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라고 하면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비전공자가 다양한 방법의 깊이 읽기를 시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이기도 하죠. 

 

널리 알려진 작가라고 해도 '깊이 읽기'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제가 좋아하는 작가로 존 쿳시라는 작가가 있는데요, 2003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덕분에 거의 모든 작품이 번역 출간 되어 있긴 합니다만, 역자의 '작품 해설'을 읽는 것 이외의 깊이 읽기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은 쿳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가 이렇죠. 번역된 작품의 본문을 읽고, 본문 뒤에 짤막하게 덧붙여진 역자 해설을 읽으면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각별히 좋아하는 작가라면, 해당 언어를 배워서 해당 언어로 발표된 관련 논문이나 에세이 등을 직접 찾아 읽어봐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비전공자가 이런 과정을 하나 하나 밟아나가기엔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 들어선 간혹, "중요한 작가론(또는 작가가 연루된 논쟁)으론 이러이러한 게 있고, 어디어디에 접속하면 볼 수 있다"라고 전문적 수준의 가이드를 해주는 역자 해설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음...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갤 끄덕 끄덕 하며 밑줄을 그어놓거나 따로 수첩에 메모를 해두기만 하지만, 직접 찾아보는 경우는... 솔직히 말해, 아주 드뭅니다. 이건 뭐 게을러서가 아니라, 책의 형태가 아닌 디지털 정보 형태라는 데 위화감이 들어... 그런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어찌 됐건, 나쓰메 소세키는 비교적 다양한 관련 책들이 국내 출간 되어 있기에 다양한 방법의 깊이 읽기가 가능합니다.

 

다양한 책들 가운데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은 <[도련님]의 시대>(세미콜론, 2012)입니다.

 

 

 

 

 

 

 

 

 

 

 

 

 

 

 

 

만화이지만 웬만한 해설서나 평전 못지 않게 내용이 충실고 잘 만들어진, '빼어난' 책입니다. 다음과 같은 선전 문구가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

 

문인,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디테일하게 펼쳐지는 메이지 시대의 풍경은 수십 권의 인문서를 읽는 것보다 명징하게 이해된다. 편집자로서 다니구치 지로의 집요한 그림이 빛을 발하는 이 걸작을 소개하는 기쁨이 크다.

 

<[도련님]의 시대>는, 제목처럼 두 번째 소설인 <도련님>을 쓸 무렵의 소세키의 모습을 주로 그리고 있지만, 만화의 내용은 소세키 개인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메이지 말기'의 시대상까지를 아우릅니다. 해서, '메이지 말기'의 일본의 시대상과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기도 합니다.

 

<[도련님]의 시대>는 다섯 권이 시리즈인데, 현재로선 시리즈 1권인 <[도련님]의 시대>만 번역되어 있습니다. 지인을 통해 들은 소식에 따르면 지금 2권, 3권이 번역 작업 중이고, 조만간 출간된다고 하는데요, 기대가 큽니다.

 

시리즈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입장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역시, 모리 오가이 편인 2권입니다. 소세키는 시리즈 마지막 권에서 한 번 더 다뤄지고 있네요.

 

 

1권 『도련님』의 시대(나쓰메 소세키 편)
2권 가을의 무희(모리 오가이 편)
3권 저 푸른 하늘에(이시카와 타쿠보쿠 편)
4권 메이지 유성우(코우토쿠 슈스이 편)
5권 거북 소세키(나쓰메 소세키 편)

 

한편, <[도련님]의 시대>에는 주인공 격인 소세키 말고도 일본 메이지 말년의 여러 문인들이 등장합니다. 모리 오가이히구치 이치요, 시마자키 도손, 구니기타 돗포 등이 그들입니다. (그 외에도 후타바테이 시메이, 다야마 가타이, 나가이 가후, 이즈미 교카 등 많은 작가들이 언급됩니다.) 해서, 이 책을 가이드 삼아 메이지 시대 일본 문학 작품 리딩 리스트를 구성해 놓고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것도 좋을 듯.

 

 

모리 오가이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의 '쌍벽'으로 일컬어지는 작가입니다. 국내에는 소개가 거의 안 됐지만 '아쿠타가와 상'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선생님이라 불렀고, (5살 연하인) 소세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 모리 오가이란 사람은 일급 작가이기도 하지만, 일급 연구자이기도 하고 평론가이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세속적 관점으로도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이고 독일 유학을 다녀와 군의관이 되었는데, 군의관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군의총감의 지위까지 올랐습니다. 뭐 소세키도 모리 오가이와 마찬가지로 도쿄대 출신이고 영국 유학을 다녀와 도쿄대 교수로 임명되는 '초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만, 신경쇠약으로 인해 교수를 그만두고 만 것은 대조가 됩니다(영문학을 싫어하는 영문학자 소세키, 강의를 잘 못하는 교수 소세키의 모습은 <[도련님]의 시대>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모리 오가이의 작품은 <아베 일족>(문학동네), <기러기>(문예출판사) 등이 출간되어 있습니다(두 책이 제목은 다르지만 중단편 몇편이 수록된 '소설집'이어서 겹치는 작품도 있습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군의관'이 쓴 소설이라고는 상상이 잘 안 됩니다.

