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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생각을 시작하는가 - 이응준 작가수첩
이응준 지음 / 파람북 / 2019년 7월
평점 :
작법서인가, 했다.
저자가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이라 다각적인 작법의 '비법'을 전수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비법은커녕, 작법도 없다. 부제에 떡하니 있듯, '문학수첩'이다. 그냥 메모다. 설핏, 속은 기분을 누르지 못하며 읽어 나갔다. 그러다 또 설핏, 묘한 기분. 남의 수첩에 적힌 '메모'보고 이리 울컥한 적이 있던가?
소설가로서 나의 신념은 이것이다.
인간은 전체가 아니라 개별적 인간이며
개별적 인간이 되어야 인간이다.
나는 그러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그를 대신하여 그가 못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다가 죽을 것이다.
이것이 내 소설가로서의 자유이자, 인간으로서의 자유이다.
아, 깜짝이야. 뭔가 그래야 하는데, 하면서도 이 핍진한 표현력으로 내색 못했던 그거, 그거! 핍진하지 않은 저자가 표현해주었다. 그렇다. 소설가는 이래야 한다. 정녕 이래야 한다. 개별적인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그를 대신하여 그가 못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다가 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만나는 사람이고, 들어주는 사람이고, 받아적는 사람이고, 받아적은 것을 또 들려주는 사람이다. 아, 또 표현의 핍진함을 느껴져 저자에게 기대고 싶다. 소설가가 어째야 하는 사람인지, 명징하게 털어놔 준 그에게 감사한다.
주제 모르고 마침, 끼적이고 있는 소설이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다. 그를 대신하여 그가 못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주기로 약속하고 저지른 일이다. 막연하던 내 행위가 단어를 얻고, 문장을 얻어 무언가로 불리어지니 '꽃'이 되는 느낌.
감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흠. 아닌 줄 알았는데, 작법서,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