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섬의 가능성
미셸 우엘벡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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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없다
(진정한, 충분한)
우리는 기댈 데 없이 살아가고,
버려진 채 죽는다.
...
연민을 구하는 외침이
허공에 울려 퍼진다.
우리의 몸은 망가졌지만
우리의 살은 여전히 탐욕스럽다.

젊고 싱싱한 몸의
약속들은 사라지고,
우리는 노년으로 접어든다.
아무것도 우릴 기다리지 않는

사라진 우리의 나날에 대한
헛된 기억 외에는,
증오의 소스라침
그리고 적나라한 기억 외에는.

- 미셸 우엘벡, <어느 섬의 가능성>

섹스와 광고가 판치는 우리 사회는 욕망의 충족을 개인적인 영역에 묶어 두면서 욕망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발전시키는 데 몰두하고 있어. 사회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경쟁이 지속되어야 하고, 경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욕망이 증가하고 확대되어야 하는 거지. 그 욕망이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어.

- 미셸 우엘벡, <소립자>

아감벤에 따르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사회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모든 사회계급이 용해되어 있는 단일한 행성적인 '소시민계급'만이 존재하게 된다. 이 소시민계급은 자신의 이해(권리)에 민감하지만 다른 이해를 가진 집단과의 차별화에도 민감하다. 그들은 기업이 저지르는 부정에 항의하기도 하지만, 기업이 제공하는 자본의 판타스마고리아(환영극)에 깊이 도취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체제의 저항자라기보다는 수호자에 더 가깝다. [...] 정치가 소멸될 때, 그 뒤로 어른거리는 것은 '분노의 그림자'이며 도래하는 폭력에 대한 예감이다.

- 강경미, <'도래하는 폭력'에 대하여>, <<말과 활>> 2호.


*
언어가 지니는 현실규정력이 있다. 그냥 마음속에 할 말을 품고 있는 것과 그것을 입 밖에 내는 것, 문장으로 쓰는 것은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XX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라는 맹세를 입 밖에 내는 건 효과가 크다. 말에 마음이 구속된다고 할까, 그런 효과가 생긴다.

우엘벡 같은 경우는 대놓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세계는 지옥이다. 그런데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이 지옥은 바로 우리 손으로 만든 것이니까.’ 굉장히 기분 나쁜 선언적 메시지다. 근데 이게 또 설득력이 있다. 작가로서 당대를 바라보는 통찰이 돋보인다고 할까.

물론 당대에 대한 통찰은 웬만한 작가라면 다 갖고 있는 것(이라고들 말해진다). 우엘벡의 특별한 점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통찰보다 단연 묘사가 앞선다. 무슨 얘기냐면, 다른 작가들의 경우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어떤 '윤리적' 통찰을 앞세우느라 묘사가 희생되곤 하는 걸 자주 보게 된다. 묘사를 아낀다고 할까 아니면 겁낸다고 할까. 특히 감정 묘사, 심리 묘사에서 그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묘사된 현실은 지옥인데 작가(화자)는 자꾸 거기서 희망을 찾으려한다.

감정이나 심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건 사실 무척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포장을 한다. 귀에 괜찮게 들리는 표현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동시에 진부한) 표현들을 동원해서 말이다. 가령 ‘모모 작가가 모모 소설에서 제시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겉보기엔 파국적이지만) 인간이 사랑의 가능성을 끝까지 추구해야 함을 보여준다’ 라거나 ‘모모 작가의 모모 작품은 죽음과 광기에 맞서 (작가는 결국 미쳐서 죽었지만) 그가 끝까지 추구하려 했던 진실의 기록이다’와 같은 표현들이 그렇다. 일단 '사랑'이니 '진실'이니 '가능성'이니 하는 단어가 등장하면 독자는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작가 본인도 마찬가지고. 광고의 3요소, 3B(beauty, baby, beast)가 고객들에게 부담없이 어필하는 것과 비슷하다.

작가가 작품을 쓴다는 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불특정 다수의 독자에게 드러내는 일이니 위험 부담이 매우 크고 또 때에 따라선 굉장히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당대 사회를 치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묘사하는 것이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고, 그 지옥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우리 중 누구도 이 지옥만들기를 그만 둘 생각이 없으며, 또 그만둘 수도 없다.'라는 파국적 통찰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작가들이 거기서 한 발짝 물러서는 건, 그렇게 물러섬으로써 명백한 결론 내기를 유보하는 건,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불가능한 희망을 위치시키려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엘벡은 그런 ‘한 발짝 물러섬’이 없다. '진격의 우엘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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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활 - 2호 - 2013 10-11월호
말과활 편집부 지음 / 일곱번째숲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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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까지 인간이 찍었던 모든 사진들 중, 그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후 수십 년이 지나서도 계속 유통되는 사진은 오직 이것 한 장뿐이다."

 

홍세화 씨가 발행인으로 있는 '종합 인문주의 정치 비평지'를 표방하는 <말과 활> 2호에서 무척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습니다. <체 게바라 사진의 기구하고 고달픈 오십 년>(김현호, 사진비평가)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저 멀리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먼산?) 체 게바라의 사진(혹은 그것의 팝 아트 버전 이미지)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자"라는 그의 말(로 간주되는 문구)과 더불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2000년에 실천문학사에서 낸 붉은색 표지의 <체 게바라 평전>은 체(Che)의 이미지와 저 문구를 사용함으로써 베스트셀러가 됐고 큰 반향을 일으켰죠. 얼마 안 가 <혁명을 팝니다>와 같은 책들이 나와 혁명의 이상과 혁명가의 이미지를 제멋대로 전유하고 맥락 없이 소비하는 세태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만, 아직까지도 체의 사진은 비단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종과 국경과 종교를 초월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글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면 이렇습니다.