 

 

 

 

 

 

 

 

 

 

 

 

 

 

 

 

히구치 이치요는 일본 화폐 5000엔의 모델로 유명합니다. 여류작가입니다. 불과 스물넷의 나이로 요절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요절했고 남긴 작품 전체가 책 한 권 분량으로 갈무리되는--전집이 한 권인--작가에게는 대개 신비스러움이 덧씌워지거나 아련한 동경 같은 걸 품게 되는 게 일반적입니다(그런 한국 작가로는 이상-김수영-기형도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과 같은 존재가 되었죠). 사후 얼마 안 되어 큰 인기를 얻고, 화폐 모델까지 등극한(?) 이치요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한 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치요의 작품은 <키 재기 外>(을유문화사)가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치요의 작품을 (다른 판본으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리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읽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작가가 드물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도련님]의 시대>에는 나쓰메 소세키와 모리 오가이가 어느 눈 오는 날 히구치 이치요가 생전에 살던 허름한 집 앞에서 우연히 조우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마자키 도손은 천재 시인으로 각광받았고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활약했으나 현실에서는 굉장히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산 작가입니다. <[도련님]의 시대>에는 시마자키 도손이 신작 소설을 발표했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소세키가 탄식을 내뱉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어 어느 문학인 모임에서 도손이 '가족 하나 건사하지 못한' 남자로 면박을 당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시마자키 도손의 대표작은 <파계>(문학동네)인데, 야한 소설은 전혀 아니고 신분 차별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소설을 두고 '후세에 남길 명작'이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구니기타 돗포는 시마자키 도손과 마찬가지로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역시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았죠. 요즘엔 그렇지만, 옛날, 그러니까 식민지 조선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돗포의 애독자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광수가 어떤 대담에서 자기는 소세키와 돗포를 애독한다고 하면서, 소세키보다 돗포를 더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간결한 작품'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는 돗포의 대표 단편들을 모은 선집인 <무사시노 外>(을유문화사)가 출간되어 있습니다.

 

 

 

 

 

 

 

 

 

 

 

 

 

 

 

 

 

- 나쓰메 소세키 소개서/에세이를 읽어보고 싶다면

 

소설 읽기는 지겹다! 하지만 소세키에 대해서는 좀 더 알고 싶다! 라는 분들은 다음의 책들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먼저 비교적 편하게 술술 읽히는 소개서로는 재일한국인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사계절)이 있습니다. 강상중 교수는 국내에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고, <고민하는 힘>은 꽤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강상중은 소세키의 소설 세계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학문 세계를 함께 다루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본격적인 소개서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지만, 소세키 작품을 좀 더 재밌게, '와닿게' 읽을 수 있는 키워드(돈, 청춘, 직업(노동) 등)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소세키로소이다>(이매진)은 고모리 요이치라는 저명한 학자가 쓴 평전입니다. 믿을 만한 저자가 쓴 것이라 저도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안타깝게도 절판 상태입니다.

 

최근 출간된 것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 나쓰메 소세키 다시 읽기>(늘봄)라는 책이 있습니다. 각각 근대와 현대의 일본 '국민 작가'인 소세키와 하루키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하루키 책은 제가 읽어본 게 별로 없고, 또 하루키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마음도 없는 탓에 개인적으로는 그닥 끌리는 책은 아니지만, <도련님>에 대한 논의가 짧게 나마 있어서 그 부분은 일별을 해보려 마음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닥 끌리지가 않아 굳이 구해서 읽어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좀 귀찮다는 생각도 들지만, 일단 마음만은 그렇게 먹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세키의 산문, 강연록 모음집으로 <나의 개인주의>(책세상, 2004)가 있습니다. 제목은 다소 딱딱하지만, 학술적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이고, 실제로 읽어보면 소세키의 소설 만큼이나 재밌습니다. 소세키 특유의 솔직 담백한 어법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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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구매욕을 자극하는 표지 디자인의 세계문학 작품 판본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독자들을 가장 열광케하리라 짐작되는 것은 플로베르의 대표작 <마담 보바리>입니다. 펭귄클래식에서 <보바리 부인>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네요. 포인트가 디자인인 만큼, 펭귄클래식을 비롯, 각 출판사가 펴내고 있는 세계문학 시리즈의 디자인 및 만듦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뭐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건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을 밝히는 글이므로 그 점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그 동안 펭귄클래식은 일명 블랙 펭귄이라하여, 바탕은 검은색에 위쪽 면에 큰 그림이 들어가고 중간에서 약간 아래(3/4 지점)에 흰 띄가 가로지르는 표지 디자인을 고수했었죠. 그런데 이번에 <보바리 부인>을 내면서 펭귄북스의 오리지널 표지 디자인을 채택했습니다.

 

펭귄북스의 오리지널 디자인은 초창기 펭귄의 판매 전략과 관련이 있습니다. 펭귄은 표지 디자인에서 각 책의 성격을 드러내기보다 출판사를 드러내는 데 집중합니다. 수평으로 3분할--3단 그리드--해서 로고, 책 제목, 저자 이름만 넣었는데, 이 단순한 디자인은 당시 많은 책들이 화려한 일러스트와 장식으로 꽉 찬 표지를 내세운 것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이후 수요가 다양해지면서 펭귄의 디자인도 다양해집니다. 한국의 펭귄클래식이 채택한 디자인인 '펭귄 블랙 클래식'은 '고전(classic)' 작품들에 적용되는 디자인입니다. 이 '블랙 펭귄'은 책장에 꽂아두었을 때도 남다른 맛이 있습니다. 반면 민음사나 문학동네, 그리고 창비는 작품마다 다른 색깔을 입혔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떤 걸 더 선호하는지는 독자마다 다를 듯합니다.

 

한국에서 '블랙 펭귄'의 예외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입니다. (보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번역되는 제목인데, '시간'을 '시절'로 바꿨습니다.)

