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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전쟁에서 죽은 모든 자들은 그 전쟁을 거시적으로 얼마나 이해했을까. 가령 그들이 싸우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라든지, 누구를 위해서라든지 혹은 어떤 것을 쟁취하거나 수호하기 위해서라든지 그런 것들 말이다. 전쟁 소설의 전범이 된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전쟁 속 병사들은 더이상 사상 수호를 위한 명예로운 전사로 미화되지 않는다. 부품화된 개인의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룬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리얼리티를 느꼈다면 이 소설이 주는 전쟁의 모습이 그닥 참담하게 느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고 사지가 절단되는 장면이 더이상 자극적이지도 않게 된 현실은 이 세계가 전쟁을 비롯한 폭력적 컨텐츠를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다루면서 둔감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반공 교육을 받던 시기여서, 한국전을 바탕으로 한 전쟁 드라마와 영화도 봐왔던 터였음에도, 기억 속의 이 책은 끔찍함만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허리 아래에서 반토막이 난 병사의 하체가 상체 없이 뛰어가는 장면, 참호에서 죽어가는 적군과 지내는 장면, 엄청난 수의 이를 잡는 장면, 팔다리를 사정없이 절단하는 장면 등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너무 어두워 힘들었던 걸로 기억과 달리 밝고 때로 유머러스 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겨우 20살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철딱서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이다. 좋은 시절을 만나 학교가 짤려 땡땡이 치고 하루 종일 방황하며 이사람 저사람 만나고 다니던 홀든 콜필드와 비교하면 18세에 전쟁터로 내몰려 서부전선에서 죽어간 파울 보이머와 반 친구들은 얼마나 보잘껏 없이, 파리처럼 개미처럼 생을 마감했는가. 그들이 전탱터에서 나누는 대화들과 시시한 농담들은 파울 보이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뛰어놀 나이는 지났지만, 여전히 철부지에, 여전히 사소한 것들이 신기하고 즐거운, 같은 반 아이들은, 담임 선생 칸토레이의 장황한 연설에 이끌려 모조리 자원입대하게 된다.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10주 훈련을 받으며 네 권으로 된 쇼펜하우어 전집보다 잘 닦은 단추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10주 이후, 그들의 개인적 인격은 사라졌고, 단지 전쟁터에서 부품화되어, 할당된 임무만을 마치는 존재로 변했다. 개인의 공포, 개인의 불안, 개인의 부상, 개인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전쟁과 전쟁 뒤에 숨은 논리에 의해 모두 부정되는 현실이 작가가 그려놓은 현실이며, 이 실상을 그대로 옮겨 놓음으로서 전체주의 국가에서 개인이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말로 따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했다. 당연히 나치가 이 책을 가만 놔뒀을 리가. 작가는 망명했고, 책은 불태워졌다.
전쟁이 아무리 개인을 소모품으로 만든다고 해도, 인간은 로봇이 아니며, 아무리 억눌린 곳이라고 해도 인간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감정과 욕망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보급이 신통치 않던 서부 전선에서, 중대원들이 전선에서 막 전투를 마치고 후방으로 돌아오자, 뜻하지 않는 좋은 일이 생긴다. 보급반에서 150명 전원 무사히 돌아올 걸로 예상하고 전원의 식사를 준비했는데 70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해 실려가고 살아남은 80명이 150명 분의 식사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급 친구였던 캐머리히가 이 전투에서 다리가 절단되고, 옆에서 보기에 희망이 없어보이자, 뮐러는 그의 장화에 눈독을 들여, 팔머의 눈총을 산다. 하지만 뮐러에게는 누가 장화를 손에 넣건 케머리히는 죽을 것이며, 그에겐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고, 뮐러에게는 유용한 물건이고, 자신이 위생병보다 훨씬 더 우선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제 죽게 될 지 모르는 병사들이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당장 발에 맞는 한 쌍의 장화가 필요하고, 당장 두 배로 배불리 먹을 식사에 흡족해 할 수 밖에 없는 조건에 내몰린 인간들은 다름아닌 아직 세상에 나서서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홀든 콜필드처럼 좌절조차 해 볼 기회를 갖지 못한 어린 병사들이다.
1차 대전 당시 서부전선은 참호전의 대치 상태로 엄청난 희생자를 낳았는데, 결국 처음 150명의 중대원들이 80이 된 후, 전선에 한 번씩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반씩 떨어져 나가, 나중에는 다른 중대원과 합해지고, 더욱 어린 신병과 보충병들로 대체되나, 전투경험이 없던 그들은 낙엽처럼 쓸려넘어진다. 그런 참혹한 와중에서도, 병사들은 서로와 서로를 의지하고 신병들을 보호한다.
전쟁 이야기가 그렇듯 일화들이 모여서 전체 이야기를 이룬다. 따라서 줄거리 자체가 크게 기승전결적인 구조를 가진 건 아니고, 전선과 막사를 교대로 왔다갔다 하며 자신들을 전쟁터로 내몬 기성세대에를 원망하고 비판하고, 어른이 되기도 전에 늙어버린 자신들의 의미없는 죽음을 스스로 조롱하면서 과거와 가족, 학우 관계가 언급된다.
전쟁 중 파울 보이머는 휴가를 받아 집에 가는데, 엄마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고, 어린 자신과 동료들을 전쟁으로 내몬 교사는 후방에서 편히 지내고 있고, 전쟁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어른들이 각자 전쟁에 대해 의미없이 떠드는 것을 참아야 한다. 다시 죽음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휴가는 유보된 죽음일 뿐...돌아온 그는 자원해서 정찰을 나갔다가, 우연히 참호 속에서 적군을 찌르고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립된 채로 정신적인 시련을 겪는다.
그들은 서커스의 말처럼 용감무쌍하게 조련되었음을 알게 되고, 죽은 동료의 시신 앞에서 바깥 복도에 부상자들이 대기하고 있으므로 침대가 필요하기에 빨리 시체를 치워야 한다는 재촉을 의무병에게서 듣고, 학교 밖을 나와 받은 최초의 직무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과 삶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죽음밖에 없음을, 그들의 삶에서 죽음 이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러기에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게 모두가 다 죽고 난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것만이 궁금하다.
모두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파울 보이머가 전사했을 때조차, 서부전선은 이상 없음으로 보고된다. 죽음이 피바다를 이룬 곳이 이상없는 곳. 그곳이 전장이다.
토마스 만의 단편 몇 권을 통해 만났던 역자의 번역이 가독성 면에서는(원서를 모르므로, 다른 건 모름) 매우 좋아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부끄럽게도 열린책들 같은 메이저 급의 출판사에서 오탈자가 문제였던 모양인데, 책이 바뀐건지, 내가 둔감한건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영원할 명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