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아이 책비 ㅣ 맛있는 책읽기 30
김은중 지음, 김호랑 그림 / 파란정원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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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는 TV로 드라마를 본다. 영화를 본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이렇게 스토리에 이끌리는 것은 인간이 갖는 마지막 로맨스 같다. 옛날에는 스토리에 끌리는 욕구를 어떻게 해결했을가. TV도 없고, 영화관도 없고, 책도 흔치 않아, 일부 지식인들에게만 읽는 것이 허용되던 시절. 그 때에도 스토리는 사람을 한데로 모았다.

 

전기수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어도, 책비라는 직업 여성이 존재했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망설였다. 책이 어른 보라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동화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책을 읽어주는 일이 직업인 노비 신분의 여성, 책비. 그 매력적 소재의 이야기에 끌렸다.

 

당시 세책점은 지금으로 치면 사설 도서관 정도 되는 역할을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백성이 똑똑해지만 지배계급은 피곤해진다. 그래서 그들은 무지랭이 백성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고, 논리적 사고관을 갖게 될까봐 전전긍긍했다. 결국 마지막엔 탄압의 칼날은 번창하던 세책점에도 몰아닥치게 되지만, 이량이 신세를 지며 필사를 돕고, 책 배달을 다니는 시절엔 세책점은 최고의 번성기를 누렸다. 최서쾌의 세책점은 여러 루트들을 통해 끊임없이 신간들을 확보하고, 필사하여 권수를 늘리고, 많은 사람들 에게 빌려주었다. 사람들이 책값 대신 맡긴 세간은 집안 가득 쌓였고, 이야기의 힘, 사람들은 도시는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양반집 규수인 어린 이량이 책비가 되기 까지 이량은 한꺼번에 많은 시련과 역경을 겪게 된다. 붕당의 피해자로 풍비박산난 집안에서 아비는 제주도로 귀향을 가게 되고 어미는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손에 물 한방을 안묻히고 곱게 자란 무방비의 이량은 세책점의 필사와 궂은일을 하면서 세책점의 더부살이를 한다. 팥쥐 엄마같은 광양댁과 그집 딸의 눈총을 받으며 죽지 못해 겨우 살아가던 어느날 이량은 기생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자신이 책비 임무를 맡고 왔음을 알고, 치욕스러워 죽으려 한다. 책비란 노비 신분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곳은 진한 분냄새가 풍기던 기방이었다.

 

치욕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삶의 절박함이다. 물동이를 제대로 일 줄도, 냉이를 구분할 줄 모르는 소녀가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해 봤자미래는 뻔하다. 자신을 보호하던 피붓이들이 이미 떠난 후 혼자서 스스로 살아 남아야 했으며, 밥값을 벌어야 했다. 두 번째 계기는 우연히 만난 창희와 달희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책을 읽어주는 일의 의미, 그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보따리를 훔쳐 달아난 아이 창희의 동생 달희가 추위와 배고픔과 병마로 죽어가고 있었다. 힘없이 죽어가던 아이는 형에게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다. 이량은 보따리 속의 책을 꺼내 처음으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아이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 속 세상을 상상하며 행복해하며 마지막 눈을 감았다.

 

그녀는 책비가 되기로 결심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차곡 차곡 실행에 옮긴다. 그녀는 책 배달 심부름을 갈 때마다, 주인 마님에게 읽어드리면 좋아할 만한 사씨남정기 같은 책을 골라 함께 가져가서 읽어드렸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자신이 책비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견습삼아 읽어드리는 것이므로 사례는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조금씩 자신을 알려 나갔다. 예전에 안도 다다오의 전기에서 건축사 자격증도 없이, 대학을 나오지도 않은 그가 설계 일을 맡기 위해, 이곳 저곳 다니며 공터를 찾아 자기 마음대로 건물을 설계하고 주인을 찾아다녔다는 일화를 보는 것처럼 갑자기 부쩍 자란 이랑의 모습이 대견하고 뿌듯했다.


