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라고 하면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비전공자가 다양한 방법의 깊이 읽기를 시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이기도 하죠. 

 

널리 알려진 작가라고 해도 '깊이 읽기'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제가 좋아하는 작가로 존 쿳시라는 작가가 있는데요, 2003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덕분에 거의 모든 작품이 번역 출간 되어 있긴 합니다만, 역자의 '작품 해설'을 읽는 것 이외의 깊이 읽기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은 쿳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가 이렇죠. 번역된 작품의 본문을 읽고, 본문 뒤에 짤막하게 덧붙여진 역자 해설을 읽으면 '그것으로 끝'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각별히 좋아하는 작가라면, 해당 언어를 배워서 해당 언어로 발표된 관련 논문이나 에세이 등을 직접 찾아 읽어봐도 될 것입니다. 하지만 비전공자가 이런 과정을 하나 하나 밟아나가기엔 무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 들어선 간혹, "중요한 작가론(또는 작가가 연루된 논쟁)으론 이러이러한 게 있고, 어디어디에 접속하면 볼 수 있다"라고 전문적 수준의 가이드를 해주는 역자 해설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음...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갤 끄덕 끄덕 하며 밑줄을 그어놓거나 따로 수첩에 메모를 해두기만 하지만, 직접 찾아보는 경우는... 솔직히 말해, 아주 드뭅니다. 이건 뭐 게을러서가 아니라, 책의 형태가 아닌 디지털 정보 형태라는 데 위화감이 들어... 그런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어찌 됐건, 나쓰메 소세키는 비교적 다양한 관련 책들이 국내 출간 되어 있기에 다양한 방법의 깊이 읽기가 가능합니다.

 

다양한 책들 가운데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은 <[도련님]의 시대>(세미콜론, 2012)입니다.

 

 

 

 

 

 

 

 

 

 

 

 

 

 

 

 

만화이지만 웬만한 해설서나 평전 못지 않게 내용이 충실고 잘 만들어진, '빼어난' 책입니다. 다음과 같은 선전 문구가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

 

문인, 사상가들을 중심으로 디테일하게 펼쳐지는 메이지 시대의 풍경은 수십 권의 인문서를 읽는 것보다 명징하게 이해된다. 편집자로서 다니구치 지로의 집요한 그림이 빛을 발하는 이 걸작을 소개하는 기쁨이 크다.

 

<[도련님]의 시대>는, 제목처럼 두 번째 소설인 <도련님>을 쓸 무렵의 소세키의 모습을 주로 그리고 있지만, 만화의 내용은 소세키 개인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메이지 말기'의 시대상까지를 아우릅니다. 해서, '메이지 말기'의 일본의 시대상과 분위기를 살펴볼 수 있기도 합니다.

 

<[도련님]의 시대>는 다섯 권이 시리즈인데, 현재로선 시리즈 1권인 <[도련님]의 시대>만 번역되어 있습니다. 지인을 통해 들은 소식에 따르면 지금 2권, 3권이 번역 작업 중이고, 조만간 출간된다고 하는데요, 기대가 큽니다.

 

시리즈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입장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것은 역시, 모리 오가이 편인 2권입니다. 소세키는 시리즈 마지막 권에서 한 번 더 다뤄지고 있네요.

 

 

1권 『도련님』의 시대(나쓰메 소세키 편)
2권 가을의 무희(모리 오가이 편)
3권 저 푸른 하늘에(이시카와 타쿠보쿠 편)
4권 메이지 유성우(코우토쿠 슈스이 편)
5권 거북 소세키(나쓰메 소세키 편)

 

한편, <[도련님]의 시대>에는 주인공 격인 소세키 말고도 일본 메이지 말년의 여러 문인들이 등장합니다. 모리 오가이히구치 이치요, 시마자키 도손, 구니기타 돗포 등이 그들입니다. (그 외에도 후타바테이 시메이, 다야마 가타이, 나가이 가후, 이즈미 교카 등 많은 작가들이 언급됩니다.) 해서, 이 책을 가이드 삼아 메이지 시대 일본 문학 작품 리딩 리스트를 구성해 놓고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것도 좋을 듯.

 

 

모리 오가이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의 '쌍벽'으로 일컬어지는 작가입니다. 국내에는 소개가 거의 안 됐지만 '아쿠타가와 상'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선생님이라 불렀고, (5살 연하인) 소세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이 모리 오가이란 사람은 일급 작가이기도 하지만, 일급 연구자이기도 하고 평론가이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세속적 관점으로도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이고 독일 유학을 다녀와 군의관이 되었는데, 군의관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인 군의총감의 지위까지 올랐습니다. 뭐 소세키도 모리 오가이와 마찬가지로 도쿄대 출신이고 영국 유학을 다녀와 도쿄대 교수로 임명되는 '초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만, 신경쇠약으로 인해 교수를 그만두고 만 것은 대조가 됩니다(영문학을 싫어하는 영문학자 소세키, 강의를 잘 못하는 교수 소세키의 모습은 <[도련님]의 시대>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모리 오가이의 작품은 <아베 일족>(문학동네), <기러기>(문예출판사) 등이 출간되어 있습니다(두 책이 제목은 다르지만 중단편 몇편이 수록된 '소설집'이어서 겹치는 작품도 있습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군의관'이 쓴 소설이라고는 상상이 잘 안 됩니다.