 

 

"이 사진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괴이하다. '게릴레로 에로이코'(체의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가 사진에 붙인 이름, '영웅 게릴라'란 뜻)는 엄청난 수의 티셔츠와 포스터로 제작된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체 게바라 티셔츠는 여전히 잘 팔린다. 동티모르의 이슬람 원리주의 게릴라들과 북아일랜드의 가톨릭계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은 체 게베라 티셔츠를 입는다.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나 생전의 우고 차베스도 마찬가지였다.

 

얄궂게도 가자 지구 서안의 팔레스타인 인티파타들과 이스라엘 축구팀인 FC텔아비브 서포터들은 모두 게릴레로 에로이코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체 게바라의 얼굴은 디에고 마라도나의 어깨와 마이크 타이슨의 배에 문신으로 새겨져 있으며, 지젤 번천의 비키니 수영복과 엘리자베스 헐리의 루이비통 가방에도 있다. 심지어 독재자의 아들 알 사디 카다피는 체 게바라의 얼굴을 호화 요트의 양쪽 옆면에 크게 그려넣기까지 했다. 스노보드, 보드카 병, 팬티, 머그컵, 와인 라벨, 지포 라이터, 담뱃갑, 콘돔, 열쇠고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벨파스트와 베이루트, 베를린, 서울, 뉴욕, 리마, 홍콩, 네팔에 이르기까지 이 사진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든 곳에 살아서 움직인다."

 

가히 '혁명을 상업주의가 포획했다', '혁명이 패션으로 전락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범인은 역시나 상업자본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글의 저자는 혁명과 혁명가를 찍은 수많은 사진 중 왜 이 사진만이 그렇게 포획당했는지, 오랫동안 살아남았는지를 묻습니다. 여기서부터 글이 재밌어집니다.

 

체의 사진을 찍은 사진가는 원래 패션사진가(지망생)이었다고 합니다. 알베르토 코르다라는 이름인데요. 그는 정식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생일잔치나 세례식, 결혼식장을 돌아다니며 허락 없이 사진을 찍은 뒤 현상한 것을 들고 가서 흥정해파는 일로 생겨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코르다는 아바나 구시가지에 '메트로폴리나타'란 이름의 스튜디오를 여는데, 여기서 그는 쿠바의 젊고 예쁜 여성들을 모델로 미국 잡지에 실리는 것 같은 '패션사진'들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가 롤모델로 삼은 인물은 당대 최고의 패션사진가로 꼽힌 뉴욕의 리처드 아베든이었다고 해요. 코르다는 혁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거죠. 그보다는 패셔너블한 사진을 찍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의 쿠바에는 패셔너블한 모델도 별로 없었고, 패셔너블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코르다는 쿠바 혁명의 주역들인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카밀로 시엔푸에고스를 만나게 되고 이들의 사진을 찍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실제로 젊고 잘생긴, 그리고 멋진 미소를 지닌 청년들"이었죠. 체 게바라의 사진-이미지가 레닌이나 마오쩌둥, 호치민의 사진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그의 외모가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혁명 정권이 수립되었을 때 체 게바라의 나이는 불과 31세, 피델 카스트로의 나이는 33세였습니다. 코르다는 이 젊고 잘생긴 혁명가들의 사진을 "마치 패션쇼의 뒤편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셀러브리티들처럼 화사하게" 찍었습니다. 체 게바라의 사진이 하나의 패션 아이콘이 되고 패션 상품으로 무차별하게 소비될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맥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혁명이 패션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혁명은 처음부터 패션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였던 셈입니다.

 

 

*

<DOMINO>에 이어 또 하나의 '자극적인' 잡지가 나온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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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anpark 2013-12-1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작가 쟌 모리스가 체 게바라와 얽힌 두 가지 에피소드를 엮어 얘기했던 대목이 문득 떠오르네요...
체 티셔츠를 입고서도, 해맑은 표정으로 "근데 체 게바라가 누구에요?"라고 물었던 어느 젊은 히치하이커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던 그 이야기.....ㅋ
시로군님 덕분에, 얼른 찾아서, 서재에 올리기로~^^&
 
『도련님』의 시대 1 - 나쓰메 소세키 편 세미콜론 코믹스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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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38년(1905년)

소세키 나쓰메 긴노스케. 이때 나이 만 38세 10개월.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강사 연봉 800엔....
제1고등학교 영문학 강사 연봉 700엔.
매달 120엔이 넘는 큰돈이 들어오지만...

참고로 메이지 40년 이와테 현 시부타미 진죠 소학교 대리교사였던
다쿠보쿠 이시카와 하지메(시인)의 월급은 8엔에 지나지 않았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런저런 이유로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이해부터
메이지 대학에도 출강해 월급 30엔을 받고 있었다.

"돈이 궁하진 않아. 어차피 <호토토기스>에 실을 거네.
다카하마 군이 잘 봐준다고 해도 1매 당 50전이 고작이겠지."