비록 노비 신분이 되었지만, 전문성이 인정되었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댓가를 받는 최첨단의 직업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게 된 이량의 이야기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동화이지만, 어른을 위한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나약하기만 했던 어린 소녀가 역경을 딛고 스스로의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과, 동화로 재현된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향한 목마름은 고도의 물질 문명과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진정 감동을 잃게 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책속의 그림이 참 좋았다. 조선시대 다양한 거리 풍경과 이야기 내용들을 동양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생생하면서도 정겹게 재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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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aladin.co.kr/minumsa/7006243

 

안녕하세요. :-) 민음사입니다.

민음사 신간 <스토리텔링 애니멀>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수만 년 전 원시인에서 현대의 영화 관람객까지,

인간을 사로잡는 스토리텔링의 모든 것

 

 

 

 

 


스토리텔링은 생존의 기술이다
이야기는 인류 진화의 핵심 요소이자
성공적인 미래의 필수 조건이다

 

 

인간을 웃기고 울리는 스토리텔링의 정체는 무엇인가?
문학적 질문에 과학으로 답하다

 


과학적 인문학 운동의 선두 주자인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진화 생물학, 심리학, 신경 과학의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능을 밝힙니다.

 

 

 

 

김탁환 (소설가) 

: 유쾌하다. 맑다. 위험하고 짜릿하다. 조너선 갓셜은 이야기판의 인파이터이다. 응달에서 양달까지, 현실에서 꿈까지, 지옥에서 천당까지, 영웅에서 독재자까지 상대를 바꿔 가며 거침없이 맞붙는다. 시각 청각 공감각 가리지 않고 변화무쌍하게 나아간다. 카운터펀치에 쓰러지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밤하늘의 별 하나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고른다. 돈과 실용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이야기족의 승리를 확신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신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 그 용기가 놀랍고 그 사랑이 벅차다.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통섭』의 저자, 퓰리처상 수상자) 

: 아주 훌륭한 책이다.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를 사로잡으며, 이 이야기들을 한데 엮어 스토리텔링이 어째서 인간의 근본적인 본능인가를 설명해 낸다.

 

 

 

▶ 『스토리텔링 애니멀』서평단 모집 상세내용


하나, 리뷰 페이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읽고 싶은 이유와
간단하고 성실하게 댓글로 작성하여 스크랩 링크와 함께 남겨주면 응모가 완료됩니다.

둘, 응모 기간은 2014년 05월 12일(월)~2014년 05월 14일(수) (3일간) 입니다.


셋, 총 추첨 인원은 10명입니다.


넷, 발표일은 2014년 05월 15일 (목) 오후에 공개됩니다.


다섯, 서평기간은 2014.05.16(금)~05.25(일) 10일간입니다.
       
마지막, 당첨자 분들은  서평을 작성 한 후『스토리텔링 애니멀』서평 발표 페이지에 개인블로그/예스24 블로그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서평단 지원자가 모집 인원에 미달할 시,

출판사의 의도에 따라 일부 인원만 선정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작성하지 않을 시에 다음 서평 모집 시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민음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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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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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사람이 죽기전에 체결하지만 계약의 이행은 사람이 죽어야 이루어진다.  죽고 난 다음에 계약자가 그 계약을 이행했는지 안했는지는 죽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살아있는 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 죽기 전에 바랐던 죽음 후의 일을 위해, 죽기 전에 남겨 놓은, 삭제되기 바랐던 것들을 찾아 때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죽은 이는 죽은 후에 남겨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자신의 흔적들이 실제로 지워졌는지 안 지워졌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죽음 후에 그 아무것도 없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무의를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쓸 수 있는 대가를 우선 지불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까. '왜'라는 질문은 필요없다. 누구나 남기고 싶은 것이 있고 지우고 싶은 것이 있다. 죽기 전에. 사람이 동물의 가죽 대신 남긴다는 이름 석 자에 따라다닐 불명예와 치욕과 수치의 흔적을 함께 남기고 가고 싶지 않다는 건 사후 세계를 믿던 안 믿던 인간의 본능일 지도 모른다. 살아있을 때 사랑받고 싶은 것, 죽었을 때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것. 비밀이란 그런 것이다. 수치와 불명예 치욕, 그리고 탐욕스런 자신의 모습...