 

 

 

 

 

 

 

 

 

 

 

 

 

 

 

 

 

그 이전에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 파티>의 경우에는 '블랙 펭귄' 디자인 말고도 따로 양장본 표지 디자인을 선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같은 작품을 다른 디자인과 제책으로 선보이는 것은 한국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고, 펭귄 UK나 펭귄 USA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펭귄북스의 디자인적 측면(표지 디자인, 로고, 제책 등)에 대해서는 <매거진 B>10호에서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잡지 자체가 디자인, 만듦새의 측면에서 꽤 훌륭한 잡지이기도 합니다. 디자인, 기능, 가격의 측면에서 '균형잡힌(balanced) 브랜드(brand)'를 매월 하나씩 다루는 월간지입니다.  

 

 

 

 

 

 

 

 

 

 

 

 

 

 

 

 

<매거진 B>가 소개하는 펭귄북스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5년 영국에서 시작한 펭귄은 가격을 낮추고 휴대성을 높인 문고판 발행, 시대적 요구를 놓치지 않는 기획, 그리고 북디자인을 통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확립 등 현대 출판사가 가야 할 길을 줄곧 제시해왔습니다. 펭귄은 값싼 책을 만들더라도 최고의 작가를 섭외하며 결코 내용까지 가벼운 책이 되지 않도록 노력 했습니다. 이는 '책은 읽는 것'이라는 단순한 신념을 지닌 창업자 앨런 레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펭귄하면 유명한 오리지날 디자인, 펭귄 로고와 수평 3단 그리드 표지디자인이 떠오릅니다. 책 표지 자체로 하나의 아이콘이 된 경우라 하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가벼운 페이퍼백, 문고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페이퍼백이 대중화되는 데 큰 역할을 한 출판사가 펭귄입니다. 20세기 들어서 독서 인구가 늘고 또 여행 인구가 늘면서, '부담 없이 싼 가격에 구입해서 들고 다니며 읽기 좋은 책', 즉 접근성과 휴대성이 높은 책에 대한 수요가 생겼는데 그러한 흐름에 영리하게 편승했다 하겠습니다.

 

(* 펭귄하면 또 떠오르는 건 <채털리 부인의 연인>입니다. D. H. 로렌스의 이 작품은 로렌스의 모국인 영국에서 '외설물'로 간주되어 오랫동안 출판 금지였는데(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출간), 로렌스 사후 30년을 맞아 펭귄출판사에서 20만부를 찍습니다. 이에 검찰이 출판사를 기소하고 법정 공방 끝에 출판사가 승소합니다. 그리고 찍어 낸 20만부는 하루 만에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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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세계문학은 페이퍼백보다는 ('고전'으로서의 그 위상에 걸맞게) 장중한 하드커버가 제맛이라고 여기는 독자들도 상당수 있을 듯합니다. 8-90년대에 나온 세계문학 전집들은 하드커버인 경우가 많았죠. 책 외판원이 각 가정을 돌아다니며 세일즈(방문판매)를 하던 시절이었죠. 웬만한 집 책장에는 계몽사나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 전집이 꽂혀 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세계문학 전집은 인터넷 주문이나 홈쇼핑(!)을 통해 판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페이퍼백(혹은 반양장)이네요.

 

세계문학 전집을 일관되게 하드커버로 내고 있는 출판사는 을유문화사와 열린책들 정도가 있습니다. 문학동네에서는 모든 작품을 양장과 반양장, 두 가지 종류로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장과 반양장의 차이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양장과 문고본, 이렇게 두 종류로 내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을유문화사 세계문학 전집은 만듦새가 꽤 좋은 편입니다. 표지 디자인도 괜찮고, 본문 편집에도 일관성이 있습니다. 분량이 많은 책도 웬만해선 분책을 하지 않고 한 권으로 낸다는 것도 이 출판사의 특징입니다. 들고 다니기 무겁다는 단점이 있으나 1권만 갖고 다니면서 책을 다 읽어버린 경우, 2권을 읽다가 앞의 내용을 확인할 일이 생기는 경우에는 유용하다 하겠습니다.

 

 

 

 

 

 

 

 

 

 

 

 

 

 

 

 

 

 

 

 

 

 

 

 

 

 

 

 

 

 

 

다만 각주가 아니라 미주를 달고 있고, 이 미주가 일련번호로 표기되지 않고 별 갯수로 표기되어 있어서 다소 불편한 면이 있습니다. 뭔가 있을 것 같아 애써 찾아봤는데 별 내용이 없으면 독서 흐름이 끊기고 맥이 빠진달까요.

 

각주와 미주, 이것도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텐데요, 저는 각주를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빨리 눈만 움직여 확인을 할 수 있으니까요. 미주를 선호하는 분들은, 각주가 독서의 흐름에 방해가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특히 저자가 달아놓은 '원주'가 아니라 역자가 달아둔 '역주'의 경우에는, 뭐랄까요 '원문'에 일종의 '이물질'이 '끼어든' 것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시대적, 장소적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돕거나 어떤 단어나 표현의 숨겨진 뜻, 그러한 표현을 쓴 저자의 의도를 알려주는 '역주'가 고맙게 여겨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무조건 배척할 수만은 없을 듯.  

