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는 전기(평전critical biography) 작가로 무척 유명하죠. 그런데 그 많은 평전들을 그저 무턱대고 써낸 것이 아니라 나름의 체계를 염두에 두고 썼습니다. 이 점이 다른 평전 작가와 그를 구분하는 점일 것입니다.

가령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는 [세계의 거장들/대가들(Baumeister der Welt)] 시리즈의 세 번째 권에 속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Drei Dichter ihres Lebens : Casanova, Stendhal, Tolstoi> 번역하면 '세 명의 자서전 작가'가 되겠네요. 하지만 국내 번역본에서는 이 제목을 빼고, 대신 <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츠바이크에 대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굳이 이렇게 제목을 변형시킬 필요가 있었나 싶어요. 하긴 <세 명의 자서전 작가>란 제목 역시 구매욕구를 상승시킬 만한 제목은 아닙니다......

 

 



 

 

 

 

 

 

 

 

 

 

[세계의 거장들] 시리즈의 원래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카사노바...> [서문] 첫머리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1권 <마신(데몬)과의 싸움(Der Kampf mit dem Damon)> : 횔덜린, 클라이스트, 니체
- 마성적인 힘에 쫓겨(붙들려) 자신과 현실세계를 뛰어넘어 무한의 세계로 들어선 유형

2권 <세 명의 거장들(Drei Meister)> :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
- 현존하는 현실 곁에 소설이라는 우주를 만들어 제2의 현실을 구축한 유형, 즉 '서사적으로 세계를 재창조한 사람'의 유형

3권 <세 명의 자서전 작가(Drei Dichter ihres Lebens)> :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 (대우주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 보다) 자아의 소우주를 세계 속에 펼쳐나간 유형. '주관주의적 예술가' '자서전'이라는 예술 형식은 어떤 것인가를 탐색.

[세계의 거장들] 시리즈는 <천재, 광기, 열정(1,2)>(세창미디어, 2009)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구성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어요.

1권 : 발자크, 디킨스, 스탕달, 카사노바
2권 :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클라이스트

순서가 뒤죽박죽이고, 횔덜린은 아예 빠져 있습니다. 또 츠바이크는 각 권 첫머리에 [서문]을 써두고 있는데, 이 [서문]들 역시 번역본에서는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츠바이크가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키를 한 권의 책에 묶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텐데요. 특히 도스토예프스키가 톨스토이와 묶이지 않고 얼핏 봐도 결이 무척 다른 발자크-디킨스와 함께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구성부터 다른 한국어 번역본을 읽어서는 이런 궁금증을 해소할 수가 없다는..... 아니 번역본만 접해서는 (원래 츠바이크의 구성을 알 수 없으니) 애초에 "어째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발자크-디킨스와 함께 다뤄진 거지?"하는 궁금증을 가질 수조차 없다는.....

이런 궁금증이야말로 (발자크, 디킨스, 도스토예프스크가 대표하는) 19세기 유럽 문학 전반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데 어떤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천재, 광기, 열정>의 본문은 (간혹 등장하는 오표기들이 번역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무리 없이 읽히는 편입니다. 하지만 어째서 원래 구성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서문]들은 왜 다 빼버렸는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수십 편의 츠바이크 평전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을 느낀 것이 이 [세계의 거장들] 시리즈인데, 한국어 번역본은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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