-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가와 나쓰오 글, <[도련님]의 시대 : 나쓰메 소세키>

* <[도련님]의 시대>의 시작부분인데 처음부터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인상적. 돈 이야기는 작품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언급된다. 소세키는 돈 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소세키의 작품 세계와 막스 베버의 이론을 다루는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을 보면 소세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돈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 <도련님>도 예외는 아니다. <도련님>은 중학교 교사로서 월급 40엔을 받았던 도련님이 철도기사로 직업을 바꾸면서 월급을 얼마를 받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며 끝난다.

* 만화를 쭉 읽다보면 라프카디오 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스 태생 아일랜드인인 그는 미국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일본으로 건너와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한다. 메이지 29년(1896년) 그는 도쿄제국대학 강사로 초청을 받아 월급 400엔을 받는다.

헌은 서양인이지만 일본을, 특히 옛 일본을 좋아했다. 그가 일본에 귀화한 이유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 이점은 그에게 약점으로 작용한다. 당시 일본은 '신시대'를 부르짖고 있었던 것. 메이지 36년(1903년) 제국대학에서는 헌에게 강사 월급을 200엔으로 줄이기로 했다며 양해를 구한다. '유학하고 돌아온 일본인 선생'을 고용해야 하는데 대학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유학하고 돌아온 일본인 선생'은 다름 아닌 나쓰메 소세키였다.

* 나쓰메 소세키의 월급이 이것저것 합해 120-150엔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헌의 월급 400엔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절반인 200엔도 소세키의 월급보다 많다. 하지만 처의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헌에게 이 감봉은 타격이 컸던 것 같다. 대학의 자리를 뺏긴다는 것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신시대'의 일본에는, 일본을 좋아해서 귀화까지 한 이 사내가 있을 자리가 더 이상 없었다.

* 헌의 학생들은 유임 운동을 벌이며 신임 강사 나쓰메 소세키의 수업을 보이콧 하기도 하지만, 헌은 자리에서 물러난 지 3년 후 협십증으로 죽는다.

* 이 일로 나쓰메 소세키는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국비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영문학자 나쓰메 역시 서구를 싫어했다. 무턱대고 서구를 모방하려는 '신시대' 일본도 싫어했다. 하지만 그에게 월급 120엔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허락한 것은 '신시대' 일본이었다.

* 나쓰메는 평생 신경증을 앓았고 주사가 심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성공 이후, 그는 대학 강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된다.

* 돈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매달 내가 버는 돈은 터무니 없이 적다. 그래서 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 헌처럼 부양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나 하나 먹고 사는 게 힘들다. 뭐 나만 그런 것도 아니겠지. 이렇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진 않는다.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었던' 60-70년대에는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생존에, 먹고사니즘에 매달려 있다는 게 끔찍하게 여겨진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는 시대의 성격, 시대의 지향에 의해 규정되고 만들어진다. 메이지 38년의 일본은 '신시대'를 지향했고 그러한 지향에 맞는 이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2010년대의 한국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참고 사항으로만 언급되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월급이 120-150엔일 때,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월급은 8엔이었다. 무시할 수 없는 격차다. 이사카와의 생활은 어땠을까. 그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고, 또 시를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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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숙자 / 말없는사나이 [알라딘 특가]
존 포드 외 감독, 모린 오하라 외 출연 / 에이치디디브이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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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의 웨스턴을 좋아한다. 레오네의 웨스턴은 '변종 웨스턴'이라 여겨졌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이탈리아 웨스턴' '스파게티/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도 불렸다. 이런 명명을 한 사람들은 명칭 자체에 경멸의 의미를 담았다. 장르적 오리지날리티가 없는 이유로, 잘해봐야 '변종'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변종은 그 나름의 에너지와 활력을 가진다. 오리지널이 형성해온 권위를 통쾌하게 무너뜨리기도 한다. 특히 시대의 변천으로 인해 오리지널 장르의 정서와 기법이 더 이상 관객들에게 먹히지 않을 때, 순진한 낭만주의의 소산으로 받아들여질 때, 변종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며, 그 영향력은 때로 사람들의 피부를 뚫고 스며들 정도가 된다. 그리하여 우리의 세상 인식 틀을, 더불어 감각 작용을 이전과는 판이하게 바꿔 놓는다.  

 

이런 영화는 한 번 보는 영화가 아니다. 반복해서 봐야 되는, 몇 번이고 자발적으로 보게 되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영화다. 영화에 잡아 먹힌 것이다. 60년대의 <007 시리즈>, 70년대의 이소룡 영화들이 그런 영화들이다. 90년대 한국에는 주윤발-장국영-왕가위로 대표되는 다양한 홍콩 영화들이 있었다.

 

이런 영화들을 본 관객은 극장을 나선 후에도 여전히 영화에 사로잡힌 상태로 남아 있다. 영화 때문에 모든 게 달라진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게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들린다. 관객 자신도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누가 누가 더 영화 주인공 흉내를 잘 내나, 라는 식의 '흉내 배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웨스턴들도 그런 영화에 속한다. 일단 레오네의 웨스턴은 그것을 보고 난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들을 따라) '인상을 팍 쓰게' 만든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은 동적 액션이 특징적인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움직임이 최대한 절제된 정적인 영화다. (게다가 템포도 느리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쓰도록 하겠다.) 인물의 움직임과 연기가 절제된 대신, 돋보이는 것은 연출, 카메라, 그리고 음악(+ 음향)이다. 가만 보면 레오네의 영화에서 인물들은 별 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말을 타거나 걷거나 가만히 서 있거나 아니면 심지어 의자에 몸을 뻗고 누워 있거나 한다. 이게 지금 연기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인터뷰를 통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함께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작업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땐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기분이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embedded&v=pmdAsL1n6q4 