 

열린책들 W 세계문학 시리즈는 싼 가격, 그리고 나름 신경을 많이 쓴 티가 역력한--열린책들 디자인팀의 노동강도가 짐작되는-- 표지 디자인이 인상적입니다. 하드커버이고 판형은 을유문화사 판형과 비슷합니다(어째서 하드커버들이 반양장본보다 더 판형이 작은 건지는 모를 일이네요). 한 가지 불만은 본문에 여백이 별로 없고 줄간격도 좁아 너무 빽빽해서 가독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읽었던 줄을 다시 읽고 있는 경우가 많이 발생...). 예전에 열린책들에서 미스터 노(Mr. Know) 시리즈를 낸 적이 있는데, W 세계문학 시리즈는 제책과 디자인 레이아웃만 바꾸고 본문 편집은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듯합니다. 미스터 노 시리즈는 가격이 싸고 가벼워서 부담없이 사서 읽기 좋았죠. (펭귄 북스의 원래 컨셉을 따라한 듯?) 하지만 이제는 모두 절판이 되어 '레어템'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미스터 노 시리즈에 대해서도 불만이 하나 있었는데, 너무 가벼운 데다 판형도 작아서 책상 위에 두고 읽을 경우 책이 쉽게 닫혀버리는 게 불만이었습니다. 독서대에도 잘 고정이 되지 않아 읽을 때 반드시 손으로 잡고 읽어야 했죠... 덧붙여 종이가 다소 두껍고 마찰력이 적어서 (손에 땀이라도 쥐지 않으면)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도 불만이었습니다... (거 참, 불만도 되게 많네요. 하지만 펭귄클래식은 정말 종이가 손에 닿는 느낌부터가 다르다는...)

 

카프카 <소송>의 표지디자인, 판형 등을 출판사별로 비교해봐도 재밌습니다. 카프카 전집은 '솔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이 '솔 판본'은 하드커버에다 판형도 커서 묵직합니다. 그런가 하면 펭귄클래식은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사진을 표지에 집어 넣었습니다... 표지 그림만 놓고 봤을 땐, 을유문화사가 가장 나은 듯하네요. 열린책들은 디자인팀에서 따로 제작한 표지를 썼습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송>과는 어울리지 않아...!). 표지에 사진이나 그림을 넣을 때는 해당 사진과 그림의 작가에게 (저작권이 살아 있는 경우) 저작권료를 따로 지불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비용 절감이 되려나 싶습니다(하지만 디자인팀은 잦은 야근을 하겠죠).

 

 

 

 

 

 

 

 

 

 

 

 

 

 

 

 

 

 

 

 

 

 

 

 

 

 

 

 

 

 

 

 

 

그나저나 <마담 보바리>는 워낙에 김화영 교수의 번역본(민음사)이 '정본'처럼 통용되고 있었는데, 새로운 디자인에 끌려서라도 펭귄클래식 번역본을 선택할 독자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실은 저도 그 중의 한 명이 되었네요.

 

 

 

 

 

 

 

 

 

 

 

 

 

 

 

 

 

 

솔직히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의 표지는 마음에 드는 게 거의 없습니다. 좀 지나치게 세로로 긴 '타워' 판형--마치 아이폰 5를 연상시키는--도 개인적으론 불만입니다. 판형이 세로로 길다보니 책을 펴서 본문을 읽을 때도 위 아래 여백이 지나치게 넓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앞서 언급한 미스터 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책이 잘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도 불만입니다. 책이란 게 내용이 중요하지 외양이 뭐가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번역 퀼리티 만큼이나 신경이 쓰이는 게 책의 만듦새이기도 합니다.

 

표지 디자인, 판형, 여백, 글씨체, 줄간격 등 본문 편집, 종이, 제본 상태, (손에 잡았을 때의 그립감을 결정짓는) 볼륨감, 표지의 질감 등등. 사실 이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가다 그런 책을 만났을 땐 무척 기분이 좋아지기도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하드커버보다는 반양장이나 페이퍼백을 선호하는 편이고, 작은 판형의 문고본도 좋아합니다. 세계문학 문고본으로는 책세상 문고, 문지 스펙트럼 문고가 있습니다. 이런 문고본들은 여행 갈 때나 예비군 훈련 갈 때 아주 유용합니다. 실은 유용하고 말고를 떠나 문고본에 대한 무조건적 애정이랄까 하는 게 있어서 이미 가지고 있는 책이라도 문고본이 있으면 따로 사둡니다.

 

 

 

 

 

 

 

 

 

 

 

 

 

 

 

 

 

 

 

세계문학 시리즈 중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선호하는 것은 펭귄클래식입니다. 심플한 표지 디자인이나 펼쳐놓고 읽기에 적당한 판형도 맘에 들지만, 좀 더 디테일하게는 표지나 본문 종이가 손에 닿을 때의 촉감도 좋습니다. '책이 손에 딱 잡히는' 느낌이 든달까요. 표지나 본문 종이가 너무 매끈거려서(빤딱거린다, 고도 하죠) 손끝에서부터 거부감이 드는 책들도 있거든요. 뭐 너무 민감하게 굴고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의 작품들은 <뿔(웅진)>에서 나왔는데, 펭귄클래식코리아와 같은 계열(웅진씽크빅)이어서 그런지 만듦새가 펭귄클래식과 비슷합니다. 표지만 봐서는 물론 알 수 없지만, 책을 만져보면 비슷한 그 느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앨리스 먼로가 단편 작가여서 생각 났는데, 최근에 현대문학에서 눈길을 끄는 디자인의 세계문학 단편선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표지 디자인도 예쁘지만 '하드보일드 스쿨의 교장' 대실 해밋의 단편선이 들어있다는 점이 또 한 번 눈길을 끕니다. 데미언 러니언은 어디서 들어본 적이 없는 작가라 깜짝 놀라기도. 브로드웨이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기둥 줄거리가 된 단편을 쓴 작가라고 합니다. 출간 예정인 작가로는 모파상, 오 헨리 등 이미 일반에 널리 알려진 단편 작가들도 있지만, H. P. 러브크래프트, 허버트 조지 웰즈 등 이른바 '본격문학'판에서는 소외되었던 작가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단편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역시나 체홉인데요, 최근에 시공사에서 체홉 단편선이 새로 출간되기도 했지만, 현대문학 시리즈로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체홉 단편선도 어느 덧 이렇게나 많은 종이 출간됐네요. 아래의 책들은 수록된 작품들이 저마다 다릅니다. 표제작도 다들 다르죠. 나름 '대표' 단편선으로 기획해서 내놓은 것일 텐데, 각 출판사마다 '대표'가 다릅니다. 해서 체홉의 작품 세계를 일별하려는 독자라면 일일이 목차를 확인해가며 책을 구매하고 또 읽어야 한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체홉 정도의 작가라면 단편 '선집'이 아닌 '전집'이 나올 때도 됐는데 말입니다.

