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환상 문학의 원형 혹은 영감이 된 북유럽 신화는 아쉽게도 그 원전이 많지 않다. 문제는 많지 않은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문제다. 많은 고대 신화를 가진 문화권에서 글이 존재했던 것과 달리, 북유럽 '야만인'들에게 문자는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들어왔기에, 기독교 이전 문화에서 흥하던 버전의 신화는 사라져 없어졌고, 기독교의 영향하에서 묘하게 섞인 형태로 신화가 기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에다이야기>의 역자가 한 말인데, 유일신 사상이 뿌리박힌 후라면, 신화 내에서 신들 사이의 권력 질서도 유일신 사상의 영향을 받아 대표신의 존재 같은 것들이 부각되는 형태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을테니, 더 오래전에 노래하던 스토리들과 현재까지 남아있거나 발견된 스토리 사이의 갭을 가늠하지도 상상할 수도 없음이 아쉬울 수밖에.
책이 흔치 않았던 당시 신화는 스컬리(음유 시인)들이 노래로 전해졌을 거다. 닐 게이몬의 서문에서 그나마 산문의 형태로 신화가 남아있을 수 있던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음유 시인들이 신들을 지칭할 때 토르니, 로키니, 오딘이니 하는 형태로, 그러니까 우리가 현재 (서구식으로?) 사람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직접 이름으로 신들을 지칭하지 않았으며, 은유 환유 직유 등등의 비유로 그들을 지칭하였으므로 지칭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려면 설명이 필요했다. 그 은유의 뜻을 풀어 남겼기에 신화의 기록이 남겨졌다는 이러한 설명은 내가 을유의 <에다 이야기> 2부 스컬리들의 시창작법을 읽으면서 이게 뭐야 했던 의문을 해소시켜주었다. 물론 2부를 읽으면서 대략 닐게이몬과 비슷한 이유를 짐작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산문에다가 왜 그토록 불친절한 것인지가 더 이해가 된다. <에다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직접 소비되는 문학이 아니라 말하자면 도매점 같은 걸로 스컬리들이 신화를 노래하기 위해 알고 있어야 하는 신화의 뼈대 핵심 이야기만을 써놓은 것이라는 추측이다. 전체 문맥을 이해하면 거기서 흥미로운 부분을 가져와 각색을 하고 운율을 맞춰 운문으로 노래하고 전달되고 아마도 그렇게 이야기는 시대와 시대의 경계를 통과해갔을 것이다.
이 책에 있는 스토리들은 내가 북유럽 신화 책으로는 유일하게 읽었지만 또 국내 유이무이한 원전인 <에다 이야기>에 나와 있는 스토리들이 대부분이다. <에다이야기>에 뼈대만 앙상하게 붙어 있어 이야기의 완전한 모습, 그러니까 그 이야기속의 인물들의 생각과 의도와 성격 등등을 상상하기 어려운 반면, 닐 게이몬의 북유럽 신화는 그 뼈대에 이야기꾼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각 인물과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볼 수 있다. 왜 안그렇겠는가. 한 두 장에 쓰여진 이야기가 수십장의 페이지로 변모했는데, 프로페셔널한 작가인 닐 게이먼은 남아있는 운문 신화들과 해석, 사전들을 꼼꼼히 조사해서 찢겨져 나가거나, 공백인 상태였던 이야기와 행위의 틈새를 채웠고, 그 사이사이를 환상작가적 상상력으로 꼼꼼히 메웠다.
얼마 전개봉한 토르 라그나로크를 관람하지는 않았지만, 몇몇 질좋은 리뷰를 통해 얻어들은 얘기를 종합해보면, 로키와 토르 사이가 티격태격 코믹하게 그려졌으며 제작사의 온갖 히어로들이 떼로 나와 플레이를 펼치는 면에서 어벤져스의 아류적 성격도 띤다고 하는데, 이런 요소들이 지나치게 상업적 추구에서 나온 결과로 재미 말고는 볼 게 없다는 의견도 있는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 그렇다면 오히려 북유럽 신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거다. 어벤저스처럼 북유럽 신화는 수많은 영웅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이야기를 갖는다. 다른 신화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유일신 이전의 신들은 각 지역 혹은 문화에 따라 숭배하는 신들이 각기 다르고, 그들의 지역 혹은 문화의 흥망성쇠가 어떤 운명을 따라갔는지에 따라 신들의 스토리와 운명도 달리한다. 그러니까 (이건 내 상상) 많은 종족들이 흡수 통합되어 하나의 나라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그들이 믿던 수많은 신들 역시 하나의 스토리로 통합되어 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패배자가 믿던 신들의 원형은 악한 신으로 굳어졌을 거야. 그러니 수많은 히어로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능력을 과시한다면, 토르 한 명에게만 집중되었던 이전 버전의 토르 영화보다 더욱 북유럽 신화적이라고 볼 수 있다.
