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탄 세 남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5
제롬 K. 제롬 지음, 김이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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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브레이크가 필요해’. 세상 태평하고, 게으르고, 천친스러운 세 남자. <보트 탄 세 남자>에서의 템즈강 여행 이후 시간은 흘러, 주인공을 포함 두 사람은 결혼했고 아이들도 있다. 결혼 생활에 치인 남자들은 오롯이 다시 한 번 자유로운 여행을 꿈꾼다. 문제는 어떻게 실행하느냐다.  유일한 싱글인 조지가 ‘사업상 핑계’를 대자고 의견을 내자, 그런 핑계는 너무 자주 사용하면 안되며, 또한 진짜 필요한 경우를 위해 아껴둬야 한다는 이유로 기각된다. 결국, 각자의 아내들에게 용기내어 정직하고 당당하게 말하고, 최초의 아이디어는 조지에게서 나왔다고 떠넘기는데 합의한다. 


아내에게 눈치를 주어 어디가 불편하느냐는 말을 유도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정신적 문제가 생겼으며 단조로운 일상, 평화롭기 그지없는 축복의 나날 같은 것들이 삶을 질리게 하는 것 같다고 운을 띄우며 대화를 끌어나가는데, 뜻밖의 복병을 만난다. 그 단조로운 생활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생각이며, 자신도 그렇게 느끼고 있으며, 가끔은 얼마나 판에 박힌 생활과 가정을 떠나고 싶어하는지 모를 것이라고 역공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아내 에델버타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을 떠나 자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며 자신이 하려던 말을 선수친다. 여행 계획을 말하면 이별을 슬퍼하고 섭섭해할 줄로만 알고 있던 우리의 주인공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사소한 부부싸움이 참으로 아이러닉하며 코믹하다. 자기가 아내에게 여행계획을 둘러대려고 생각했던 온갖 말들을 반대로 아내에게서 듣게 되는데, 그게 그토록 섭섭한 것이다.  아내는 자신에게는 남편의 기분에 맞추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긴장감을 풀어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슬퍼하다가 삐쳐, 아내에게 당신이 원하는 게 자신을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거라면 그렇게 하라고 소리치다가 늙은 거위처럼 굴지 말라는 소리를 듣는다. 에델버타는, 자신에게는 결혼전처럼 남편이 소중한 사람임을 다시 깨달을 수 있는 2~3주의 자유면 되며, 해리스의 아내 클라라 역시 마찬가지일테니, 해리스도 데리고 어디론가 가주면 좋겠단다.  자신과 여자들은 멋진 별장을 빌려 쉬는 동안 남자들은 어디론가 떠나주면 좋겠고, 혼자 사는 조지 생각을 해서 조지도 함께 가라고 한다.  원래 그 계획이었는데 그게 여자들이 원하던 거였다니, 이제 여행 따윈 가고 싶지도 않고, 아내에게서 버림받은 느낌과 분노 뿐이지만, 그렇다고 여행 계획을 취소할 수도 아내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다.



여정은 2인용 자전거 한대와 1인용 자전거 한대로 라인강을 따라 가는 네덜란드와 독일 지역이다.  조지의 제안은 ‘함부르크까지 보트를 타고 간 다음, 베를린과 드레스덴을 보고, 뉘른베르크와 슈투트가르트를 거쳐, 블랙 포레스트(독일식으로 슈바르츠발트)까지다. 본론은 19세기 섬나라 영국인의 눈에 포착된 독일인과 독일 사회의 모습이 주요 내용이다.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영국과 독일의 관계는 긴장감이 돌았겠지만, 전쟁을 결정한 사람들이 일반 국민들이 아니므로, 여행중 긴장감은 없다. 다만, 융통성이 미덕인 영국에서 살던 사람들이 독일 특유의 절제되고 규칙적인 나라에 와서 적응하지 못해 또다시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사건 사고를 연발한다. 