 

죽으면 없애야 할 물건이라면 살아있을 때 본인이 직접 없애는게 좋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죽으면 없애야 할 치욕이 살아 있을 땐 마지막 숨을 쉴때까지 붙들고 싶은 욕망이다.  죽으면 없애고 싶은 무의미들이 살아 있을 땐 삶의 이유다. 영혼이 숨을 쉴 때 그 영혼 곁에 찰싹 붙어 자아가 되는 것이, 죽어서 영혼이 없어지면 이름과 함께 하기를 거부하는 것들. 사라져야 하는 것들. 소중하면서도, 무용한 것. 애착이면서도 모욕인 것. 그것이 딜리팅의 타겟이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 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328

비밀의 가치에 따라 비용은 달라진다. 그 비밀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야 하겠지만, 구동치는 얼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비밀인가에 따라 가격을 정했다. 그리고 나서 구동치는 삭제하기로 약속한 죽은 사람의 비밀을 완전삭제하지 않고, 자신만의 깊은 우물 속에 숨겨 두었다. 그 우물 속 비밀은 현실의 세계속에서는 삭제되었지만, 구동치에겐 자신만의 비밀이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그들만의 이야기를 숨겨두고, 구동치 자신도 그 속에 침잠했다.  그가 삭제해야 할 물건들을 삭제하지 않고 혼자만 아는 장소에 깊숙히 보관했던 이유를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의 임무 수행이라는 것이 결국  아무 것도 손에 쥘 수 없는 허무 자체이다. 임무는 완수했으나, 일을 맡긴 고객은 이미 죽어 없다. 그를 잘했다 못했다고 평가해주거나 감사해할 고객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라야 일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때로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데서 느꼈을 공허감을 구동치는 죽은 사람의 은밀함을 공유하는 데서 찾았을까.

 

나는 어쩌다 딜리터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없애기 위해 이렇게 힘들게 찾았내야 할 때, 어렵게 찾아서 없앴지만   고마워 해줄 사람은 이미 죽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불현듯 딜리터로서의  환멸이 찾아 들었다. 손에 쥘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173

 

계약은 사람이 죽기전에 체결하지만 계약의 이행은 사람이 죽어야 이루어진다.  죽고 난 다음에 계약자가 그 계약을 이행했는지 안했는지는 죽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이미 죽은 사람이 죽기 전에 바랐던 죽음 후의 일을 위해, 죽기 전에 남겨 놓은, 삭제되기 바랐던 것들을 찾아 살아있는 자는 때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죽은 후에 남겨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자신의 흔적들이 실제로 지워졌는지 안 지워졌는지 죽은 이는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죽음 후에 그 아무것도 없으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의 무를 위해 살아있는 자는 살아 있는 동안 쓸 수 있는 대가를  죽음 후를 위해 우선 지불한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까. '왜'라는 질문은 필요없다. 누구나 남기고 싶은 것이 있고 지우고 싶은 것이 있다. 죽기 전에. 사람이 동물의 가죽 대신 남긴다는 이름 석 자에 따라다닐 불명예와 치욕과 수치의 흔적을 함께 남기고 가고 싶지 않다는 건 사후 세계를 믿던 안 믿던 인간의 본능일 지도 모른다. 살아있을 때 사랑받고 싶은 것, 죽었을 때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것. 비밀이란 그런 것이다. 수치와 불명예 치욕, 그리고 탐욕스런 자신의 모습...