<석양의 무법자> 마지막 결투 시퀀스

 

 

가만히 있는 배우들로부터 연기를 끌어내는 건 연출이다. 우선은 카메라가 가장 특징적인데 이 카메라는 자주 배우들의 신체를 클로즈업 한다. 인상을 팍 쓰고 있는 얼굴은 물론이고, 허리에 찬 총, 그 언저리에 걸쳐 있는 손, 모자 챙에 살짝 가려진 눈, 펄럭이는 외투, 입에 문 담배, 손에 든 돌과 같은 것을 클로즈업, 또는 줌인한다. 덕택에 배우들의 '인상 쓴' 표정과 함께 동작의 디테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다. 이러한 카메라 워크에 잠재된 효과를 극대화하는 건 편집이다. 인상 쓴 얼굴, 총에 걸쳐진 손, 모자, 외투, 담배, 돌들을 적절한 타이밍상에 배치함으로써 영화는 (알고 보면) 딱히 별 것도 안 하고 인상만 쓰고 있는 세 명의 배우들로부터 엄청난 에너지와 상황의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마지막으로 '음악(+음향)'이 있다. 여기서, 세르지오 레오네와 일찍부터 파트너쉽을 이루어 함께 작업한 음악가가 엔니오 모리꼬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는 엄청난 에너지가 깃든 템포를 영화에 부여한다. (음악과 음향이 없다면) 그저 멀뚱히 서 있는 세 명의 배우지만, 이들은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에너지 게이지를 맥스로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며, 잠시 후면 이렇게 쌓인 에너지를 한 순간에 터뜨릴 것이다, 라는 확신 어린 긴장감은 바로 (연출과 함께)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 덕분에 생기는 것이다. 그의 음악은 그 자체로 레오네표 '스파게티 웨스턴'을 보는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레오네의 웨스턴은 처음부터 끝까지 총질(총소리)이 난무하는 요즘 액션 영화와는 다르다. 레오네는 총을 아끼고 또 아껴둔다. 총격에 관한 모든 건 영화의(혹은 각 시퀀스의) 마지막에 가서, 그것도 30초에서 1분 사이의 한 순간에, 그것도 너무나 허망한 방식으로 보여진다. 긴장감에 휩싸여 기다리는 동안 제멋대로 부풀어 오른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기억해둘 점은 총격 장면을 앞둔 몇 분 간의 그 뜸 들이고 폼 잡는 장면이 레오네 영화의 정수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레오네의 웨스턴은 엄청 뜸을 들이는 영화이며, 엄청 '폼 잡는' 영화다. 이 영화는 아크로바틱한 신체 액션을 선보임으로써 인간 신체의 한계를 보여주는,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어떤 '통쾌함'이나 '처절함'의 미학을 핵심으로 하고 있지 않다. 기계화된 살상 무기 및 그것을 신체 일부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주인공들이 선보이는 '살육의 향연'과도 거리를 두고 있다. '두두두두두두X100'이 아니라 '탕, 탕, 탕'인 것이다. 레오네의 웨스턴은 '폼 잡는 장면'에 많은 비중을 둔다. 어떤 상황에서든 폼 잡는 것을 결코 잊지 않고, 또 빼먹지 않는 주인공들을 우리는 레오네의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폼생폼사의 미학이랄까. 혹은 기다림의 미학.

 

'천천히 여유 있게 자기 할 건 다 하는 사내들'. 우리가 레오네의 영화를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사내들이다. '자기 할 건 다 하는 사내들'이라고 썼지만 실은 그 한다는 것이 대개 '폼 잡는 일'이라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이 사내들이 속한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에 대해서도 감을 잡을 필요가 있다. 웨스턴이란 장르 명칭에 이미 들어 있듯 레오네 영화의 배경은 '서부'다. 아직 법-질서가 들어오지 않은, 법-질서에 의해 재편되기 이전의 서부. 쉽게 말해 '약육강식'의 세계이며, 유일한 목표는 '황금'인 세계다. 바로 이 '황금'을 갖기 위해 거의 '고독한 늑대'와 다를 게 없는 거칠고 잔인한 사내들이 몰려와 서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내들이 서로 맞닥뜨렸을 때 하는 일은 (여자도 없는데) 서로의 앞에서 '폼을 잡는' 일이다. 누가 더 폼을 잘 잡을 수 있나를 두고 배틀이라도 벌이는 듯.

 

이러한 '폼 배틀'을 두고, 상대의 '간을 보는'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 한껏 여유를 부리는 폼 잡기는 실력 차를 강조함으로써 상대의 기를 죽이려는 것이기도 하고, 만만치 않은 상대의 경우에는 심리적 도발을 통해 평정심을 잃게 함으로써 곧 있을 결투에서 어떤 이점을 취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레오네의 주인공들은 여유를 부리긴 하지만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무리를 이루지 않고 혼자 다니기 때문에, 또한 공권력을 등에 업은 보안관도 아닌 '무법자outlaw'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지할 것은 이들이 '여유를 부리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라, 반대로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여유를 부린다'는 것이다. 정확히 레오네의 영화는 후자에 해당한다. 그 말이 그 말 같이 들리겠지만 이 차이는 크다.