<보트 위의 세 남자>에서 처음 보여주었던 위트는 이번 편에서는 살짝 떨어진다고 느꼈는데, 대신 해외 여행을 떠난 여행자의 시선에 보다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여행가이드에 나오는 여행 정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그들이 서로 다른 문화 때문에 당한(?) 황당한 일들과 재미있는 일화들로 가득 채워진다. 풍경 묘사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따로 설명하는데, '책에는 풍경 묘사도 없을 것이다. 내가 게으른 탓이 아니다. 말했듯이 자제하는 것뿐이다. 풍경을 묘사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읽어 내려가는 것보다 피곤하고 불필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주목한 문화적 차이는 규칙과 언어에 대한 부분이 많다. 100여년 전일인데도 독일은 이미 일상 생활의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지켜야 할 것을 규율화하여 감시했고, 국민들은 제복에 순응하고 복종한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 때문에, 수많은 규칙 위반으로 벌금을 엄청 내며 값비싼 경험을 한다. 



"독일에선 창문 밖으로 이불을 걸어놔선 안된다 … 독일 거리에선, 아니 사실 어떤 공공 장소에서도, 유리 잔이나 자기를 깨선 안 된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 조각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주워야 한다. 다 주운 다음 일에 대해선 나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것들을 어디다 버려서도 안 되고, 어디 그냥 내버려두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당신 곁을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가지고 다니다가 당신과 함께 묻혀야 하는 것 같다. 다 삼켜버리는 건, 아마 가능할 것이다."



작가의 코미디같은 문장은 이런 식이다. 또한, 드레스덴에서는 여행자들이 공공 전차를 처음 보고 경외감을 느끼는데, 열차 자체에서도 그렇지만 신분의 차이 없이 나란히 앉아 가는 풍경 역시 신기하다. 



"드레스덴의 이방인들이 가장 많이 바라보는 것은 아마도 전차일 것이다. 이 거대한 교통 수단은 굽은 길과 모퉁이를 돌며, 마치 아일랜드 마부처럼 시간당 16킬로미터에서 32킬로미터의 속도로 거리를 질주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 수단을 이용한다. 유니폼을 입은 관리들만 예외인데 이들은 타면 안 된다.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무도회나 오페라에 가는 숙녀들이 양동이를 든 청소부들과 나란히 앉아 있다." 



몇 세기 동안 열두어 개 남짓한 공국으로 분리되었던 독일은 지방 방언이 많아서, 오히려 자국 내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 구역별로 일치되지 않는 고유한 언어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현상을 소개하며,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세기 내로 독일에서 영어를 사용하게 될 거라고 장담한다. 당대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음을 생각한다면,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어 영어권의 학생을 제외한 전세계의 학생들을 평생 괴롭히고 있는 현재로서는 당시 저자의 이러한 근거없는 예측과 전망이 들어 맞은 것을 어찌 바라봐야 할지 대략난감하다. 특히 문법도 없다고 생각했던 영어가 세계화되리라고 주장하는 데에 거듭 주관적인 관점이라고 강조하는 부분을 보라. 



"금세기 내로, 나는 독일이 이와 관련한 난제를 해결하려고 영어를 사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소작농 계급 이상인 모든 독일 소년소녀들이 영어를 한다. 영어 발음이 덜 제멋대로라면, 몇 년 안에(거듭 말하지만, 주관적인 관점이다) 영어가 세계적인 언어가 되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모든 외국인들이, 문법적으로 영어가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데 동의한다. 독일 사람 역시, 모든 문장에 있는 모든 단어가 적어도 네 개의 각기 다른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자신들의 언어와 비교할 때, 영어에는 문법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적지 않은 수의 영국 사람들도 그런 말을 할 것이다. 하지만 틀렸다. 영어에도 문법이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리의 학교들도 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고 문법을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할 것이다. 어쩌면 문학계나 언론계에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번 자전거 여행이 보트 여행에서 빠진 게 있어 서운한 게 몽모랑시다. <보트에 탄 세 남자>에서 몽모랑시가 개라는 설명이 없이 몽모랑시도 동의했다는 둥, 거리의 패거리들을 다 데리고 와서 작별인사를 했다는 둥 하며 의인화되어 있어서 처음에는 한참을 모르고 읽는 경우가 많다. 대신 이들의 도시 여행에서 여행 가이드 마차를 고용하는데, 이 말들이 잠시나마 몽모랑시를 대신한다. 