 

죽으면 없애야 할 물건이라면 살아있을 때 본인이 직접 없애는게 좋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죽으면 없애야 할 치욕이 살아 있을 땐 마지막 숨을 쉴때까지 붙들고 싶은 욕망이다.  죽으면 없애고 싶은 무의미들이 살아 있을 땐 삶의 이유다. 영혼이 숨을 쉴 때 그 영혼 곁에 찰싹 붙어 자아가 되는 것이, 죽어서 영혼이 없어지면 이름과 함께 하기를 거부하는 것들. 사라져야 하는 것들. 소중하면서도, 무용한 것. 애착이면서도 모욕인 것. 그것이 딜리팅의 타겟이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 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 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328

비밀의 가치에 따라 비용은 달라진다. 그 비밀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위험을 무릅써야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야 하겠지만, 구동치는 얼만큼의 비용을 지불하고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비밀인가에 따라 가격을 정했다. 그리고 나서 구동치는 삭제하기로 약속한 죽은 사람의 비밀을 완전삭제하지 않고, 자신만의 깊은 우물 속에 숨겨 두었다. 그 우물 속 비밀은 현실의 세계속에서는 삭제되었지만, 구동치에겐 자신만의 비밀이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그들만의 이야기를 숨겨두고, 구동치 자신도 그 속에 침잠했다.  그가 삭제해야 할 물건들을 삭제하지 않고 혼자만 아는 장소에 깊숙히 보관했던 이유를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의 임무 수행이라는 것이 결국  아무 것도 손에 쥘 수 없는 허무 자체이다. 임무는 완수했으나, 일을 맡긴 고객은 이미 죽어 없다. 그를 잘했다 못했다고 평가해주거나 감사해할 고객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라야 일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때로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일을 계속 해야만 하는 데서 느꼈을 공허감을 구동치는 죽은 사람의 은밀함을 공유하는 데서 찾았을까.

 

나는 어쩌다 딜리터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없애기 위해 이렇게 힘들게 찾았내야 할 때, 어렵게 찾아서 없앴지만   고마워 해줄 사람은 이미 죽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불현듯 딜리터로서의  환멸이 찾아 들었다. 손에 쥘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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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혁 작가는 소설가로서 언제 가장 행복했느냐는 이동진의 질문에 소설을 쓰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초반부는 아직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힘이 들고 진도가 잘 안나가지만, 중반을 넘겨 캐릭터들이 각자의 개성을 갖추고 소설적 구도가 자리를 잡고 이야기가 절정을 향해 신나게 질주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독자로서 느낀 것도 작가와 같았다. 그의 고백은 이 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야기 초반 거의 1/3 지점까지 작가가 갈피를 못 잡고 힘겹게 써내려 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딱히 어렵게 읽힐 일이 없는 평이한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비중 없는 인물들이 개연성을 찾을 수 없는 잡담들로 노닥거리는 초반부를 읽어 내려가는 것은 조금 인내심이 필요로되었다.. B1F1에서 보여준 그 천연덕스럽고 능청스런 새롭고 신선하고 패기넘치는 재능 있는 젊은 작가는 어디가고 소재에 목마른 진부하고 피곤한 전업 작가가 대신 앉아 있는 건가 싶었다. 중반부가 넘어가자 이야기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사후 딜리팅이라는 매력적 소재를 충분히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성찰과 사색적인 문장으로 이어갔다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참고로 이 소설은 장르 소설에 가깝다. 조폭들이 활동하는 한국 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이야기 구조다. 전개가 자리를 잡아 가면서 캐랙터들과 친해지고 나면 이야기에도 속도가 붙고, 책장 넘기는 속도도 빨라지며, 흥미로와 지지만 내가 애초 김중혁 작가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었나보다. 마침, 소설의 초반부를 설명하기에 딱 알맞는 문장을 책 속에서 발견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섹스가 발단,전개,절정, 결말을 보여준다면 배우들간의 섹스는 전개와 결말 뿐이다. 수많은 전개들이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순간 끝이 난다. 208.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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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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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속에는 유대인의 역사가 있다. 역사는 성서를 낳았다. 그렇다면 성서는 역사 책인가. 아니다. 성서는 복음서다. 신을 찬양하고 받들며 예수의 종교적 메시지를 전하는 책이다. 동시에 성서는 시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기록 속에서 역사를 축출하는 일에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이 필요로될 것이다. 성서를 해석할 수 있는 언어적, 문화인류학적 기반지식과, 역사를 해석하고  종교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통찰력, 그리고 무엇보다 숭숭 구멍뚫린 기록의 부재를 틈 빈틈 없이 막아낼 수 있는, 정교한 논리로 무장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수십년동안 이런  작은 단서들을 한줄씩 꿰어 모아 맞춘 퍼즐을 역사라고 부르려면 논리와 감동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2천년 동안 문명과 문명을 통해, 문화와 문화, 민족과 민족 사이, 대륙을 넘고 대양을 건너 뿌리내린 종교적 믿음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빈틈없고 단단한 논리와 설득이 필요하다. 이란 태생, 작가이면서 종교학자, 복음주의 기독교에 심취했다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저자 레자 아슬란은 이 일에 도전했다.