 

예를 들어 보자. <내 이름은 노바디>(1973)--이 영화는 크레딧 상으로 보면 토니노 발레리라는 이탈리아 감독의 영화지만, 세르지오 레오네가 각본, 제작을 담당했다. 그리고 알려진 바에 따르면 크레딧에만 오르지 않았을 뿐, 공동 감독까지를 맡았다고 한다--에서 헨리 폰다는 이발소 의자에 누워 면도를 하는데, 면도날을 든 이발사에게 자기 목을 맡긴 상태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다. 밖에는 그를 습격하려는 일당들이 있고 여기 면도날을 들고 있는 이발사는 사실 그 일당 중의 한 명이다. 진짜 이발사는 이미 결박되어 창고에 감금되어 있다. 이상한 낌새를 챘지만 헨리 폰다는 여전히 면도를 즐긴다. 이발사 역을 맡은 악당이 면도 크림을 바르고 면도날을 헨리 폰다의 목으로 가져간다. 일촉즉발의 순간이다. 하지만 악당이 이상한 느낌에 자신의 엉덩이께를 내려다보는데 이미 헨리 폰다의 총이 그를 겨누고 있는 상태다. 그런 상태로 면도가 끝까지 진행된다. 드디어 헨리 폰다가 의자에서 일어나 면도가 잘 됐는지 거울을 들여다 볼 때, 바깥의 일당들이 총을 쏜다. 헨리 폰다는 아주 간결하게 몸만 살짝 틀어 총 몇 발을 쏜다. 일망타진. 상황이 끝나자 헨리 폰다는 턱을 쓰다듬으며 몇 발 걷다가 조끼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이발소 돈통에 넣어둔다. 진짜 이발사가 해준 건 아니었지만 면도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옷들을 제대로 챙겨 입고 거울을 보며 매무새를 가다듬고, 분무형 스킨까지를 뿌린 후에야 천천히 이발소를 떠난다.

 

http://www.youtube.com/watch?v=rVaq2kAlSLY&feature=player_embedded

<무숙자>(<내 이름은 노바디>) 오프닝 시퀀스 : 헨리 폰다 면도 장면

 

 

이런 식으로 레오네의 주인공들은 상황을 지배한다. 어떤 돌발 상황에서든 당황하는 법도 초조해하는 법도 없이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 앞서의 '이발소' 시퀀스에서는 장면 내내 째깍째깍 시계 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레오네+모리꼬네가 자주 사용하는 음향 기법이다. 하지만 이때 긴장감을 느끼는 것은 관객들뿐이다. 화면 속에서는 누구도 긴장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긴장을 하긴 하지만 긴장감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좀 더 정확을 기하자면, 적어도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을 덜덜 떤다든지, 실수로 총을 쏜다든지 해서 판을 중간에 엎어버리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인 헨리 폰다도 여유를 과시하지만, 바깥의 악당도 말 등에 솔질을 하며, 면도를 하는 악당도 집중해서 면도를 한다. 천천히, 여유 있게, 나름 대로 품위를 지켜 가며 말이다. 이런 장면을 보면 다음과 같은 느낌이 든다. 아, 이들이야말로 진정 '시간을 지배하는 자'들이로구나.

 

레오네의 주인공들은 항상 위험에 처해 있는 형편이고, 자신들에게 가해지는/다가오는 위험/위협의 배후에 어떤 힘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유를 잃지 않는다. 일례로 레오네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말을 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달리는 모습을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레오네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개 뚜벅 뚜벅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걷는다. 현실적 차원에서 본다면 이는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행위다. 딱히 벽에 붙어 걷거나 주위를 쉴새없이 살피거나 소리를 죽이지도 않고 커다란 실내나 복도 한 가운데를 유유자적하게 걷는다. 두리번거리기는 하는데, 그건 딱히 적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딴청을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전혀 긴장감 없이 위험의 복판으로 들어온 셈이다. 하지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레오네의 영화에서 불안해지는 건 관객뿐이다) 시야각이 넓은지,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는지 주인공은 잠깐 사이에 자신의 발달된 '촉'으로 적의 위치와 수를 파악한다. 뚜벅 뚜벅 이후에 아주 잠깐 총소리가 몇 방 들리고, 상황은 정리된다. 이처럼, 이들은 '공간을 지배하는 자'들이기도 하다.

 