 

 

 

 

 

 

 

 

 

 

 

 

 

 

 

 

 

 

 

 

 

 

 

 

 

 

 

 

 

 

 

 

 

2000년대 후반들어 본격화된 세계문학 출판 붐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여러 출판사들이 세계문학 쪽에 공을 들이고 있는 덕에 디자인과 만듦새 측면에서 훌륭한 책들을 접할 수 있는 건, 일단 독자로서는 큰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고생하는 편집자, 디자이너분들의 입장은 또 따로 들어봐야 할 듯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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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는 전기(평전critical biography) 작가로 무척 유명하죠. 그런데 그 많은 평전들을 그저 무턱대고 써낸 것이 아니라 나름의 체계를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이 점이 다른 평전 작가와 그를 구분하는 점일 것입니다.

가령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는 [세계의 거장들/대가들(Baumeister der Welt)] 시리즈의 세 번째 권에 속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Drei Dichter ihres Lebens : Casanova, Stendhal, Tolstoi> 번역하면 '세 명의 자서전 작가'가 되겠네요. 하지만 국내 번역본에서는 이 제목을 빼고, 대신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츠바이크에 대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굳이 이렇게 제목을 변형시킬 필요가 있었나 싶어요. 하긴 <세 명의 자서전 작가>란 제목 역시 구매욕구를 상승시킬 만한 제목은 아닙니다......

 

 



 

 

 

 

 

 

 

 

 

 

[세계의 거장들] 시리즈의 원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사노바...> [서문] 첫머리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1권 <마신(데몬)과의 싸움(Der Kampf mit dem Damon)> : 횔덜린, 클라이스트, 니체
- 마성적인 힘에 쫓겨(붙들려) 자신과 현실세계를 뛰어넘어 무한의 세계로 들어선 유형

2권 <세 명의 거장들(Drei Meister)> :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 현존하는 현실 곁에 소설이라는 우주를 만들어 제2의 현실을 구축한 유형, 즉 '서사적으로 세계를 재창조한 사람'의 유형

3권 <세 명의 자서전 작가(Drei Dichter ihres Lebens)> :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 (대우주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 보다) 자아의 소우주를 세계 속에 펼쳐나간 유형. '주관주의적 예술가' '자서전'이라는 예술 형식은 어떤 것인가를 탐색.

[세계의 거장들] 시리즈는 <천재, 광기, 열정(1,2)>(세창미디어, 2009)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구성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어요.

1권 : 발자크, 디킨스, 스탕달, 카사노바
2권 :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클라이스트

순서가 뒤죽박죽이고, 횔덜린은 아예 빠져 있습니다. 또 츠바이크는 각 권 첫머리에 [서문]을 써두고 있는데, 이 [서문]들 역시 번역본에서는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츠바이크가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를 한 권의 책에 묶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텐데요. 특히 도스토예프스키가 톨스토이와 묶이지 않고 얼핏 봐도 결이 무척 다른 발자크-디킨스와 함께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구성부터 다른 한국어 번역본을 읽어서는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가 없다는..... 아니 번역본만 접해서는 (원래 츠바이크의 구성을 알 수 없으니) 애초에 "어째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발자크-디킨스와 함께 다뤄진 거지?"하는 궁금증을 가질 수조차 없다는.....

이런 궁금증이야말로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크가 대표하는) 19세기 유럽 문학 전반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어떤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천재, 광기, 열정>의 본문은 (간혹 등장하는 오표기들이 번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무리 없이 읽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어째서 원래 구성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서문]들은 왜 다 빼버렸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수십 편의 츠바이크 평전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을 느낀 것이 이 [세계의 거장들] 시리즈인데, 한국어 번역본은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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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설의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이 황금가지에서 '완전판'으로 곧 나온다고 합니다. 왕년의 아시모프 팬들은 공중제비를 세 바퀴 넘을 소식.

 

저는 이 책을 중학생일 때 탐독... 하려다가 결국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땐 분권이 되어 있어서 총 9권인가 그랬는데, 4권까진가 읽고 접었더랬죠. 지금 돌이켜보자니, <파운데이션> 완독 실패가 본격 과학소설 매니아가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었던 듯. 아시모프의 또 다른 시리즈인 <로봇>은 몇 번씩 반복해가며 읽었는데.

 

<로봇...>에 비해 <파운데이션>은... 뭔가 어려웠어요. 대하소설과 같은 긴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성향이기도 하고. (이건 지금도 그래서 <안나 카레니나>는 읽지만, <레 미제라블>은 읽지 못 한다는...)