 

실존했던 예수, 역사 속의 예수를 당시 사회, 종교, 정치적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거기에서 드러나는 예수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기대했던 모습과 다를 수 있다. 성서의 기록 속에는 2000년 동안 숭배받아온 한 사람의 행적과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적혀 있다. 그의 메시지는 전파되고 기억되고 확장되어 어떤 하나의 종교적 세계 속에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역사적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선언한다. 역사속에서 예수는 혁명가였다고.

 

종교냐 역사냐. 때로 이 둘은 상충한다. 그래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이 둘이 합치하지 않을 때 선택은 믿음의 양과 학문적 진실이라는 잣대 사이에서  부유한다. 성서의 목적은 복음의 전파이고 역사서의 목적은 전체 맥락에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목적이 다르면 사건을 기술하는 방법, 사건에서 골라낸 장면이 다르다. 어린 아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나서 줄거리를 말해보라고 하면 아기들은 영화의 전체 맥락보다는 자기가 기억하는 부분, 인상깊었던 부분만 이야기한다. 영화중 극히 일부분, 아주 사소한 장면 하나가 아이에겐 기억과 재생의 전부가 된다. 응 자동차가 방귀를 뿡 꼈는데 놀랐어.  신발을 물 속에 빠뜨렸는데 잡으려고 뛰어갔는데 신발이 키득 키득 자꾸 자꾸 도망가서 못잡았어. 어른들은 언제 자동차 경적 소리와 관련된 씬이 있었는지, 언제 신발을 가지고 노는 씬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말하는 장면은 유일하게 재생가능한 장면, 유일하게 기억하고 기록 가능한 장면이다. 그러니까 영화 전체의 줄거리와 맥락이 역사 라고 한다면, 6세 짜리 아이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다시 말로 기억을 재생해낼 수 있는 몇몇 장면들은 성서 속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저자의 역사적 맥락으로 해석하는 나사렛 예수와 성서 속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를 그렇게 이해했다.

 

이렇게 말 해도 될까. 나는 종교에 대해서 말할 때 조심스럽다. 누군가가 본 것을 내가 못 보았다고 '그것은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본인이 두 눈으로 확실히 보았을 때 본 사람은 단호하게 '그것은 있다'라고 말한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극명해서 충돌은 불가피하다. 조금 있는 것과 많이 있는 것, 조금 없는 것 많이 없는 것 사이에는 수많은 타협이 채워질 수 있지만,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안보였는데 보았다고 얘기 하는 것인지, 보아 놓고 못봤다고 시침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불확실하고 혼란스런 종교를 떠난 이유는 보이는 것과 보았다고 리드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세계와의 모순 사이에서 갈등했고 언젠가 봤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꺼라던 꿈을 잠시 접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정말? 정말 내가 종교를 떠났을까? 다른 말로, 내가 떠났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곳에 속해 있었고, 그곳에 속해 있었다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그러니까 부활한 예수의 모습을 보았던 것일까? 다시 다시. 내가 뭘 보았거나 말았거나 내가 정말 떠나기나 한걸까. 나는 거기 미련이란 걸 두고 껍데기만 빠져나와 홀가분히 잊어버리고 말면 될 것이었나.