다시 아까의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시계 바늘 소리와 구두 발자국 소리는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일단 둘 다 영화의 템포, 혹은 페이스(pace)와 연관되는 요소라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다. 그런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시계 바늘 소리는 짧은 총격전 이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디제시스 바깥의 음향이었던 셈인데, 이제 시계 소리 대신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디제시스 내의 음향이다. 어찌 보면 관객은 시계 소리라는 음향 효과에 낚여 괜히 긴장한 셈이다. 그리고 총격전 이후 구두 발자국 소리는 시계 바늘 소리가 만들어낸 영화의 템포를 현저히 완화시킨다. 영화의 템포가 재조정 된 것이다. 헨리 폰다는 느리게 발 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면서 자기가 할 일--여유를 과시하며 폼 잡는 일--을 한다. 말하자면 그는 자기 '페이스'가 무엇보다 중요한 인물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헨리 폰다는 가차 없이 등속도로 흐르는 '세월-시계 소리-템포'를 자기 '페이스'로 끌어들이고 흡수하여 컨트롤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마당에, (기차 시간표와 함께) '기차'가 서부로 들어오는 마당에,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새로운 무기들이 등장한 마당에, 계획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수많은 적들이 자신을 노리는 와중에, 여전히 '폼을 있는 대로 다 잡는' 여유를 부릴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여유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인 자신의 '낭만적'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전설의 레전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존 웨인과 더불어 웨스턴의 대표 스타였던 헨리 폰다는 <내 이름은 노바디>를 마지막으로 웨스턴을 영원히 떠난다. 출연 시 나이가 70세에 가까운 나이였으니 나이 탓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다른 장르 영화 출연은 계속 했다.) 어쨌든 1973년 헨리 폰다의 <내 이름은 노바디> 출연과 그 직후의 (웨스턴에서의) 은퇴는 이 해를 기점으로 '한 시대가 저물었다'라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한다. [이런 느낌은 물론 (역시 헨리 폰다가 출연했고 역시 세르지오 레오네가 감독한) 1968년 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나 샘 페킨파의 <관계의 종말>에서도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 황혼을 맞은 시대는 바로 이렇게 묘사할 수 있는 시대다. 낭만적 형태의 '마이 페이스'와 '마이 웨이'가 가능했던 시대. 다른 뭣보다도 '폼'과 '멋'이 우선시되었던 시대. 시계의 템포가 우리 일상을 지금보다는 덜 규율하던 시대. 국가의 행정망과 자본의 유통, 판매, 홍보망이 지금 보단 훨씬 느슨해서 국민 모두가 거기에 포획되지는 않았던 시대. 나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완전히는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시대. 담배 하나 입에 물고 질겅거리는 것이나 옷을 펄럭이는 것,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내려놓는 동작만으로도 '폼'을 잡을 수 있었던 시대.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지금은 현란한 액션과 빠른 편집, 그리고 거대한 스케일이 아니면 관객의 눈을 잡아두기 힘든 시대다. 싸움 전의 5-10분 동안 폼 잡는 시간은 지루한 것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오늘날 관객이 원하는 것은 5-10분 내내 쉬지 않고 이어지는 정신 없는 액션 씬이다. 시계 초침의 템포 보다 더 빠른 자극적인 감각을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각은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거의 완전히 휘발되어 버린다. 액션 영화의 OST들이 전하는 빠른 비트는 '페이스'와는 거의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페이스를 무참히 망가뜨려 놓는다. 때문에 두시간 반 동안 액션 영화를 보고 나면 완전히 지쳐 버리는 것도 당연하다. 오늘날 액션 영화는 우리 피부 표면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많은 생채기를 남겨 놓으며, 바디 블로와 같은 타격을 가해 우리를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는다.

 

영화를 보는 다양한 방식과 관점이 있겠지만, 나는 영화를 (다른 무엇보다) '그저 즐기기 위해' 본다(해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는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즐김의 대상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본다. 그리고 나는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이 '도피' 행위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도피' 행위는 그 자체로 적극적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크린과 화면 속에 나만의 영역과 지분을 확보, 구축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실로부터 보다 더 적극적으로 도피할 필요가 있다.

 

영화를 즐긴다는 것은 영화를 아무 생각없이 보는 것과는 다르다. 영화는 우리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 '다른 세상'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눈과 귀를, 오감을 최대한 열어두어야 한다. 물론 그러한 체험은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영화적 환상'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지만, 그것이 곧 '환상'에 매몰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안전 거리가 확보된 '환상 체험'과 그 거리가 확 줄어든, 혹은 거리 두기가 불가능해지는 '영화적 체험'은 다르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스크린의 물리적 현존을 알고서 영화를 본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우리가 확보했다고 생각하는 안전 거리를 무화시키면서, 우리의 피부를 뚫고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영화를 보다가 전율을 느끼곤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스크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스크린 밖으로 나와 관객석에 앉아 있는 우리의 피부를, 이른바 현실 감각과 방어 기제를, 살아오며 길들인 감각 작용들을 좀 느린 페이스이지만 분명하게 뚫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치 한의학에서의 침처럼, 그러한 '영화적 체험'은 우리의 막힌 '혈'을 뚫는다.

 

