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의 시대 1 - 나쓰메 소세키 편 세미콜론 코믹스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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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38년(1905년)

소세키 나쓰메 긴노스케. 이때 나이 만 38세 10개월.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강사 연봉 800엔....
제1고등학교 영문학 강사 연봉 700엔.
매달 120엔이 넘는 큰돈이 들어오지만...

참고로 메이지 40년 이와테 현 시부타미 진죠 소학교 대리교사였던
다쿠보쿠 이시카와 하지메(시인)의 월급은 8엔에 지나지 않았다.

(나쓰메 소세키는) 이런저런 이유로
생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이해부터
메이지 대학에도 출강해 월급 30엔을 받고 있었다.

"돈이 궁하진 않아. 어차피 <호토토기스>에 실을 거네.
다카하마 군이 잘 봐준다고 해도 1매 당 50전이 고작이겠지."

-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가와 나쓰오 글, <[도련님]의 시대 : 나쓰메 소세키>

* <[도련님]의 시대>의 시작부분인데 처음부터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인상적. 돈 이야기는 작품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언급된다. 소세키는 돈 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소세키의 작품 세계와 막스 베버의 이론을 다루는 강상중의 <고민하는 힘>을 보면 소세키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돈 문제를 다룬다고 한다. <도련님>도 예외는 아니다. <도련님>은 중학교 교사로서 월급 40엔을 받았던 도련님이 철도기사로 직업을 바꾸면서 월급을 얼마를 받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며 끝난다.

* 만화를 쭉 읽다보면 라프카디오 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스 태생 아일랜드인인 그는 미국에서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일본으로 건너와 중학교 교사 생활을 한다. 메이지 29년(1896년) 그는 도쿄제국대학 강사로 초청을 받아 월급 400엔을 받는다.

헌은 서양인이지만 일본을, 특히 옛 일본을 좋아했다. 그가 일본에 귀화한 이유이기도 한데, 결과적으로 이점은 그에게 약점으로 작용한다. 당시 일본은 '신시대'를 부르짖고 있었던 것. 메이지 36년(1903년) 제국대학에서는 헌에게 강사 월급을 200엔으로 줄이기로 했다며 양해를 구한다. '유학하고 돌아온 일본인 선생'을 고용해야 하는데 대학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유학하고 돌아온 일본인 선생'은 다름 아닌 나쓰메 소세키였다.

* 나쓰메 소세키의 월급이 이것저것 합해 120-150엔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헌의 월급 400엔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절반인 200엔도 소세키의 월급보다 많다. 하지만 처의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헌에게 이 감봉은 타격이 컸던 것 같다. 대학의 자리를 뺏긴다는 것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신시대'의 일본에는, 일본을 좋아해서 귀화까지 한 이 사내가 있을 자리가 더 이상 없었다.

* 헌의 학생들은 유임 운동을 벌이며 신임 강사 나쓰메 소세키의 수업을 보이콧 하기도 하지만, 헌은 자리에서 물러난 지 3년 후 협십증으로 죽는다.

* 이 일로 나쓰메 소세키는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국비로 영국 유학을 다녀온 영문학자 나쓰메 역시 서구를 싫어했다. 무턱대고 서구를 모방하려는 '신시대' 일본도 싫어했다. 하지만 그에게 월급 120엔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허락한 것은 '신시대' 일본이었다.

* 나쓰메는 평생 신경증을 앓았고 주사가 심했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성공 이후, 그는 대학 강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된다.

* 돈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다. 매달 내가 버는 돈은 터무니 없이 적다. 그래서 생활에 어려움을 느낀다. 헌처럼 부양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나 하나 먹고 사는 게 힘들다. 뭐 나만 그런 것도 아니겠지. 이렇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진 않는다.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들었던' 60-70년대에는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생존에, 먹고사니즘에 매달려 있다는 게 끔찍하게 여겨진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는 시대의 성격, 시대의 지향에 의해 규정되고 만들어진다. 메이지 38년의 일본은 '신시대'를 지향했고 그러한 지향에 맞는 이들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2010년대의 한국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 것일까.

참고 사항으로만 언급되지만 나쓰메 소세키의 월급이 120-150엔일 때,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월급은 8엔이었다. 무시할 수 없는 격차다. 이사카와의 생활은 어땠을까. 그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았고, 또 시를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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