"말이 표현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선 최대한 노골적으로 “하늘에 계신 신이시여!”라고 말한 뒤, 해리스와 마부를 인도에 세워두고 성큼성큼 프리드리히 거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부가 워~워~했지만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뒤를 좇아 달려왔고 도로딘 거리 모퉁이에서 우리를 따라잡았다. 나는 마부가 말에게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굉장히 흥분한 상태로 너무나 빨리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몇 마디가 들렸다. “어쨌든 나도 먹고 살아야지, 안 그래?” “누가 네 의견을 물었어?”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 돈줄인데!” 말은 도로딘 거리에서 스스로 멈추며 마부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알았어. 그만 하지. 일이나 하자구. 하지만 가능하면 뒷골목으로 가는 게 좋겠어. "



여담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행 가이드들의 관심사는 가이드 자체보다는 상품 판매 수수료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저렇게 말과 대화하던 마부는 여행 중 도시에 대한 설명 대신 내내 발모제 홍보에 열을 올렸고, 어떻게 하다 보니, 자기들이 그 발모제를 주문했고 호텔로 배달되어 온 것을 알게 된다. 



"천국은 주로 독일인으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어떻게 천국에 갈까? 하는 문제가 걸린다. 독일인 개인에게 스스로 날아가 천국의 문을 두드릴 의지가 있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죽은 경찰의 책임 하에 천국으로 인도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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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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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죽은 모든 자들은 그 전쟁을 거시적으로 얼마나 이해했을까. 가령 그들이 싸우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라든지, 누구를 위해서라든지 혹은 어떤 것을 쟁취하거나 수호하기 위해서라든지 그런 것들 말이다. 전쟁 소설의 전범이 된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전쟁 속 병사들은 더이상 사상 수호를 위한 명예로운 전사로 미화되지 않는다. 부품화된  개인의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다룬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리얼리티를 느꼈다면 이 소설이 주는 전쟁의 모습이 그닥 참담하게 느껴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고 사지가 절단되는 장면이 더이상 자극적이지도 않게 된 현실은 이 세계가 전쟁을 비롯한 폭력적 컨텐츠를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다루면서 둔감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반공 교육을 받던 시기여서, 한국전을 바탕으로 한 전쟁 드라마와 영화도 봐왔던 터였음에도, 기억 속의 이 책은 끔찍함만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허리 아래에서 반토막이 난 병사의 하체가 상체 없이 뛰어가는  장면, 참호에서 죽어가는 적군과 지내는 장면, 엄청난 수의 이를 잡는 장면, 팔다리를 사정없이 절단하는 장면 등이다. 그 외에 다른 것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너무 어두워 힘들었던 걸로 기억과 달리 밝고 때로 유머러스 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겨우 20살로 호밀밭의 파수꾼의 철딱서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이다. 좋은 시절을 만나 학교가 짤려 땡땡이 치고 하루 종일 방황하며 이사람 저사람 만나고 다니던 홀든 콜필드와 비교하면 18세에 전쟁터로 내몰려 서부전선에서 죽어간 파울 보이머와 반 친구들은 얼마나 보잘껏 없이, 파리처럼 개미처럼 생을 마감했는가. 그들이 전탱터에서 나누는 대화들과 시시한 농담들은 파울 보이머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뛰어놀 나이는 지났지만, 여전히 철부지에, 여전히 사소한 것들이 신기하고 즐거운, 같은 반 아이들은, 담임 선생 칸토레이의 장황한 연설에 이끌려 모조리 자원입대하게 된다.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10주 훈련을 받으며 네 권으로 된 쇼펜하우어 전집보다 잘 닦은 단추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10주 이후, 그들의 개인적 인격은 사라졌고, 단지 전쟁터에서 부품화되어, 할당된 임무만을 마치는 존재로 변했다. 개인의 공포, 개인의 불안, 개인의 부상, 개인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전쟁과 전쟁 뒤에 숨은 논리에 의해 모두 부정되는 현실이 작가가 그려놓은 현실이며, 이 실상을 그대로 옮겨 놓음으로서 전체주의 국가에서 개인이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말로 따로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게 했다. 당연히 나치가 이 책을 가만 놔뒀을 리가. 작가는 망명했고, 책은 불태워졌다.



