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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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덴마크 왕자 햄릿>은 이미 선왕인 아버지가 죽은 후 삼촌이 왕위를 계승받은 상태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삼촌이었음을 알게 뒤는 과정, 복수의 칼날과 삼촌의 또다른 음모와 계략,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 등이 반전을 거듭하며 발생하는 복잡한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큐언의 현대적 재해석은 복잡한 플롯과 다수의 등장인물이 생략된 채 살인 사건의 진행에 집중한다. 존과 별거중인 트루디와 존의 동생 클로드가 벌이는 존 살해 사건을 태아의 시선으로 잡았다. 세익스피어의 대본이 살해 사건 후에 일어나는 아들의 복수극과는 달리, 이 소설은 핵심 내용으로만 보자면 햄릿의 현대판 프리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 햄릿의 가장 큰 주제인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아들이 태아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의식이 생겨나려면 뇌가 여러 감각기관에 의해 자극을 받아 뇌신경이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태아가 받는 자극이라고는 이해할 수 없는 태외 세계의 소음과 땅콩껍질같이 자신을 둘러싸고 가둔 자궁 뿐이다. 어머니의 혈액을 통해 공급되는 영향 성분들도 태아의 상태에 얼마간 영향을 줄 것이다. 햄릿의 재해석답게 태아는 배속에서도 생각이 많다. 의식이 생겨나기 전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차원의 추리와 상상력과 느낌은 성인의 언어로 대변하지만, 실제로 태아의 경험과 희미한 의식은 출생과 동시에 전혀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면서 망각 혹은 다른 차원의 의식 속으로 증발할 것이다. 전생의 기억(만일 있다면)이 잊혀지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 망각의 강이 흐르듯 태아적 의식이 우리가 알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가 알수 있는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세계로 빠져나옴과 동시에 연속성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언어로 쓰여진 태아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인식은 그 언어를 이해하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며 태아의 출생후 스스로의 사고와는 유리될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돌이켜본다면 선왕 사후의 햄릿만큼 목숨이 위태로운 자리가 없다. 왕을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자가, 선왕의 자식이 살아있을 동안 마음 편할 수 없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유배시키고 교살한 것도 다 이유가 있지 않은가.  단종은 존재만으로도 수양대군의 왕권을 위협한다. 햄릿 역시 마찬가지다. 선왕의 유일한 적통 적자이며, 추종자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햄릿이 설사 선왕 살해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해도 왕권장악의 음모와 실행은 햄릿을 죽여야 완성될 것이다.


트루디와 클로드가 노리는 것은 존의 재산이다. 대저택을 소유한 시인 존은 트루디와 별거할 때 집을 양보했지만 아내를 여전히 사랑하며 집으로 돌아오기를 원한다. 그러나 존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 아내 트루디는 형의 동생 클로드와 연인 사이이고, 어서 그 낡아빠진 저택을 처분하여 현금을 차지하고 싶다. 현대의 과학수사 시대에 둘이 꾸미는  흉계는 치밀하지도 않고 실행력과 스피드만 갖췄다.  태아는 뱃속에서 그 모든 것을 목격한다. 이미 삼촌과 같은 배를 탄 어머니가 아버지와는 다시 합칠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이 무사히 태어나 보살핌을 받게 되려면 어떤 쪽이 유리할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클로드도 태아의 출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알고, 살해 계획이 성공했을 때, 그리고 체포되어 구속되었을 때 등의  모든 상황을 상상한다. 넛셀 속의 태아는 무능할 뿐이다.


아버지의 상실과 클로드와 어머니의 역겨운 관계에 좌절한 태아는 탯줄로 목을 감아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죽고자 하는 의식은 의식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고 의식이 빠져나가면서 자살하고자 하는 의식도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자살이 힘든거다. 죽고자 하는 의식을 살아 있는 의식이 붙잡아야 하는데, 의식이 죽으면서 죽고자 하는 의식마저 함께 죽으니 탯줄로 스스로 목을 조이는 일은 실패한다. 태아는 앞으로 출생 후 둘 중 하나의 운명이 됨을 알고 개탄한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어디론가 보내지던가, 어머니와 함께 감옥에서 태어나 감옥에서 유아기를 보내게 되던가. 그 무엇도 원치 않은 일이지만, 태어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한다. 영겁의 우주 속에서 순간적으로 반짝였던 80 평생 자신의 삶이 쓰게 될 책을 읽을 권리가 있다는 거다.


전체 사건이 태아가 듣고 느끼는 시각으로 조명되었기에, 세 사람 모두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단지 태아가 감지하는 마음으로만 알 수 있다. 만삭이 된 어머니는 낡아빠진 대저택을 돼지소굴처럼 만들고, 썩은 냄새를 피우고 집안을 엉망으로 한 채, 만삭의 상태로 클로드와 섹스를 한다. 어머니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와 뉴스를 통해 세상을 아는 태아는 그럴 때마다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종반의 긴박한 상황으로 치닫자, 그 절망적 상황에서 태아가 할 수 있는 일, 배 속에서,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일이 있음을 깨닫...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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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5-25 21:11   좋아요 2 | URL
그런데 희안하게도 고대 중국에서는 선양이 미덕이었대잖아요? 존경받기 위해서 선양하고 거절하고 이러기를 몇차례씩 하는 허세가 중국인의 의식 속에 있는동안 왕권을 빼앗을 명분을 만드는 일도 참 피곤했겠어요 ㅋ

AgalmA 2018-05-2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면 이상한 게요. 모성이야 몸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유대를 느끼기 쉽지만 부성 거기다 아버지를 위한 복수 감정을 태아가 가진다는 게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 됩니다. 라캉 거울단계를 거쳐 자아 인식을 뚜렷이 가지는 게 인간인데...

CREBBP 2018-05-25 21:1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이상한 거는 소설 자체가 이상하죠. 대체 태아가 의식이 있다는 설정부터 말도 안되니까요. 더더군다나 세살 돌아가는 소식도 다 알고 지식도 많죠. 저렇게 바깥 소식도 다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채로 태어나면 뭐 초중고 교육은 필요도 없겠죠 ㅋㅋㅋ

AgalmA 2018-05-25 21:15   좋아요 0 | URL
책을 읽어야 작가 논리에 동의할지 말지 결론나겠군요ㅎㅎ

CREBBP 2018-05-26 12:22   좋아요 0 | URL
이게 읽을 때는 태아의 시각이라 뭔가 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뱔점을 낮게했었는데 돌이켜 보니 정말로 낯선 방식의 새로운 시도였다는 생각과 함께 오 작가가 대단해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