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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할인행사
앤드류 도미닉 감독, 브래드 피트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5월
9,900원 → 4,800원(52%할인) / 마일리지 5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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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단편 영화 콜렉션 (10disc) [알라딘 단독 특가]
찰리 채플린 감독 / 기타 (DVD) / 2010년 3월
99,000원 → 9,800원(90%할인) / 마일리지 10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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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상업영화 형식, 할리우드의 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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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 [할인행사]
존 포드 감독, 리 마빈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3년 5월
16,500원 → 14,85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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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숙자 / 말없는사나이 [알라딘 특가]
존 포드 외 감독, 모린 오하라 외 출연 / 에이치디디브이디 / 2008년 5월
9,900원 → 2,900원(71%할인) / 마일리지 3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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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의 결투- [초특가판]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
존 포드 감독, 헨리 폰다 외 출연 / 씨네코리아 / 2003년 9월
9,900원 → 2,900원(71%할인) / 마일리지 3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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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인의 수색자- [초특가판]
존 포드 감독, 존 웨인 출연 / 에이치디디브이디 / 2008년 4월
4,900원 → 3,900원(20%할인) / 마일리지 40원(1%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1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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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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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순자 지음, 김학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3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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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중용
이세동 지음 / 을유문화사 / 2007년 1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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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지음, 주경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6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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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진보 후집- 제2판
황견 엮음, 이장우.우재호.박세욱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2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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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아도르노, 제임슨, 하버마스, 데리다, 지젝, 아감벤, 바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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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의 시학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 문예출판사 / 1992년 4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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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
윤해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10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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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비극론
테리 이글턴 지음, 이현석 옮김 / 경성대학교출판부 / 2006년 11월
28,000원 → 28,000원(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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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예 지젝
사라 케이 지음, 정현숙 옮김 / 경성대학교출판부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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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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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택은 이렇게 주장한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러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극복하고,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야 한다고.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내지 소개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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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택은 주장한다. 

  그러니까, 그는 항상 명료하게 주장하고, 명료하게 맞서 싸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라는 표현에서도 그의 명료함은 드러난다.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이런!) 그의 단점이다. 단정짓기. 레토릭의 문제라고나 할까. 그는 언제나 명료하게 문제를 짚고, 문제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그리고 항상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그런데, 

  바로 그 적극적인 개입이 문제다. 적극적 개입의 내용을 잘 들여다 면, 결국은 당위의 문제로 귀결된다. 문제를 짚고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은 손택의 몫이다. 그런데, 손택의 문체로, 글의 말미에서는 명시적으로 과제를 부과하고 있기도 한 바로 그 문체로 말미암, 우리는 손택의 작업 이상의 것까지(즉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뭔가 현실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를 떠맡아야 한다. 손택이 수사를 동원하여 명시적으로 표현한 그 과제는 그가 그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순간 그를 떠나버린다. 명시적으로 표현한 바로 행위로 인해 그는 뭔가 의미 있는 행위를 한 셈이 된다. 그가 지금까지 그만큼 힘들게 수고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가만 있을 수 없다. 게다가 손택이 과제가 무엇이다, 라고 가르쳐 주고 까지 있는데 말이다. 그가 명시적으로 표현한 순간, 그의 손을 떠난 그 과제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 된다. 

  물론, 손택이 행동을 촉구하는 상대는 '우리'가 아니라 '미국 정부', 혹은 '보수파'일 수도 있다(아마 그렇게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과연 손택의 책을 읽기라도 하느냐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손택의 레토릭, 즉 '명료하게 발언하기'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는 분명 어떤 근본적인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그 문제점이 어떤 것인지는 이미 앞에서 언급하였으나, 보다 자세한 메커니즘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 일단, 손택의 책이 널리 읽히는 점에 착안, 그 독자층을 둘로 구분지어 생각해 보도록 하자. '진보적 지식인'과 '잘사는 보수파'로.

  진보적 지식인은 손택의 책을 읽고 나서 어떤 생각을 할까? 일단 택의 논지에 '공감'한다. 혹은,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메커니즘 손택이 파악하고 '명료하게' 지적한 데 대해 '탄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탄복은 곧 미처 깨닫지 못한 것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하는, 깨달음은 손택의 '명료한' 결론("바로 이것이야말로...")에 힘입, 실제적 행동에 대한 요청이 된다. 진보적 지식인은 현실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며,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사람이다. 그러므로 손택의 결론은 그에게 일종의 의무로 다가온다. 뭔가 실제적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무. 그러나 개인적 깨달음에서 기인한 실제적 행동이란 과연 어떤 형태일까? 또한, 그게 얼마나 유효할까? 게다가 그 개인이 지식인이라면, 깨달음과 더불어 오는 '실제적 행동의 요청'에 대한 응답은 결국 기껏해야(기껏이란 표현에 양해를!) 또 다른 저술 활동의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실제적인 어떤 행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치더라도 그 실제적인 행동의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기에(책에 나와있지 않기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손택의 책을 읽음으로써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연민'을 수단으로 위험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관한, 그 상세한 메커니즘뿐이다. 진보적 지식인인 독자는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 행동을 촉구하는 명료한 어투는 있되, 그 행동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전혀 밝혀져 있지 않는 책이라는 사실에 안도할는지도 모른다(그것들이 밝혀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나 할까?). 그렇다면, 결국 '인식 차원에서의 변화 내지는 심화'라는 결과만이 독서 행위가 남긴 유일한 실제적 성과이며 유일한 실제적 행동일 따름이다.