전쟁이 아무리 개인을 소모품으로 만든다고 해도, 인간은 로봇이 아니며, 아무리 억눌린 곳이라고 해도 인간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감정과 욕망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보급이 신통치 않던 서부 전선에서, 중대원들이 전선에서 막 전투를 마치고 후방으로 돌아오자, 뜻하지 않는 좋은 일이 생긴다. 보급반에서 150명 전원 무사히 돌아올 걸로 예상하고 전원의 식사를 준비했는데 70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해 실려가고 살아남은 80명이 150명 분의 식사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학급 친구였던 캐머리히가 이 전투에서 다리가 절단되고, 옆에서 보기에 희망이 없어보이자, 뮐러는 그의 장화에 눈독을 들여, 팔머의 눈총을 산다. 하지만 뮐러에게는 누가 장화를 손에 넣건 케머리히는 죽을 것이며, 그에겐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고, 뮐러에게는 유용한 물건이고, 자신이 위생병보다 훨씬 더 우선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제 죽게 될 지 모르는 병사들이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당장 발에 맞는 한 쌍의 장화가 필요하고, 당장 두 배로 배불리 먹을 식사에 흡족해 할 수 밖에 없는 조건에 내몰린 인간들은 다름아닌 아직 세상에 나서서 뜻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홀든 콜필드처럼 좌절조차 해 볼 기회를 갖지 못한 어린 병사들이다. 


1차 대전 당시 서부전선은 참호전의 대치 상태로 엄청난 희생자를 낳았는데, 결국 처음 150명의 중대원들이 80이 된 후, 전선에 한 번씩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반씩 떨어져 나가, 나중에는 다른 중대원과 합해지고, 더욱 어린 신병과 보충병들로 대체되나, 전투경험이 없던 그들은 낙엽처럼 쓸려넘어진다. 그런 참혹한 와중에서도, 병사들은 서로와 서로를 의지하고 신병들을 보호한다. 



전쟁 이야기가 그렇듯 일화들이 모여서 전체 이야기를 이룬다. 따라서 줄거리 자체가 크게 기승전결적인 구조를 가진 건 아니고, 전선과 막사를 교대로 왔다갔다 하며 자신들을 전쟁터로 내몬 기성세대에를 원망하고 비판하고, 어른이 되기도 전에 늙어버린 자신들의 의미없는 죽음을 스스로 조롱하면서 과거와 가족, 학우 관계가 언급된다. 



전쟁 중 파울 보이머는 휴가를 받아 집에 가는데, 엄마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고, 어린 자신과 동료들을  전쟁으로 내몬 교사는 후방에서 편히 지내고 있고, 전쟁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어른들이 각자 전쟁에 대해 의미없이 떠드는 것을 참아야 한다. 다시 죽음 속으로 돌아가야 하는 휴가는 유보된 죽음일 뿐...돌아온 그는 자원해서 정찰을 나갔다가, 우연히 참호 속에서 적군을 찌르고 그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고립된 채로 정신적인 시련을 겪는다. 


그들은 서커스의 말처럼 용감무쌍하게 조련되었음을 알게 되고, 죽은 동료의 시신 앞에서 바깥 복도에 부상자들이 대기하고 있으므로 침대가 필요하기에 빨리 시체를 치워야 한다는 재촉을 의무병에게서 듣고,  학교 밖을 나와 받은 최초의 직무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는 사실과 삶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죽음밖에 없음을, 그들의 삶에서 죽음 이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러기에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게 모두가 다 죽고 난 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것만이 궁금하다.


모두가 죽어가고 있음에도, 파울 보이머가 전사했을 때조차, 서부전선은 이상 없음으로 보고된다. 죽음이 피바다를 이룬 곳이 이상없는 곳. 그곳이 전장이다.



