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소설의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이 황금가지에서 '완전판'으로 곧 나온다고 합니다. 왕년의 아시모프 팬들은 공중제비를 세 바퀴 넘을 소식.

 

저는 이 책을 중학생일 때 탐독... 하려다가 결국 실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땐 분권이 되어 있어서 총 9권인가 그랬는데, 4권까진가 읽고 접었더랬죠. 지금 돌이켜보자니, <파운데이션> 완독 실패가 본격 과학소설 매니아가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었던 듯. 아시모프의 또 다른 시리즈인 <로봇>은 몇 번씩 반복해가며 읽었는데.

 

<로봇...>에 비해 <파운데이션>은... 뭔가 어려웠어요. 대하소설과 같은 긴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성향이기도 하고. (이건 지금도 그래서 <안나 카레니나>는 읽지만, <레 미제라블>은 읽지 못 한다는...)

 

결국 ('본격'이란 수식어를 붙이기엔 좀 모자란) 베르베르의 <개미>로 갈아탔고, 한참 후에 (역시 '본격'이라기엔 모자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은 게 제 SF 독서경험의 8할이랄까... 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밀 SF 독서력입니다. 하지만 <로봇> 시리즈는 무척 재밌게 읽어서, 고등학생일 때도 읽고, 대학생이 된 이후로도 몇 번 더 읽었어요. 특히 <로봇> 시리즈의 1권부터 4권까지는 '압권'이라 할만치 재밌습니다. (5-6권은 나중에--<파운데이션>을 쓰고난 이후 시점에--써서 그런지 좀 허황된 구석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예전에 두 시리즈를 출간한 '현대정보문화사'라는 출판사는 어떻게 된 거지? 찾아보니 번역자가 같군요. 예전 번역본을 출판사만 옮겨 재출간한 것이네요. 덕분에 표지나 제책은 상당히 좋아진 것 같은데, 어쩌면 그맛에 완독할 수 있을지도...

 

 

 

 

 

 

 

 

 

 

 

 

 

 

 

 

 

 

 

 

 

 

 

 

 

 

 

 

위의 <로봇>은 2001년에 재출간된 판본이고, 제가 중학생일 때 읽은 것은 아래의 판본입니다.

 

아래 판본은 1992년에 출간된 것이라 당연히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만, 표지 이미지가 있네요. 추억 돋게 시리.

 

 

 

 

 

 

 

 

 

 

 

 

 

 

 

 

 

시리즈 물은 일단 분량이 많아 읽는 게 부담이 되긴 합니다만, 이게 내 취향에 딱 들어맞아 재밌을 경우엔 무한한 즐거움과 만족감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특정 작가의 '전작'을 읽을 때도 동일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낄 수가 있죠. 하지만 한국에서 그걸 만끽하기란 참 어려운 일.

 

최근 에밀 졸라와 슈테판 츠바이크에 꽂혔는데 이들의 '전작'을 읽을 날이 과연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밀 졸라는 20권에 달한다는 '루공-마카르 총서'를 썼는데 이게 절반도 채 번역이 안 되어 있고,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가 쓴 평전들이 제법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편집의 일관성이 없습니다. 이건 뭐 에밀 졸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책은 내용도 중요하고, (번역서일 경우) 번역자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출판사-편집자의 역량일 텐데, 여기서 일관성을 기대할 수 없으니 '전집' 또는 '전작'을 읽는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나 '폴 오스터' 전집, '움베르트 에코' 전집, 책세상의 '카뮈' '릴케' 전집, 솔 출판사의 '카프카 전집' 등이 그나마 한 출판사가 한 작가를 '책임진' 경우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전집 발간' 시도는 요즘 들어선 통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출판계의 전반적 불황 때문이기도 하겠고, 출판 정책에 대한 전국민적 무관심, 인터넷 서점의 출판 시장 패권 장악으로 인한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의 일반화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일반 독자 입장에서야 "어쨌든 싸게 좋은 책 읽을 수 있으면 장땡" 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 이런 식이라면 '전작' 읽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도 현저히 줄어들겠죠. 독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텐데 여기에 관심 있는 정책입안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게 현실...

 

위기감이 공유되고, 여론이 형성된다면야 정책입안자도 신경을 안 쓸 수 없겠지만,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안 보이는 듯합니다. 출판이든 독서 문화든 전적으로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고, 잘 나가는 책만 더 잘 나가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현암사에서는 '나쓰메 소세키' 전집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만. http://blog.aladin.co.kr/705623165/6595053

 

그리고 민음사에서는 밀란 쿤데라 전집을 냈군요... 쿤데라는 물론 훌륭한 작가지만, 지금껏 워낙에 민음사 작가로 자리매김 된 감이 있어서(+팔리기도 많이 팔려서) '우려먹기'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만. 황금가지도 민음사 계열이니 '우려먹기'는 이 쪽의 종특인 것인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바꿔서 자사 세계문학 전집 목록에 올려놓는 등, 민음사는 글 잘쓰고 잘 팔리는 작가 '우려먹기'에 일가견이 있는 듯. 뭐 좋은 책도 많이 내는 출판사이긴 하지만, 책 가격의 7-80%에 해당하는 신간적립금을 마구 투척하는 등 출판생태계를 교란하는 데도 앞장서는 곳이어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합니다...