레오네와 웨스턴, 헨리 폰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대는 이미 지났지만, 그들의 영화가 영화제에서, 아카이브나 예술영화관이 마련한 회고전에서 계속 반복 상영되는 한(더불어 유투브에서 반복 재생할 수 있는 한), '천천히 여유 있게 자기 할 거 다 하는 사내'들이 선보인 '폼생폼사'의 미학과 '기다림/뜸들임'의 미학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장담할 수 있는 건, 대중 문화 전반에서 (빠른) 템포가 우세한 요즘이지만, '(나만의) 페이스'를 찾고자 하는 개인들의 열망과 노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시간에 쫓겨 불안과 초조함 속에서 매일의 일상을 보낸다. 여가가 주어진다고는 하지만 여가마저도 스케일이 크고 속도감 있는 영화를 보며 보내거나 빠른 비트의 아이돌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보내는 식이다. 이런 것들을 보는 장소도, 요즘은 극장이나 공연장, 심지어 집의 TV 앞에서가 아니라 출퇴근시 이동을 하는 도중에 만원버스나 지하철에서 스마트 기기들을 통해서 본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지배하기는커녕, 협소하디 협소한 공간에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여전히 시간에 쫓겨 가며, 찍어내듯 만들어진 문화상품들을 즐긴다. 그렇게 처절하게라도 해야 '자기 할 거 다 하면서도 문화에도 밝은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천천히 여유 있게'가 빠져 있다. '폼 잡고 뜸들이는 것'도 빠져 있다(스마트 기기 덕(?)에 뜸들이는 시간이 대폭 줄었고, 만원 버스에서 손바닥 만한 화면을 들여다보는 건 아무래도 '폼'과는 거리가 멀다). 보다 중요한 점은 우리의 감각이 '자본'이 만들어낸 문화상품에 '포획'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국가와 자본의 바깥을 상상할 힘을 잃었다. 70년대 후반-80년대의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로운 늑대 =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외부의 무법자'이면서도 인간미와 여유를 가진, 그리고 폼에 많은 의미를 둔 인물은 80년대 이후 더 이상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뭐 현실 차원에서 보면, 6-70년대에도 미국 서부는 이미 개척이 완료된 공간이긴 했다. 그런데 이는 상상력의 문제이고, 상상력에 양분을 제공하는 사회의 전반적 분위기와 연관된다. 아직 개척이 완료되지 않은 '무법적' 공간으로서 과거 서부를 상상하여 영화의 배경으로 삼는다는 기획은 60-70년대에도 어디까지나 영화니까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영화에서도 그런 기획 자체가, 그런 상상력 자체가 상품성, 사업성이 없다고 여겨진다(내용과 스타일의 올드함도 올드함이지만, 템포가 너무 느려서 오늘날 빠른 영화들에 익숙해진 관객이 잘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이미 웨스턴은 별 인기가 없다. 심지어 그것이 지닌 장르로서의 수명을 다했다고들 말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웨스턴적 상상력'은 이미 죽었다고 볼 수 있다. 요즘 할리우드에서 지배적인 것은 '좀비적 상상력'(디스토피아적 상상력) '테리리즘적 상상력' '수퍼히어로적 상상력'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영화만이 생명력을 지녔다고 말할 수는 감히 없을 것이다. 오래된 '고전'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걸 일깨워주며,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잊혀진 '영화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웨스턴은 우리에게 '시공간을 지배하는 자'가 된 듯한 '영화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전율이 흐를 정도로 생생한 이런 영화적 체험이 주는 재미를 어떻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6-70년대의 옛날 영화들로 때로 '도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그러한 도피 체험이, 점점 더 빨라지는 템포가 나를 지배하고 내 감각을 마비시키는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 '나의 페이스'와 '나의 감각'을 되찾는 데 생각외로 꽤 도움이 됨을 알았음에야.

 

 

http://www.youtube.com/watch?v=WCkWG2xkAsc&feature=player_embedded

<무숙자>(<내 이름은 노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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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길들이기 - [초특가판] 고전 10종
하워드 혹스 감독, 캐리 그란트 외 출연 / 맥스엔터테인먼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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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양육(Bringing Up Baby)> 또는 <베이비 길들이기>(하워드 호크스, 1938). 영화 내용상 후자가 더 적절한 제목이다. '베이비'가 '아기'로 번역되는 보통 명사가 아니고 누군가의 이름(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아니, 실은 사람 아기도 아니고 '표범'의 이름이다. 그렇다. 이 영화에는 '펫 표범'이 등장한다. '펫 표범'은 표범이 고양이과 동물이란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위 동영상 참조)

 

 

<베이비 길들이기>는 정신 없이 오가는 만담조 대사의 주고 받음과 그만큼 정신 없는 상황 전개가 특징인 '스크루볼 코미디'다. 슬랩스틱이 적절히 가미되어 있어서 말 그대로 쉴새 없이 웃을 수 있다. 개봉 당시 최초로 아카데미 5개 부문 상을 휩쓴 프랭크 카프라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이 스크루볼 코미디의 대표격이긴 한데, <베이비 길들이기> 역시 못지 않게 재밌다. 템포가 더 빠르고(더 정신 없고), 설정이나 캐릭터도 더 신선한 맛이 있다. 4년 사이에 이 장르도 진화했고, <베이비 길들이기>에 이르러 정점을 찍은 듯 보인다.

 

 

많은 로맨틱 코미디가 그렇듯, 이 영화도 주인공이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돈과 사랑을 동시에 거머쥐며 끝난다.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과정인데, 주인공의 계산된 이성적 노력은 모두 다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상황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택한 임기응변이나 자포자기적 행동이 '대박 반전'으로 이어진다.

 

 

미래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계획된 행동보다 임기응변이 낫다. 애써 계획을 마련해놓고 혹시라도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불안에 떠는 것보다는 갑작스럽게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태도를 바꿔가며 대처하는 게 나은 것이다. 멋모르고 '나만의 원칙/신념/생활방식' 같은 걸 고수하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

 

 

임기응변이라고 했는데, 스크루볼 코미디의 경우는 스릴러,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이 선보이는 임기응변과는 사뭇 다르다. 스릴러,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른바 '능력자'들이다. 지금은 일반인이지만 한때 '특수요원'이었다든가 하는 식. 그들에겐 나름의 행동 원칙과 신념이 있다. 대개 '불의를 참을 수 없다'라든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든지 '가족(주로 딸)을 보호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요즘은 이 장르도 진화해서 '나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식의 원칙 아래 주인공들이 활약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나 '가족'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진, 오직 '나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 과제가 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스크루볼 코미디의 임기응변은 '내려놓기=자포자기'로 요약할 수 있다. 스릴러, 액션 영화의 주인공들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태도를 보이는 것과는 정반대라 하겠다. 영화의 주인공 캐리 그랜트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계획을 하나씩 포기(당)한다. 박물관 기부금 백만 달러를 얻으려는 계획을 포기(당)하고, 약혼녀와의 결혼을 포기(당)하고, 급기야 자기의 정체성마저 포기(당)한다. 미친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전문 사기꾼으로 오인받아 유치장에 갇히기도 한다. 꽤 익숙한 상황이라고 느끼는 것도 당연한데, 이러한 상황은 스릴러, 액션 영화에서도 자주 제시하는 일종의 단골 설정이기도 하다.