토마스 만의 단편 몇 권을 통해 만났던 역자의 번역이 가독성 면에서는(원서를 모르므로, 다른 건 모름) 매우 좋아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부끄럽게도 열린책들 같은 메이저 급의 출판사에서 오탈자가 문제였던 모양인데, 책이 바뀐건지, 내가 둔감한건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영원할 명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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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3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04 0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Falstaff 2018-07-0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중판을 찍었을 리는 없고, 중쇄를 찍으며 교정/교열을 다시 한 것 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정말 기념비적으로 엉망입니다.
저도 레마르크의 세 편의 작품은 굳이 말로 할 필요 없을 만큼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CREBBP 2018-07-04 08:1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이북으로 읽어서 이북 판을 만들면서 업데이트했을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쓴 리뷰들을 보니, 수정작업을 한 듯합니다. 이 책 읽고 싶어하는 분들 많은데 오탈자 이슈 때문에 못읽고 있다고 하는 분들 많더라구요. 수정 제대로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이들 읽으셨으면 해요
 

건강 염려증 친구 셋이 자 우리 도시에서 이러지 말고 복잡한 생각을 다 떨쳐버릴 수 있게 신선한 공기를 쐬고 오자, 이렇게 얘기가 나와 여러 의견 교환 끝에 템즈강 보트 투어를 나선다. 노젓는 작은 배에 온갖 먹을것과 필수품을 싣고 런던 외곽 킹스턴에서 출발, 일주일동안 템즈강 하류를 거슬러 노를 상류쪽인 옥스포드까지가 갔다가 강을 타고 내려오는 게 그들의 여정이다.


이렇게 보면 여행기 같은데 소설이다. 이 책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후에 후속편 격인 <자전거 탄 세 남자>도 썼다. 형식상 소설이지만 서두에 '진실'을 기반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행문적인 요소도 있어서 <빌브라이슨의 영국 산책>의 유머 코드와도 살짝 통하는 데가 있다. 영국의 코메디언 미스터빈을 생각하면 그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표정이 떠오르는데 여기 나오는 주인공들이 연출하는 바보짓이 딱 그과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는 비주얼이 감칠맛나는 언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것만 다르다. 게다가 셋이 함께 하는 여행이라 티격태격 슬랩스틱 코메디가 트리플로 펼쳐진다. 


문장이 단순한데도 웃기고 재밌어서 번역을 어떻게 한걸까 궁금, 나중에 알고 보니 예전에 영어판을 구매해둔 게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문판은 엄청 짧고,  19세기에 쓰여진 티도 별로 안날만큼 단순하고 쉬운 문장으로 되어 있다. 번역문은 원작의 미묘한 표현을 티끌 하나 버리지 않고 자연스럽고 웃음 터지게 번역했다. 


그런데 이 책 제목 전에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우주복 있음 출장가능>에서다.  소년 주인공 킵이 아빠에게 우주에 가고 싶다고 조를 때 아빠가 읽고 있던 책이 바로 이 책인데,  킵의 아빠는 하도 많이 읽어 달달 외울 것 같은 그 책에 손가락을 끼우며 무심하게 대답한다. '가려무나'. 이 무심함 속의 유머는 <여왕마저도>, <화재감시원 > 등을 쓴 코니 월리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던 모양이어서,  이 책의 부제 <-개는 말할것도 없고>와 동일 제목의 소설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를 쓴 후 서문에 이 책을 처음 알게 해 준 작가 하인리히에게 감사의 헌가를 바친다. (코니 월니스의 개는..은 오랫동안 절판이었는데 아작에서 7월중 출간된다는 훈훈하고 따끈한 소식, 아작 좋아)


이렇게 세 개의 소설이 연결되는데 아직 코니 월리스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다. 부제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번역본 제목에서는 빠져있지만, 이들 세 남자의 여행에 동행한 몽모렌시라는 개의 소설 내에서의 위치도 함께 말해준다. 독특한 캐릭터와 웃김의 비중이 세 남자 못자 않게 크고 사랑스럽다. 아 그런데 세 남자도 모두 사랑스럽다. 어찌 그리 게으르고 천진하며 뻔뻔한지.


여행기의 형식 내에서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주인공이나 등장 인물(개 포함)이 겪거나 들은 스토리텔링이 적절히 배합되어 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잘잘한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웃음을 유발시키지만, 그들이 들른 곳에 대한 장소가 배경을 이루고 있기에 여행기로서 그들이 들르는 곳 역시 관심이 간다. 코메다 코드에는 과장이 기본으로 깔려 있지만 흐르는 강물을 따라 뱃놀이를 즐기던 19세기 런던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겨져 있으며 들르는 마을의 지나간 모습들 역시 알 수 없는 향수를 자극한다. 