 

이 책은 역사서이다. 적어도 세 개의 파트 중 첫번째 파트는 완전히 역사서이다. 예수가 태어나가 약 1세기 전부터 십자가 사건이 있고 난 후 1세기 후까지 팔레스타인 지역의 로마 점령과 유대인들의 저항등의 고대 역사를 매우 흥미롭게 전하는 대중을 위한 역사서다. 책의 반을 역사에 할애하는 이유는 성서 속 예수가 살았던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예수를 역사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배경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 아슬란은 그 시대의 역동적인 역사적 배경을 흥미롭게 그려냄으로써 역사적 인물로서의 혹독한 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역사적 예수를 독자에게 설득하는데 이미 반쯤 성공했다. 여기에 역사의 본질이 있다. 개인을 보면 답이 안나오는 것도 역사 속에서 보면 한 줄기 빛처럼 개인의 행보에 대한 그 목적과 의식이 선명히 보인다. 역사속에서 유대의 지도자들,  대제사장들과 귀족 계급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고 그들의 개가 되어 민중을 픽박하고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려 신과 예법을 이용했다(특히 신성모독과 압제에 대한 저항으로 400년만에 이민족의 통치에서 벗어나 겨우 한 세기 동안 자기들의 '신성한 땅'을 스스로 통치한 하스모니아 왕가의 후손들은 스스로 나라를 로마에 바쳤다.) 백성들은 민족의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했다. 로마 총독과 점령군을 몰아내고, 썩어 빠진 유대 종교 지도자와 유대 귀족들을 파멸시키고 민족을 해방시키고 그들의 통치할 실제적 왕이 필요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혁명가가 되어  메시아를 자처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며 대중을 선동하고 지배계급에 폭력적으로 저항하며 다녔고 그러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거나 석형에 처해졌다. 예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진 수많은 혁명을 꿈꾸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것이 레자 아슬란이 역사속에서 찾은 진실이고, 단호하게 내린 결론이다.

 

보이지 않는 것 두 개의 상반된 견해. 모순되고 상반된 견해들이 공존한다면, 개인의 선택에 따라 진실은 편리하게 공존한다. 개인이 직접 볼 수 없다면 믿는 것이 진실이 되고, 개인이 직접 보았다면 본 것이 진실이 된다. 어떤 한 개인이 보았다는 사실이 역사와 논리에 모순된다면 개인이 본 것은 쉽게 허상이 될 수 있지만, 많은 집단이 2천년을 넘게 보았다고 믿어왔을 때, 그것이 역사와 논리에 모순된다면 역사는 시간 속에 묻혀버린다. 어쨌든 과거는 시간 더미 속에 묻혀버렸다. 나는 궁금하다. 진실을 본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본 것과 믿는 것의 차이를 떼어낼 수 있는지. 음성을 듣고, 방언을 하고, 십일조를 내고,  월급보다 많은 건축 헌금을 내고, 평온한 주말 집집마다 벨을 눌러 아침잠을 깨우고 말씀을 전하러 다니는 선량한 교인들 하느님의 자식들, 또 대형교회의 비리와 목사직의 제왕적 세속을 지지하고, 더 큰 파이 조각을 갖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이 진정 본 것. 그들이 들은 진짜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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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현대문학의 거장 필립로스에게 퓰리처 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 미국의 목가가 드디어 국내 출판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에브리맨>과 <포트노이의 불평>만을 읽어보았지만,  필립 로스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강렬했던 시절인 1960년대와 그 시대를 관통하던 격동을 잘 담아낸, 자신이 완성한 서른한 편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는 <미국의 목가>는 국내 번역본은 구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1997년에 발표되었으나, 국내 번역본은 처음 출판된다.  이 작품에서 필립로스는 이제껏 싸워왔던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몰락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팍스아메리카나의 위상에 도취되어 한껏 달아오른 미국의 취기가 베트남전쟁의 실패와 맞물리며 어떻게 한순간에 사라지는지를, 그 몰락의 파도 속에 개인의 삶이 어떻게 비극 속으로 휩쓸려 가는지를 예리하게 펼쳐 보인다.'고 한다. 기대되는 책이다.