토르와 로키 둘이 티격태격 코미디같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닐 게이먼의 북유럽 해석과 맥을 같이 한다. 로키는 굉장히 복합적인 인물이다. 그는 아스(에세르) 신족 출신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아스 신들과 같이 살며 운명을 공유하는 경제공동체로 보이는데, 교활하고 못된 로키를 아스 신들과 어울리는 이유는 아스 신들이 뭐 멍청하거나(아스 신들이 멍청한 건 맞지만, 로키랑 같이 사는 이유가 멍청해서는 아니다) 혹은 자비로와서 갈 데 없는 로키를 맡아주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로키에겐 다른 신들이 갖지 못한 두 가지 능력이 있는데, 하나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능력이고 또 하나는 문제해결능력이다. 이러한 로키의 특별한 능력이 신들이 난처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진가를 발휘해 위기에서 해결해주기에 못된 짓을 업으로 일삼아도 참고 살아가는 한편, 신들 역시 피장파장 못되기는 마찬가지여서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못된 걸로 갈라설 필요가 없다. 로키의 탁월한 교활함이 멍청한 신들의 교활함을 보조하는 식이다. 필요할 땐 돕고, 심심할 땐 괴롭히고 못되게 구는 게 로키의 특성.
신들이 노한 건 로키가 자신들보다 더 못돼서가 아니라 더 못되고 더 교활 혹은 영리해서다. 그는 하고 싶은 건 다 한다. 아름다운 금발인 토르의 아내에게서 머리카락을 뽑아가 하루 아침에 대머리를 만들어버리는 자잘한 일에서부터, 결국 자신을 유배시키고 라그나로크로 이어지게 하는 재앙들의 원인이 되는 발드르 살해 교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발드르가 불길한 꿈을 꾸자, 신들은 모든 사물과 생명체들에게서 그를 해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는데, 너무나 여리고 사소해서 그런 다짐을 받지 않았던 겨우살이와 발드르의 눈먼 형제를 조정해 결국 그를 죽게 하기에 이른 로키가 헬에 가서 부탁부탁해 그를 살려내려는 노력에도 방해를 하고 다니자 결국 신들의 대노를 사서, 피해 도망다니다가 잡혀서 독뱀에게 죽게 되다가 그가 낳은 세 괴물들과 거인들이 힘을 합쳐 신과 대결하는 게 라그나로크이며, 그 대재앙에 해와 달을 포함한 모든 것들은 파괴된다.
북유럽신화에서 신들 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 혹은 생명체들은 저마다 자신의 필살기를 가지고 있는데, 이 필살기들은 도구와 관련이 있다. 누구든 때려잡을 수 있는 토르의 망치 묠니르가 대표적인 예인데, 인류 아니 신류 대멸망의 날인 라그나로크때에야 그 중요성을 알게 되지만 아내를 얻기 위해 버린 프레이르의 명검, 세상의 온갖 정보를 전해주는 오딘의 까마귀 후딘, 죽은자들의 군대, 종이처럼 접었다가 펼칠 수 있는 무풍 지대에서도 어디든 갈 수 있는 강력한 배 스키드블라드니르, 낮에는 마차를 끌고, 저녁엔 잡아먹히지만 다음날 되살아나는 토르의 염소 두 마리 등등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고, 이들 물건들에는 각각 이름이 붙어있다. 토르의 망치가 말해주듯, 이 물건들은 개인의 능력을 결정하는 중요 수단이며, 이들의 활약은 이야기 전개에 주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신화에서 라그나로크는 미래의 이야기이다. 신화 자체가 과거에 쓰여진 이야기이므로, 과거에서 말한 미래가 이미 지난 미래를 말하는 것인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먼 미래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성경이나, 혹은 예언가들이 말하는 최후 심판 혹은 지구 멸망 같은 것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이며 아무도 알 수 없기에 결론은 해석과 믿음의 몫임에 비해, 라그나로크의 결말은 이미 지나간 일처럼 결정되어 있다. 이 결말은 모든 것이 파괴되는 재앙적 결말이지만, 낡은 것들이 모조리 파괴되어 사라진 후,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결말이고, 시작과 끝이 순환하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저자 닐 게이먼도 이 질문을 하고 있다. 라그나로크는 과거의 일인가 미래의 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