킵의 아빠처럼 외울만큼 계속 읽는 사람도 이해갈 것 같다. 사실 슬픈 이야기라 하더라도 화자의 말솜씨에 따라 웃길 수 있고,  같은 상황을 묘사하더라도 이라도 어떻게 묘사하느냐에 따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웃음의 정도차가 큰데 아 진짜 이 책은 최고다.


그런데 전자책에는 보트 얘기 말고 귀신 얘기 한 편이 더 들어 있는데 그건 별로다. 딱 내 수준과 스타일에 맞는 저

자여서, 제롬 K w제롬의 책은 밑고 보겠다. <자전거타는 세 남자>는 같은 출판사의 번역본이 있는데, 그것도 재미있지만, 웃기는 정도가 이 책이 더 웃기다. <자전거탄 세 남자>는 조금 더 유럽 풍물에 대한 내용이 많다.  <게으름에 대한 생각> 그것도 번역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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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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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에 태어난 찰스 부코스키가 첫 소설 우체국을 낸 해는 1971년이다. 50세가 넘어 데뷔했다는 건데 그 이전까지는 하급 노동자로 전전하며 살았다. 그 중 우체국에서 12년간 우편 분류 일을 하면서 잦은 지각과 불성실한 근무로 해고 직전 한 출판사에서 전업작가가 되어 글을 쓰면 매달 1백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는 결정적 계기가 주어진다 이 후 우체국에서의 직정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페르소나이자 삶이 투영된 정편 <우체국>으로 데뷔 후 여생을 활발한 작품 활동에 바친다. 문학계의 이단아라고 하는 그의 작품 세계에는 헨리 치나스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야설적이고 마초적이라고 알려진 그의 작품들 중 이 책은 성장기가 배경이라 딱하게도, 야한 건 주로 생각 속에서만 머문다. 


후에 ‘우체국’과 ‘여자들’에서 묘사하는 마초적 인간상으로 이어질 인생극장의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가 배경이지만 더 늦게 쓰여졌다.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의 가난한 성장기의 좌절과 체념, 낙담과 실패 같은 곤궁과 체념, 될대로 되라는 식의 정서가 지배적이다. 유년시절의 방황을 다룬다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삶의 방향이나 가치관이 새롭게 정립되는 기회가 오거나 성장하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 그는 성장하지 못한다. 성장 과정의 좌절은 해소되지 않고 절망은 깊어지며 곤궁에서 빠져나올 기회는 오지 않는다. 

어찌 보면 빈곤했던 50년대와 60년대 혹은 70년대를 통과한 우리에게 이 책에서 흐르는 비관적이고도 체념적 정서는 성장기와 청소년기의 다수가 경험한 보편적 정서일 수도 있다. 비록 어르신들이 경험했던 극심한 가난과 배고플 염려는 별로 없는 시대지만 소수의 상위 몇 프로가 사회전체가 생산해 낸 부와 영예를 독식하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며 욕망과 절망은 함께 움직이며 보이지 않는 경계의 안쪽과 바깥쪽 사이에서 방황한다. 지금 이렇게 시간이 데려다준 곳에서 돌이켜 보면 내가 무엇이 될 지 아득하고 막막하기만 했던 시절은 푸르디 푸른 청춘이었다. 하고싶은 것과 할 수 없는 것 주어진 기회에 성의 없이 매달리면서도 주어지지 않은 가능성에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방황했던 숱한 날들 그 잠못들던 순간들이 헨리 치나스키의 냉소와 통한다.

작가의 분신인 치나스키는 폭력과 빈곤, 그리고 소외를 어린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외투처럼 걸치고 다닌다. 그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폭력적 아버지를 순종적인 어머니가 제어할 수 없는 빈곤한 가정에게 자라면서 동네와 학교 친구들에게서는 왕따와 따돌림을 당하지만 치나스키를 따라다니며 친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장애가 있거나 치나스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신보다 약자인 찌질이들이다. 강자에게서는 따돌림과 괴롭힘을 약자에게서는 원치않은 관심을 받으며 성장하는 동안 그를 둘러싼 환경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게다가 완강한 아버지는 그를 부자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넘들 다 있는 차도 없어 볼품없이 자전거를 타고 등교해야 하고 피부병으로 외모조차 엉망인 그는 하루하루가 희망없는 좌절의 연속일뿐이다.