 

타임리핑 이라면 언제든지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소재이다.  제이슨 모트 장편소설. 군더더기 없이 우아한 문체와 깊은 감정 표현으로 푸시카트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된 제이슨 모트. 돌풍처럼 등장한 신인 작가 제이슨 모트는 <더 리턴드>에서 인간의 본질과 믿음, 도덕성, 사랑, 그리고 책임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해럴드와 루실 부부의 아들 제이콥은 1966년 여덟 살 생일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은 제이콥이 없는 삶에 익숙해져 갔고 그들의 상처는 시간의 은총으로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불가사의하게 피로 범벅이 된 제이콥이 문 앞에 나타났다. 놀랍게도 그들의 사랑스러운 아이는 여전히 여덟 살이었다.

제이콥 때문에 시간의 흐름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는 더 완벽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제이콥은 그 오랜 세월을 보란 듯이 건너뛰어 예전과 똑같은 아이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제이콥의 불가사의한 귀환은 전 세계적으로 죽었던 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전대미문의 현상 중 하나였다. 전 세계에서 죽었던 이들이 살아 돌아오고 있었다.

 

 

27살에 유학생 신분으로 처음 미국 땅을 밞은 후, 천안문 사테로 이민자가 되기로 결심한 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과정이 소설의 내용인 듯하다. 고단한 이민 1세대의 삶과 성취를 그려낸 소설이다.  <기다림>으로 으로 펜 포크너상과 전미도서상을 동시에 수상하고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까지 오르는 성과는 영어를 Second 언어로 습득한 이민 1세대에게는 실로 놀라운 성취일 듯하다. 시공사에서 나왔다. 두 권인데 각 권 500~6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

 

 

 

 

 

 

 

딱 1년 전 소금을 출간하고 나서, 1년만에 새 소설을 냈다. 출판사 홈피에서 소개하는 줄거리가 흥미롭다.

 

주인공 ㄱ은 어렸을 때 오빠와 부모를 차례로 잃었으며, 한때 작가를 지망했고 결혼에 실패한 여자로 지금은 '소소'시에 내려와 살고 있다. 남자인 ㄴ 또한 어렸을 때 형과 아버지가 모두 1980년 5월, 광주에서 살해당하고 어머니가 요양소에 가 있으며, 그 자신은 평생 떠돌이로 살아왔다.

또 다른 여자 ㄷ은 간신히 국경을 넘어온 탈북자 처녀로, 그녀의 아버지는 국경을 넘다가 죽고 어머니는 그녀가 증오하는 짐승 같은 남자와 함께 살고 있으며, 그녀 자신은 조선족 처녀로 위장해 어머니에게 돈을 부쳐야 하는 고된 삶을 살다가 소소까지 찾아들었다.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파르게 넘어온 자들이 소소에 머무르게 된다.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소소한 풍경>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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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2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4-05-02 11:30   좋아요 0 | URL
앗, 어디에 연결해놨을까요. 저도 방금 서재 가니 제 답글이 안연결돼있어서 어디에 연결되어 있나 찾다 찾다 그냥 왔는데..
판매하고 있기에. 그냥 추가했는데.. 6월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