 

결국 ('본격'이란 수식어를 붙이기엔 좀 모자란) 베르베르의 <개미>로 갈아탔고, 한참 후에 (역시 '본격'이라기엔 모자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은 게 제 SF 독서경험의 8할이랄까... 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밀 SF 독서력입니다. 하지만 <로봇> 시리즈는 무척 재밌게 읽어서, 고등학생일 때도 읽고, 대학생이 된 이후로도 몇 번 더 읽었어요. 특히 <로봇> 시리즈의 1권부터 4권까지는 '압권'이라 할만치 재밌습니다. (5-6권은 나중에--<파운데이션>을 쓰고난 이후 시점에--써서 그런지 좀 허황된 구석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예전에 두 시리즈를 출간한 '현대정보문화사'라는 출판사는 어떻게 된 거지? 찾아보니 번역자가 같군요. 예전 번역본을 출판사만 옮겨 재출간한 것이네요. 덕분에 표지나 제책은 상당히 좋아진 것 같은데, 어쩌면 그맛에 완독할 수 있을지도...

 

 

 

 

 

 

 

 

 

 

 

 

 

 

 

 

 

 

 

 

 

 

 

 

 

 

 

 

위의 <로봇>은 2001년에 재출간된 판본이고, 제가 중학생일 때 읽은 것은 아래의 판본입니다.

 

아래 판본은 1992년에 출간된 것이라 당연히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만, 표지 이미지가 있네요. 추억 돋게 시리.

 

 

 

 

 

 

 

 

 

 

 

 

 

 

 

 

 

시리즈 물은 일단 분량이 많아 읽는 게 부담이 되긴 합니다만, 이게 내 취향에 딱 들어맞아 재밌을 경우엔 무한한 즐거움과 만족감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특정 작가의 '전작'을 읽을 때도 동일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낄 수가 있죠. 하지만 한국에서 그걸 만끽하기란 참 어려운 일.

 

최근 에밀 졸라와 슈테판 츠바이크에 꽂혔는데 이들의 '전작'을 읽을 날이 과연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밀 졸라는 20권에 달한다는 '루공-마카르 총서'를 썼는데 이게 절반도 채 번역이 안 되어 있고,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가 쓴 평전들이 제법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편집의 일관성이 없습니다. 이건 뭐 에밀 졸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책은 내용도 중요하고, (번역서일 경우) 번역자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출판사-편집자의 역량일 텐데, 여기서 일관성을 기대할 수 없으니 '전집' 또는 '전작'을 읽는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나 '폴 오스터' 전집, '움베르트 에코' 전집, 책세상의 '카뮈' '릴케' 전집, 솔 출판사의 '카프카 전집' 등이 그나마 한 출판사가 한 작가를 '책임진' 경우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전집 발간' 시도는 요즘 들어선 통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출판계의 전반적 불황 때문이기도 하겠고, 출판 정책에 대한 전국민적 무관심, 인터넷 서점의 출판 시장 패권 장악으로 인한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의 일반화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일반 독자 입장에서야 "어쨌든 싸게 좋은 책 읽을 수 있으면 장땡" 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전작' 읽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도 현저히 줄어들겠죠. 독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텐데 여기에 관심 있는 정책입안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게 현실...

 

위기감이 공유되고, 여론이 형성된다면야 정책입안자도 신경을 안 쓸 수 없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안 보이는 듯합니다. 출판이든 독서 문화든 전적으로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고, 잘 나가는 책만 더 잘 나가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현암사에서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만. http://blog.aladin.co.kr/705623165/6595053

 

그리고 민음사에서는 밀란 쿤데라 전집을 냈군요... 쿤데라는 물론 훌륭한 작가지만, 지금껏 워낙에 민음사 작가로 자리매김 된 감이 있어서(+팔리기도 많이 팔려서) '우려먹기'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만. 황금가지도 민음사 계열이니 '우려먹기'는 이 쪽의 종특인 것인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바꿔서 자사 세계문학 전집 목록에 올려놓는 등, 민음사는 글 잘쓰고 잘 팔리는 작가 '우려먹기'에 일가견이 있는 듯. 뭐 좋은 책도 많이 내는 출판사이긴 하지만, 책 가격의 7-80%에 해당하는 신간적립금을 마구 투척하는 등 출판생태계를 교란하는 데도 앞장서는 곳이어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전집 출간 시도가 전무한 건 아닙니다. <파운데이션> '완전판' 출간 소식과 같이 전집 출간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편입니다. 다만 전집 출간이 이뤄지는 경우 대다수가 장르문학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점.

 

최근의 시도 중에서는 필립 K. 딕(폴라북스), 대실 해밋(황금가지) 전집 출간이 인상적이었고, 마쓰모토 세이초(북스피어+모비딕)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황금가지에서 얼마 전에 (드디어!) 전집이 완간되었죠.

 

 

 

 

 

 

 

 

 

 

 

 

 

 

 

 

 

 

 

나오다 중단된 상태이긴 합니다만, 시공사의 '귀족 탐정 피터 윔지 시리즈'도 있네요. 피터 윔지는 '추리소설 황금기'에 활약한 영국 추리 작가 도로시 세이어스의 주인공입니다. 홈스, 포와로, 브라운 신부에 밀려 지명도가 한참 낮습니다만, 앞서 언급된 세 탐정이 지겨운 분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될 듯. 하지만 3권까지 나오다 중단된 상태고, '시공사'에서 이 시리즈를 더 낼 수 있을까는 의문...