제목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이 생각나는데 청소년기의 좌절을 그린 성장담이라는 면에서 비슷한 데가 있자만 부코스키의 작품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자전적 경험을 더 냉소적으로 다룬다는 느낌이다. 소설이긴 하지만 우체국과 같은 전작들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으며 이런 지난한 방랑적 시간을 거쳐 느지막이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소설 속 치나스키 역시 작품을 쓰기도 하지만 친구의 작품과 비교해 스스로 형편없다고 여길 뿐만 아니라 작가가 되기 위한 어떤 기회도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작중 화자의 나중을 알고 있는 독자로서는 안타깝기도 하다. 작가가 되어 세계적 명성을 떨친 후에 돌아본 그토록 시시하고 보잘것 없었던 유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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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9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9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한국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민주주의는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해방과 동시에 선진국이 오랜 기간 갈고 다듬은 제도와 법률을 가져왔을 때만 해도 그걸 제대로 신생국가에 적용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일이란 걸 알았을 리가 없다. 3.1 독립 운동 이후 민주화 열망은 권력 찬탈자들과 불의에 대항하여 곳곳에서 끊임없이 불타올랐고 때로 많은 피를 뿌리고 실패했고 때로 목적을 이루면서 때로 앞으로 한 발 때로 뒤로 두발 건너뛰며 뒷걸음질칠 때도 있었지만 국민적 열망은 결국 한발 한발 민주화에 향해 앞으로 내딛고 있었다. 


이 책은 작가 유시민이 태어난 1959년부터 이 책의 출간 즈음인 2014년까지의 55년 현대사를 ‘진보 정치인’의 시각으로 정리한 책이다. 책의 서두에 진보 정치인이라는 따옴표를 붙였는데, 현대사는 작가의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수 있음을 밝히면서 자신의 성향이 진보임을 미리 밝히기 때문인데 누가 그걸 모르나 이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백퍼 그가 진보적 성향임을 알 터인데도 그런 말을 덧붙이는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하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부조리들을 조목조목 밝히고 싶어서일거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좀 센 책일거라 기대했는데 에게게 이게뭐야 할 정도로 편중되지 않고 공정한 시각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한다. 


서두에서 덧붙이기를 보수 진영에서도 현대사 관련 책을 쓰긴 쓰지만 잘 안팔린다고 한다. 당연하지 언론에 뿌리는 거짓을 책으로 옮기면 공정해지나? 결국 책방과 출판사에서도 진보 성향의 작가 책이 잘나간다는 건데 실제로 읽어보니 진보 진영의 한쪽 논리 뿐만 아니라 보수 쪽의 주장과 논리도 빠뜨리지 않으며 애초에 친일을 청산하지 않고 친일과 손잡은 이승만 계보를 타고 기득권을 지켜온 보수의 명과 암을 동시에 살핀다. 박정희의 혈서까지 쓰고 한 친일과 공산주의 행적에 관해서도 한없이 너그럽다. 박정희는 무슨주의자가 아니었다는거다. 유신 파트를 제외하면 이승만에 비해 박정희를 그렇게 까지도 않는다. 


5.16 구테타를 혁명으로 배우던 시절이 있었다. 4.19에 대해서도 뭔가를 배우기는 했는데 의거라고 했던가. 내가 알기로 4.19는 이승만 독재와 부패 무능 정권에 맞선 자발적인 온국민의 민주화 운동이었고 5,16은 그저 총과 탱크로 권력을 찬탈한 구테타였을 뿐인데. 저자 유시민은 카안과 아벨의 비유를 들어 4.19와 5.16을 이란성 쌍둥이에 비교한다. 동생 5.16이 형 4.19를 짓밟고 땅에 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4.19는 ‘아벨과는 달리 죽지 않았다. 흙더미를 헤치고 세상에 나와 다시 일어섰다’ p67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이지 4.19의 정신은 총과 칼에 헛되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말에 동의가 된다. 어쩌면 백년에 걸쳐 그토록 많은 피를 뿌린 후에야 왕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이룩한 프랑스만큼이나 우리나라 현대사는 끊임없이 피로 얼룩져왔다.