 

 

 

 

 

 

 

 

 

 

 

 

 

 

 

 

히구치 이치요는 일본 화폐 5000엔의 모델로 유명합니다. 여류작가입니다. 불과 스물넷의 나이로 요절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요절했고 남긴 작품 전체가 책 한 권 분량으로 갈무리되는--전집이 한 권인--작가에게는 대개 신비스러움이 덧씌워지거나 아련한 동경 같은 걸 품게 되는 게 일반적입니다(그런 한국 작가로는 이상-김수영-기형도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과 같은 존재가 되었죠). 사후 얼마 안 되어 큰 인기를 얻고, 화폐 모델까지 등극한(?) 이치요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한 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치요의 작품은 <키 재기 外>(을유문화사)가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치요의 작품을 (다른 판본으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리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읽었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작가가 드물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도련님]의 시대>에는 나쓰메 소세키와 모리 오가이가 어느 눈 오는 날 히구치 이치요가 생전에 살던 허름한 집 앞에서 우연히 조우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시마자키 도손은 천재 시인으로 각광받았고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활약했으나 현실에서는 굉장히 가난하고 불행한 삶을 산 작가입니다. <[도련님]의 시대>에는 시마자키 도손이 신작 소설을 발표했다는 신문 광고를 보고 소세키가 탄식을 내뱉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어 어느 문학인 모임에서 도손이 '가족 하나 건사하지 못한' 남자로 면박을 당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시마자키 도손의 대표작은 <파계>(문학동네)인데, 야한 소설은 전혀 아니고 신분 차별의 문제를 다뤘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 소설을 두고 '후세에 남길 명작'이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구니기타 돗포는 시마자키 도손과 마찬가지로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역시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았죠. 요즘엔 그렇지만, 옛날, 그러니까 식민지 조선에서는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돗포의 애독자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광수가 어떤 대담에서 자기는 소세키와 돗포를 애독한다고 하면서, 소세키보다 돗포를 더 높이 평가했다고 합니다. '간결한 작품'을 쓰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는 돗포의 대표 단편들을 모은 선집인 <무사시노 外>(을유문화사)가 출간되어 있습니다.

 

 

 

 

 

 

 

 

 

 

 

 

 

 

 

 

 

- 나쓰메 소세키 소개서/에세이를 읽어보고 싶다면

 

소설 읽기는 지겹다! 하지만 소세키에 대해서는 좀 더 알고 싶다! 라는 분들은 다음의 책들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먼저 비교적 편하게 술술 읽히는 소개서로는 재일한국인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사계절)이 있습니다. 강상중 교수는 국내에 많은 독자를 거느리고 있고, <고민하는 힘>은 꽤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강상중은 소세키의 소설 세계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학문 세계를 함께 다루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본격적인 소개서라기보다 에세이에 가깝지만, 소세키 작품을 좀 더 재밌게, '와닿게' 읽을 수 있는 키워드(돈, 청춘, 직업(노동) 등)들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소세키로소이다>(이매진)은 고모리 요이치라는 저명한 학자가 쓴 평전입니다. 믿을 만한 저자가 쓴 것이라 저도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안타깝게도 절판 상태입니다.

 

최근 출간된 것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 & 나쓰메 소세키 다시 읽기>(늘봄)라는 책이 있습니다. 각각 근대와 현대의 일본 '국민 작가'인 소세키와 하루키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하루키 책은 제가 읽어본 게 별로 없고, 또 하루키에 대해 깊이 알고 싶은 마음도 없는 탓에 개인적으로는 그닥 끌리는 책은 아니지만, <도련님>에 대한 논의가 짧게 나마 있어서 그 부분은 일별을 해보려 마음 먹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닥 끌리지가 않아 굳이 구해서 읽어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좀 귀찮다는 생각도 들지만, 일단 마음만은 그렇게 먹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세키의 산문, 강연록 모음집으로 <나의 개인주의>(책세상, 2004)가 있습니다. 제목은 다소 딱딱하지만, 학술적 논문이 아니라 에세이이고, 실제로 읽어보면 소세키의 소설 만큼이나 재밌습니다. 소세키 특유의 솔직 담백한 어법을 느낄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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