 

 

 

 

 

 

 

 

 

 

 

 

 

 

 

 

 

 

 

더불어 '피니스아프리카에'라는 (이름도 어려운) 출판사에서는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를 내고 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게 평범한 경찰들--87분서 소속 경찰들--이란 점에서 본격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경찰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텐데, 저는 얼마 전 <킹의 몸값>을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이 책을 읽고 영화 <천국과 지옥>을 만들었다죠. 구로사와의 필모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저로서는 <킹의 몸값>이란 경찰소설과 구로사와 감독이 잘 연결이 안 돼서 이걸 어떻게 영화화했나 궁금해서 영화도 확인해 봤습니다. 놀랍게도 그냥 모티브만 따온 게 아니라 (전반부는) <킹의 몸값>의 설정과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더라는.

 

구로사와 감독이 영화화까지 할 정도니 좋은 소설, 이라고 하면 '권위에의 호소'라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겠지만, 뭐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읽은 순수한(?) 독자인 제가 재미(+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어떤 의미까지)를 보증합니다...(보증이 안 되려나...;;)

 

 

 

 

 

 

 

 

 

 

 

 

 

 

 

 

 

 

 

이렇게 나름대로 활발하다고 할 수 있는 장르문학 쪽의 전집 출간 상황과는 달리, 순문학 쪽은 요즘 주요 출판사들이 모두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세계문학 전집] 때문에, 한 작가의 '전작' 출간이 오히려 어려워진 상황이 된 듯합니다. 작가의 대표작이 [세계문학 전집] 목록에 1권, 잘하면 2권 출간되는 식이고, 그나마 중복 출판이 많아 독자로서는 번역본 선택에 나름 공을 들여야 하는 상황.

 

장르문학에서만 전집 출간 시도가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장르문학은 (순문학보다는) '재미' 있다"는 고정관념 덕에, 혹은 높은 충성도를 보이고 때로는 전도사를 자처하기도는 '한 줌의 열성팬'들 덕에 손익분기점을 넘길 정도의 판매량은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양자 간의 균형이 좀 맞춰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시장성'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선 안 되지 않을까요? 각 출판사에서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세계문학 전집] 덕에 세계문학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건 사실입니다만, 그와 더불어 한 작가의 '전작'을 내는 시도가 지금보다는 좀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독자 입장에서야 가장 잘 쓴 '대표작' 한 권 읽는 게 경제적이긴 하겠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어떤 작가의 '졸작'과 '태작', '잊혀진 작품', '거의 흑역사에 해당하는 작품'을 읽는 재미는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세계문학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작가일지라도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기 마련인데, 이걸 확인하는 재미와 의미가 쏠쏠하죠. 작가가 어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작만 봐서는 이런 건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도 처음부터 '완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완전판 전집'을 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조망한다는 건, 다른 어떤 (무식한) 인내심 돋는 독서 경험 보다 값진, 이를테면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다 읽는" 삽질스런 독서 경험하고는 비할 수 없는 독서 경험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해당 작가의 전작을 담은 '전집'이 나오지 않는 한, 어떤 계기로든 '전집' 출간 붐이 일지 않는 한, 이런 값진 경험은 언제까지나 전공자들의 전유물로 남을 수밖에 없을 듯.(전공자들이 실제로 '전작'을 읽는지는 논외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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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번역 출간된 로맹 가리의 소설 <레이디 L>을 읽었습니다. 로맹 가리의 소설들은 제각기 다른 매력을 갖고 있는데, <레이디 L>은 그 중에서도 좀 색다르게 읽히는 맛이 있습니다. 그저 소설로 읽어도 무척 재밌는 편입니다만, 19세기말의 정치적 맥락들이 그려져 있고, 문화와 예술에 대한 남다른 취향 또한 중간 중간 언급되고 있어서 얼마간 주의 집중을 요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이 소설에는 아나키스트들이 등장합니다. 아나키스트 = 무정부주의자 = 테러집단,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소설에는 테러집단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긴 합니다만). 아나키스트들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인류애'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이게 다분히 낭만적, 이상주의적 색채를 띄고 있다는 게 한계로 지적되긴 합니다만(소설에서도 그렇죠).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로 꼽히고 있는 인물은 신채호 정도입니다. (김구의 라이벌로 꼽히는) 김원봉 같은 인물도 있지만 일반에 잘 알려지 있진 않죠. 그리고 톨스토이 역시 아나키스트 계보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독서 모임에서 사용한 <레이디 L> 발제문의 일부인데, 참고삼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나키스트란 누구인가? 아나키스트는 대개 ‘무정부주의자’라는 다소 과격한 뉘앙스를 지닌 단어로 번역되며, 때로는 테러리스트와 동의어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런 성격을 띤 아나키스트 분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것은 아나키스트의 한 성격만을 보여줄 뿐이다. 소설 <레이디 L>에서 아르망 드니가 보이는 모습은 과격 테러리스트의 모습이지만, 아르망과 대립되는 것으로 묘사되는 ‘아나키스트 왕자’ 크로포트킨은 “민중은 권력에 쉽게 굴복하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숭배하지는 않는다”며, 민중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보다 온건한 태도를 취했다. 
 

서구 아나키스트의 계보는 윌리엄 고드윈, 푸르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톨스토이로 이어진다. 오늘날 알려진 아나키스트로는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가 있다. 19세기 초중반부터 형성된 아나키즘은 19세기말에서 1920년대까지 활동의 전성기를 맞는다. 이 기간은 전 세계적으로 민족-국가가 본격적으로 성립하던 시기이며, ‘민족-국가’의 이름으로 엄청난 (영토/식민지) 전쟁이 벌어진 시기이자 민족-국가 형성을 위한 여러 신화와 전통을 발명한 시기, 그리고 또 민족-국가의 형태를 둘러싸고 여러 실험들이 벌어진 시기다.