왕정이 이미 몰락한 후였으므로 국민의 뜻에 따라 선진 제도를 받아 들여 민주적인 시스템을 만들면 되는 거였을텐데 국제 정세와 국내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이미 열강의 각축전이던 한반도는 해방 후 신탁과 반탁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다.


공산화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통일국가로 가는 길과 북한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주고 남한에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길이 있었다.( p75)’ 다시 오래전 편향된 역사 교육(라 쓰고 우민화 교육이라 읽는다) 을 상기해보면 신탁은 또다른 식민지를 의미하는데 북한은 줏대도 없이 소련에 모든 결정을 의탁하는 신탁 찬성을, 우리나라는 신탁 반대를 했다는 건데, 신탁 찬성은 한반도의 통일 국가가 전제였다는 사실까지 그 '역사 교육'이란 것이 가르쳐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승만이 관심있던 것은 통일이 아니었다. 반쪽을 나누어 그 반쪽을 자신이 독차지하고 싶은 거였다. '자유'라는 이름은 그렇게나 편리하다. 


독재, 부패, 부정선거와 시민 살상으로 권력을 유지했던 이승만의 ‘합리적’ 선택이 유산으로 남긴 것이 있다면 한반도를 핵공포와 만성적인 전쟁 위협에 시달리게 한 분단 시나리오였다. 이승만의 권력욕으로 우리는 불안한 자유를 얻었지만 그 시절부터 박정희와 전두환을 비롯한 전제 정치 기간동안 지금까지 진정 자유로왔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물론이고 인간의 기본권마저 종종 침해당하면서 자각하지도 분노하지도 못했던 시간들 속에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매일 암송하고 저녁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조국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고 영화관에서 대한 뉘우스를 들어야 했던 일상이 포함된다. 


만일 ‘삼팔선을 베고 죽을지언정 민족의 분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김구를 암살하지 않았다면, 만일 신탁에 찬성하고 좌우 동거의 통일 정부가 구성되었다면…지금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으며 그 가정 속에는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가 되었을 가능성 1퍼센트라도 내포하고 있기에 우리는 역사를 가정할 자유를 갖지 못했다. 박정희에 대한 노스탤지아는 탄핵으로 마감한 지지난 총선에서 박근혜의 승리로 나타났다.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도대체 유신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그는 전국민의 눈을 감으라 하고 코를 베어갔다.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한꺼번에 찬탈하고 박정희 왕조를 만들려고 했다. 저격으로 죽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자유를 자유의 모든 것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었을까. 남북으로 김씨와 박씨 일가가 앞다투어 왕조를 이어가고 있었을거다. 아찔할 뿐이다. 


그런 독재자의 딸을 독재자의 딸 이었기 때문에 선택한 국민은 그 독재자가 통치하던 기간에 한국 경제가 막 이륙한 변화에 적응하고 경험한 기성인들이다. 일제와 전쟁으로 황폐한 땅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만을 경험한 그들이 박정희 통치기간 중 재건에 속도가 붙고 산업화가 시작되었으니, 그 황홀한 번영은 그 번영 앞에 서 있던 박정희를 그들에게 신적 존재로 만들어 놓았을 수도 있겠다.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좋아하는 시민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대상은 사실 그의 인격과 행위가 아니라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시민들 자신이 쏟았던 열정과 이루었던 성취 자기 자신의 인생일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p100)


'로스터(1916_2013) 는 어떤 나라든 적절한 정책이 있으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산업화는 비행기를 하늘에 띄우는 것과 비슷하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사회는 변화가 느리고 성장률이 낮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갑자기 빠른 속도로 경제가 성장한다. 이것이 이륙이다. 일단 이렇게 성공한 국민 경제는 성숙 단계를 거쳐 높은 수준의 대중 소비 단계로 나간다. p114'


'생애 전체를 통해 그가 일관성있게 추진한 것은 권력 하나뿐이었다. 116'


'어느곳에서나 자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며 태어났다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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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9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06-28 13:42   좋아요 1 | URL
글도 잘 쓰시지만, 머리속에 쏙 쏙 잘 들어오게 말씀도 잘하셨는데, 썰전 하차 소식 우울해요.