 어설프게는 짐작이 간다.
그런데 글쓰기 가이드책을 읽으며 글쓰기에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짐작'만 주어서야 되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평행구조는 영어를 겨냥하고 있다.
한국어는 '낫놓고 기역자도 모를' 저자이니, 한국어의 한 조각이라도 염두에 두었을 리 없다.
영어란 언어의 단어와 구조만이 특질적으로 가질 수 있는 평행구조를 말함이다.
물론, 한국어에도 평행구조가 있다. 어설픈 짐작으로 '적절한 무게감을 균등하게 분배한 대칭적 문장구조'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니, 이 부분에서는 특히, 영어 원문과 원래 단어를 드러냈어야 한다.
그래야 이해가 쉽거나 가능하다.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영어를 봐야 알겠는데...하고 생각된 부분이 한 두곳이 아니다.
대뜸, '이 문장은 일곱 단어로 이루어져있다'라고 한다.
대체 어느 문장을 말하는 것인가?
소제목?
다양한 길이의 문장을 활용하라============> 4단어인데?
노안이면 점으로밖에 안 보일 폰트급수로 찍어놓은,
Vary Sentence Length.
이걸 말하나? 이건 또 3단어인데?
대체 '일곱 단어'는 어디 있는 거야?
아하! '이 문장은 일곱 단어로 이루어져있다', 이거?
그러니까 자기 문장?? 이걸 말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 또한 5단어인데???
단서를 찾기 위해 그 다음 문장을 읽을 수밖에.
[이 문장의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런....
지금, 독자하고 뭐하자는 건가...숨은단어찾기 중?
독자는 고민에 빠진다. 일곱 단어....일곱 단어...
오호라! 혹시? 영어 원문이??
이 문장은 일곱 단어로 이루어져있다=>이걸 거꾸로 영역해 보았다.
This sentence is written with seven words.
원문과 같을 지 모르지만....아무튼지간에 일곱단어, 찾았다!
이런 식이다...휴...
이런 사태가 한 번도 아니고 수차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도 희한한 일이기에. 또 돈 내고 책 산 독자로서, 의문과 억울함이 동시에 들어서.
누구보다 이 문제를 선두에서 포착했을 번역자에게 묻고 싶다.
최종 교정을 보지 않았느냐고. 영어원문 병기의 필요성을 제안하지 않았느냐고.
출판사 편집자에 묻고 싶다.
번역본을 보지 않고도 책의 '민낯'을 제일 먼저,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사람으로서
본인은 '일곱 단어'를 찾았냐고.
찾았다면, 왜 독자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냐고.
책은, 친절한 그림이나 화려한 색채, 필요없다.
오롯이 활자면 된다. 책은, 정말 그거면 된다.
그런데 책이 활자로만 충분할 수 있는 이유는 책을 펴는 순간, 책은 그 많은 것의 절반이 독자에게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독자의 상상력 같은. 독자는 상상력을 발휘해 활자로만 표현된 '이야기'들에 경악하고, 울고, 분노한다. 그리 해주는 게 독자다.
따라서 책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는 이들은 독자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가급적 독자가 쓸데없는 무언가까지 상상해야하는 수고를 덜어줘야 한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편집자'다. 에디터다.
오죽하면 에디터는 잘못 활자화된 오타를 집어내고, 오죽하면 에디터는 잘 안 읽히는 번역을 바로 잡아주기도 해야 한다.
친절하고 꼼꼼하고 능력있는 편집자 덕분에 독자는 오롯이 활자만으로 책을 만나고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그래서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읽어 주는 것이다.
이 책은, 독자를 수고스럽게 한다. 그것도 매우.
영어원문이 필요한 경우에 그걸 넣어주는 건 수고랄 수도 없다.
그건 편집자로서 '기본'이요, '필수'인 행위다.
'너무 영어식'이라는 느낌은 들긴 했는지, 한글 문법에 관한 'tip'을 몇 가지 섹션 말미에 추가하긴 했는데, 어떨 때는 큰 따옴표, 어떨 때는 작은 따옴표...하는 식으로,
초등학교 국어 학습서의 '여기서 잠깐' 코너를 보는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온다.
큰 따옴표는 대화체에 쓰고, 짧게만 쓰지 말고 길게도 좀 써보고, 남의 글을 필사도 해보고, 다 썼으면 소리내 읽어도 보고...
이런 내용이라면 '글을 쓰는 사람들'이 독자가 아니라 '글을 써 본 적없는데 이제부터 글을 쓰려는 사람'이 타겟 오디언스다. 아닌가?
그렇다면 제목은 다시 한 번, 틀렸다.
[내 글이 구린 건 맞춤법 때문이 아니다]
'내 글'이란 걸 쓰거나 가진 사람이란 뉘앙스니, 이미 글을 쓰는 사람을 말한다.
이 책은 결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글쓰기 지망생들을 위한 가장 기본의 책]이다.
아직 '맞춤법' 같은 문법적 토대마저 견고히 굳어지지 않은 글쓰기 입문자, 말이다.
내 글이 구린 건 아직 맞춤법 때문이다....라고 고백하고 싶은 사람들 말이다.
그 어떤 독자보다 '성실한' 편집의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 말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긋난 것 같은 아쉬움이
번역 단계에서 불거졌고
편집 단계에서 헤매는 느낌.
그 결과물을 받아든 독자는, (가뜩이나 막막한 글쓰기의 미로에서) 길을 잃었다.
*별 하나도 아깝지만, 알라딘 알고리즘이 '최소한 별 하나'를 강요하기에
별 하나 했다가, 평생 글쓰기 지도에 천착해 온 원저자의 노고에 감사하며,
안타까운 그의 죽음에 별을 달아드린다.
이 책에주는 별은 그래서, 하나도 없고,
알라딘에 한 개, 저자에게 큰 별 한 개.
* * * * *
첨언하자면, 이 책은 전작이 있다.
2008년도, 그러니까 10여년 전에 이미 같은 원서로 나왔던 책이다.
출판사가 바뀌어서 '개정판'이라는 안내문이 없다.
저작권이 소멸되거나 변경되어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면서
그런 안내문도 소멸되어 버린 폐해는 고스란히, 독자의 몫이다.
10여 년 전에 이미 나왔던 책과
2020년도에 처음 나온 책이 주는 체감 온도는 많이 다르다.
일일이 뒤져보고 따져보지 않았던 독자의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개정판'이란 안내문은 없어도 뭔가 언질을 주는 것을 '배려'라 한다.
그것도 큰 배려다.
몰라서 사는 것과 알고도 사는 것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므로.
툴툴거리며, 책덮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