 

18-19세기에는 산업혁명, 도시화로 인해 사람살이의 형태가 점차 근대적인 것으로 변모한다. 봉건 시대 농촌 공동체와는 다른 산업 시대의 도시 공동체가 구성되고 있었던 것. 교통의 발달로 인한 이동의 자유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한 곳에(주로 도시-공장-일자리가 있는 곳) 모여 살게 했다. 자연히,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어울려 살 것인가 하는 공동체 형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또한 정체성의 문제가 대두된다. 한 마을에서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그 마을을 떠나지 않았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던 봉건 사회와는 달리, 근대 사회에서는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의 문제, 즉 ‘자기소개’가 중요해진다.

 

이리하여 19-20세기에는 근대 사회가 직면한 이 두 가지 문제, 즉 공동체 형성과 정체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여러 논의가 있게 된다. 그 중에서도 ‘민족’ 개념을 중심으로 한 ‘국가’라는 공동체가 지배적인 형식으로 대두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이들이 기존의 절대왕권 세력 및 귀족들과 결탁한 산업부르주아들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속적인 팽창과 (소수 정체성의) 흡수를 특징으로 하는 민족-국가 형성의 흐름은 나중에 제국주의로 이어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원인이 된다. 다른 한편 이 주도적인 흐름에 반대하거나 그 문제점을 지적하며 대안을 들고 나온 이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사회주의와 아나키즘 운동을 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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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L>을 읽고 아나키스트에 대해 관심이 생기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읽어볼만한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최근에 번역 출간된 그래픽 노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미지프레임, 2013)입니다. (영웅이 아닌) 어느 한 평범한 아나키스트의 일대기를 담담하게 다룬 책입니다. 아들의 입장에서 아나키스트로 살았던 아버지를 바라보는 책이기도 합니다.

 

 

 

 

 

 

 

 

 

 

 

 

 

 

 

2. 아나키스트 운동의 분수령이 된 사건으로 스페인 내전(1936-39)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1920년대까지 활발했던 아나키스트 운동은 스페인 내전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되죠.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은 아나키즘 세력이 당시 새롭게 발흥한 파시즘과 국가 사회주의, 즉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에 의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가운데 끼어 사멸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여튼, 스페인 내전 하면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을 빼놓을 수 없죠. 스페인 내전이 배경인 둘의 작품은 각각,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리고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입니다.

 

 

 

 

 

 

 

 

 

 

 

 

 

 

 

 

 

헤밍웨이와 친분이 있었던 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유명한 사진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 역시 그 배경이 되는 사건이 스페인 내전입니다. 로버트 카파 전은 세종문화회관에서 10월 말까지 열리니까 한 번 다녀오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헤밍웨이나 조지 오웰의 소설을 한 손에 들고 말이지요. ^^

 

http://www.robertcapa.co.kr/

 

 

 

3. 스페인 내전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으로는 (제목도 외우기 쉬운) <스페인 내전 - 20세기 모든 이념들의 격전장>(교양인, 2009)이 있습니다. 부제가 무척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 이병주가 1980년에 스페인을 돌아보고 쓴 스페인 기행문 <스페인 내전의 비극>(바이북스, 2013)도 최근에 출간되었습니다.

 

 

 

 

 

 

 

 

 

 

 

 

 

 

 

4. 아나키즘에 관한 책으로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오랫동안 아나키즘 관련 논의 및 인물을 소개해온 박홍규와 하승우의 책을 읽어볼만 합니다. 믿을 수 있는 번역가인 김정아가 번역한 <아나키즘, 대안의 상상력>(돌베개, 2004)도 읽어볼만 하지만, 이 책은 품절이군요...

 

 

 

 

 

 

 

 

 

 

 

 

 

 

 

 

5. 학술서적을 읽는 건 엄두가 안 난다고 한다면 다음의 책을 읽어볼만 합니다.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가 쓴 평전 <미하일 바쿠닌>(이매진, 2012)입니다.

 

이 책에서 카는 '영국' 역사학자답게(왜 '영국인'인 게 중요한지는 <레이디 L>을 읽어보시면 짐작이 가실 듯), 러시아의 대표적 아나키스트인 바쿠닌을 집중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바쿠닌과 동시기에 활발히 활동한 또 다른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에 대해서는 옹호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레이디 L>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바쿠닌보다는 크로포트킨이죠. 소설에서 비현실적 낭만주의자로 묘사되면서 풍자의 대상이 되긴 합니다만, 이 사람, 별명이 무려 '아나키스트 왕자'라는.....

 

 

 

 

 

 

 

 

 

 

 

 

 

 

 

 

6. 로맹 가리가 왜 하필 아나키스트를 소재로 소설을 썼는가, 그것이 궁금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많은 작가들이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작가들이라면 아나키즘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발을 담글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더군다나 로맹 가리는 두 번째 부인 진 세버그가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어서(그녀는 일찍부터 FBI의 감시를 받았고, FBI 개입 의혹이 있는 의문사를 당했습니다) 아나키즘을 비롯한 여러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레이디 L>에서는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풍자와 희화화가 확연하지만, 그건 아나키스트들을 비웃는 것이라기 보다 자기 안에 자리하고 있는 아나키스트적 성향, 이상주의적 성향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보입니다.

 

로맹 가리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평전이 있다면 한 번 읽어보고 싶다...' 는 생각을 하신 분도 있을 듯한데, 로맹 가리 평전, 네, 번역 출간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도 두 권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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