 

이렇듯, 전집 출간 시도가 전무한 건 아닙니다. <파운데이션> '완전판' 출간 소식과 같이 전집 출간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편입니다. 다만 전집 출간이 이뤄지는 경우 대다수가 장르문학이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점.

 

최근의 시도 중에서는 필립 K. 딕(폴라북스), 대실 해밋(황금가지) 전집 출간이 인상적이었고, 마쓰모토 세이초(북스피어+모비딕)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도 황금가지에서 얼마 전에 (드디어!) 전집이 완간되었죠.

 

 

 

 

 

 

 

 

 

 

 

 

 

 

 

 

 

 

 

나오다 중단된 상태이긴 합니다만, 시공사의 '귀족 탐정 피터 윔지 시리즈'도 있네요. 피터 윔지는 '추리소설 황금기'에 활약한 영국 추리 작가 도로시 세이어스의 주인공입니다. 홈스, 포와로, 브라운 신부에 밀려 지명도가 한참 낮습니다만, 앞서 언급된 세 탐정이 지겨운 분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될 듯. 하지만 3권까지 나오다 중단된 상태고, '시공사'에서 이 시리즈를 더 낼 수 있을까는 의문...

 

 

 

 

 

 

 

 

 

 

 

 

 

 

 

 

 

 

 

더불어 '피니스아프리카에'라는 (이름도 어려운) 출판사에서는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를 내고 있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게 평범한 경찰들--87분서 소속 경찰들--이란 점에서 본격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경찰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 텐데, 저는 얼마 전 <킹의 몸값>을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이 책을 읽고 영화 <천국과 지옥>을 만들었다죠. 구로사와의 필모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저로서는 <킹의 몸값>이란 경찰소설과 구로사와 감독이 잘 연결이 안 돼서 이걸 어떻게 영화화했나 궁금해서 영화도 확인해 봤습니다. 놀랍게도 그냥 모티브만 따온 게 아니라 (전반부는) <킹의 몸값>의 설정과 줄거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더라는.

 

구로사와 감독이 영화화까지 할 정도니 좋은 소설, 이라고 하면 '권위에의 호소'라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겠지만, 뭐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읽은 순수한(?) 독자인 제가 재미(+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어떤 의미까지)를 보증합니다...(보증이 안 되려나...;;)

 

 

 

 

 

 

 

 

 

 

 

 

 

 

 

 

 

 

 

이렇게 나름대로 활발하다고 할 수 있는 장르문학 쪽의 전집 출간 상황과는 달리, 순문학 쪽은 요즘 주요 출판사들이 모두 뛰어들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세계문학 전집] 때문에, 한 작가의 '전작' 출간이 오히려 어려워진 상황이 된 듯합니다. 작가의 대표작이 [세계문학 전집] 목록에 1권, 잘하면 2권 출간되는 식이고, 그나마 중복 출판이 많아 독자로서는 번역본 선택에 나름 공을 들여야 하는 상황.

 

장르문학에서만 전집 출간 시도가 간헐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장르문학은 (순문학보다는) '재미' 있다"는 고정관념 덕에, 혹은 높은 충성도를 보이고 때로는 전도사를 자처하기도는 '한 줌의 열성팬'들 덕에 손익분기점을 넘길 정도의 판매량은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양자 간의 균형이 좀 맞춰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시장성'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선 안 되지 않을까요? 각 출판사에서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세계문학 전집] 덕에 세계문학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건 사실입니다만, 그와 더불어 한 작가의 '전작'을 내는 시도가 지금보다는 좀더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독자 입장에서야 가장 잘 쓴 '대표작' 한 권 읽는 게 경제적이긴 하겠습니다만, 그러다 보니 어떤 작가의 '졸작'과 '태작', '잊혀진 작품', '거의 흑역사에 해당하는 작품'을 읽는 재미는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세계문학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작가일지라도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기 마련인데, 이걸 확인하는 재미와 의미가 쏠쏠하죠. 작가가 어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작만 봐서는 이런 건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도 처음부터 '완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완전판 전집'을 봐야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한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조망한다는 건, 다른 어떤 (무식한) 인내심 돋는 독서 경험 보다 값진, 이를테면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다 읽는" 삽질스런 독서 경험하고는 비할 수 없는 독서 경험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해당 작가의 전작을 담은 '전집'이 나오지 않는 한, 어떤 계기로든 '전집' 출간 붐이 일지 않는 한, 이런 값진 경험은 언제까지나 전공자들의 전유물로 남을 수밖에 없을 듯.(전공자들이 실제로 '전작'을 읽는지는 논외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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