 
  이번엔, 부유하고 어느 정도의 교양을 갖춘 보수파가 손택의 글을 '다 이해하며' 읽었다고 해보자. 보수파는 애초에 실제적 행동을 하려는 의도가 없다. 대개 보수파는 현실에 만족한다. 그러나 손택의 글을 이해하고 손택이 논지에 최소한의 공감을 지닐만한 교양 수준은 갖추었다. 그래 내친 김에 공감에 이어지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치자. 그리고 예의, 명료한 어조로 표현된 '실제적 행동의 요청' 부분에 이른다. 

  이부분이 핵심이다. 편의상 진보적 지식인과 부유한 보수파로 독자층을 구분지었지만,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다. 독서 행위는 기본적으로 대리 만족적인 행위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명료하게 말하기'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가 지니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점과 얽혀 있다. 

  '실제적 행동'이 마치 당위인 것처럼 서술함으로써 행동을 촉구하는 것은 아무런 실제적 행동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누군가(주로, 진보적 지식인)에게는 행동에 대한 부담을 지니게 하는 결과만을 가져다 줄 뿐이며, 그래서 기껏해야 '또 다른 저술 행위'(바로 이를 통해 행동에 대한 부담 역시 제거된다)로 이어지는, 일종의 '악순환'의 고리를 생성할 뿐이다. 현상을 둘러싼 '말'만이 무성해진다. 말을 함으로써 (가져 마땅한) 부담은 제거된다. 물론 인식의 변화와 심화라는 제한적인 성취는 남는다 하더라도.

  누군가(주로, 보수파)에게 손택의 책은 문자 그대로 대리 만족이 될 뿐이다. 그것은 그가 그 스스로의 지위와 (보수적) 가치관을 감안한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말을 손택이 대신 명료하고 속 시원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공공연히 손택의 고정 독자임을 자랑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실제적인 변화는 없다. 단지 그의 큰 책장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는 것만이 언급할만한 유일한 실제적 변화다. 

  양식 있음의 표지로 손택의 책은 종종 애용되곤 한다. 손택이 그의 책 속에서 가장 경계했던 일이 그가 쓴 책에 대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의 내용에 대해, 그 책이 전해준 깨달음에 대해, 그 책이 촉구하는 '실제적 행동'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는(진보적 독자이든 보수적 독자이든) 실제적 행동을 끝없이 지연해도 좋은 알리바이를 얻는다. 무언가에 대해 말함으로써 우리는 가져 마땅한 부담을 은근슬쩍 쾌락으로 바꿔버린다. 이때, 우리가 나누는 말은 꼭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고 하는 말이 아니어도 좋다. 책을 다 이해하지 못했거나, 심지어는 책을 거의 읽지 않은 경우에도 말하기는 가능하다. 최소한 책의 날개에 적힌 저자와 책에 대한 소개글 정도만 읽어도, 아니 책을 구매하기만 해도, 책장에 손택 컬렉션을 '눈에 띄게' 일렬로 꽂아 놓기만 해도, -에 대해 말하기는, 즉 부담을 쾌락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가 눈물(혹은, 얼굴 근육의 찡그림)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연민으로 순화하듯(바로 이것이 손택의 지적하는 바 인데), 우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기'를 통해, 타인(손택)의 밀도 높은 고민과 현실에 끊임없이 개입했던 치열한 의지를, 가져 마땅한 '부담'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쾌락'으로 바꾸어 받아들이는 데 쉽게 성공한다. 

  결국 인간은 언어 속에 존재한다. 언어로 성곽을, 난공불락의 성곽을 쌓는다. 언어(발화 행위를 통한)가 벽돌이라면 레토릭은 성곽을 단단하게 만드는 모르타르 같은 것. 

  물론 성곽의 두께와 높이, 견고함에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매우 낮고 약한 성곽도 있다. 그러나 성곽을 높고 견고하게 만들고자 하는 지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다. 그 지향을,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이기심이다. 주체를 확고하게 세우고자 하는 이기심. 그런데 그 이기심은 목표(주체를 확고하게 세우고자 하는)가 뚜렷한 데에 비해 직접 발설되지 않는다. 이기심은 언어를 통해 머나먼 우회로를 돈다. 

  얼마나 멀리 우회하느냐가 중요하다. 비교적 직접적으로 발설되는 이기심은 이기심으로 인식된다.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나 비난이 대상이 될지언정, 그것은 최소한 솔직하고 순수하다. 머나먼 우회로를 도는 이기심, 이것이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의 방식일 터, 그것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는 커녕,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결국은 궁극적인 목표 달성을 위해 머나먼 우회로를 돌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종착지는 정해져 있다(벤야민처럼, 우회로를 돌다 아예 삼천포로 빠져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 드물다). 모든 길은 '주체'로 통한다. 잘 씌어진 글, 논리적으로 구성이 완벽한 글, 이념적으로도 윤리적인, 균형이 잡힌 글을 보면 나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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