 

 

<베이비 길들이기>의 캐리 그랜트 캐릭터는 히치콕의 스릴러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캐리 그랜트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 모두에서 캐리 그랜트는 자기가 전체를 파악하고 있지 않은 어떤 상황에 휘말리게 된다. 다른 사람으로 오인된다는 것도 공통적이다.

 

 

스릴러, 액션 영화도 스크루볼 코미디도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어떤 음모'에 휘말린다는 설정에 기반을 두고 전개된다. 계획은 쉽게 어그러지고 상황은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영화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베이비 길들이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여주인공 캐서린 헵번의 캐릭터이다. (여담인데, 또 다른 헵번인 오드리 헵번은 오랫동안 팬이었지만, 캐서린 헵번의 영화는 이번에 처음 봤다.) 이 영화에서 캐서린 헵번은 정신 없는 '좌충우돌' 캐릭터를 선보인다. 영화에서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멋대로' 행동한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캐리 그랜트와 결혼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들이댄다. 그러면서 캐리 그랜트의 계획을 깡그리 망쳐 놓는 것은 물론 공공 질서와 사적 소유권을 어지럽히며, 급기야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정체성마저 포기하게(내려놓게) 만든다. '민폐 캐릭터' 중에서도 가히 최강이라 할만하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거의 '제정신'을 내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물론 스크루볼 코미디답게도 그녀의 이런 '극악무도한' 민폐질은 나중에 그녀가 다름 아닌 '물주'의 조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리고 캐리 그랜트가 원하던 '기부금 백만 달러'를 확보해줌으로써 정당화된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1930년대 초(대공황 직후)에 등장하여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까지 기간 동안 큰 인기를 끌었다. 돈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주식과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되고, 잘 다니던 직장에서 잘려 한 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하는 등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떤 '붕 뜬' 시대적 상황을 이 장르는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에 '한없이 가벼운 즉흥성'과 '자포자기적 유머'로 맞서는 것이다. 자포자기적 태도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시대와 맞선다'라는 표현이 과연 적절한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 어쩌면 그들에겐 '한없이 가벼운 즉흥성'과 '자포자기적 유머'말고는 다른 대안적 삶이 방식이 허락되지도 않았고,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엉망진창 코미디'라고 번역할 수 있겠다. 스크루볼 코미디가 제시하는 세계는 엉망진창 세계다. 오래 공들인 계획도, 사회 질서도, 나 자신의 직업도 정체성도 일순간에 무너지거나 부정당할 수 있다. 말하자면 스크루볼 코미디의 세계는 그 어떤 것도 믿을 수 없는 세계, 가까운 미래조차도 계획할 수 없는 세계다. 이러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계획이나 신념이 무너졌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고, (캐서린 헵번의 캐릭터가 보여주듯) 애초에 모든 것을, '제정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진다는 명분 아래) 다른 건 돌아보지 않고 일직선으로 맹렬히, 유쾌, 상쾌, 통쾌하게 질주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많은 '멘토'들의 다양한 조언은 결국 이러한 삶의 방식의 권유로 수렴하는 게 아닌가 싶다.

 

 

1930-40년대에는 스크루볼 코미디가 인기를 끌었지만, 40년대 중반 즈음부터 50년대 후반까지는 스릴러와 (한층 어두운) 필름 느와르가 유행한다. 설정은 동일하지만 유행한 장르는 달랐던 것이다. 오늘날 스크루볼 코미디는 텔레비전 시트콤의 형태로 아직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지배적인 장르는 스릴러, 액션이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현실이 아무리 '엉망진창'이라 하더라도 낙관적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고, '자포자기적 정서'를 '유머'로 승화시키며, 그것이 선보이는 '난리법석'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활력'을 전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게 먹히지 않는 시기도 분명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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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는 두 마리의 표범이 나온다. 하나는 길들여진, 그래서 위험하지 않은 '펫 표범'이고 다른 하나는 서커스단에서 사람을 해친, 길들여지는 데 실패한 난폭한 표범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 안의) 표범을 길들일 수 있을까. 이미 정글과 같은 생존 경쟁의 장으로 변해버린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난폭하게 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정글의 법칙'을 거부하며, 혹은 적절히 컨트롤하며(길들여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영화의 결말에서 두 마리의 표범은 모두 포획된다. 길들여진 '펫 표범'은 원 주인에게 돌아가고, 난폭한 표범은 목표 달성을 위해 제정신을 이미 오래 전에 내려놓은, 그 결과 '표범보다 난폭해진' 캐서린 헵번에게 잡혀 질질 끌려온다. 그녀처럼 우리 역시 제정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 사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표범과 더불어 살아왔으며, 각자 자신의 안에 표범 한 마리쯤은 키워왔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길들이고 제압하는 데 성공했느냐의 문제는 다른 문제일 것이다. 설령 어느 정도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표범을 길들이려는 가운데 우리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표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난폭하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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